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어떤 이를 사랑하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제는 자신의 상처와 계속 씨름할 뿐이다. 그대는 마조히스트가 된다. 나는 그대를 바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그대는 바보가 아니다. 단지 그대는 영리하고, 지적인 마조히스트다. 그대는 사랑의 이름을 통해서, 사랑의 이름 안에서 자신의 고통을 다루고 있다. 그대는 순교자가 되는 게임을 하고 있으며, 그대는 이 십자가를 즐기고 있다. 그대는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대를 반드시 사랑할 필요는 없다. 그대의 사랑은 확신을 갖기에는 충분치 않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닌 이차선 도로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상상력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대가 사랑을 하면 상대도 '반드시'그대를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을 말해왔다! 그대가 채워야 할 유일한 조건은 그대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때도 상대가 그대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상대도 자유를 갖고 있으며, 상대도 살아있는 영혼이다. 그대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가 그대를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면, 그(또는 그녀)의 자유와 영혼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대 역시 상대로 인해 자신의 자유를 버리지 말라. 그렇게 하면 상대가 그대를 원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더라도, 또 상대가 그대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도, 그대는 계속 사랑을 할 수 있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단지 그대의 사랑이 충분하지 않을 뿐이다. 사실 그대가 사랑을 요구하면 할수록 상대는 더욱 멀이 달아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대는 위험하다. 심지어 사랑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대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사랑이 일어났을 때,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는 상대를 질식시킬 것이다. 그대는 마치 감옥과 같은 방식으로 그를 에워쌀 것이다. 그가 당장 반응을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대는 기다리고 있다. 상대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하면, 끊임없이 흐느끼고 슬퍼하면서 자신의 불행이 상대의 '동정심'을 일으키기를 바란다. 그대의 불행은 동정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동정심은 결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하다. 게다가 동정을 하는 사람은 그대보다 높이 있기 때문에 그대는 결코 동정심에 의해 채워질 수 없다. 그가 그대에게 무엇인가를 줄수는 있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정열도 없다. 동정심이 일어나면 정열은 사라지는 법이다. 상대의 가슴속에는 어떠한 흥분도 없을 것이며, 그는 결코 엑스터시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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