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었다. 종이책 실물 없이 전자책으로 글을 읽는다는 건... 약간 유령(?)스럽다. 밑줄 그은 부분 다시 찾아볼 때도 앞뒤 맥락 없이 밑줄만 똭 보게 되니 한편으론 집중밑줄이라 효과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밑줄만 동동 뜬 느낌. 이 전자책의 물성과 손에 잡히는 물건임에도 손에 잡을 수 없는 책이라는 존재에 대한 내 태도, 물성 안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인 이 어지러움,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과 연결되는 지점 아니겠는가. 하고 괜한 억지를 부린다. 전자책으로 읽는 페미니즘. 이 주제에 대해 고민도 좀더 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페미니즘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종이책의 물성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아날로그 인간으로 남게 되더라도 종이책은 포기 못해.
짐작했겠지만 이건 제대로 리뷰를 쓸 수 없음에 대한 변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무수한 밑줄을 그었으나 그걸 다 옮겨오지도 못하고, 무수한 생각쪼가리들을 떠올렸으나 그걸 다 쓰지도 못한다. 요즘 나는 약간 감정침체기라고 할까, 감정북받침기라고 할까, 그런 중에 있는 것같다. 모호하게 쓰는 이유는 당근, 단정해버리면 그게 당연한 것이 되고 그러면 거기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9월 중순 무렵 이 책을 처음 열었을 때 1장을 읽으면서 좌절했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음 사라 아메드는 또 나오는군. 역시 읽어야 하나 봐. (전자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해둔 <행복의 약속>은 언제 들어올지 들어오기나 할지 모르겠는데 다락방님은 이 책을 내년 도서로 선정하셨고 그래서 나는 책 들어오거나 말거나 음 종이책으로 사야 겠군 한다.) 1장도 2장도 어려워 보여서 일단 스킵하고 2부 3부부터 읽었다. 조금 유하게 쓰신 거 아님꽈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디지털미디어세상과 거기에 엮인 여러 사회문제들을 짚어줘서 좋았다. 각 챕터마다 글을 써야 겠다 싶은 구절들이 있었으나 하루이틀 일주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도 흐려지고... 전자책의 맹점이라고 부르짖는다. 다시 펼쳐보기 힘들다. 빠이빠이가 너무 쉬워.ㅠㅠ
그렇게 3부 끝까지 다 읽고 다시 1부로 돌아갔다. 그런데 응? 처음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읽힌다. 심지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 이거슨 무슨 일. 그렇게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불안에 대해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소재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을 것같다. 행복보다는 불안이 훨씬 더 그렇고 책을 읽어도 이쪽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 나는 행복보다 불안이 궁금하다. 내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왜 항상 불안한지, 이건 정말 내 개인의 문제인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 지금은 좀 괜찮지만 한참 힘들 때는(그땐 힘든지도 몰랐) 밤마다 불안에 떨었다. 그 때의 이야기를 비공개글쓰기동지 두 명에게 보였더니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적어놓으니 내가 보기에도 심각했다. 그 불안들은 왜, 어디에서 왔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고 들은 사건사고뉴스 이야기, 영화와 드라마, 기타등등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영향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들을 가져와 내 불안을 이미지메이킹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건 나만 갖는 불안이 아님을, 여성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정도의 불안을 갖고 있음을, 상황과 고통에 따라 그 불안의 강도는 세졌다 약해졌다 하겠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또 새삼 깨닫는 순간. 그러면서 내가 만들어낸 불안에 불안해하는 이 행위는 분명 사회정치적 이유 때문인데 그걸 제어하지 못하는 나는? 나는 뭐지? 왜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거지? 이런 해봐야 뻔한 질문이나 하고.
어제 저녁에는 밥 먹고 작은넘이랑 한참 이야기하다가 행복,이 나와서 둘이서 행복이란 건 없다,고 부르짖었다. 아 웃겨. 작은넘이랑은 대화코드가 대체로 잘 통해서 맞장구를 얼씨구절씨구 치면서 이야기하곤 한다. 옆에서 큭큭거리면서 듣던 남편이 너네 둘이서 팟캐나 유튜브 하라고 했다. 팟캐는 돈 못 버는데. 유튜브도 얼굴 안 나오고 목소리만 나오면 돈 못 버는데. 누가 보겠어. 그거 찍어서 돈 벌려는 생각이면 안 하는 게 맞지. 아니 요즘 애들 진짜 성교육 하는 데도 없는데 너랑 나랑 둘이서 섹스 이야기하고 그러면 응? 안 볼까? 응 안 봐 엄마. 끝.
또 산으로 가는 이야기. 책을 읽고 그 책을 요리조리 뜯어서 리뷰를 근사하게 쓰는 날이... 뭐 언젠간 오겠지. 어려운 책 한 문장 한 문장 뜯어읽고 그걸 해석하는 날도 언젠간 오겠지. 계속 읽고 뻘소리나마 계속 쓰자. 뻘소리는 나의 길.
(그런데, 행복이나 불안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다고, 괜찮아질까...?)
1년 구독 신청한 잡지가 방금 왔다. 잡지 구독은 또다른 나의 허영인지도 모르겠다.ㅎㅎ 무슨 열정(?)으로 이걸 골랐는지. (가끔 거래은행에서 잡지 정기구독하면 선물 줄게, 함. 가끔 선물에 넘어감.)
페미니즘 잡지 <CAUSETTE>이다. 하. ㅋㅋㅋ
남편이 갖다주면서 "엄마들이여 일어나라!" 라고 표지의 기사 제목을 읊는다. "에코페미니즘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도 읊길래 맞다고, 여자들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