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쓰레기는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반영한다. 8쪽
쓰레기는 한 도시의 지형, 위생 그리고 하층민의 소비 역사를 보여주었다. 책 표지에는 물에 빠져있는 비닐, 플라스틱 등 자연분해가 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거나 불가능할 것 같은 쓰레기와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섞여 있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영화 <센강 아래> 속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던 바다 한 가운데 쓰레기 더미에서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 소피아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꽤 오래전부터 쓰레기 처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며, 단순히 쓰레기 양을 줄이거나 재활용을 촉구하는 수준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수와 배설물, 고형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게 된 것은 기술과 인프라- 특히 하수도 시스템-가 발전한 19세기 이후였다. (44쪽). 19세기라고 하면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지지 않겠지만 기원전 2세기 경에도 이미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산업화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어 인구밀도가 높아진 이유도 있지만 냄새나는 쓰레기 처리장과 가축의 배설물 및 도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해결을 위해 외곽으로 이동시키면서 인구이동이 불가피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특정 지역이나 문화로 인한 것도 있지만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지형 요소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부분과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쓰레기를 처리할 뿐 아니라 성격이 온순해서 집에서 길렀던 돼지, 자동차가 개발되기 이전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말 사육과 관련된 부분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게을러서, 미개해서 등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 말이다. 의외였던 점은 위생이라 관념 혹은 규범에 있어 앞서 언급한 내용들과 관련 해 생각했던 것 보다 지금과 같은 인식과 제도가 정착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흑사병이나 콜레라로 인해 위생과 관련된 부분이 본격화 되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위생, 깨끗하고 건강하기 위한 2가지 의미를 다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계급과 관련될 수 밖에 없다(120쪽 관련)는 부분은 다음의 발췌문과도 연결되어 있어 씁쓸해진다.
위생은 점차 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세균학은 18세기 사회 내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개인 위생과 도시 위생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기반이 되었다. (...)세균학은 20세기까지도 인종 차별과 우생학을 지지하는 근거로 쓰였다. 145쪽
문화나 종교보다 위생과 관련된 부분이 계급과 자본에 의해 휘둘린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활자로 직접 마주하니 여전한 현실로 인해 더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는 것은 오래 전 자원의 활용문제라기 보다는 기후 및 환경과 관련된 부분은 물론 모든 의미의 위생과 관련되어 있는데 과학과 기술이 발전이 이만큼 발전했어도 오히려 계속적으로 쌓이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시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악취를 해결하고, 전염병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이제 쓰레기는 새로운 위험 욧호를 드러냈다.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이 큰 문제로 대두되었으며, 쓰레기 생산과 처리 방식에 대한 담론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240쪽
쓰레기통이 생겨나고,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직업군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물론 쓰레기 무역과 관련된 부분은 이 책 후반부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좋은 논픽션은 늘 스릴러보다 흥미롭다. 이 책이 그렇다.“(표지)는 평은 결코 과하지 않다. 또 챕터 마다 실려있는 아포리즘의 출처를 찾아보는 재미도 놓칠 수가 없었다. 저자가 심각한 내용을 이토록 흥미로운 구성으로 조직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쓰레기 문제가 ’내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본다. 한 도시 혹은 부족의 문제에서 국가 전체를 넘어 이제 ’인류세‘와 더불어 ’쓰레기세‘라고 할 정도다. ’내 문제‘라는 인식이 정말 중요하며, 그런 자각이 흥미롭게 읽힐수록 깊게 다가 왔다는 점에서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