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 새하얀 밤을 견디게 해준 내 인생의 그림, 화가 그리고 예술에 관하여
이세라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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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일반 #미술관에서는언제나맨얼굴이된다





이세라 기상캐스터의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는 이전에 읽었던 전문학술서를 제외한 예술관련 에세이와 비교했을 때 공감가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혼자 감상하는 미술관의 장점이나 낭만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루어주었음 싶었던 부분들이 등장했던 부분이나 페미니즘 도서를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역할과 제한 그러면서도 여성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점들을 아티스트들이나 사적인 이야기르 통해 부담스럽지 않게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내들자면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역시 결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시간이 꽤 길었다. 연애와 별개로 결혼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고 아마도 그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오래된 결심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카를 보면서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던 저자처럼 나 역시 조카가 정말 예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며 애쓰던 언니의 영향이 컸다. 아이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렇게 간절하게 바랄 수 있는지 궁금했고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고단함 속에서도 아이가 주는 기쁨이 그 이상이라는 말에 숭고함과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출산의 고통을 느껴보고 싶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 사이로 펠릭스 발로통의 작품 <공>을 언급한다. 공을 쫓는 아이가 있는 장소 저편으로 두 여인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저자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조카가 있고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작품을 바라보자니 여간 불안한게 아니었다. 아이가 저렇게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라는 생각들이다. 작품을 두고 내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화면은 여인들이 서 있는 그늘 속 녹지대와 소녀가 있는 햇볕 드는 모래밭으로 선명히 나뉜다. 그러니까 이 작은 그림은, 도저히 만날 수 없고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하는 두 세계의 서로 다른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34쪽


안타까운 아이엄마의 감상을 넘어 서로 닿을 수 없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란 설명에 다시금 그림을 바라보며 안도를 하고 또 다시 한숨이 나온다. 아이가 많은 것을 경험하는 기회가 늘어날 수록 나는 그와 반대로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아이의 기억의 크기와 양이 늘어남과 동시에 나는 반비례로 줄어들고 작아질 것이다. 노화와 관련하여 쿠엔틴 마시스의 작품들의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그가 그린 <늙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초상>은 나이든 여자를 시대와 남성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혹자는 어디까지나 지혜롭게 늙지 못한 모습을 풍자하기 위함이었을 뿐 이 그림에서 여성혐오나 성차별적 시각을 지적하는 건 과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인간의 표본으로 택한 대상이 왜 하필 '여자'이고 그중에서도 '늙은 여자'인가. 139쪽


그런가하면 전쟁기념관에 대한 다른 시선과 시각도 좋았는데 사실 전쟁기념관을 방문할 때 꽤 좋은 기억을 남았던터라 저자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다른 시각을 갖게 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다. 전쟁기념관은 참전한 군인들의 이야기와 전쟁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전쟁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하고 군인들의 수보다 더 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은 언급되지 않았음을 깨닫지 못했다. 이 밖에도<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는 챕터 하나 하나마다 이야기가 줄줄 나올 수 있을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마치 각잡고 듣는 청강생이 아니라 그야말로 목욕탕에서 '맨몸'으로 마주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난해하고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예술을 이토록 친근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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