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
매트 헤이그 지음, 강동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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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칼세이건, 173쪽


매트 헤이그의 <휴먼>의 이야기를 아주 단순화 하면,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리만 가설의 증명에 성공한 지구인을 제거하고, 그 사실을 아는 주변인을 처리하며 그외에 중요한 지구인들의 정보를 가지고 되돌아가야 하는 보나도리아 외계인의 이야기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란 게 별반 다르지 않다. 지구에서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나 사회 구성원으로 다른 구성원과 경쟁하거나 혹은 세속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을 삼아 살든 어쨌든 결국 노화되어 소멸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단순한 휴먼의 삶도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남들이 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원한 무언가에 생을 바칠만큼 몰입하고 그러면서 다른 인류의 삶을 연장시키거나 누군가는 멸망시키기도 한다. 미션 수행을 위해 지구에 온 외계인은 아주 심플한 삶이 아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 특히 ‘사랑’을 알게 된다. 사랑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그가 보이는 모습은 외계인이라는 장치는 그저 소설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반부가 마치 흥미진진한 SF였다면 사춘기 자녀를 대하는 데 있어 수없이 망설이고 때로는 부딪히며 괴로워하는 보통의 부모일 뿐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손놓고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많았는데 인류 보고서를 기록하는 외계인을 통해 나름 ‘여러 가지 일(200쪽)’을 하고 있어 내심 안도하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 일 속에 듣기, 갈망하기, 바라보기, 한숨 쉬기 등 처럼 정말 ‘멍 때리기’와 같은 것들이 다수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 자체가 ‘일’이 었다니 매트 헤이그가 가진 힘은 이미 초기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고자 갈망했던 까닭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라이프 임파서블>에서 얻은 위로 덕분이었는데 알고보니 <휴먼>이 두 작품보다 먼저 발표되었다. 후속 두 작품이 삶의 희망을 잠시 잃거나 뚜렷한 목적이 없던 이들을 ‘소생’시켰다면 <휴먼>은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명예’, ‘욕망’ 이 아닌 사랑이 인류를 지속시키는 열쇠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소벨의 향기를 들이쉬었다. 내 몸에 닿는 그녀 몸의 온기가 좋았다. 나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애절함을 깨달았다. 본질적으로 혼자 이면서도 다른 이와 함께한다는 신화를 필요로 하는, 필멸하는 생명체의 비애를. 친구, 자식, 연인. 그런건 매력적인 신화였다.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신화. 210쪽


이 부분에서 특히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처음에는 앤드루인척 하는 외계인이 이소벨이 자신을 부를 땐 단순하게 기표로서의 ‘앤드루’이기만 했었던 것이 ‘등을 어루만지는 제스처’를 통해 ‘사랑’이라는 기의가 더해진 ‘앤드루’를 점차 인지하게 된다. 상대를 인지하게 되고, 다른 대상과는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부터 진짜 ‘휴먼’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스포를  방지하기 위해 뒷 이야기를 더 늘어놓을 순 없지만 문장 문장이 사람, 사랑을 느끼고 알아가고 또 학습하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 라는 생각을 하며 흐믓하게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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