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를 했다. 책이 아주 어렵다는 말이 많았다. 올해 두세 권 정도 글자와 여백을 구분하는 정도의 읽기로 그친 책들이 있었기에 그 중 한 권이 될 확률이 높겠구나 했다. 섣불리 책을 펼치기 어려워서 미리 사둔 <뤼스 이리가레>(황주영)를 읽었다. 
















안 어려운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다. 응 이런 이야기를 했구나, 이리가레는. 그러니까 그 말도 맞네? 맞장구도 치고 말이다. 


"이리가레 철학의 목표를 한마디로 하자면, 성차를 은폐하고 제거하는 남성 중심적 담론과 상징 질서를 비판하고, 남성적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성차를 복권시킴으로써 여성과 남성이 상호 주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로운 상징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전자책 38) 


"이리가레의 사유는 초기의 날카로운 비판과 여성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읽힌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성차의 윤리학과 성차화된 권리를 주장하는 후기 이론들이다. 가부장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페미니스트는 많지만 가부장제의 폐허 위에 어떤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한 다각도의 윤곽을 그려 주는 페미니스트 이론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전자책 110) 



오케이. 그런데 책이 어려운 이유는? 사용하는 언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프랑스어의 문법적 특징을 십분 활용한 이리가레의 언어유희와 조어의 사용은 번역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텍스트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침묵을 표현하기 위한 말줄임표와 공백들, 명사의 성에 따른 인칭대명사와 형용사의 변용(본래는 남성형 명사인 단어에 여성형 관사를 붙이는 등), 동사 사용의 문법적 변형(J‘aime à toi, aimer는 타동사인데 전치사를 사용함),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유사한 단어들의 활용(semblant과 sangblanc, mère와 mer), 괄호나 빗금 또는 연결 부호를 이용한 의미의 이중화[spécula(isa)tion, hom(m)o sexuel]는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그 의미와 어조를 번역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전자책 13)


언어의 사용법을 바꾸어서 난해하게 쓴다고 하니 실물이 보고 싶어졌다. 원문을 보고 더 기겁하게 될 지언정.ㅎㅎ (날라리)대학생 찬스를 써서 대출을 했다. 




왓! 아니 책을 따로 모셔두었다고 해서 뭐야 인기 없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오래 돼서 그런 거였나? 이거 너무 심한 상태 아님 이러면서 발행연도 확인. 





또 왓! 1977년이야! 그럼 이거 초판본인 것임? 와우. 

실물 영접했다. 이걸로 만족하자. 왜냐하면... 

역시나 어렵기 때문이다.ㅠㅠ 


***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해 보겠다며 알리스가 나오는 첫 챕터를 읽고 이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녀? 근데 왜 남자가 나와서 자고 막 이러는 건가.ㅋㅋ 당췌 뭔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검색검색. 

미셸 수터의 영화 "Les arpenteurs"(The surveyors, 1972)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두 개가 튀어나온다. 영화는 돈 주고 봐야 되는 것 같아 포기하고 줄거리라도 찾아볼랬드니 찾기 힘들다. 퓨퓨. 앨리스 읽은지도 백만년은 된 거 같아 기억나질 않고. 둘을 어떻게 엮었는지 줄거리를 모르니 이해도 어려워. 난감.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ㅠㅠ)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 할 듯. 아래는 영화의 시놉시스다. 


"Lucien asks a friend, Léon, to carry to the woman he desires, Alice, a basket of provisions and to thank him for it offers him its cap. Léon seduces Alice, small brunette and admits later to his friend his "overflowings". Léon returns at Alice's home but it is not any more the same person; she is blonde and bears no resemblance to the woman the day before! One is sensual and welcoming, the other, mysterious and independent. Alice in Verbland! No drama, no action, a so "seventies" nonchalance... and the art of the conversation as the main subject of a delicious film, worn by remarkable actors (Marie Dubois, Jean-Luc Bideau and Jacques Denis). A wonderful, free and independant film! Michel Soutter is a swiss director, born in 1932, died in 1991. With Alain Tanner and Claude Goretta, he was part of the major trio of the New Swiss Cinema of the 60's and 70's."




"미셸 수테의 작품 《Les Arpenteurs》 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와 대응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엘리스는 남근중심주의에 의해 규정되고 판단되면서 '이상한 나라' 에 위치하게 되고, 그녀의 본질은 인위적으로 재단된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하여 여성이 욕망하는 것과 남근-이성중심주의가 강제하는 것을 분리할 수 있고, 검시경의 반대편으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출처 :나무위키) 


이런 뜻이라고 한다. 아하, 그렇군요.^^;; 

소제목에 거울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반사경>(1974)과 관계있는 이야기라는 건 눈치로. 위의 책(황주영)에서 본 바에 따르면, 그러니까 남성의 이미지는 평면거울에 맺히면서 동일성과 온전함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이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여성이다. 남성의 완전함을 보증해 주는 거울 역할. 만약 여성이 거울 역할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음을 제기한 책이 <반사경>이라고. 남성의 동일성의 세계는 사실 "타자화된 여성의 거울 역할을 통해서만 지탱될 수 있음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 '타자'에 대한 설명도 이어진다. 보부아르의 타자와는 조금 다른 타자.) 


아이고 어려워라. 그리하여 원서는 구경만 했고 책은 띄엄띄엄 읽고는 있으며 진도는 지지부진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반사경의 부제인 "여성으로서의 타자에 대하여"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리가레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타자의 위치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를 비롯해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주체가 아니라 타자이기만 할 뿐인 상황을 비판하고 이 위치를 거부했다. 이와 달리 이리가레는 ‘여성으로서의 타자'가 될 것을 제안한다. 여성은 남성의 부정(négatif)이라는 의미에서만 타자였지, 여성 자신으로서 타자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리가레가 제안하는 타자는 주체에 종속된 타자도 아니고 남성을 위한 타자도 아니다.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타자다.
이는 곧 여성 주체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자기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신체와 그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표현하고 재현할 때, 여성은 주체가 되며 남성 주체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남성과 관계 맺는 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련된다. 복수성과 유동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여성의 신체와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성적 욕망, 상상계와 상징계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성적 차이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상상계와 상징계를 구축하는 주체로 설 가능성의 토대가 된다." (전자책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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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1-18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난티나무님의 글을 읽으니 조금 체계가 잡힙니다.보부아르가 말하는 타자화의 부정을 이리가레는 여성 주체적인 타자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군요?음....완전히 다른 관점의 시선이로군요? 흥미롭습니다.책은 정말 난해하지만요ㅜㅜ 저는 읽으면서 번역이 난해한가? 싶었어요.매끄럽게 안읽혀서요.
헌데 프랑스어의 언어 유희를 사용했다니!!!!
사람들이 왜 프랑스어를 배우려 하는지도 알 것 같은!!!!ㅋㅋㅋ
그나저나 77년도산 원본책이라니요??
저보다 조금 년식이 덜하지만 와...그래도 대단한 도서관입니다.울동네 도서관은 책이 오래되었다고 폐기처분을 해버리는 분위기라 아쉬웠었는데 말이죠ㅜㅜ
귀한 구경도 하고,덕분에 공부도 하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난티나무 2021-11-18 20:24   좋아요 1 | URL
음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해설서를 보고 조금 감을 잡았으나 정작 이리가레의 책은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오긴 합니다. 허허.ㅠㅠ 오늘 읽은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어요. 다 이해하진 못해도^^;;;; 말씀처럼 흥미로워요.
타자,라는 개념이 생각하면 할수록 오묘하고 난해하고 ㅎㅎ 부정할 수 없는 것이면서 또 관계는 무지하게 어렵고... 철학자들이 머리 싸매고 갑론을박한 이유는 알 것 같아요.^^;
책은 너무 낡아서 책장을 넘기기조차 조심스럽더라고요. 오래 되어서 막 먼지 폴폴 나는 것같은 느낌도 나고. 라텍스 장갑 끼고 만져야 될 것 같아요.ㅋㅋㅋ

다락방 2021-11-18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부터 나오는 거울 얘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내 방에 낯선 사람이 침입했다는건가 싶고 그렇더라고요. 어려워요. 용어 자체들이 다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방대한 분량이었던 제2의 성보다 읽기가 더 어려워요. 얼른 읽어버리고 다른 책 읽고 싶어요.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책이 실제 여성 인권에 얼마나 도움이 되려나 싶기도 했고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것은 얼마나 유용한가 싶은 그런 생각을 오늘 했네요. 그건 버틀러 책 읽을 때도 그랬는데 말예요. 얼른 읽고 12월 되면 12월 책 읽고 싶어요. 12월 책은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1-11-18 20:31   좋아요 0 | URL
어려운 책 읽을 때마다 하는 생각들이죠. 이게 과연....ㅎㅎㅎ
그러나 저는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머리에 뿔 나게 어려워도 그런 작업을 하고 기존 철학을 비틀고 깨부수고 해야 학계도 바뀔 테니까요. 실제로 이리가레는 <반사경> 쓰고 나서 축출되었다잖아요, 학계에서. 정치도 그렇고 학문도 그렇고 모든 분야가 바뀌어야 세상도 바뀔 테니 나는 너무 어려워 진짜 울고 싶지만 그래도 꾹꾹 참아봅니다.^^;;;;;;; 와 진짜 버틀러 읽기를 잘 한 거 같아요. 이런 책이 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해주었으니까요. 허허.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 추가요~!!^^

잠자냥 2021-11-18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꿈꾼문고에서 연말에 뤼스 이리가레 <반사경 Speculum>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거 같은데, 이 책이 여러분들 읽기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1-11-18 09:43   좋아요 2 | URL
[하나이지 않은 성]에 반사경 언급 되거든요. 반사경을 출간하고 질문받고 답하는 것들이요. 그러니 반사경을 읽는다면 하나이지 않은 성 읽는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한데 와 진짜 너무 읽기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11-18 20:32   좋아요 0 | URL
<반사경>은 진짜 어려울 것 같아요. 읽기 싫다에 저도 한 표! ㅎㅎㅎ

라로 2021-11-18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만 읽어도 느낌 팍 와요!! 난티님이 어려워 하시고 지지부진 하시다니 저는 꿈도 안 꿀래요. 😅

난티나무 2021-11-18 20:32   좋아요 0 | URL
네 라로님. 안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흑흑.

그레이스 2021-11-18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자의개념은 이중적이죠?
내가 나를 타자화 시키는것과 타인을 타자화 시키는것으로...

난티나무 2021-11-18 20:34   좋아요 1 | URL
네 타자의 개념도 복잡한 거 같아요. 인간은 진짜 복잡하고 신비한 존재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