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제2편 제2장 어머니


임신, 입덧, 출산.

나는 어땠나. [어머니] 부분을 읽으면서 시간을 거슬러 돌이켜본다. 많은 것이(어쩌면 모든 것이) 심리적 요인에 좌우된다는 말은 옳은 듯하다.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몸 안에 또다른 몸을 만들고 그 몸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가 있겠나.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몸도 마음도 불안하다. 걱정하지 마라, 누구나 다 한다, 는 말은 1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겪는 사람은 '누구'가 아니라 '나'다. 누구나 한다고 해서 그것이 마땅한 것도 아니다.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첫 출산이 훨씬 더 힘들었다. 처음엔 다 그래, 둘째는 훨씬 수월하다? 같은 말을 들었다(나도 한 적 있다.ㅠㅠ). 처음이라 힘든 것은 맞다. 그러나 원인은 몸의 고통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그것들은 '무지'에서 온다. 이런 마음 때문에 입덧이 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으레 하는 줄로만 알았지. 몸이 거부하는 것이라니. 그러고 보면 임신한 이후 희한하게도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단칼에 싫어하게 된 것도 심리적인 이유였겠다. 몸에 좋지 않은 것 = 아기에게 좋지 않은 것, 이라는 의식이 작용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같은 게 당기는 것은 반대로 나의 욕구를 위한 몸부림이겠지. 카오스. 카오스.


*** 그녀는 신비의 법칙을 부과하는 종()의 먹이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런 소외는 그를 두렵게 한다. 그 두려움은 입덧으로 나타난다. (655) ***





첫 출산 후 병원에서의 사흘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모르는(세상에 알려진 딱 그만큼의 정보만 가진) 초보는 우는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울음을 터트렸다. 함께 방을 쓰던 옆침대의 낯선 여자는 말을 걸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처음 내가 먼저 말을 건넸을 때 그녀는 세번째 출산이라 했다.) 한밤에 벨을 눌러 간호사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침대에서 멀찍이 떨어져 싸늘하게 대하는 눈빛과 몸짓은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병원의 규칙에 따라 함께 잘 수 없었던 남편도, 첫 출산이라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엄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밤새 아기 옆을 지키는 건 내 몫이었다. 아기가 밤에 잠을 주욱 잘 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간호사들의 아침 인사는 잘 잤어요?다. 아니요... 아니 (도대체) 왜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간호사들 중 단 한 명만이 따뜻한 말을 건넸고 용기를 북돋아주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하는(않는) 건 마찬가지. 너의 일이야, 네가 알아서 어떻게 잘 좀 해 봐.

그래, 지금 생각하니 나 참 용감했다. 한밤의 눈물과 지침이 불안과 두려움이었다는 건, 이제 더 확실히 알겠다. 두번째 임신은 입덧도 가벼웠고 출산에 걸린 시간도 엄청 빨랐으며 회복 역시 빨랐다. 눈 내리는 병실 창가에 서서 혼자(아기가 쌕쌕 잠들어 옆에 있지만 나랑 놀아줄 건 아니니까) 무료하고 심심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 출산 이틀째였다. 어렴풋하게나마 좌충우돌로 겪어낸 첫번째 임신과 출산 경험이 그런 나를 만들었다. 기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부아르는, "임신의 시련을 가장 쉽게 겪어 내는 여자는 출산 기능에 완전히 헌신하는 모성형이며, 한편은 자기 육체에 일어나는 이변에 현혹되지 않고 그것을 쉽게 극복해 나가는 용기 있는 남성적 여성"(655)이라고 말했다. 나는 전자('출산 기능'!!)에 가까웠나? 아니면 후자?





*** 보통, 모성이라는 것은 나르시시즘·이타주의·몽상·성실·기만·헌신·쾌락·멸시의 기묘한 혼합이다. (670)


이제까지 서술해 온 내용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두 가지 편견은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 명백하다. 우선 모성애라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여자를 충분히 만족시킨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680~681)

첫번째 편견에 직접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또 다른 편견은, 아이가 어머니의 품속에서 확실한 행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모성애에는 결코 자연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모성본능이 없는'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런 까닭으로 나쁜 어머니도 있을 수가 있다. (중략) 세상에서 여자에게 주는 경멸과 어머니에게 주는 존경심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은 괴상한 아이러니이다. (683) ***


감정의 기묘한 혼합. 보부아르는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놀랍기만 하다. 첫 출산 이후의 힘듦 이후로 아이가 2살일 때, 4살일 때, 7살일 때, 그렇게 자라기까지 또 무수한 이야기들, 감정들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의 외형에 가깝게 큰 지금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데도 한 인간을 감독·지도하는 것, 오로지 거기에 반항함으로써만 자기를 확립할 수 있는 한 미지의 자유로운 주체에게 개입하는 어려움을."(675)  그 어려움, 요즘 만끽(!)하는 중이다. 어렵다. 






*** 오늘날 여자를 가정 밖에 몇 시간씩 묶어놓는 직업과 아이의 이익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육아를 양립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은, 여자의 일이 아직도 노예 노동이기 때문이며, 또한 가정 밖에서 아이의 시중과 교육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무능이 원인이다. 하늘이나 땅속에 기록되어 있는 법에 따라 어머니와 아이는 오로지 서로에게 속해 있다고 주장하며, 이 사회의 무능을 두둔하는 것은 궤변이다. 이런 서로간의 구속이라는 관계는 실제로 이중의 해로운 압박을 낳을 뿐이다.

여자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사실상 남자와 동등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이다. (685) ***


궤변이다. 기만이다. 그렇게 외치는 보부아르 님. 궤변이다. 기만이다. 나도 외쳐본다. 나를 기만하지 말아라! 너희의 그 궤변덩어리들 다 깨부숴주겠숴~ (라고 해놓고 머리아프다. ㅠㅠ)





*** 여자는 가사로는 결코 자기를 구제할 수 없다. 이 일은 그녀의 시간을 빼앗지만, 그녀의 삶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정당화는 자기 밖에 있는 자유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에 갇혀 있는 여자는 스스로 실존을 만들어 나갈 수 없다. 그녀는 개별성 속에서 자기를 확립할 수단이 없다. 따라서 그 개별성이 그녀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 (686) ***






이렇게 제2장 [어머니] 부분이 끝났다. 할 말이 많은 듯 했는데 결국 경험의 부분적 나열에 불과하다. 단순히 경험만을 나열하는 것만도 오래 걸릴 것 같다. 아직도 머릿속에 장면들이 어른거린다. 그 장면들은 나에게 어떤 또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계속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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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10-18 22: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간추리신 내용과 경험담을 읽는것만으로도 다시 한번 숙연해지고 빚진 마음같은게 느껴지네요! 왠지 저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간에 저 사회제도라는 장벽에 벽돌 한장쯤은 쌓은것 같고, 그 장벽이 무너지지 않게 일정부분 공헌했던것도 같고, 무의식의 영역에선 그 장벽이 주는 직접적 및 반사적 이익이라는 과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장벽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싶어 왔던지도 모르겠네요!ㅠ 완독까지 힘내시구요!

난티나무 2021-10-18 22:56   좋아요 4 | URL
막시무스님, 댓글 읽는데 마음 한켠이 살짝 무거우면서 또 뿌듯(?)한 마음이 동시에 드네요.^^ 뜬금 박수를 쳐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헤헷. 막시무스님 글 보면서 저도 많이 공부합니다. 댓글은 잘 안 달지만서두... 반성반성...ㅎㅎㅎ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0-18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요된 모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티나무님 글로 읽으니 끄덕끄덕, 공감입니다.
저도 이 책 읽기로 했으니 분발해야하는데...

난티나무 2021-10-19 04:5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화이팅입니다!^^
문장들에 밑줄 그으며 멈칫멈칫합니다.^^

단발머리 2021-10-23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머니,라는 과정을 비교적 편안하게 지나쳐 온 사람인데, 난티나무님 글 읽는데 막 맘이 뭉클하네요. 외국의 어느 병원에서 달래주는 사람 하나 없이 신생아와 씨름하는 순간들이 막 그려지고요.
애 많이 쓰셨어요, 난티나무님! 우리 모두 그 길을 이렇게 저렇게 잘 지나왔네요ㅠㅠ

난티나무 2021-10-24 03:3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고마워요~^^
그러네요, 지나와서 지금 여기에~
여전히 어렵지만 ㅎㅎㅎ 앞으로도 잘 지나갈 수 있겠지요?^^;;;; 현재진행형...ㅎㅎㅎ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계속 불릴 테니까요.^^


공쟝쟝 2021-10-2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읽으면서 제 엄마와 동시에 내 유자녀 기혼 서재 이웃들이 많이 생각났었어요. 이 부분 읽을 때는 정말 만감이 교차하겠구나... 하구.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엄마들이 다 겪는다, 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겪는 다는 말이 와닿아요. 내가 가진 고유의 경험과 감상들을 다 그런거야~ 하면서 흘려보내지 않으셨음 해요! ^^ 우리 그렇게 스스로를 독려해나가자요!

난티나무 2021-10-26 23:31   좋아요 1 | URL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경험담을 늘어놓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하던데(아 진짜 맞는 말 ㅠㅠ) 많이 찔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다른 경험들을 모조리 풀어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만 어떻게,라는 질문이 남아있을 뿐. 공쟝쟝님의 글 뿐만 아니라 댓글한테도 팬이라고 전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