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돌베개 + 백범일지 (해방 80주년 기념판) - 전2권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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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도 함께 구매했는데 맘에 들어요. 책 내용이야 첨언할 것이 없습니다. 찬찬히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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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 - 넉넉한 헤아림을 품는 언어
박인기 지음 / 소락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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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 - 박인기

책상머리에 두고 열심히 눈으로 풀꽃을 익혀 두려 했다. 그런데 야생에서 그 풀꽃들을 만나면 여전히 생소했다. 책에 있던 그 이름과 사진으로 보았던 식물의 형태가 내 머리에 쏙쏙 떠올라 주지 못했다. (…)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건 그림이나 사진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야생의 자리로 나가지 않고 꽃의 모습만 기억해 두려는 내게 잘못이 있다. 4쪽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언어의 생태를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 마음의 생태를 잘 이해하는 데서 말의 참모습과 소통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또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 생태를 아는 데서 ‘사회적 언어’를 배워 사회적으로 성숙한다. - 5쪽

애매모호함에 대한 너그러움의 자세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와 상통한다.19쪽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 (…)
그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 마지막에 나오는 이 말은, ‘모르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65쪽

저자는 ‘모르는 것에 대하여 말하기’, 혹은 ‘모르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기’를 각각 다른 챕터에서 이야기한다. 얼핏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듯 보이지만 ‘언어의 의미’를 헤아려가며 찬찬히 다시 읽게 되면 이 두 챕터가 동일한 맥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요즘 사회는 ‘모른다’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아는 것만이, 그리하여 알기 때문에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세상에는 애매모호한 것이 많기 때문에 지나친 확신에 의해 무언가를 결정하고 말하기 보다는 찬찬히 ‘그럴수도 있지’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말하기를 권한다. 그렇게 되면 무리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말하기’는 태도 혹은 습관을 자제할 수 있고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언어의 의미를 사유하며 ‘다시 한 번 그 산을 오르게’된다.

비판이 ‘의미 있는 실천’이 되려면 비판도 그 끝판이 중요하다. 우리들 개개인에게서 나타나는 비판 행위의 끝판은 대개 두 가지 양태이다. 하나는 그 비판에서 ‘나’는 빠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비판에서 ‘나’도 포함시키는 것이다. 89쪽

누군가를 비판할 때 ‘너’만 있다면 어떨까. 이따금 이전 세대들의 이야기가 피곤해지고 회피하고 싶은 까닭이 그들의 비판속에 ‘나’가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때는 안그랬는데…’로 퉁쳐지는 그 수많은 비판은 안타깝게도 대를 이어 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어른’들의 공통점을 살펴보게 된다. 진정한 어른들의 말은 어떠한가. 그들의 비판은 ‘ 그 자체가 현실적 선택과 책무를’(91쪽) 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원래 짐작의 짐이 ’술 따를 짐‘이고, 작도 ’술 따를 작‘이다. 짐작은 순전히 술 따르는 행위에서 생겨난 말이다. 남의 잔에 술을 따를 때, 헤아려 보아야 할 것들이 많다. 잔의 크기도 헤아려야 하고, 따를 술의 양도 헤아려야 한다. 145쪽

짐작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를 보면서 그동안 짐작이란 단어를 상당히 오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다. 흔하게 혹은 별 생각없이 사용했던 단어에 ’배려‘와 가까운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추리소설이나 영화에서 ’짐작가는 것에 대해 말해보라‘고 추궁하던 장면들을 밀어내고 차분히 누군가를 떠올리며 ’짐작‘하는 모습으로 채울 수 있었다.

‘강력한 자아’나 ‘순정한 자아’를 보이려는 것이 도를 넘으면 글쓰기의 미덕은 사라진다. 나를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글쓰기의 덫일 수도 있다는 점을 놓치면, 글쓰기의 미덕은커녕 글쓰기의 악덕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221-222쪽

말살이를 제대로 하는 것만큼 글을 ‘잘’쓰는 것도 배움이 필요하다. 여기서 배움이란 문법 혹은 문학적 기교를 배운다기 보다는 위의 발췌문에서 처럼 ‘정도’를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책을 읽은 후 기억을 위해 혹은 타인과 좋은 책을 나누고자 하는 ‘좋은 뜻’으로 시작했으나 때로는 비문에 가까운 타인의 글들을 굳이 끼어넣는 경우도 있다. 마치 대상 책과 인용문 양쪽 모두를 체화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란 흔치 않으며 ‘도’를 넘어선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마지막 페이지에 ‘침묵 배우기’를 넣어야 한다며 글을 맺었다.

#짐작 #박인기 #말살이 #언어 #독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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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의 도쿄 도시 산책 시리즈
양선형 글, 민병훈 사진 / 소전서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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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관심이 가는 작가들 중 미시마 유키오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도시 산책 시리즈로 만나는 양선형 작가의 <미시마의 도쿄> 를 읽으며 지속된 감상은 ‘그 곳에 가고 싶다’ 를 넘어선 ‘ 그 책을 읽고 싶다’였다.

p.42
캐리어에 미시마 책들을 모두 집어넣었는데 무게가 상당했다. 아침 비행기 였다. 밖에는 가랑비가 내렸다.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며 미시마의 <소설독본>을 읽었다. (...) 비행기 좌석에서는 으레 설렘과 기원이, 약간의 근심과 불안이 공존한다.

나라면 미시마와 도쿄를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었을까. 크게 생애에 맞추거나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산책을 떠나기 전 읽어야 할 미시마의 작품들과 함께 거론되는 다른 작가들을 일뤄준다. 그 내용들을 읽는 순간 책장을 둘러보고 없을 경우 서점을 찾았다. 마치 저자가 누군가의 댓글을 지나치지 못하고 바로 서점에 들른 것처럼. 여행자의 추억은 추억대로 내게 첫 일본 여행을 떠올리게 만들어 시간을 멈춰버린다. 하지만 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 대 작가,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을 비교해주는 부분이다.

끝없이 자신을 희화화함으로써 정말과 싸우던 <인간 실격> 의 요조는 결국 자포자기 속에서 내적으로 완전히 파산한 뒤 폐인이 되며, 급기야 자신은 인간 실격자임을 선언하는 데 이른다. 그러나 <가면의 고백>의 화자는 요조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137쪽

읽었던 책보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또 내가 걸어본 도쿄(미시마와도 이 책과도 무관하게) 와 달라 좋았다. 특히 문사촌의 경우는 일본 문인들의 거점인지라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을 더불어 만날 수 있어 설렘도 일었다. 하지만 이런 홍조띈 얼굴로만 읽었던 건 아니다. 미시마의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그의 삶(소설을 살아냈다라고 할 정도)을 대략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년시절 드리어진 어둠들이나 금각의 환상과 관념을 읽을 때의 내 표정은 어땠을까.

삶이 나에게 접근하는 순간, 나는 내 눈이기를 포기하고, 금각의 눈을 내 것으로 삼고 만다. 그때야말로 나와 삶과의 사이에 금각이 나타나는 것이다. -금각사 중에서(209쪽)

떠나기 전 저자가 했던 고민들, 캐리어에 담긴 책의 무게만큼 그의 고민들이 느껴져서 책의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떠나고 싶고 읽고 싶은 그 마음들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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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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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없는작가 #다와다요코 #엘리 #최윤영 #신형철문학평론가

내가 여행을 좋아하느냐 자문하자면 대답을 할 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새삼 <영혼 없는 작가>를 읽으며 해보니 오래 전 집중적으로 다녀온 ‘여행’ 탓으로 느린 속도의 ‘영혼’ 들이 길을 잃었고 그로인해 좋고 싫고를 판단 해 줄 영혼이 부재하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와다 요코의 글을 7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도 ‘몹시 조심해야 할 작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새 잊었던 모양이다.

영혼은 비행기처럼 빨리 날 수 없다는 것을 인디언에 관해 쓴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영혼을 잃어버리고 영혼이 없는 채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어찌 되었든 그것이 여행자에게 영혼이 없는 이유다. 58쪽

어쨌거나 현재 여행자가 아닌 책 한 권의 독자로서 텍스트를 따라가는 내게 친근한 단어가 줄지어 흘러 나왔다. 테디베어, 장난감 혹은 인형. 모스크바, 모스크바, 모스크바(는 반드시 세번 연이어)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 단어들을 오가며 저자가 들려주는 이미 쓰여진 여행기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자신의 어머니께 띄우는 편지글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매혹을 넘어 또다시 ‘위험 경고’를 알린다. 독일어는 알려진 것처럼 언어에 성별이 있다. 타자기가 ‘말엄마’라는 게 퍽이나 다행스러웠고, 학창시절 잠시나마 배워둔 일본어 덕에, 작가가 일본어로 쓴 글을 페터 푀르트너가 독일어로 옮기고 최윤영이 한국어로 옮긴 글의 문장과 대치되는 부분을 손으로 따라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재미를 줄 수 있는 작가라니. 역시 위험하다.

외로움은 영혼의 어머니다. 어떤 사람이 외롭다고 느끼면 바로 혼자서 말하기를 시도한다. 그때 그는 언제나 자기 말을 들어주는 어떤 인물을 상상한다. 이 인물을 영혼이라 부르는 것 같다.
어머니는 외로움의 영혼이다. 167쪽

작가가 책에 관해, 혹은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보낸 셀 수 없이 많았던 과거의 일요일들에 대해 읽으며 조금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또 ‘전화방’과 ‘고해방’을 계속 끌고 다녀서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엄마 곁에서 잠시 머무르던 때에 이 책을 읽었던 건 완전히 우연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주에 쓰여진 번역의 의도와 외국어를 모르는 데서 느껴질 답답함을 덜어내 주려는 편집의도가 그래서 더없이 따뜻했다. 무더운 8월, 이처럼 좋은 책을 만나는 행운이라니,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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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
매트 헤이그 지음, 강동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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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칼세이건, 173쪽


매트 헤이그의 <휴먼>의 이야기를 아주 단순화 하면,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리만 가설의 증명에 성공한 지구인을 제거하고, 그 사실을 아는 주변인을 처리하며 그외에 중요한 지구인들의 정보를 가지고 되돌아가야 하는 보나도리아 외계인의 이야기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란 게 별반 다르지 않다. 지구에서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나 사회 구성원으로 다른 구성원과 경쟁하거나 혹은 세속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을 삼아 살든 어쨌든 결국 노화되어 소멸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단순한 휴먼의 삶도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남들이 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원한 무언가에 생을 바칠만큼 몰입하고 그러면서 다른 인류의 삶을 연장시키거나 누군가는 멸망시키기도 한다. 미션 수행을 위해 지구에 온 외계인은 아주 심플한 삶이 아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 특히 ‘사랑’을 알게 된다. 사랑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그가 보이는 모습은 외계인이라는 장치는 그저 소설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반부가 마치 흥미진진한 SF였다면 사춘기 자녀를 대하는 데 있어 수없이 망설이고 때로는 부딪히며 괴로워하는 보통의 부모일 뿐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손놓고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많았는데 인류 보고서를 기록하는 외계인을 통해 나름 ‘여러 가지 일(200쪽)’을 하고 있어 내심 안도하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 일 속에 듣기, 갈망하기, 바라보기, 한숨 쉬기 등 처럼 정말 ‘멍 때리기’와 같은 것들이 다수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 자체가 ‘일’이 었다니 매트 헤이그가 가진 힘은 이미 초기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고자 갈망했던 까닭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라이프 임파서블>에서 얻은 위로 덕분이었는데 알고보니 <휴먼>이 두 작품보다 먼저 발표되었다. 후속 두 작품이 삶의 희망을 잠시 잃거나 뚜렷한 목적이 없던 이들을 ‘소생’시켰다면 <휴먼>은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명예’, ‘욕망’ 이 아닌 사랑이 인류를 지속시키는 열쇠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소벨의 향기를 들이쉬었다. 내 몸에 닿는 그녀 몸의 온기가 좋았다. 나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애절함을 깨달았다. 본질적으로 혼자 이면서도 다른 이와 함께한다는 신화를 필요로 하는, 필멸하는 생명체의 비애를. 친구, 자식, 연인. 그런건 매력적인 신화였다.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신화. 210쪽


이 부분에서 특히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처음에는 앤드루인척 하는 외계인이 이소벨이 자신을 부를 땐 단순하게 기표로서의 ‘앤드루’이기만 했었던 것이 ‘등을 어루만지는 제스처’를 통해 ‘사랑’이라는 기의가 더해진 ‘앤드루’를 점차 인지하게 된다. 상대를 인지하게 되고, 다른 대상과는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부터 진짜 ‘휴먼’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스포를  방지하기 위해 뒷 이야기를 더 늘어놓을 순 없지만 문장 문장이 사람, 사랑을 느끼고 알아가고 또 학습하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 라는 생각을 하며 흐믓하게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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