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자란다
박현주 지음 / SISO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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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작가는 19살부터 6년간 수도원 생활을 했던 이력이 있다. 서른 후반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은 내게 수도원 성소를 받은 그녀의 이력은 부러운 부분이었고, 저자보다 더 늦은 마흔을 한 해 앞두고 편입한 미대생이 된 부분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을 시작한 후 참 오래 방황했었다. 과제를 할 때마다 오래전에 시작하거나 아직 어린 친구들의 실력과 나이 때문이었는데 그런 고민을 저자도 했다고 한다. 시간과 함께 노력이 더해지고 이전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그림실력을 보면서 기운을 차린 저자가 해주는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조금씩 그림을 통한 나의 때를 꽃피워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은 비단 나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경험이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좋아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때라고 느끼며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20쪽


피아노의 숲이라는 만화를 보면 콩쿠르에 참가한 주인공이 갑자기 연주를 멈춰버린다. 숲, 자연과 함께였을 때의 기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화를 벗어던졌을 때 그 안에서 작은 개미한마리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처럼 극중의 소년도 그 한마리의 개미 덕분에 숲을, 자연을 느끼며 다시금 멋진 연주를 시작한다. 저자가 개미를 관찰하며 열심히 그렸다고 했을 때도, 좁고 외로운 타지에서 만난 한마리의 개미에도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에도 만화의 그 소년과 개미가 떠올랐다. 저자는 예술이라는 것이 어렵거나 특정 부류를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체감했던 건 오래전 도슨트 수업 때 플럭서스 예술활동에 대해 공부할 때 였다.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만이 연주를 위한 악보가 아니라 글자를 읽을수만 있어도, 피아노 앞에 의자를 꺼내 앉기만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었고 그런 창의적이고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플럭서스를 저자는 경험을 통해 그리고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술은 이런이유로 지나치게 완벽할 필요가 없다. 노트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힘들게 채우거나 뜯어낼 필요도 없다. 완벽하려고 하면 여백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것은 혼자인 시간을 못견뎌하는 것과 같다.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것, 숨쉬는 모든 것과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저자의 일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원래 예술 활동은 모든 사람의 일이었다. 그것이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은 불과 몇백 년일 뿐이다. 특별한 사람들의 창의적 활동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문화 예술을 공감하고 그것의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역할을 할 때 예술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그 몫을 할 것이다. 215쪽


늦은 때는 없고 숨쉬는 모든 것은 귀하며 부족함이 결코 죄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타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였다. 정작 수도원 안에서는 선과악이라는 극단적인 사고에 사로잡혀있었다고 했던 그녀였지만 세상에 나와 어쩌면 세상에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잘 가고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동안 그녀보다 더 나이많고 그림실력도 부족한 나를 많이 응원하고 보듬어줄 수 있었다.





#에세이  #나무는흔들릴때마다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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