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평소엔 잘 몰랐는데 여행기를 쓰려고 하니깐 굉장히 어색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집에만 있거나 나가봤자 가까운 시내만 누비던 나에게 여행은 생각하기 힘든 단어였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떠오른 것이 바로 거제도를 갔던 때이다. 2년 전 일이지만 그래서 나의 머리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추억이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거제도에서 일하고 계시는 아빠에게 갔다. 아빠가 그곳에서 일하고 계셔서 나는 거제도를 갈 기회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는 할머니와 오빠와 내가 가는 날이었는데 거제도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심한 고비를 겪었다. 기쁨과 설렘으로 배를 타고 가는데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어지러움과 멀미증상이 와서 힘들었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려고 눈을 감았지만 배는 통통배처럼 심하게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깨서보니 도착하기 10분전이었다. 처음의 설레는 마음은 어디로 가고 온 몸의 힘이 몽땅 빠져서 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도착해서 내렸을 때 언제나 멀리 있어도 한 눈에 찾을 수 있는 아빠가 서 계셨다. 단번에 아빠를 알아보고 '아빠다'하고 외쳤다. 그렇게 아빠를 만나서 아빠 숙소로 갔다. 숙소에 짐을 다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고기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먼 거제도까지 힘들게 와서 먹는 고기라 그런지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잘 먹고 아빠 혼자 있는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숙소에 모기가 너무 많아서 모기향을 5개를 온 사방에 피웠다. (누가 보면 불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수박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늦은 밤 아빠와 나는 마트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다고 나왔다. 섬이라 그런지 마트가 꽤 멀리 있었다. 그래도 마트가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었다. 마트를 가는 동안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애기하고  아빠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웃으며 들어 주었다. 무뚝뚝함과 욱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빠를 닮은 나는 애교라곤 하나도 없는 성격이다. 하지만, 아빠 앞에서는 난 어쩔수 없이 온갖 애교를 다 부리며 달라 붙는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드넓은 바다로 둘러싸인 길을 걸어갔다. 밤인데다가 바람도 세고 깊이는 어마어마해서 아름다운 것보다 무서웠다. 내가 예상한 아름다운 바다풍경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일이면 찾아 올 멋진 바다 풍결을 모른체 오늘은 조금의 실망감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모기향 5개의 위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백여마리의 모기에게 침트를 당한 것처럼 많은 흔적과 동시에 간지러움이 나를 괴롭혔다. 거기에 나를 더욱 괴롭힌 것은 물이다. 피부가 민감한 나에게 부산물(?)과 거제도 물(?)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칠지 생각도 못했는데 나의 피부는 하루아침에 엉망이 되어있었다. 짜증의 연속으로 아침을 보낸 나는 그 상태로 바닷가를 갔다. 그리 탐탁치 않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거대하게 펼쳐진 바다에 사람들이 수영을 하며 놀고 있었다. 몸이 간질간질 했다. 모기 때문이 아니라 나도 빨리 저 바다에 '풍덩'하고 빠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달려서 바다에 빠졌다. 물은 아주 깨끗했다. 집 근처 가까운 해운대화 광안리와는 또다른 느낌이 나를 사로 잡았다. 물이 얕아서 안정하게 놀 수 있었다. 가족들은 베치와 오둑막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곳에 앉아 있었고 나는 오빠와 둘이서만 물 안에서 전쟁을 벌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숙소에 가서 밥을 먹고 다른 바다로 갔다.
사면이 바다라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바다였다. 두 번째로 온 곳은 통영에 있는 바다였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배 30척 정도가  일렬로 바다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냥 쳐다보거나 딴 짓을 하는데 나 혼자서 흥분해서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너무 신기하고 놀랐다. 내가 더욱 놀란 건 거북선이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모양은 정말 화려하고 잘 만들어졌다. 나는 아빠에게 아까 왜 그렇게 많은 배가 일렬로 지나갔으며 거북선은 왜 만들어 놓았는지 물어봤다. 아빠는 통영이 임진왜란 때 저항이 가장 센 곳이었고 민란이 처음 일어났던 곳이라 오늘 기념으로 배들이 행진했다고 하셨다. 그제야 이해한 나는 다시 걸음을 바삐 움직여  배들이 세워진 둑 사이로 걸어갔다. 그 이유는 그 사이에  고동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빠는 고동 매니아. 한 봉지 가득 찰 정도로 떼서 집으로 들고 와 가족들과 함께 먹었다. 초장에 찍어 먹는 그 순간 나는 행복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부산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아쉬움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서 나는 아빠와 또 헤어짐을 한다. 나는 방학이 아니면 내려오기 힘들고 또 아빠는 돈을 벌러야 해서 부산에 잘 올라 오시지 않는다. 그래서 만날 기회는 많이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나는 나대로 학교에 얽매이고 아빠는 아빠대로 일에 얽매여 살아간다. 한 가족인데도 서로 돌아 볼 시간이 없어 안타갑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가 힘든 세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고 2다. 이 일이 있은 후 2년이 지났고 2년동안 딱 두 번 내려갔다.
중학교 땐 많이 내려 갔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바빠진 내 생활 때문에 내려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항상 늦게 마치고 시험시간에 맞쳐 아빠도 시간이 나거나 또 방학 땐 보충하고 시간이 나도 쉰다고 잘 가지 않았다. 이젠 그저 추억으로만 남은 여행이 다시 한 번 더 찾아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고 3을 앞둔 나는 오늘도 내 일에 급급해 맞쳐진 시계처럼 돌아간다. 그래서 아직도 여행은 낮선 단어로 내 곁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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