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당신과 내가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때는 당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과 나의 만남이 우연이었듯이
우리의 관계를
하나의 우연이라 규정지어 주십시오.
우리들의 잿빛 일기장 속에서
여름날의 타 버린 모닥불 같은
모든 기억들이 재로 변할 것입니다.
어느 버스간에서
당신과 내가 또다시 만나
마주서 본다 한들
그것을 스침이라 할까 운명이라 할까
두 개의 가지 사이로 밀착됏던 잎새처럼
잠깐 사이에 꽃향기는 지워져 버리고
당신은 말 없이 차창 밖으로
눈 흘려 버릴 것을!
우리의 만남을 늦가을
낙엽의 떨어짐과 같이
대단치 않은 원리로 간주합시다
우리가 최초로 만났던 그 어두운 카페 의자에
등 돌리고 다시 앉아
제가끔 식은 커피를 이별의 술잔처럼 나누더라도
그것은 부질없는 일
이별은 또 하나의 이별을 창조하지는 않습니다.
동그라미와 네모가 일치될 수 없듯이
서로 어긋난 각도에서 상대방을 애무했던 우리들
봄날의 아지랭이 처럼 무분별하게 불명확하게
이 나이껏 쓸모 없이 살았음을 생각하고
허전해질 때
그 모두가 첫우연 탓이었다고
속절없이 잊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