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여성괴물> 완독.
느낌 날아가기 전에 감상이나마 남겨보려고 창을 열었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책에 나오는 영화들 중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다. 후반부에 나오는 <사이코>는 내용을 대체로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워낙 유명한 영화고 유명한 장면이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영화사상 가장 공포스럽다는 그 장면을 나도 잊을 수가 없는데 그래서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거세 공포라. 남성의 성기는 참으로 대단하기는 한 모양이다. 모두가 어릴 때부터 우쭈쭈 해주질 않나, 정반대로 잘못을 하거나 하면 '고추'가 잘린다고 협박을 당하질 않나, 혹여 부엌에서 손에 물을 묻히기라도 하면 '고추' 떨어진다며 성차를 친절히 인식시켜주질 않나. 우쭈쭈와 공포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만도 하지 않은가.(그렇다고 불쌍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음) 어째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거세 공포를 주입시키는 것일까. 단지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라서? 잘리기 좋게 생겨서? 위협을 느껴서? 무엇으로부터? 다칠까 봐? 다치면 안 되는 너무너무 소중한 부분이라서? 왜 소중한데? 혹자는 남성의 성기가 진화를 덜 해서 그런 모양으로 남아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는데(누군지 몰라요 묻지 마삼),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진화를 아주 잘 한 여성의 성기가 아닌가? 이건 좀 벗어나는 이야기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그러니까, <사이코>. 그냥 싸이코가 아닌 것이었다.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다. 공포영화에서 여성의 죽음은 잔혹하고 지나치게 자세한 묘사로 재현되는 반면 남성의 죽음은 심플하다는 말, 괴물로 보여지는 여성들조차 남성의 의식과 시각을 위해 재현된다는 말, 이런 말들이 확 다가와 꽂혔다. 몇 안 되는 아는(?) 영화 중 <원초적 본능> 설명 부분도 뚀잉 하며 읽었고, 프로이트 비판하는 부분도. 책 전반부는 크리스테바의 이론 덕분(?)인지 좀 어렵다고 느꼈는데 후반부는 그래서 재미(?)있었다. (크리스테바의 책을 읽고 싶어져야 마땅하겠으나 음 난 아직 준비가...==33=333)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건 비단 공포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모든 시각매체를 통해 보고 있는 '여성의 재현 방식'에 대해 묻고 비판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고컷 하나까지도. 스크린에서 잔인하게 강간당하고 맞고 죽고 난자질당하는 여성의 재현에 대해 읽으면서 얼마 전 몇 회 본 드라마도 떠올랐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프로파일러 이야기. 기억하기로는 강간이나 살인 장면이 자세히 재현되지는 않는데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이라 포커스가 거기 맞춰지는 거겠지만 보는 내내 불편했다. 어쨌거나 여성들이 죽는다. 힘없이 말없이 소리소문없이. 범죄물에서 남성과 여성이 피해자로 재현되는 방식은 책에서 바바라 크리드가 말한 것과 같이 성차가 뚜렷하다. 중립을 지키고 사실을 전달해야 할 뉴스 보도에서도 그렇다. 기사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에는 여성 '악인'이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도 나오고 있는데 여전히 좀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이었던 이유를 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런 거였어! 여성'괴물'은 공포영화 속에만 있지 않다. 가부장 사회가 정해놓은 '바람직한 여성상'에서 벗어나면 우린 모두 여성괴물이다. 한 끗 차이. 그 한 끗 차이가 무서워서 숨죽이고 사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두가 괴물이 된다면, 그러면 그 '바람직한 기준'도 없어질 텐데 뻘생각도 해보고. (여러분, 괴물이 됩시다! (응?) )
이 책을 읽고 영상물 제작하는 사람들이 좀 깨어나기를 바래보지만... (천지개벽이 더 빠를까요?) 그들이 각성하지 못한다면 계속 토를 달 수밖에 없지. 답답하고 불편하고 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고, 제대로 만들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지. 목소리들이 쌓이고 쌓이면 그들도 바뀌겠지. 바뀌겠...지... 끙.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막 일어나는 요즘이니까, 일어나야만 하는 일도 일어나겠지! 항상 결론은 지금 여기 내 자리, 이 시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러나 어려운 크리스테바는 좀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