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 가기만 하면 꼭 몸이 아픈데 그때도 그랬다. 딱히 어디가 아프다고 콕 집어 말할 수도 없이 무기력증이나 어쩌면 우울증일 수도 있을 무심함이 찾아왔다. 쉽게 피곤하고 때로 머리도 지끈거렸다. 힘이 빠질 대로 빠져서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렵다고 느꼈던 듯하다. 급격한 체력 고갈로 한의원에 내 발로 찾아가 비싼 돈을 주고 한약을 지어 먹었다. (의사는 맥만 한번 짚어보고는 기운을 돋우는 약을 처방했다. 아픈 등의 부위에 정확하게 침을 놓았으니 어쩌면 그가 명의일지도 모르겠다고 나중에 생각하기는 했다.)


 나는 왜 시름시름 아팠던 걸까?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프랑스로 돌아와서야 의심 가는 일이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한국에 도착한 날 공항버스를 코앞에서 놓치고 공항철도를 탔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면서부터 열차 안에 가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마스크를 쓴 얼굴의 코를 목도리로 틀어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잠시 냄새가 난다며 웅성거리다가 그마저도 조용해졌다. 견디지 못한 몇 명이 정차한 역에서 내리기도 했다. 내리면, 가스 냄새가 나지 않을까? 무거운 짐가방이 두 개나 있는 나는 내릴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렇게 한참을 가스 냄새를 맡아야 했다.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가운데서 조금도 옆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환풍기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면서 말이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지금은 정확한 지명도 가스의 종류도 잊었지만 그 지역을 지날 때 가스가 유출되곤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혹시,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혹시, 12시간여 비행기에 몸을 실은 탓은? 


 나는 힘이 없고 쓰러질 것만 같은데 병원에 가도 원인을 찾지 못할 때, 아무도 미세먼지 때문에 아픈 거라고 말하지 않을 때, 창을 열었는데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역한 냄새가 날 때, 냄새도 없고 색도 없고 소리도 없는 무언가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을 때, 의심할 수 있는 모든 상상 가능한 것과 상상조차 불가능한 것을 의심할 때.


 가끔 내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게 신기하다.


 오늘 물건을 하나 샀다.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모니터 선반이다. 포장을 끌러 이리저리 만지다가 한편에 두었다. 방금 재채기를 했다. 재채기는 자주 하지만 어느새 나는 저기 놓인 모니터 선반을 쳐다본다. 크게 숨을 들이쉰 이 방의 공기에는 저 새 물건에서 흘러나온 것들이 얼마나 섞여 있을까? 아까 방문을 열었을 때 코를 스치던 이상한 냄새, 낯선 그 냄새, 새로운 냄새. 아. 벌떡 일어나 물건을 치운다. 내린 덧문을 다시 올리고 창을 연다.(바깥공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난방하느라 장작 때는 냄새가 쏟아져들어온다. 잠시 어느 쪽이 덜 유해한가 고민이 된다.) 방은 환기했지만 나는 냄새(알 수 없는 물질들)와 공존한다. 이미 한 몸이다. 이런 식이면 알 수 없게 아픈 일이 잦을 만하다. 비슷하게 떠오르는 일화들이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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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논란이 되는 성과 젠더 격차들은 별도로 하고, 일상적인 사회경제적·지리적 환경정의 지도들 안에서 화학물질복합과민증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독성물질 폐기장, 공장, 그리고 다른 오염원들은 매우 자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또는 다른 유색인종의 거주지 가까이에 자리 잡는다는 점에서 미국에서 독성물질 노출은 인종과 아주 직접적으로 연관되고, 다음으로 계급과 연관된다. 화학물질 손상chemical injury이라는 용어가 암시하듯 수많은 사람들이 유독한 작업장에서 질병을 얻는데, 공장노동자와 농업노동자처럼 화학물질들과 아주 가까이에서 일하는 이들은 가장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다. 이는 결국 화학물질복합과민증이 계급 이슈라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리고 의사, 특히 마취과 의사와 같은 전문직들 또한 화학물질복합과민증에 대한 더욱 심각한 위험에 처한다. 피터 밴 윅이 울리히벡을 인용하며 설명하듯, "생태 위협은 종종 그리고 대부분 기존의 계급과 사유재산, 부의 분배와 같은 분들에 들어맞지 않는 사회적 지도를 제작한다. 따라서 위협은 이미 만들어진 사회적 분할들을 절단한다. 위험에 처한 이들은 새롭게 친밀감을 형성하고, 새로운 운동 단체를 만든다".  " (286)


어느 누군가가 가스 스토브나 소파, 샤워 커튼 같은 겉으로 보기에 무해하고 실용적인 물건들에 취약하거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자신의 주거 공간을 다시 만드는 과정은 인간 몸을 안과 밖으로 나누는 상식적인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든다. 갑자기 이 사물들은 더 이상 화학적으로 불활성적인 물질이 아니라 특정 증상들을 유발시키면서 몸과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면 플라스틱판으로 만들어진 가구는 꾸준히 기침, 천식, 발작, 피부 발진, 피로,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그리고 암을 유발할 수 있는 포름알데히드를 방출(또는 가스 배출)할 것이다. (이는 맨해튼을 집어삼킨 소파처럼 우호적인 어떤 무엇이 살인마로 돌변하는 B급 공포영화를 떠오르게 하기에, 아마도 망상paranoid 또는 코미디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신체의 경계선들을 째는 것 — 외과수술, 주사제 투입, 이식수술, 그리고 여타 과정들—이 표준적인 의료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근대 의학 모델은 인간 몸을 환경과 서로 이웃한다거나 또는 카펫과 소파처럼 겉보기엔 불활성적인 물건들에 취약한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경질병을 가진 이들은 자기 몸이 물질세계와 인접해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따라서 어떤 것도 ‘외부적‘이라거나 변함없이 ‘외부에’ 머문다고 확신할 수 없다. 

......

이와 반대로 『영양과 환경 의학 연구에 출판된 46쪽 분량의 보고서는 생체이물 화학물질에 사람들이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한 (영국) 정부 권고안 목록으로 끝맺는다. 이 보고서는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는다. 대신 "개인은 최근에 화학물질 노출을 피하는 선택을 할 수 없으며, 심지어 그것을 줄이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사회적으로 고립된다"고 지적한다. 이 보고서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정치적/물질적 세계라는 그물망에 걸린 투과 가능한 존재들이다. 유사하게, 재니스 스트럽 위텐버그의 도발적인 제목을 단 『반역하는 몸 : 환경질병 또는 만성피로증후군으로부터 당신의 생명을 구하라』는 "당신이 세계를 당신의 몸속으로 옮겨올 때, 환경질병과 만성피로증후군은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보여 주는 상징들이다"라고 주장한다. (환경질병은 문자 그대로 세계를 몸속으로 옮겨 오는 것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이 '상징들'은 아마도 좀 더 정확하게 물질적 환유라는 용어로 지칭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질환들을 횡단-신체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치적 행동주의와 개인적인 치유가 공생하는 자습서를 촉진시킨다. 스트럽 위텐버그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치유하고 배우며 녹색소비자운동에 참여하는 '행동주의'와 다른 한편으로 환경 친화적인 정치인들에게 투표하고, 의회에 편지를 쓰는 등의 '행동주의'를 수행하라고 조언한다. " (290~292)

" 화학물질에 예민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단순히 ‘불평하는‘ 여성들이거나 또는 여성들로 인식되는 한, 생물학적 효과와 심리적 효과 모두를 지닌 물질적 질병으로서 화학물질복합과민증에 대한 다소 거만한 무시는 여성혐오의 색조를 띤다. 이 경우 사회구성주의 또는 심리학 모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화학물질복합과민증의 생물학을 무시하는 것은 진보적이지 않다. 엘리자베스 윌슨을 따라서 어떻게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설명방식과 심층적이고 행복하게 공조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좀 더 이치에 맞다. "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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