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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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의 원작소설 <좀도둑 가족>.

제목 모두 '가족'이란 단어가 들어가지만 사실 법적으로 따져보자면 이들은 '가족'이라기 보다는 어쩌다 함께 살게 된 '공동체'에 가깝다. 공동체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정서적 유대감과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혈연'관계도, 법적으로 부양이나 보호의 의무를 가진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분명 가족이긴 하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노부요는 삼십년 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조가 어딘가 자신의 엄마를 닮아 있었다.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136쪽

 

 

위에 올려둔 본문내용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아이 린과 그의 엄마가 되어준 노부요의 모습이다. 영화 <미쓰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영화 미쓰백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호하게 된 과정을 담았다면 좀도둑 가족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사회가 생각하는 '정상적인'관계는 없다. 아이에게 도둑질을 알려주고, 학교를 다녀야 할 딸이 해서는 안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도 같이 웃고 위로해주기만 한다.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주어야 하는 곳이 가정이라면 이들은 결코 가정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가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서로를 폭력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위의 발췌문을 가져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좋아한다면 안아주는 것이다. 지금 상대의 행동이 옳지 않더라도, 설사 그것이 범죄라 할 지라도, 그리하여 세상 모두가 비난하더라도 가족이라면 안아줄 수 있어야한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더 나쁜짓을 하도록 유도하는 부분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적어도 사랑한다면, 좋아한다면 남과 다르게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네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상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조차 비난대신, 조언하기에 앞서 꼬옥 안아줄 수 있는지 묻는다면, 혹은 그런적이 있는지 묻는다면 난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때 나는 분명 엄마였다. 욕실에서 내 화상 흉터를 쓰다듬어주던 손길, 옷을 태우면서 한 포옹,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 바닷가에서 잡은 작은 손.

낳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였다. 235쪽


낳지는 않았지만 엄마인 노부요. 분명 그녀와 린이 함께 했던 하루하루는 엄마와 딸이었다. 서로의 상처에 아파할 줄도 알고, 그 상처를 딛고 웃을 수 있도록 서로를 꼬옥 안아주었던 두 사람. 리뷰는 노부요와 린의 이야기만을 담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 모두가 이들의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타인의 재산을 탐했다는 것, 아이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분명 법적인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들이 분명 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잃을 것이라고는 서로밖에 없었기에  서로만 생각하느라 이기적이고 어리석었을지언정 분명 그들은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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