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정체> 3장 동화, 문명화의 기준이 되다 : 샤를 페로와 여성 작가들의 전복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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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고전 동화를 들려주며 무해한 시간을 보내지만, 고전 동화의 무해함에 어떤 해악이 있는지는 깨닫지 못한다.”(p.110)

페로가 구전 설화의 부르주아화(bourgeoisification)에 이바지한 범위는 페로 자신이 의식한 것보다 훨씬 컸다. 페로는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칠 수 있는 아동 문학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 이야기들』에 들어 있는 8편의 산문 동화의 기원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모티프는 페로시대에 퍼져 있던 구전설화 또는 (민속자료를 차용했던) 스트라파롤라와 바실레 그리고 프랑스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서 발견된다. 페로는 민속적 모티프와 문학적 모티프를 혼합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조직함으로써 사회적 예법에 관한 자신의 독특한 부르주아적 시각을 제시하려 했다. 이를 통해 페로는 민중적 설화 장르의 내러티브 관점을 농민층의 관점에서 부르주아-귀족 엘리트의 관점으로 바꾸어놓았다. 이같은 상황은 얼핏 보면 별로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동 사회화의 측면에서 보게 되면, 설화의 관점이 변함으로써 아동은 자신의 위치와 섹슈얼리티, 사회적 역 - P86

할, 예절, 정치 등을 인식하는 데에서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20세기와 21세기에 중류 계급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동화를 반복적으로 들려주기 시작한 이유 역시 이를 통해 설명된다. 이미 남녀 주인공의 경우를 통해서 보았던 것처럼, 내러티브 관점의 변화는 조야한 표현법과 사회관을 세련되게 만드는 단순한 문체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현실을 제시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실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아동동화 장르의 문학적 측면에서 보게 되면, 페로는 설화 속에 등장하는 낯익은 인물과 배경, 플롯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아동의 내면적 외면적 본질의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문명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이미 아리에스와 엘리아스의 저작에서 증명된 것처럼 아동 교육은 명령과 금지를 전달한다는 의도를 점점 분명히 밝혔으며, 페로 동화의 창작 의도는 ‘민중‘으로부터 의사 표현의 통로를 빼앗는 동시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지키도록 되어 있는 사회 규약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 P87

강한 소녀가 상징적 제식을 거치는 원래의 설화에서 페로는 혼란과 혐오를 느꼈다. 페로는 이교적 민속 전통에 적대적이었고, 여성을 두려워했는데, 이러한 적대와 공포는 페로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된다. 『신데델라』를 다룰 때 우리는 구전 설화 버전이 동화 문학 버전과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구전 설화 버전은 모계 전통에서 나왔으며, 여기서는 소녀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되찾는 투쟁이 그려진다 (죽은 엄마가 사회를 수호하는 존재로서 소녀를 돕는다). 누더기를 걸치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신세로 전락한 신데렐라는 남은 뺨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자기의 불리한 입장을 상쇄하려 한다. 신데렐라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재기를 발휘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하는데, 이때 그녀의 목표는 결혼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이다. 신데렐라는 바로크풍의 드레스를 차려입지도 않으며, 쉽게 부서지는 유리 구두를 신지도 않는다. 오히려 신데렐라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드러내줄 옷차림을 하고 있다.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가죽 슬리퍼를 되찾고 왕자와 결혼하는 것은 그녀의 강한 독립적 성격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한편 페로의 동화에서 신데렐라는 자기가 얼마나 순종적이고 부지런한가를 증명하려 하는 인물로 바뀐다. 대모 요정과 왕자가 신데렐라를 구해주는 이유는 그녀가 예절에 신경 쓰기 때문일 뿐이다. 페로는 설화 버전을 조롱하며 수동적 여성성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투영(投影)하는데, 페로가 겨냥하는 독자층은 이러한 새로운 여성성을 진지하게 수용하게 된다. - P91

페로의 「더벅머리 리키」를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할 때, 우리는 이 동화가 왜 사회학적·심리학적으로 문명화 과정에 들어맞는 작품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첫째, 부르주아 사회와 귀족 사회에 속하는 비교적 젊은 여성은 끊임없이 중년을 넘긴 남성과의 정략 결혼을 강요받았다(이러한 남성은 육체적으로 매력이 없거나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둘째, 17세기 말엽이 되면 여성은 잠재적인 마녀형 인물과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교회와 국가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성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위력을 통제하는 것과 악마적 세력을 통제하는 것을 연결지었다. 셋째, 개방적이었던 섹슈얼리티가 은밀한 정사가 되었다. 다시 말해 교회가 혼외정사를 죄악이자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했으므로, 성은 숨겨져야 했고 지극히 사적인 어떤 것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제대로 잘 자란아이는 성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페로의 동화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성의 공포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페로 자신이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 나아가 페로가 자기 자신의 성적 충동에 대해갖고 있는 공포를 그린다. 자신의 성적 충동을 받아들이기 위해 좀 더 문명화된 형태로 위장한 것이다. 페로는 자신의 공포와 욕망으로부터 동화의 지형을 만들어낸다. 믿음직하고 금욕적인 남성이 변덕스럽고 무지한 여성을 다스리는 미학적-이데올로기적 구도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다. - P98

오누아의 동화는 모두 도덕적 교훈을 제공하며, ‘미녀와 야수’ 의 테마를 다루는 동화들에서는 페로의 동화에 담긴 메시지가 반복된다. 곧, 여자는 호기심이 많고 믿을 수 없으며 변덕스럽기 때문에 계속해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분별력과 신중함에 달려 있다. 여주인공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야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거나 야수의 명령과 기대에 복종하는 것이다. 야수는 고귀한 귀족의 영혼과 올바른 시민의 예절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동화의 숨겨진 메시지는 일종의 명령이며, 오누아를 포함한 그 무렵의 여성들은 이러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종을 거부하면 천하게 여겨지거나 배척당했다. 예법이란 자기 부정이라는 고뇌를 견디는 것을 뜻했다. 남자들은 여성과 섹슈얼리티와 평등에 대해서 갖고 있던 두려움을합리화하기 위해 여성과 기타 억압받는 집단으로부터 자기 표현과 자립성을 박탈하는 규제들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오누아의 피네트 상드롱Finette Cendron」 「흰 고양이 The White cat」 「마르카생 왕자」 등과 드라포르스의 착한 여자The Good Woman」 「페르시네트Persinette」 그리고 드 뮈라의 복수의 궁전 The Place of Revenge」 「돼지 왕」 등을 보면, 전복적인 기호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런 기호들은 이 여성 작가들이 남자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자의성을 어떻게 비판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대부분 이 여성 작가들은 엄청난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모종의 타협을 행했다. 고전 동화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암울한 상황 가운데 하나는 여성작가 자신이 남성의 욕구와 헤게모니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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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6-24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데렐라 구전설화는 전혀 다르군요?! 동화에 대한 이런 다른 시각의 책이 읽고싶었어요^^*

난티나무 2022-06-25 00:41   좋아요 2 | URL
네^^ 신데렐라 뿐만이 아니고 빨간모자 외 다른 동화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절반 가까이 읽었는데 재밌어요!^^

mini74 2022-06-24 1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화를 통해 은연즁에 남자아이들은 모험을 떠나고 괴물이나 용을 처치하고 땅을 넓히고 보물을 얻고 그런 식으로 여자도 얻지만, 여자아이들은 인내와 순종을 미덕으로 세뇌당하는 거 같아요. 이런 책 좋네요 난티나무님 *^^*

난티나무 2022-06-25 00:44   좋아요 2 | URL
맞아요 mini74님! 세뇌!!!! 지금까지도 17-18세기에 만들어진 동화의 형태가 변하지 않고 읽힌다는 게 참…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책 재밌어요~^^
 

8장 어머니와 아들, 여성과 남성 - 밑줄

우리는 아들을 위해 무엇을 원하는가? 가부장제의 가치에 도전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는 아들들이 어머니의 아들로 남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여성이 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있듯이 그들도 성장하여 남성이 되는 새로운 길을 찾기를 바란다. 아들이 여성을 양육과 부양의 유일한 원천으로만 보지 않는 남성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감수성과 굳은 의지를 가진 아버지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들이 아직까지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 예외적으로 한사람씩 보이는 것이 희망적이기는 하나 여전히 개인적 차원에 머무를 뿐이다.
제인 라자르는 이런 개인적 경우도 다만 겉보기에만 ‘관심있는 ‘아버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남성들이 사회의가장 중요한 일로서 자녀양육의 책임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그들의 아들들과 우리의 아들들이 비가부장적 남성상이 어떤 것인지 똑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아들들이 겪는 고통, 좌절, 애매모호함이 강하고 비전통적인 어머니의 문전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지붕 밑에 살면서도 매시간, 매일 아이들을 버린 것은 바로 전통적인 아버지이다. 우리는 과거 수세기 동안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역사에서도 대부분의 아들들이 가장 진지한 의미에서 - 실제로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 P237

만일 내가 아들들에 대한 한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다면 여성의 용기를 가져 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상당히구체적이고 정확한 의미를 가진다. 즉 공적 사적 생활에서, 그리고 그들이 꿈꾸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내면세계와 가부장제라는 외부세계 둘 다에서 새로운 비전을 전개시켜 나갈 때, 점점 더 많은 심리적·육체적 위험을 감수하는 여성들에게서 보았던 용기를 뜻하는 것이다. 때때로 이런 커다란 용기가 조그만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여성의 직업이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공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종종 혐오스러운 생각을 하거나 모략을 받고, 미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때로는 그 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하고 전통적인 안전과 보호도 거의 사라져 버린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여성들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내적.외적 고통을 예상해야만 한다. 나는 내 아들이 이런 고통에 위축되지 않기를, 남성의 낡은 방어벽 속에 안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치명적인 자기혐오증을 보여서도 안 될 것이다. 또한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서나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 이 지상에서의 삶을 위해 이런 일을 하기 바란다. - P242

나는 남성을 자녀양육의 전과정에 참여시키는 데 상당한 어려움과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도 자녀양육이 여성의 일이었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저급하고, 일 같지도 않은 일이라는 인식, 혹은 단지 ‘재미‘에 불과하다는 과거의 인식이 문제이다. 이런 인식 뒤에는 개인적인 감정을 알지 못하는 남성들의 미숙함이 도사리고 있다. - P243

한편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남성이 ‘사랑의 일‘을 공유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자녀양육과 보육의 일부를 공유한다고 해서 그를 칭송하고 감사히 여기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성이 부모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특별한다고 간주된 적은 없다. 오히려 여성이 부모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회범죄로 취급되어 왔다. 이 말은 또한 남성의 자아가 계란껍질인 것처럼, 혹은 동등한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남성의 자아를 보전하는 일이 바람직한 것처럼 남성을 대하는 일도 그만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성들처럼 남성들도 칭찬받지 않고도, ‘예외적‘이라고 특별대접을 받지 않고도 우리와 같이 행동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사랑‘과 ‘일‘을 분리하는 것도 거부함을 의미한다.
남성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것을 새로운 형태의 사랑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가 증오심으로 행동하고말하며 우리도 ‘그들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지속적인 보호와 관심이 없으면 정신적으로 황폐해질 것이라고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정신적인 젖을 준 수백 년 동안 우리는 오염되고, 탐욕적이고, 지배적이며, 자학적이고, 못생기고, 음탕하며, 동성연애자이고, 매춘부라는 소리를 계속 들어왔다.
우리는 이제 서서히 다른 어떤 여성보다 어머니들이 더 진짜 같아 보인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불신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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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경 <담배 피우는 아줌마> 2001 


리뷰를 쓰려고 밑줄 그었던 부분을 임시저장해둔 것을 발견했다. 대출 기록을 뒤져보니 11월 중순이다. 아, 읽고 바로 썼어야지! 다 잊어버렸다.ㅠㅠ 




"... 하지만 어린 여자와 섹스하려고 발버둥치는 이유를 좀더 깊이 따져본다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성장을 멈춘 채 '어린애'로 살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 그들은 대화의 방식을 잘 모르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상대에게는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자기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상대에게는 일단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 남자애들도 로봇 놀이나 전쟁놀이를 하면서 '힘의 논리'를 습득해 간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전쟁놀이'를 하면서 산다(단적인 예로 국회의사당의 난투극을 보라!). 

어떤 남자들은 성관계도 '지배'와 '종속' 혹은 '도전'과 정복'이라는 무시무시한 작전 수행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그래서 그들은 어린 소녀와의 성매매를 서슴지 않는다. 왜냐? 정복하기 쉬우니까. 노력하지 않고 돈으로 손쉽게 한 여자의 몸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성관계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남자들은 여자들과의 의사소통 노력 없이 편히 살 수 있다. 남자들은 편하게 1년 365일 차려진 밥상을 받아먹는 게 당연한 권리인 양 믿고 산다. 어려서는 어머니의 노동에 기대어 밥을 얻어먹으며 생존하다가 연애할 때 잠깐 공을 들이면 평생 먹을 음식과 자식 낳기, 키우기, 부모 봉양하는 게 자동으로 보장되는 남자의 인생, 거기다가 맘만 먹으면 여자의 몸도 돈으로 살 수 있다." (전자책 35%) 


스윽 다시 이 부분 읽으니 '의사소통', 남자와 여자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 손! 하고 싶은 마음이...ㅎㅎㅎ 으아 진짜 너무 힘들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힘든지 남자들은 모른다.(설명해도 이해 잘 못함) 나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할수록 신통방통하면서 어이없다. 




"아줌마들의 이기심은 '가족 이기주의'의 산물이다. 아줌마가 길거리 좌판에서 콩나물 한 줌이라도 더 담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줌마는 남성 가부장이 움켜쥐고 있는 경제권 휘하에 있는 '수행자'에 불과하다. 가족 구성원이 더 싼값에 양질의 소비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 이기주의는 아줌마로 인해 '유지'되고 있을 뿐 그것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는 실질적 주체와 조장자는 '아저씨들과 자녀들'이다." (48%) 


주부는 남성 가부장이 벌어온 돈으로 살림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싸게 소비재를 사는 행위를 통해 자기만족과 위안을 느낀다고 한다. 가정에서 내 몫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자부감도 가진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지난주 읽던 <여성성의 신화>에도 나온 내용이고 인용구와 상통한다. 



"누가 한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의미심장한 구절 하나가 떠오른다. 

"세계를 전복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일상'을 바꾸는 일이다." " (55%) 



"아직도 대부분의 결혼은 강요된 친밀감의 요새다." (87%) 



베티 프리단은 여자에게 가정은 포로수용소라고 했다. 디 그레이엄의 책 제목은 <여자는 인질이다>이다. 나는 '세계를 전복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일상을 바꾸는 일'에 전념 중이다. 그런데 정녕 수용소를 개방된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할까. (불가능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좀더 지켜보도록 하자...) 


밑줄 대충 적어둔 것만 페이퍼로 옮겨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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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후드. 자매애. 

프롤로그 이렇게 좋아도 되는 것임? 그만 감정이입해서 끝부분에 울어버렸네. 프롤로그 읽고 운 책이 또 있던가? 아 눈물 터진 부분은 아래 밑줄은 아니다. 흑흑. 버튼이 눌렸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가끔 시스터후드라는 아름다운 말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그 여성과 결코 비슷한 적이 없고, 그 여성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여성을 잘 알 수 없고 그 고통 역시 겪어본 적 없었으나 눈물을 흘리고 함께 화를 내기도 했고 위로를 하기도 했습니다. 혹은 그 여성이 나를 설명해내는 말들이 나와 거리가 멀다고 느꼈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자매들이라 불리는 여성들과 함께 있기보다 홀로 있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긴 적도 많았습니다. 나는 눈의 여왕처럼 세상과 분리된 혼자만의 방이 필요했고, 눈의 여왕이 지닌 힘과 고독, 그리고 언제든 마음 내키면 어디든 떠나는 여행의 가능성을 갈구했습니다. - P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터후드, 자매애라는 단어를 부드럽게 쓸어보면서,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시스터후드를 상상해봅니다. 이 세계의 억압에서 비롯된 울분과 슬픔만이 아닌 ‘다시 만난 세계‘의 감각으로 생생해지는, 그래서 겪어본 적 없는 세계로 발 딛는, 용기와 기쁨으로 피어오르는 자매애와 다채로운 자매애의 가능성을 떠올려봅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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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1-19 0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

난티나무 2021-11-19 04:41   좋아요 0 | URL
저도 공감 됐어요.^^
 

흑인 페미니즘 사상

가족의 핵심은 남녀의 생물학적 결합이 아니다. 가족은 국가가 가족구조와 이런 유형의 가족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합법성을 부여하는 이성애적 결혼을 통해서 조직된다(Andersen 1991; Thome 1992). 전통적 가족이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거의 모두 흑인가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흑인여성에게 전통적 이상가족의 두 요소가 특히 문제적이다. 첫째, 유급고용이라는 "공적" 영역과 무급의 가족책무라는 "사적" 영역의 분리를 가정하는 것은 흑인여성에게 결코 해당되지 않았다. 노예제도 하에서 흑인여성은 남부의 농업이라는 공적영역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일했으며 일상적으로 가족의 사생활을 침범당했다. 둘째, 가구family household와 유급 노동시장을 분리하는 공/사 이분법은 미국의 젠더 이데올로기를 설명하는 근본적 요소다. 실제로 남성이 밖에서 일을 하고 여성이 가족을 돌본다고 가정한다면 흑인은 결함투성이일 뿐인 젠더관념에 시달린다. 특히, 흑인여성은 가정 밖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노동하고 남성들과 경쟁하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녀를 돌볼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흑인여성은 "여성적 "이지 못한 존재라고 규정된다.
흑인여성과 유색여성의 경험을 전통적 가족이상으로 상상된 틀로 보는 것은 심히 문제적이다(Higginbotham 1983; Glenn 1985; Mullings 1997). 흑인가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흑인여성의 노동과 가족 패턴이 왜 전통적으로 이상적인 가족의 표면적 정상성으로부터 일탈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가족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흑인여성과 유색여성의 경험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Collins 1998b).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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