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네글자,'잘 지내죠?'

(그 남자)

휴대전화를 열어서

조심조심

문자메세지 한 통을 보냅니다.

'잘 지내죠?'

메시지를 보내려고 결심한 지

십 분이 지나서야 겨우 완성한 말입니다.

딱 네 글자

'잘.지.내.죠?'

한참이 지나서야 도착한 답 메시지

'예,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그리고 웃고 있는 이모티콘 하나.

그 눈웃음 하나에 나는 용기 백배,

그녀에게 감히 전화를 걸어 봅니다.

'잘 지내시죠? 별일 없구요?

아.. 예에.. 별일 없었구나.. 예.. 뭐.. 저도 잘 지냈어요..

예.. 그럼 예.. 잘 지내세요.. 예.. 예..'

전화를 끊고 나면,

난 무슨 대단한 고백이라도 한 사람처럼

숨이 턱까지 차 올라 있습니다.

거기다 거울을 보면,

꼭 한 시간 동안 물구나무선 사람처럼

얼굴엔  피가 다 몰려 있죠.

밀려드는 약간의 허탈함을 뒤로 하고

난 일단 이 터질듯한 심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침대에 누워 생각합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 내일은, 내일은 밥 먹었냐는 말도 꼭 해 봐야지.'

아우, 얼굴이 왜 이렇게 터질 것 같지?

(그 여자)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게는

옷을 말하는 단어가 하나밖에 없다죠.

바지도 티셔츠도 외투도 속옷도 양말까지도

그 사람들은 모두 같은 단어로 부른대요.

문득 그 사람이 보낸 메시지와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생각해 보니까

어쩜 우리 두 사람도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보고 싶던 마음과 반가움

연락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던 미안함

너무 오랜만이라는 원망

또 어떻게 지냈는지,

햇볕 드는 버스 정류장엔

벌써 벚꽃이 피어난 걸 아는지...

우린 그 모든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니까요.

'잘 지내죠?'

아직은

단어가 가난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두 사람.

하지만 자주 만날수록,자주 통화할수록

단어의 수는 점점 늘어나겠죠?

언젠가는

보고  싶단 말도

지금 당장 만나자는 말도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우리 세상에 자연스럽게 생겨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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