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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송해나 지음, 이사림 그림 / 문예출판사 / 2019년 7월
평점 :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송해나지음 문예출판사
임신하면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아이의 건강과 올바른 정서성장이 모두 엄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송해나 저자의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의 부제는 '열 받아서'라는 단어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왜 그녀는 축복과 같은 임신을 하고선 열받아서 임신일기를 적어야 했을까. 정말 친한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과 친자매가 임신했을 때 조차 우리는 그녀들의 '임신스테레스'를 보기만 할 뿐 공감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진 못한다. 마치 우울증이 무서운 줄은 알지만 그로인한 사고를 보면서 당사자들의 탓이거나 나약해서, 한가해서라는 2차 폭력을 가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저자가 느낀 임신스트레스는 무엇이엇을까.
'임신부배려석에 앉기'는 또 실패했다. 좌석 뒤에 붙은 핑크색 스티커를 쳐다보는 척, 임산부배려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흘겨보려는데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라는 문구에 또 열이 난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니다. 34쪽
어느 커뮤니티에 베스트댓글로 올라온 댓글은 다음과 같았다.
'임산부에 비해 자리가 너무 많이 지정되어 있어요. 한 번도 그 자리에 임산부가 앉은걸 본적이 없거든요.'
그럴 수 밖에 없다. 임산부배려석에 앉는 사람들은 임산부가 아니다. 오히려 임산부들은 역으로 욕을 먹을까 겁나서 제대로 그 앞에 서있지도 못한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앉아계실 때는 그나마 괜찮다. 10대~20대 청년들이 앉아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임산부가 앞에 오면 자리를 비켜드릴 거니까 비워두면 낭비라고. 과연 그럴까. 그들의 공통된 자세가 있다. 우선 이어폰을 꽂고 앉아있으며 시선은 손에 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다. 누가 앞에서 쓰러지기전까진 알아차리기 어려운 자세다. 하지만 아예 대놓고 정면으로 임산부를 바라보면서, 임산부뱃지를 보면서도 웃으며 통화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들 엄마뱃속이 아닌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 같다.
지하철에서 배려받지 못하는 것만이 스트레스가 아니다. 임신으로 인한 심리적, 육체적 고통이 어느정도인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제대로된 교육도 없다. 그저 배가 나오고, 체중이 늘어난다 정도가 전부다. 아내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남편들도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임신은 축복이라고들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배려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순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죄로 바뀐다. 임산부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간단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아는 척 안하는 것이다. 왜 아이에게 좋지 않은 커피를 마시는지, 힘들다면서 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느냐 등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임신 후 무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언제나 내 몸은 내 것이었는데, 더 이상 내 통제하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먹고 마시는 작은 일부터 내 평범한 일상, 그리고 출산 방법을 선택하는 일까지도 내게 선택권이 없는 것 같다. 95쪽
하지 않아도 될 말 중에는 '자연분만'을 강조하는 것도 포함된다. '한국여자들이 세계에서 제왕절개를 가장 많이 한다.'라는 비난조의 글을 본적이 있다.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설사 산모가 제왕절개를 원한다고 해도 그것이 왜 비난받아야만 하는가. 20시간을 넘게 산고에 시달리다가 어쩔 수 없이 택했을 때 조차 '조금 더 참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본인 혹은 소중한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 치료받지 말고 자연치료가 될 때까지 버티다가 받게 하는것과 무엇이 다를까. 제왕절개라고 덜 아픈 것도 아니다. 흔히 자연분만이 일시불이면 제왕절개는 할부라고들 말한다. 결코 그 고통의 크기가 적거나 짧지 않다는 의미다. 왜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타인의 몸을 맘대로 좌지우지 하려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임신한 여성에게 그 무엇보다 배 속 아기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임신해서 제 삶을 잃어버려 불쌍하다며 동정한다. 아주 놀랍게도, 임신한 여성은 배 속 아기를 돌보면서 자기 자신도 돌볼 줄 알고 행복을 누릴 줄도 안다. 우리는 임신의 도구가 아니라 인생의 주체다. 175쪽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먹고 싶은 것은 아이를 가진 모든 임산부의 바람이기도하다. 그런 그녀들로 하여금 '열 받아서 임신일기를 쓰게 만드는 것'은 그녀들 자신이 아닌 타인이다. 순탄하게 임신과 출산기간을 지낸 사람들도 분명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의 크기와 그 반응이 저마다 다 다른 것처럼 임신증상을 '유난'하다고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임산부를 위한 배려가 유난스럽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임산부'들만 이 책을 읽게될까 겁난다. 누군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잘 수도 없고, 내딛는 걸음걸음이 가시밭길처럼 느껴지는 고통속에서 태어났다. 당신은 세상에 그냥 태어나지 않았다. 엄마뱃속을 통하지 않고 어느 날 뚝 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임산부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