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 - 한시가 인생으로 들어오다
이은영 편역 / 왼쪽주머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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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을 편역한 이은영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책을 출간할 때 들었던 지인들의 우려를 이야기했다. SNS시대의 어렵고 풀어야 이해되는 한시를 출간하는 것이 걱정된다는 내용이었는데 비단 한시 뿐 아니라 시 그자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하나하나 해석해주지 않고 어떤 때에는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또 서사 대신 직시와 감상뿐인 작품을 마주하면 마음이 더 어지러워져 피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고 한 작품 한 작품을 마주하다보면 어느 순간 시어 하나에도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동해 웃고 울게되는 것이 시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한다. 특히 한시의 경우 한 자 한자에도 시를 지은 이의 마음이 전해질 때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현대시든 한시든 마주하면 울컥해지다가도 결국 평온의 길로 접하게 된다. 더운 여름, 책에 수록된 귀한 작품들 중 특별히 겨울에 느낄 수 있는 정취와 간접적으로나마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던 두 편의 시를 골라보았다.




제목만 보고서도 마음에 들었던 동야독서는 에도시대의 한 학자였던 간 사자의 시다. 시를 지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깊은 밤 흔히 말하는 두꺼운 벽돌책을 보고 있다보면 이해되지 않거나 분명 단어의 의미는 알아도 글의 숨은 의도가 보이지 않다가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있다. 특히 역사책을 읽다보면 지금의 아둔한 자신과 답답한 현실이 과거에도 지속되어온 굴레라는 점에서 묘하게 연대감을 느낄 때 그 지혜로운 성인들의 말씀이 어찌나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던가. 마치 이 시처럼 말이다.





위의 작품은 범성대의 작품 중 하나로 겨울과 관련된 시를 묶어놓은 시집에 수록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에도 납득되지 않는 세금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음에도 불구하고 겨울 날 황새가 날 있는지 걱정하는 것이 뭐랄까 웃음이 나오면서도 애잔하다고 해야할까. 사라진 월급을 한탄하면서도 당장 내 아이 혹은 내 반려견의 보양식을 챙겨주거나 길고양이들의 사료를 알뜰하게 살피는 마음이 고운 사람들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한시가 필사하기도 어렵고 누군가에게 해석해서 들려주기도 애매하고 원문을 읽자니 지나치게 고리타분하게 비쳐질까 염려되긴 해도 과거에도 그리고 한중일 국가와 민족을 떠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 쓰여지는 시의 감성도 다르지 않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역사책이 정리된 사건과 사실을 전달해준다면 이러한 한시는 그 시절을 피부로 느끼고 매일을 살아온 과거의 '우리를'만나게 해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채그우리가 사랑한 대표 한시 312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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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 논문에는 담지 못한 어느 인류학자의 난민 캠프 401일 체류기
오마타 나오히코 지음, 이수진 옮김 / 원더박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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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 into our life deeply with your own eyes and listen to our voices.

네 눈으로 직접 우리의 삶을 깊이 들여다봐 줘.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줘. -책의 시작과 끝-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은 아직 박사과정 중이던 저자 오마타 나오히코 교수가 가나에 설치되었던 부두부람 캠프에서 난민들의 경제상황 및 경제력에 관한 연구를 하며 체류했던 401일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우선 번역이 정말 잘되었다는 말을 리뷰 시작부터 꼭 하고 싶었다. 원문을 비교하며 판단한 전문적인 평가는 물론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치 국내 대학원생이 자국어로 쓴 글보다 훨씬 더 쉽고 잘 이해되었기에 이부분을 꼭 언급하고 싶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면 맨 위에 발췌문은 저자가 부두부람 캠프에 갔을 때 처음 만났던 그리고 함께 동거동락했던 저자와 마찬가지로 연구자가 되고 싶어했던 알포소가 했던 말이다. 알폰소 뿐 아니라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쥬디스 역시 저자가 자신의 학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난민들의 처우개선과 제3자의 인식의 전환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길 원하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사실 책 제목만 보면 우리가 생각해왔던 헐벗고 굶주리며 기본적인 생활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과는 달리 종교활동은 물론 취미생활까지 충분하게 잘 누리고 있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난민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가치관과 취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입장으로 봐야할 것이다. 사실 몇몇 사건으로 인해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들이 위협적으로 다가올 것이 두려워 난민유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한국을 비롯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받아들이는 난민의 수는 고작1%밖에 안되고 오히려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빈민국에서 주변국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문제는 난민의 거주횟수가 5년이 넘어가게 되면 장기로 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수용국에서 더이상 지원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그들에 대한 처우가 점점 더 낮아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난민보호소라는 것이 기본적인 생활의 최소한을 유지하게끔 마련된 장소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그들이 머문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정신적인 안정마저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걸까. 내전으로 인해 난민이 되었을 경우 본국이 여전히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돌아갔을 때 자립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난민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고 무엇보다 내전당시 반란군에 의해 가족 혹은 친인척이 피살되거나 피살되는 현장을 목격한 경우 본국에서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방법외에도 현재 거주하는 수용국에서 뿌리를 내리는 방법도 있는데 이는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부두부람 캠프에 들어온 라이베리아 사람들이 사실은 미국 해방노예들이 원래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의 허락없이 밀고들어와 정착한 후 기존에 원주민과 아메리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났던 만큼 수용국과 난민 사이에서의 분쟁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 부두부람 캠프의 존속이 장기화되자 가나인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난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으로 재정착하는 기회를 얻는 것인데 책에서는 이를 '로또'라고 표현했다. 사실 미국이나 캐나다 이민은 난민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기회'라는 측면이 강하다. 저자역시 캠프에 머무는 동안 지속적으로 여러 난민으로부터 '기회'의 끈을 연결해달라는 부탁을 엄청나게 받았으며 그것이 심각해 저자가 화를 냈던 일화도 책에는 소개되어 있다.


"알겠어. 당신이 학위를 받고 나중에 정말 유명한 학자가 되면 그걸로 된 거야. 그러면 UNHCR이나 가나 정부도 당ㅇ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약속해. 당신의 조사에 협력할테니 꼭 이 조사를 책으로 내 줘. 나에 대한 사례를 그 책에 "쥬디스의 협력이 없었다면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책에 꼭 쓰는 것. 알았지? 약속이야."302쪽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리뷰 서두에 밝힌 것처럼 무조건적인 난민수용이 아니라 난민들의 현실과 처지를 제대로 바라보고 그들의 상황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닐 수 있음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눈먼 장님이 앞을 볼 수 없다는 푯말을 들고 구걸을 했지만 그다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한 시인이 푯말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바꿔주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 이야기처럼 난민캠프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난민이라는 이유로 어쩌면 아무렇지 않을 저 제목이 더이상 다른 시각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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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게 하는 치유 글쓰기의 힘
김인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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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책< 나로 살게 하는 치유 글쓰기의 힘>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누구나 상처를 받지만 누군가는 그 상처를 이겨내고 삶의 거름으로 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상처로 인해 가족은 물론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원망하며 온전히 행복해지지 못한다. 심한 경우 견디지 못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위의 말을 언급하며 저자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보상받기보다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의 힘을 이야기한다.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괴로움과 상처가 영원히 지속되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는 동안 잘 견디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자기 스스로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주려고 노력해야한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사소한 부분이라면 다른 사람눈치 보지말고 자신의 행복을 실천해야한다. 너무 서럽거나 분노가 차오를 때는 밖으로 쏟아내기 전에 글로 적어보며 지금 느끼는 감정에 서운함인지 미련인지 진짜 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글로 우선 적어보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적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던 것들이 눈에 그리고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책과 잘 어울린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후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작가의 길을 진로로 택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강요로 인해 원하지 않은 대학에 입학하고 어린 나이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으며 엄마도 자신의 병도 원망하며 결국 수면제 과복용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던 저자의 삶과 경험이 담겨진 이 책은 제목처럼 치유를 위한 글쓰기 또는 글쓰기를 통한 치유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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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 새하얀 밤을 견디게 해준 내 인생의 그림, 화가 그리고 예술에 관하여
이세라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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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일반 #미술관에서는언제나맨얼굴이된다





이세라 기상캐스터의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는 이전에 읽었던 전문학술서를 제외한 예술관련 에세이와 비교했을 때 공감가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혼자 감상하는 미술관의 장점이나 낭만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루어주었음 싶었던 부분들이 등장했던 부분이나 페미니즘 도서를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역할과 제한 그러면서도 여성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점들을 아티스트들이나 사적인 이야기르 통해 부담스럽지 않게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내들자면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역시 결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시간이 꽤 길었다. 연애와 별개로 결혼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고 아마도 그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오래된 결심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카를 보면서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던 저자처럼 나 역시 조카가 정말 예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며 애쓰던 언니의 영향이 컸다. 아이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렇게 간절하게 바랄 수 있는지 궁금했고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고단함 속에서도 아이가 주는 기쁨이 그 이상이라는 말에 숭고함과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출산의 고통을 느껴보고 싶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 사이로 펠릭스 발로통의 작품 <공>을 언급한다. 공을 쫓는 아이가 있는 장소 저편으로 두 여인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저자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조카가 있고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작품을 바라보자니 여간 불안한게 아니었다. 아이가 저렇게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라는 생각들이다. 작품을 두고 내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화면은 여인들이 서 있는 그늘 속 녹지대와 소녀가 있는 햇볕 드는 모래밭으로 선명히 나뉜다. 그러니까 이 작은 그림은, 도저히 만날 수 없고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하는 두 세계의 서로 다른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34쪽


안타까운 아이엄마의 감상을 넘어 서로 닿을 수 없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란 설명에 다시금 그림을 바라보며 안도를 하고 또 다시 한숨이 나온다. 아이가 많은 것을 경험하는 기회가 늘어날 수록 나는 그와 반대로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아이의 기억의 크기와 양이 늘어남과 동시에 나는 반비례로 줄어들고 작아질 것이다. 노화와 관련하여 쿠엔틴 마시스의 작품들의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그가 그린 <늙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초상>은 나이든 여자를 시대와 남성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혹자는 어디까지나 지혜롭게 늙지 못한 모습을 풍자하기 위함이었을 뿐 이 그림에서 여성혐오나 성차별적 시각을 지적하는 건 과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인간의 표본으로 택한 대상이 왜 하필 '여자'이고 그중에서도 '늙은 여자'인가. 139쪽


그런가하면 전쟁기념관에 대한 다른 시선과 시각도 좋았는데 사실 전쟁기념관을 방문할 때 꽤 좋은 기억을 남았던터라 저자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다른 시각을 갖게 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다. 전쟁기념관은 참전한 군인들의 이야기와 전쟁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전쟁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하고 군인들의 수보다 더 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은 언급되지 않았음을 깨닫지 못했다. 이 밖에도<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는 챕터 하나 하나마다 이야기가 줄줄 나올 수 있을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마치 각잡고 듣는 청강생이 아니라 그야말로 목욕탕에서 '맨몸'으로 마주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난해하고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예술을 이토록 친근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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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자란다
박현주 지음 / SISO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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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작가는 19살부터 6년간 수도원 생활을 했던 이력이 있다. 서른 후반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은 내게 수도원 성소를 받은 그녀의 이력은 부러운 부분이었고, 저자보다 더 늦은 마흔을 한 해 앞두고 편입한 미대생이 된 부분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을 시작한 후 참 오래 방황했었다. 과제를 할 때마다 오래전에 시작하거나 아직 어린 친구들의 실력과 나이 때문이었는데 그런 고민을 저자도 했다고 한다. 시간과 함께 노력이 더해지고 이전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그림실력을 보면서 기운을 차린 저자가 해주는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조금씩 그림을 통한 나의 때를 꽃피워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은 비단 나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경험이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좋아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때라고 느끼며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20쪽


피아노의 숲이라는 만화를 보면 콩쿠르에 참가한 주인공이 갑자기 연주를 멈춰버린다. 숲, 자연과 함께였을 때의 기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화를 벗어던졌을 때 그 안에서 작은 개미한마리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처럼 극중의 소년도 그 한마리의 개미 덕분에 숲을, 자연을 느끼며 다시금 멋진 연주를 시작한다. 저자가 개미를 관찰하며 열심히 그렸다고 했을 때도, 좁고 외로운 타지에서 만난 한마리의 개미에도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에도 만화의 그 소년과 개미가 떠올랐다. 저자는 예술이라는 것이 어렵거나 특정 부류를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체감했던 건 오래전 도슨트 수업 때 플럭서스 예술활동에 대해 공부할 때 였다.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만이 연주를 위한 악보가 아니라 글자를 읽을수만 있어도, 피아노 앞에 의자를 꺼내 앉기만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었고 그런 창의적이고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플럭서스를 저자는 경험을 통해 그리고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술은 이런이유로 지나치게 완벽할 필요가 없다. 노트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힘들게 채우거나 뜯어낼 필요도 없다. 완벽하려고 하면 여백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것은 혼자인 시간을 못견뎌하는 것과 같다.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것, 숨쉬는 모든 것과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저자의 일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원래 예술 활동은 모든 사람의 일이었다. 그것이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은 불과 몇백 년일 뿐이다. 특별한 사람들의 창의적 활동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문화 예술을 공감하고 그것의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역할을 할 때 예술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그 몫을 할 것이다. 215쪽


늦은 때는 없고 숨쉬는 모든 것은 귀하며 부족함이 결코 죄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타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였다. 정작 수도원 안에서는 선과악이라는 극단적인 사고에 사로잡혀있었다고 했던 그녀였지만 세상에 나와 어쩌면 세상에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잘 가고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동안 그녀보다 더 나이많고 그림실력도 부족한 나를 많이 응원하고 보듬어줄 수 있었다.





#에세이  #나무는흔들릴때마다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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