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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으로의 산책 - 청춘, 오래된 미래를 마주하다
예오름(MAFLY) 지음, 이주연 사진 / 로크미디어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그리고 겨울로. 사실 책을 읽기 전 작가의 이력만 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여행서정도로만 여겼던터라 여름휴가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골랐는데 프롤로그부터 진지하게 진동이 느껴졌다. 미세한 진동이 본문을 읽으면서부터 강하게 바뀌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회사 옆 백범 선생과 안중근 의사 동상을 한참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날은 동상 곁에 있는 빈터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동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저자처럼 찾아가 볼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잠시나마 그들에게 시선을 두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가 시선을 두었던 사람과 장소는 독립운동가와 그들이 임시정부를 세우고 머물렀던 상하이, 자싱, 항저우, 다롄, 옌지, 하얼빈, 충칭 그리고 서울이다.
어떤 장소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우울한 마음으로 찾았는데 풍경이 너무 좋아서 기분이 바뀔 수도 있고, 경치 좋은 카페에 왔는데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헤어지자는 슬픈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삶의 진지한 고민을 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갈림길에서 어떤 결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80쪽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도 중국쪽으로는 마음을 둔 적이 없었다. 장엄한 풍경도, 기대보다 훨씬 더 화려하다는 상하이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는데 이 책<낯선 곳으로의 산책>을 읽으면서 분명한 이유가 생겼다. 아름답다는 그곳을 차마 아름답게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참은 어린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귀한 생을 달리한 장소이고, 그런 엄숙한 일들을 계획하고 도모했던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저자는 그 아픔의 현장에서 자문하고 괴로워하며 독자들을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이끌어주고 있었다.
매일 강제 노역을 하고 혹독한 곰누을 당하면(서)도 그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고문을 당했던 감방과 기구만 보아도 눈살이 찌푸려지고 잔인함에 고개를 돌리는 내가 그 시절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나도 저들처럼 대한독립을 위해 힘쓸 수 있었을까. 127쪽
저자의 답은 'No'였다. 저자는 부끄럽다 하였다. 독자인 나역시 같은 대답, 같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니 더 많은 부끄러움을 가진다. 서른 살을 앞두고 저자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자신의 조국을 지켜주었던 이들의 흔적을 찾아갔는데 지난 내 서른을 떠올리니 여전히 내 안에만 가득차 가장 가까운 내 가족들의 마음조차 헤아리질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마흔, 어찌보면 참 다행이다 싶다. 쉰이 되기 전에 저자가 걸었던 그 '산책길'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니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덕분에 저 먼미래 내가 걸어야 할 길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년 봄,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는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