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하지 못한 말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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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지못한말 #임경선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후기가 올라오기 전 서둘러 구입부터 해둔다. 그리고 바로 근처 카페로 가서 읽거나 택배 상자가 도착하자 마자 소파로 가져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일주일 혹은 한 달도 더 지나서 ’가장 좋은 때‘에 읽을 것을 기대하며 견뎌본다. 임경선 작가의 <다 하지 못한 말>은 그 때가 참 더디게 왔다. 봄에 나온 소설을 가을에 읽어도 좋긴 하다. 사랑이야기가 그런 것 처럼.

소설 속, ’나‘는 피아노를 치는, 하지만 자신의 희망만큼 운이 따르지 않아 좌절감을 겪는 남자와 사랑했으나 이별을 앞두고 있다. 그 사랑이 솔직한 말들로 깨지기라도 할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고백하듯 혹은 토해내듯 쏟아낸다.

내 바람대로 아침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음에도 나는 놀라울 정도로 황량한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불편하게 자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홀로 남겨진 기분을 느낀 나를 위해서 다시는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 그런데 무리한 요구를 하지 못하는 관계는 그것대로 또 얼마나 쓸쓸할까. 114쪽

사랑하는 연인 관계는 어떤 요구라도 서로에게는 무리하지 않은 요구가 되는 사이가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 둘 중 한 쪽이라도 ’무리한 요구‘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이별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연애였던 그 사람도 소설 속 남자처럼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고, 장거리 출장 전 잠시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에게 묻거나 위로받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팠던 그 마음, 혹시 이대로 헤어지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리석게 굴고 있는 건가 싶어 괴로워하며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은, 아니 남자는 진정으로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소설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넘치게 듣고 보았으니까. 다만 아직 내 마음이 끝난 게 아니니 굳이 확답을 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내 마음이 가는대로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다행인것은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 나도 평생을 그렇게 모든 남자들을 오해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단순하다. 회사가 바빠서, 다른 힘든 일이 있어서 연락을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연락하기 싫어서다. 여자를 좋아하면 일이 바쁘고 힘들 때 오히려 더 만나서 위로받고 싶은 법이다.
”아무튼 남자들은.... 좀 그래.“ 164-165쪽

하지만 소설 속 남자는 좀 그런 남자였고, 다른 답을 기대했던 여자는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 피를 쏟고 만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 <3000년의 기다림> ost를 들어서 그런지 ’나‘와 함께 오매불망 기다리고 아파하며 읽게 되었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남편에게 말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연애했던 시절이 정말 그리워지는데 결국 헤어짐을 마주하게 되면 더는 연애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좋은 것 같다고. 결혼이 이별 없는 연애인 것처럼 살아가는 부부들은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너무 많이 아파본 사람은 아픔이 없는 상태야 말로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고들 하던데 그게 진짜 이유인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어떤 괴로움도 공부가 돼요. 잃는 건 없어요.“ 173쪽

임경선 작가의 작품은 에세이든 소설이든 꼭 챙겨서 읽고 있지만 이상하게 서평을 적지 못했다.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써보려고 해도 자꾸 내 얘기만 잔뜩 늘어놓게 되거나 끝없이 방황하는 중얼거림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도 출간된지 시간도 좀 지난데다, 이처럼 개인사만 적게 되어 지우고 싶지만 ’희망고문‘일지라도 저 말을 꼭 적고 싶어서 지울수가 없다. 모든 남자가 보고 싶다고 다 연락하고, 바빠도 무조건 연락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6년을 살아보니 더더욱 그렇다. 연락을 했는데 받지 않거나, 성실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겠지만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그 남자는 정말 시간을 필요 할 수도 있다.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아닌 그야말로 숨을 고르기 위한 시간, 그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얼마 전 다른 책 리뷰에서 적었지만 연인, 혹은 부부가 만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리 부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던 삶 가운데 쉴 수 있는 여유를 나누라고 만난 것처럼 말이다. 힘들고 아픈 사랑을 하기보다는 그냥 사랑없이 사는 시대에 이렇게라도 이어보려는 게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어떻게든 서평을 남겨보려고 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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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 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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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가 그토록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우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불확실하고 심지어는 임의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제아무리 기술적으로 도약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라플라스의 악마가 될 수 없다. 53쪽

이따금 지난 날을 후회하거나 아쉬움이 남거나 영화처럼 누군가를 잃게 되는 아픔이 찾아오면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반에 등장하는 원자폭탄의 경우만 봐도 결정권자의 교토 여행이 추억이 아닌 악몽과 같은 여행이었다면 폭탄은 교토에 떨어졌을 것이고 구름의 흐름이 더디었더라면 나가사키는 화를 면했을 수도 있다. 저자의 힘들게 고백한 가정사만 보더라도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그야말로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라고 밖에는 설명할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그냥은 무의미하다거나 무기력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현대 인간 사회는 월등히 통합적이고 엄격히 관리되며 구조적으로 조작된 구역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불규칙하고 임의적인 충격을 받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메뚜기 떼의 양상은 무시무시하게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갑작스레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사회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리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불안정하게 선 무리에서 살아간다.133쪽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개방한 <트위스터스>와 같은 재난과 재해를 다룬 영화들을 많이 떠올렸는데 실제 여름마다 예측을 빗나가는 태풍, 장마 등만 보더라도 인간의 예측이 전문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메뚜기떼의 공격 역시 재난재해 뿐 아니라 히어로가 등장하는 SF영화에서조차 정확한 예측은 늘 빗나가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책에서 제시한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각자는 조금씩 다르게 날갯짓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45쪽) 나를 아는 것의 집착하기 보다는 나의 작은 행동과 판단이 타인과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중요하다.(388쪽)‘ 책을 읽고 혼자서만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짧더라도 서평을 남겨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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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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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나는 가난한 아이었고, 가난한 어른이 되었다. 분명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 내 처지는 가난한 것이 맞지만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가난은 아니다. 과거에는 보편적 가난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상대적인 부분이 커졌기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가 더심각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가난을 겪는 학생들의 삶에서 공부나 성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어른들이나 학생들이나 자신의 생존과 안전의욕구를 위해서 공동체의 질서나 문화는 쉽게 무시되었고 공동체성이 사라진 곳에서는 ’정의‘나 ’교육‘의 논리보다는 ’힘‘의 논리가 횡행했다. (…) 가난은 삶의 곤란함을 넘어서 때로는 무기가 되고 도구로도 이용되고 있었다. -들어가며 중 일부-

이 책은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에 책 제목에 부합하는 내용 그대로다. 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개입 혹은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저자와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일시적인 안타까움만 품을 뿐 쉽게 잊고 마는 나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아서 ’가난한 아이들‘이 여전한지도 모른다.

수정이 안정된 직장을 얻고도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던 건 디딤돌 없는 삶의 조건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인이 되고 나자 어머니와의 관계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이 관계 때문에 수정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138쪽

서두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수정이가 직면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게 된 상태‘일 것이다. 성실하게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고, 조금 덜 쓰고, 덜 먹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에서 가난은 ’죄‘까진 아니어도 ’부정적인 시선‘을 수긍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정이의 경우는 다르다. 부모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근로가 불가능한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런 경우에 사회 시스템이 이들을 보호해야 하고, 이웃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또 가족원 중 한 명이라도 완치가 불가능한질병 혹은 약물을 비롯 중독으로 인해 온종일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이럴 때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지라고 생각한다.

저는 그나마 감사한 것 같아요. 제가 되게 막혀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되게 많이 열리게 된 것 같아요.(…)제가겪지 않으면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지금은 나랑 달라도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겪은 일들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줘서, 지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153쪽

수정이와 달리 아직 홀로서기 중인 혜주와 같은 사례도 있었다. 혜주는 외모에 집착한다기 보다는 과한 메이크업과 염색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호해주는 가면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다면서도 ‘무기’없이는 외출이 어려운 혜주의 경우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려해도 중도에 포기한 학업과 아르바이트 등으로 가족에게 조차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수정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혜주에게도 여전한 희망은 존재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가 반드시 ‘가난한 어른’인 것이 아니라는것은 분명하다.

이제 빈곤은 세대를 이어 빈곤이 되물림 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그 자체이다. 게다가 빈곤은 더 이상 저소득만을의미하지 않는다. 시간 빈곤, 문화 빈곤, 주거 빈곤 등 불평등의 다양한 양상들은 저마다 현실속에 다른 모습으로드러난다. 257쪽

내가 느끼는 가난은 시간과 주거 빈곤에 속할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 자신의 부모가 ‘가난한 어른‘이라는 것을타인의 시선속에서 느끼지는 못하지만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아이가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희망의 부재’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을 읽고이 서평을 쓰며 어제보다는 더 나은 어른이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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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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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반영한다. 8쪽

쓰레기는 한 도시의 지형, 위생 그리고 하층민의 소비 역사를 보여주었다. 책 표지에는 물에 빠져있는 비닐, 플라스틱 등 자연분해가 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거나 불가능할 것 같은 쓰레기와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섞여 있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영화 <센강 아래> 속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던 바다 한 가운데 쓰레기 더미에서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 소피아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꽤 오래전부터 쓰레기 처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며, 단순히 쓰레기 양을 줄이거나 재활용을 촉구하는 수준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수와 배설물, 고형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게 된 것은 기술과 인프라- 특히 하수도 시스템-가 발전한 19세기 이후였다. (44쪽). 19세기라고 하면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지지 않겠지만 기원전 2세기 경에도 이미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산업화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어 인구밀도가 높아진 이유도 있지만 냄새나는 쓰레기 처리장과 가축의 배설물 및 도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해결을 위해 외곽으로 이동시키면서 인구이동이 불가피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특정 지역이나 문화로 인한 것도 있지만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지형 요소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부분과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쓰레기를 처리할 뿐 아니라 성격이 온순해서 집에서 길렀던 돼지, 자동차가 개발되기 이전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말 사육과 관련된 부분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게을러서, 미개해서 등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 말이다. 의외였던 점은 위생이라 관념 혹은 규범에 있어 앞서 언급한 내용들과 관련 해 생각했던 것 보다 지금과 같은 인식과 제도가 정착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흑사병이나 콜레라로 인해 위생과 관련된 부분이 본격화 되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위생, 깨끗하고 건강하기 위한 2가지 의미를 다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계급과 관련될 수 밖에 없다(120쪽 관련)는 부분은 다음의 발췌문과도 연결되어 있어 씁쓸해진다.


위생은 점차 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세균학은 18세기 사회 내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개인 위생과 도시 위생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기반이 되었다. (...)세균학은 20세기까지도 인종 차별과 우생학을 지지하는 근거로 쓰였다. 145쪽

문화나 종교보다 위생과 관련된 부분이 계급과 자본에 의해 휘둘린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활자로 직접 마주하니 여전한 현실로 인해 더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는 것은 오래 전 자원의 활용문제라기 보다는 기후 및 환경과 관련된 부분은 물론 모든 의미의 위생과 관련되어 있는데 과학과 기술이 발전이 이만큼 발전했어도 오히려 계속적으로 쌓이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시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악취를 해결하고, 전염병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이제 쓰레기는 새로운 위험 욧호를 드러냈다.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이 큰 문제로 대두되었으며, 쓰레기 생산과 처리 방식에 대한 담론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240쪽

쓰레기통이 생겨나고,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직업군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물론 쓰레기 무역과 관련된 부분은 이 책 후반부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좋은 논픽션은 늘 스릴러보다 흥미롭다. 이 책이 그렇다.“(표지)는 평은 결코 과하지 않다. 또 챕터 마다 실려있는 아포리즘의 출처를 찾아보는 재미도 놓칠 수가 없었다. 저자가 심각한 내용을 이토록 흥미로운 구성으로 조직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쓰레기 문제가 ’내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본다. 한 도시 혹은 부족의 문제에서 국가 전체를 넘어 이제 ’인류세‘와 더불어 ’쓰레기세‘라고 할 정도다. ’내 문제‘라는 인식이 정말 중요하며, 그런 자각이 흥미롭게 읽힐수록 깊게 다가 왔다는 점에서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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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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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서평을 포함한 모든 후기에 힘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같이 잘 해봅시다!‘라는 마음을 담아 적어본다.

그날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어. 단지 그 교무실에서 한 번은 눈이 마주쳤다는 기억.
‘너도 봉투 받는 애구나.‘ (114쪽,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중에서)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서로 다른 날, 다른 도시에서 태어난 두 사람 권진주와 김니콜라이의 이야기다. 흙수저 혹은 금수저란 비유를 싫어하지만 이보다 더 간략하면서 확실하게 태생 혹은 성장 배경을 표현할 만한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이 둘을 흙수저라고 적는다. 이 둘은 그냥 두면 그대로 배경이 될 것 같은 사람들이지만 ‘사회적배려대상자‘인 처지로 다른 이들에게는 배경일지라도 서로에게는 미묘하게 음각 혹은 양각처럼 기억되는 부분이 있었다. 사회에 나와보니 그 둘의 공통점이 또 있었다. ‘불안정한 미래‘랄까.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양귀자의 <모순>을 재독했는데 작품 속 안진진이 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설정이었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진진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안의 남자를 만나 두 사람을 떠나가는 모습이거나 셋 보다 더 우울한 미래를 품은 남자를 선택하면서 일어날 미래를 그려보는 재미도, 그렇게 서재와 서재가 결혼하는 것이 아닌 소설과 소설이 결합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왜 책 리뷰에 적고 있는가.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두 사람이 만나서 처음부터 연애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다시 다른 작품을 끄집어 내자면 아사이 료 원작 소설 정욕 속 두 사람의 동거를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은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134쪽,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중에서)

불타오르는 사랑보다 더 어려운 완벽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랄까. 세상의 다른 누구도 아닌 단 한 사람, 서로만큼은 비난이 아닌 포용으로 함께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너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보다 더 어려운 ‘너를 부정하지 않을‘ 관계 같았다. 어쩌면 서로 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에서만이 가능한 관계 일지도 모른다.

<무겁고 높은>에서는 역도라는 스포츠가 등장한다. 얼마 전 제자리에서 높이뛰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역도선수임을 증명하는 영상을 보고 다시 떠올렸었는데 역도는 물론 사실 스포츠에 대해서 잘 모른다.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역도를 내던져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송희가 100킬로그램을 들고 싶었던 그 마음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탐하거나 욕망하는 마음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앞으로 견뎌야 할 혹은 내던지게 될 바벨들의 좋은 시작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사실 언제나 없었지. 적어도 역도대 위에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도 말리지도 않았어. 송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들었거나, 내가 들지 못했을 뿐. 이상하게 말이야.
송희는 그렇게 말하며 바벨에 원판을 더 꽂았다. 그것은 100킬로그램이 되었다.

이제 아무도 밉지가 않아. 261쪽 ( 무겁고 높은 중에서)

송희 나이였을 때 내게도 그런 것들이 있었을 텐데 이제는 일기장을 펼치지 않으면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 시청자 입장에서 안타까웠던 복싱 드라마 <순정복서>(이 작품은 드라마로만 봐서 원작은 정확히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권숙의 땀방울이 오버랩되어 더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지고 싶다던 이권숙처럼 송희 역시 100킬로그램을 들고 말고를 떠나 어차피 역도를 그만둘 수밖에 없음에도 들어 올리고 싶은 그 마음이 정말 꼭 같았다.

착하게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읽었던 여러 작품 중 착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 준 덕분에 중간중간 안타까운 부분이 등장해도 출근 전 독서로 정말 좋았다. 단편집이라 흐름이 덜 끊겨서도 좋았지만 근무하기 전 만났던 니콜라이, 진주, 송희, 로나 그리고 다른 인물들 모두 내게 ‘같이 잘 해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시간이 지나도 결국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많이 읽어보자고, 이미 많은 분들이 읽었지만 그래도 더 많이 읽고 ‘같이 잘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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