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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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된 경험이라는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영역을 매개로, 페미니스트들은 연결을 시도하고 운동에 가담한다. 복합성, 이질성,
특수한 입장성, 권력으로 충전된 차이들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다. 경험은 기호학이며 의미의 체현이다[드로레티스(de Lauretis), 1984]. 페미니스트들이 반드시 표명해야 하는 차이의 정치학은 경험의 정치학에 근거해야 하는데, 이런 경험의 정치학은 자기 자신의 끝없는 차이에 대해 심리학적이고 자유주의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특수성, 이질성, 연결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집단적인 것이다. 차이는 정치적이다. 말하자면 차이는 권력, 설명가능성, 희망에 관한 정치다. 경험은 차이와 마찬가지로, 모순적이고 필연적인 연결에 관한 것이다. - P198

여성학은 타자의 경험(결코 순수한 적이 없는)을 전유하는 것과 지역/지구적 역사에서 사실상 차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실낱같은 친화성, 실낱같은 연대의 섬세한 구성 사이에 그어진 가느다란 선을 따라 협상해야 한다. 페미니즘 담론과 반식민주의 담론은 연결과 친화성을 구축하려는 바로 그 미묘하고 섬세한 노력에 집중한다. 그런 노력은 자기 자신의 경험이나 타인의 경험을 완결된 서사를 위한 자원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라 ‘우리‘는 빈번히 실패한다. 우리는 친화성의 구축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 대신 대립관계의 구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그런 완결된 서사를 위해서 - P204

자기 자신과 타인을 자원으로 재생산하는 페미니스트, 반인종차별주의자, 반식민주의 담론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글쓰기는 정체성 대신에 친화성을 구축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리라는 희망으로도 가득 차 있다. - P205

에메체타에 대한 오구예미, 크리스천, 그리고 나의 독법은 전부 출판된 픽션에 근거한 것이다. 이 모든 독법은 예민하게 특수하고, 막강하게 집단적인 여성해방담론을 언명하려는 당대 투쟁의 일부다. 포함과 배제는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혹은 국적과 같이 고정된 범주에 의해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픽션 읽기라고 일컬어지는 고도로 정치적인 실천을 통해 생산된 포함과 배제, 동일시와 분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읽기 자체 속에서 생산된다. 모든 읽기는 잘못된 읽기이자, 다시 읽기이며, 편파적인 읽기이자 강제적 읽기이며 상상된 텍스트의 읽기이기도 하다. 텍스트는 원래부터 궁극적으로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세계가 원래부터 무너져 있었던 것처럼, 텍스트는 이미 언제나 서로 경합하는 실천과 희망으로 뒤엉켜 있다. 여성 의식을 표시한 당대의 지도 위에서 대단히 특수하고 순수하지 못한 지역적/지구적, 개인 - P214

적/정치적인 우리의 위치에서 비롯된, 이들 각각의 읽기야말로교육적 실천이다. 그런 실천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여성 경험‘이라는 막강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권력으로 충전된 차이, 특수성, 친화성이라는 호명을 통해 작동한다. 만회 불가능한 하나라는 환상의 상실은 차이 속에 자리한다. - P225

루빈은 ‘여성의 길들이기‘를 검토했는데, 인간 문화 제도 속에서 남성에 의해 통제되는 친족의 교환 체계를 통해 인간 여자(female)는 여성의 사회적 생산을 위한 원자재가 된 점을 발견했다. 루빈은 섹스/젠더 체계를 생물학적 섹슈얼리티를 인간 행위의 산물로 변형시키는 사회관계 체계라고 정의했다. 그 결과 역사적으로 특수한 성적인 욕구가 충족되었다. 그런 다음 루빈은 정치적 투쟁을 통해 변경할 수 있는 인간 행위의 산물로서 섹스/젠더 - P248

체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요구했다. 루빈은 성별 노동 분업과 욕망(특히 오이디푸스적으로 형성된)의 심리적 구축을, 정작 여성 자신은 가질 수 없는 권리를 남성에게 부여함으로써 인간존재를 만들어 내는 생산 체계의 토대라고 보았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상대의 일을 수행할 수 없는 곳에서 물질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남성이 여성을 교환하는 섹스/젠더 체계 속에서 욕망의 심층구조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성애는 의무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의무적 이성애는 여성 억압에 핵심적이다.

성적인 소유 체계가 여성 위에 군림하는 남성의 압도적 권리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재조직된다면(만약 여성의 교환이 없다면), 그래서 젠더가 없어진다면, 오이디푸스 드라마는 모두 유물이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페미니즘은 친족체계의 혁명을 요구해야 한다. (루빈, 1975)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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