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팔 독립선언
강세영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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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 독립선언.

이십팔. 정말 좋은 나이다. <이십팔 독립선언>의 저자가 들으면 다시금 자신의 나이를 부르며 울먹일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참 좋은 나이다. 비단 저자의 나이가 이십대라서가 아니라 얼마전 <나이듦의 기술>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살아있는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의 책임을 다하고 사랑을 가지고 있는 한 모두다 좋은 나이다. 자신의 나이가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지나고 보니 서른도 아닌 20대의 후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해가 지났고, 사회에서도 더이상 신입이 아니며 무엇보다 새로 시작하기에는 그야말로 애매하다고 느껴지는 때라서 그렇다. 그래서일까. 서른을 앞두고 유학을 가는 사람,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 서른이 오기 전 출산을 해야한다며 결혼을 택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앞에 열거한 모든 것들은 만만찮은 돈이 든다. 심지어 겨우 신입에서 벗어났을 뿐인 경력마저 단절될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한다. 그렇기에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다름아닌 집으로부터의 독립일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이유 있는 독립 권장 에세이'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독립의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을테고, 서두에 밝힌 것처럼 진정한 의미로 성인이 되기위해 과감하게 도전했을 수도 있다. 그보다 현실적이며 가장 큰 이유는 출퇴근시 받는 스트레스를 덜기 위함이다. 시간이 단축되고, 그렇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덜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특히 여성직장인들이라면 별별 이상한 생명체로부터 당할 수 있는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물론 독립했기에 조심해야 하는 위험도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저자의 말처럼 소리 하나하나에 민감해지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다양한 공포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라 사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독립은 절대 반대다. 회사와 집의 거리가 왕복 4시간 이상이라면 모를까 왠만하면 독립은 말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해야겠다면, 저자처럼 혼자 떠나는 여행을 우선 권하고 싶다. 혼자서 여행지를 정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그저 아침에 나갔다가 대충 쇼핑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먹고, 자고, OO하라'라고 불특정 다수에게 소리치고 싶을만큼 만족스러운 여행을 경험했다면 일단 독립도 어느정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


 


혼자산다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며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힘들어도 청소와 빨래와 같은 가사를 직접 해야하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정전이어도 날 대신 해 촛불을 밝혀줄 이가 없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이렇다면 심리적인 부분은 더하다.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도 아빠가 준 선물이라 찼던 묵주팔찌가 마치 아빠인 것처럼 느껴져 견딜만했다는 저자의 고백만 보더라도 심적으로 단단해지기 전에 우리를 찾아오는 다양한 슬픔을 견디기란 만만치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면서도 독립을 권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나와 잘맞는 사람인지를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 무엇보다 내가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 수 있는데 있다.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그 '누군가'를 좋아할 때나 해당된다. '영화감상'이 목적이라면 저자의 말처럼 차라리 혼자보는 것이 현명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 지 제대로 볼 수 있다. 가족에게 기댈 수 있는 것은 위로와 어느 정도까지의 기댐이다. 어른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독립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 부제만 보고 요리와 인테리어 등 살림에 관한 저자의 팁이 담겨있지는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독립했더니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버라이티 하고 낭만적인 독립생활이 펼쳐졌다는 나름의 성공기를 예상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더라면 이 책은 어떤 만족도 줄 수 없을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는 그저 "서울에 사는 28살 여자 사람'일 뿐이다. 덕분에 자신의 삶과 비교하며 자책하거나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공감하고 이해되지 않을 때 그럴수도 있구나 고갤 끄덕여 준다면 저자가 참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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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푸꾸옥 셀프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이은영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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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저 여러분의 '훌쩍 떠나는 여행'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쓴 여행 보조서에 불과하다는 점 잊지 마시고, 무엇보다도 '안전제일주의', 그리고 약간의 '모험심'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자유롭게 떠나보시길 바랍니다. 온갖 걱정거리나 지인들의 잔소리 등은 인천공항 화장실에 버리고 말입니다. 늘 동료 여행자분들의 안전여행, 인생여행을 기원합니다. - 프롤로그 -


한 권에 다 담았다, 이 책 한권이면 충분하다는 여행책만 보다가 이토록 겸손한 저자서문을 읽고서는 처음으로 저자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베트남은 가본적이 없어서 이 책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졌는지 알길은 없지만 여행을 위한 목적이 아닌 '독서'를 목적으로 따져봐도 이 책은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 책은 가이드북이다. 베트남, 그것도 나트랑, 푸꾸옥만을 집중 수록한 이 책이 과연 내게 그곳으로 떠나고픈 충동까지 일으켰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이 리뷰를 쓴다는 것 자체가 그 대답이 될 것이다.


 

 

 


꽤 오랜시간 남자친구가 없던 내게 여행은 가족 혹은 연인아닌 지인과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여유와 휴식의 다른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게도 연인이 생겼고, 과감하게 TRY2 3박 4일 연인과 떠나는 로맨틱 여행에 관련된 내용을 중점적으로 리뷰할 것이다. 그에 앞서 나트랑&푸꾸옥에 가면 도대체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먹을 수 있기에 이렇게 별도의 책이 출간될 수 있었을까. 저자가 추천하는 '나트랑 & 푸꾸옥에서 꼭 해봐야 할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나트랑은 전통적으로 유명한 휴양지이고 푸꾸옥은 미지의 섬이었다가 요새 핫해진 곳이다. 덕분에 베트남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특히 관광도시가 되면 과거의 모습을 잃기 마련인데 푸꾸옥은 시골마을의 매력을 상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고급 호텔이 들어선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장기체류자 부터 단기 여행자 모두가 만족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무조건 푸꾸옥 승인듯하지만 섬나라 가면 해변의 그 화려한 풍경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밤과 낮이 전혀 다른 화려한 볼거리와 클럽을 기대한다면 이번에는 나트랑이 승이다. 무엇보다 싱싱한 해산물보다는 다양한 세계음식을 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역시나 나트랑이 훨씬 더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다면 각각의 베스트 5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나트랑을 대표하는 5가지는 최고의 휴양지에 걸맞는 해변과 모래사장, 그리고 선셋을 감상하기 좋은 해변이 있다는 사실과 앞서 말한 것처럼 화려하게 클럽과 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머드 스파까지 생겨나서 해변이 부담스럽거나 별로인 사람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고 고대의 사원 뽀나가르 참탑을 들러볼 수 있다. 그렇다면 푸꾸옥의 베스트 5는 무엇일까. 나트랑과 마찬가지로 해변을 손꼽을 수 있고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호핑 투어와 같은 해양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더불어 '베트남 최대의 사파리'라 불리는 빈펄 동물원이 있고, 역시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선셋 바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현지인들의 생생한 삶을 만날 수 있는 야시장을 들러볼 수도 있다. 푸꾸옥의 경우 다른 휴양지와는 달리 큰 마트가 없으니 기념품 구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클럽보다는 야시장, 스파는 국내에서도 잘 가니 끌리지 않고 무엇보다 동물원을 좋아하는 내게는 나트랑보다는 푸꾸옥이 끌렸다. (물론 나트랑에도 최근에 동물원이 생겼고 놀이동산의 경우는 빈 그룹에서 이제 막 유명해진 푸꾸옥보다 나트랑에 먼저 건설하기도 했다.) 다행인것은 앞서 언급한 TRY2 3박4일 연인과 떠나는 로맨틱 여행이 추천하는 일정이 푸꾸옥이었다. 첫 날은 당연 해변에 갔으니 해야 액티비티를 추천해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이들수록 겁이 많아진(절대 수영복이 거부하는 몸이라서가 아니다)나는 동물원을 갈 예정이다. 빈펄 동물원을 반드시 가지 않더라도 푸꾸옥에서는 멸종위기에 있는 동식물을 포함, 43종의 포유류와 119종의 조류, 47종의 파충류, 14종의 양서류 등 다 적기도 벅찰만큼 많은 동물이 있고 특히 오키나와에서 만났던 '바다의 여인'이라 불린다는 '듀공'이 서식하는 곳이라고 한다. 사족을 달자면 바다의 여인이 아니라 내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정말 크고 좋게말해 신기하게 생겼다. 푸꾸옥에는 대표적인 야시장 진 꺼우시장이 있는가 하면 해산물을 주로 판매하는 즈엉동 시장도 있다. TV에서는 앞서 언급한 푸꾸옥 야시장을 <배틀트립>프로에서 모델 송경아와 송해나의 여행이 방영되기도 했다. 나처럼 푸꾸옥을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저자의 팁을 좀 더 열거하자면 느억맘이라 불리는 멸치액젓 공장투어와 다양한 색상의 후추, 그리고 나를 위해 진주를 선물하라고 쓰여있다. 아마도 나는 엄마와 언니에게 줄 진주를 사지 않을까 싶다. 놀이기구를 타기위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그렇기에 조금은 덜 화려한 빈펄랜드 푸꾸옥도 꼭 가보고 싶은 장소 중 하나다.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에 따라 푸꾸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사실 이 책의 절반은 제목에 적힌 것처럼 나트랑 여행정보가 담겨있고 최종적으로 말미에는 베트남 여행에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베트남으로 정하긴 했는데 좀 더 세세하게 나트랑과 푸꾸옥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을 때, 저자의 말처럼 걱정은 공항에 내던지고 이 책을 데려가자. 훌쩍 떠나게 될 때는 특히나 이 책이 좋은 보조, 조수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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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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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희생의 미덕이 어쩌고 하는 감상에 빠졌다기보다는 그 어린 사람 그늘에 대해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태양의 후광을 받고 서 있는 아이들의 실루엣에서 문득 보살의 환영을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318-319쪽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방랑>리뷰를 시작하기 앞서 영화<카모메 식당>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로 이주 한 한 일본여성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연으로 식당을 차리고, 또 그 식당의 종업원이 되고 손님이 되었는지 영화에서는 똑부러지게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짐작할 뿐 이다. 그저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또 그 보다 더 큰 상대를 위한 친절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보여준다. 물론 무레 요코가 쓴 원작소설 에서는 친절하게 가게 주인의 이야기부터 들려주니 영화를 보기전에 소설을 먼저 읽는것도 나쁘지 않다. 이 이야기를 책 <동양방랑>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서두에 적은 발췌문 때문이다. 위의 내용은 후지와라 신야가 버마(미얀마)의 한 노점에서 밥을 먹을 때의 일을 적은 것이다. 여행지에는 특히 대도시가 아닌 곳은 어린아이들이 곁에 다가오는 것이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여행객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자도 식사중인 제 곁에 아이들이 점점 더 다가오는 것이 신경쓰이고 급기야 안그런척 여주인에게 아이들의 태도에 대해 언급한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애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라고. 의아하게 생각한 저자가 재차 그 응달의 의미를 묻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일본인들이 응달의 의미를 모르는거냐고 되물을 뿐이다. 아이들이 곁으로 다가온 것은 식사중인 여행객인 저자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일말의 두려움을 느낀것이다. 다시 <카모메 식당>으로 돌아가자면 내가 영화를 보았을 때의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일본은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속내는 알 수 없고 때로는 전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선입견을 가졌던 내게는 그정도의 충격과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 또한 마찬가지의 감상을 주었고 그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화려하고 낭만적인 여행뿐 아니라 그다지 따라하고 싶지 않은 저자의 방랑이 어느덧 청춘을 넘어버린 내게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존재함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여행이 삶을 축소해놓은 것이라고 할 때 여행 혹은 방랑중에는 이렇듯 뻔한 상황과 전혀 의외의 상황이 교차되어 등장한다. 가령 우리가 여행기에서 흔하게 접하는 문장인 다음의 경우가 그렇다.



+ 나는 지금 이 글을 터키 중앙부에 위치한 앙카라의 M이라는 변두리 호텔에서 쓰고 있다. 55쪽


+ 지금 나는 안탈리아의 해안 절벽에서 검은 나비를 손에 들고, 지중해의 부드러운 리듬 속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던 그 늙은 칸초네 가수를 떠올리고 있다. 104쪽


+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자주 있다. 흑해를 보고 싶은 절박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때떄로 의지를 거스르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여행의 습성이라고나 할까? 143쪽


그 당시 내가 어디에 머물렀는지, 지금은 과거가 된 과거의 '지금'은 어땠는지를 우리는 여행기를 통해 접한다. 그리고 그 여행기가 맘에 든다면 훗날 바로 그 장소로 날아가 부러워하고 소망하던 그 여행자의 흉내를 낸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그와 같이 글을 쓸 줄이야. 라면서. 그런가하면 이미 떠나온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새로운 장소에서 떠올리며 곱씹기도 한다. 그때의 감정과 상황이 반드시 기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상황에서의 감정과 태도가 옳은 것만이 아니었음도 알게 깨닫게 된다. 그런가하면 저자의 말처럼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반응에 따라 쉽게 체념하고나 납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동양방량>을 통해 내가 찾은 답은 사람, 좀 더 확대시키자면 인연이라는 것에 있다고 본다.


때리겠다고 덤벼도 아무것도 주고 싶지 않은 거지가 있는가 하면, 쫓아가서라도 뭔가 해주고 싶은 거지도 있다. 거지도 다양하다. 가령 만 명의 거지에게 똑같이 연필 한자루씩 나눠주는 방식만큼 거지를 무시하는 처사도 없다. 인격과 인격이 만났을 때 비로소 감정이 생기고 행위가 일어나는 법이다.216쪽

 

위의 내용은 콜카타에서 만난 거지, 거지왕편에 등장한다. ?비단 거지뿐이겠는가. 인격을 대하는 데 있어서 '평등'과 '공평'은 어찌보면 위선이지 싶다. 물론 반드시 공평하게 대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저자의 말처럼 수 만명의 거지에게도 공평하게 라는 수식어를 달고 연필 한자루씩 나눠주는 것은 옳지 않다. 거지 저마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물론 공통적으로 원하는 돈을 줄 수야 있다면 좋겠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자면 그 또한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재미난 사실은 저자가 거지에 대해, 인격과 인격에 관해 풀어놓은 이 에피소드의 주된 내용은 수입이 좋았던 거지왕에게서 느낀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무언가 똑부러지게 말할 수 없지만 이 엄청난 방랑을 하는 그도 역시나 나와 같은 보통의 여행자구나 라고 느껴지던 부분이기도 하다.



여행과 방랑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학사전에 등록된 바로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은 여행이고,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은 방랑이다. 결국 목적이 있느냐의 여부로 나누자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동양방랑>, 즉 정한 곳 없이 떠돌아다닌 이야기다. 덕분에 여행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명목'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독자인 내게도 훨씬 자유롭게 그의 방향과 방랑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굳이 왜 그런 모험을 한 것인지 묻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더불어 왜 굳이 이 책을 읽는지에 대해서 답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니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삶을 봐두는 것이 좋다고 결론지을 뿐이다. 마치 하단에 발췌한 터키 트로트의 마지막 대목처럼, 그 거리 뿐 아니라 이 삶을 두 번 다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거리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 거리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 거리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


- 31쪽, 터키 트로트의 마지막 대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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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 자존감이란 몸으로부터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디아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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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슴 뛰는 일을 하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라, 가슴이 열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모두 같은 말이다. 아이처럼 기쁜 일·사람·공간·시간을 만나라는 말이다. 삶에서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혹은 많이 줄었다면 가슴 뛰는 느낌을 찾아야 하고, 가슴을 펴는 자세를 일부러 해야 한다. 127쪽



어느 해보다 지난해는 잔병이 많았다. 마음이 아프니 몸까지 아팠던 것이다. 덕분에 이 책을 늘 가까이에 두고 아파 누워있을 때 마다 펼쳐보았다. 차례대로 읽지 않고 그때그때 마치 점치듯 그렇게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의 문장이 나오는 페이지를 읽었다. 기쁨을 잃었다면 일부러라도 가슴 펴는 자세를 해야한다고. 가슴을 피기 위해서는 저자말처럼 기분이 일단 화이팅 해야만 가능하다. 우울하고 의기소침한데다 불안한 상태에서는 결코 가슴이 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순서를 바꿔서 가슴부터 펴보는 것이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혹은 저자의 약력을 보면 운동하라는 말이겠거니 하고 쉽게 치부할 수도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운동좀 해볼까 싶어서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리뷰를 쓸 맘이 들진 않았다. 움직일 수 있도록 나를 일으켜주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가장 큰 목적에 닿지는 못했던 것이다.


몸이 부드러워지면 마음도 부드럽게 바뀐다. 내가 부드러워지면 세상도 부드럽게 다가온다. 서문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저자서문을 보았을 때 비로소 저 문장이 보였다. 단순히 나 혼자 화이팅을 외치기 위해, 내 마음만 다스리기 위해 내 몸을 가눠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잘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내 몸을 부드럽게 해야만 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뚱뚱하다면 다이어트를 해서 타인들에게 부러움을 사기 위해, 누군가에게 나를 자랑하기 위해 내 몸을 가꾸는 것이 아니었다. 운동을 하는 것, 내 몸을 돌보면서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회에 대해 여유가 생기는 것이었다. 몸이나 마음, 혹은 둘 모두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 펼쳐봤을 때는 나만 보였기에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전체의 질서 속에서 나의 소유를 따져보자.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꼭 필요한 만큼 갖자는 주장에서 필요란 무엇인가? 나에겐 빨간 옷도 필요하고 크리스털 그릇도 필요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필요'라고 불렀지만, 누군가는 '쓸데없는 욕구'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필요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172쪽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더니 어느샌가 맥시멀리즘이 유행하고 있다. 애초에 저마다 개성이 다른데 라이프스타일을 두고 마치 자신의 방식이 가장 옳다는 듯 주장하는 것이 정상적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저런 방식에 자신의 삶을 끼어맞추려는 많고, 나역시 그런 사람들에게서 완벽하게 떨어져 있진 못하다. 덕분에 모든 것이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버렸다. 결국 문제는 나였다. 그렇기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삶에서 필요한 건 멋진 사유와 좋은 텍스트보다 한 걸음일지 모른다. 사유는 몸으로 나오라고 있는 것이다. 39쪽


지나치게 오랜 세월을 사유하기만 했다. 제대로된 사유였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망설일까닭도 없었다. 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저마다 방식이 다른데 어쩌자고 또 다시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래저래 흔들렸으니 이번에는 몸의 말을 듣고 가슴을 펴보니 분명 이전보다는 훨씬 더 행복해졌노라고. 사유하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밖으로 조금씩 나오려는 것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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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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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의 원작소설 <좀도둑 가족>.

제목 모두 '가족'이란 단어가 들어가지만 사실 법적으로 따져보자면 이들은 '가족'이라기 보다는 어쩌다 함께 살게 된 '공동체'에 가깝다. 공동체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정서적 유대감과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혈연'관계도, 법적으로 부양이나 보호의 의무를 가진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분명 가족이긴 하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노부요는 삼십년 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조가 어딘가 자신의 엄마를 닮아 있었다.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136쪽

 

 

위에 올려둔 본문내용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아이 린과 그의 엄마가 되어준 노부요의 모습이다. 영화 <미쓰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영화 미쓰백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호하게 된 과정을 담았다면 좀도둑 가족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사회가 생각하는 '정상적인'관계는 없다. 아이에게 도둑질을 알려주고, 학교를 다녀야 할 딸이 해서는 안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도 같이 웃고 위로해주기만 한다.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주어야 하는 곳이 가정이라면 이들은 결코 가정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가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서로를 폭력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위의 발췌문을 가져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좋아한다면 안아주는 것이다. 지금 상대의 행동이 옳지 않더라도, 설사 그것이 범죄라 할 지라도, 그리하여 세상 모두가 비난하더라도 가족이라면 안아줄 수 있어야한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더 나쁜짓을 하도록 유도하는 부분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적어도 사랑한다면, 좋아한다면 남과 다르게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네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상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조차 비난대신, 조언하기에 앞서 꼬옥 안아줄 수 있는지 묻는다면, 혹은 그런적이 있는지 묻는다면 난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때 나는 분명 엄마였다. 욕실에서 내 화상 흉터를 쓰다듬어주던 손길, 옷을 태우면서 한 포옹,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 바닷가에서 잡은 작은 손.

낳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였다. 235쪽


낳지는 않았지만 엄마인 노부요. 분명 그녀와 린이 함께 했던 하루하루는 엄마와 딸이었다. 서로의 상처에 아파할 줄도 알고, 그 상처를 딛고 웃을 수 있도록 서로를 꼬옥 안아주었던 두 사람. 리뷰는 노부요와 린의 이야기만을 담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 모두가 이들의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타인의 재산을 탐했다는 것, 아이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분명 법적인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들이 분명 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잃을 것이라고는 서로밖에 없었기에  서로만 생각하느라 이기적이고 어리석었을지언정 분명 그들은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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