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 Invictu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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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관람객 10명 정도에 하루 한 번 상영하고 있는 영화를 보고 왔다. 원제로는  Invictusf라는 영화다.  줄거리는 생략하련다. 

다만 만델라가 감옥에서 즐겨 암송했다는 이 한 편의 시를 기억하고자 한다. 

라틴어 invictus는 unconquered의 뜻으로 '굴복하지 않는'이라는 뜻이란다. 이 시를 쓴 사람은 William Ernest Henley(1849-1903)라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시인으로 영문학도의 교과서인 The Norton Anthology에도 실려있다. (처음부터 알았던 건 절대 아니고 나중에 영화를 보고와서 찾아보니 있더라는 얘기. 그것도 모르고 인터넷 검색만 열심히 했다.) 

이 영화도 영화지만 이 시인에게도 흥미가 가는데....12세 때 결핵(tuberculosis of the bone)을 앓았는데 점차 그 병이 발까지 진행되어 끝내는 한 다리를 무릎 아래까지 절단해야만 했다고 한다. 25세 때였다. 1867년에는 Oxford에 들어갔고 이 시를 병원 침대에 누워서 쓴 것은 1875년이었다. 53세에 숨을 거두기까지 한 쪽 다리로 active한 삶을 영위했다고 한다.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I thank whatever gods may be 

For my unconquerable soul.  

 

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Under the bludgeoning of chance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마지막 두 문장의 의미만 확실히 알아도 될 것 같은 시이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이 영화는, 그래서, 몸으로 실천한 만델라이기에 감동적이다.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재밌는 게 눈에 들어왔다. 

http://en.wikipedia.org/wiki/Invictus_(film

예를 들면, 만델라가 대만 방문 중이었을 때 회의실 이름이 대만에서 쓰는 한자인 번체자(우리도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가 아니라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로 되어 있다는 식의, 사실과 다른 부분들을 열거하고 있다. 세상엔 똑똑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많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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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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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슴 속에 품은 말을 다 할 수 있을까? 가족과 여행 중 남편과 심하게 다투었던 일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을 통해서 알게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시원하게 기행문에 풀어 놓을 수 있을까? 콘돔이 뭐냐고 묻는 어린 딸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용법을 말해줄 수 있을까? 때로는 첫사랑이 그립기도 하다고 배우자에게 털어놓으며 지나간 세월을 함께 아파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만 해도, 아이들이 내 키를 물어오면 대강 얼버무리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내뱉어버린다."응, 150이 좀 안돼. 내가 이래봬도 미래형 인간이라는 거 알지?...." 이렇게 말하기까지는 반세기가 걸렸다. 그게 뭐라고... 

힘든 한 주일을 보냈다. 한 아이가 갔다. 얼굴도 모르고 가르친 적도 없는 아이였지만 속절없이 가버려서 가슴이 너무 너무 아팠다. 작년 담임선생님과 엄마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문자를 남기고는 홀연 사라져버린 아이 소식에 내내 답답하고 슬펐다. 사고를 접한 날, 새로 부임한 교장은 교내의 네트워크 메신저로 자작시 한 편을 전체에게 날렸다. 감동은 커녕 사뭇 저의가 의심스러운, 생각없는 행동으로 치부해버리고 비웃어버렸다. 

그 우울한 와중에 이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꾸역꾸역 읽고 있었다. '흠, 알뜰한 살림꾼이군. 너무나 도덕적이군. 바람직하게 사는 사람이군. 생각이 무척 바르군.' 내내 시쿤둥하게 읽어나갔다. 자동차가 없다고? 흠, 나는 자동차 면허도 거부한다구! 자전거 타고 다닌다구? 흠, 나는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닌다구! 에너지를 아낀다구? 흠, 나는 내 몸 자체가 에너지 절약형 인간이라구! 

그러다가 10대의 딸아이에게 이른바 성교육을 시키는 얘기에 나는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다. 혼자 실컷 웃었다.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만15세가 된 딸아이에게 콘돔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가히 이 책의 백미였으니.. 

(114쪽)...또 어디 가서 이놈의 모델을 구해 오나 고민하던 나는 냉장고를 뒤져 당근 봉지를 꺼냈다. 그중에 약간 작은 듯한 놈으로 골랐다. 너무 크면 딸아이가 보고 쇼크를 먹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나중에 남자를 만났을 때 고지식하게 당근보다 작네 어쩌네 하며 남의 집 귀한 아들을 기죽이면 큰일이겠다 싶기도 했다. 

계속 이어지는 남편과의 이런 대화는 또 어떤가. 

"그, 그걸 말이라고 해? 공부도 안 끝난 애가 임신하면 어떡해? 그 애 인생은 어떻게 되고?" 

"인생이 어떻게 되긴? 우리 아직 건강하겠다, 부모가 힘껏 도와줄 텐데 아기 키우면서 공부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그런 걸로 사람 인생 안 망쳐. 그런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우울증이나 마약 같은 마음의 병이야. 그건 부모가 암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잖아." 

<한두 번 실수로 망가지는 인생은 없어>라는 꼭지에 실린 이런 내용을 읽고는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밝아졌다. 학교에서 돌아온 중2짜리 딸아이에게 이 부분을 읽으라고 던져주었다. 저녁밥을 지으며 내심 반응을 살펴 보았다. 헤헤 웃더니 뭔가를 계속 조잘거린다. 그 책도 재밌고 그런 책을 읽으라는 엄마도 재밌다는 투였다. 됐어! 

다음 날. 그리고 또 그 다음 날. <한두 번 실수로 ..>이 부분을 복사해서 B4 한 장과 A4 한 장에 오려붙인 후 다시 복사를 해서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들에게 두 명에 한 장 꼴로 돌렸다. 중3인 아이들의 반응은? 재밌다는 투인데 드러내놓고 깔깔대거나 호탕하게 웃는 아이가 없다. 비실비실 웃음만 머금는다. 어라....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내용 어땠어? 재밌지?"..."근데 이 얘기 정말이에요?", "그 가족 좀 이상해요..." 

너희가 어떤 실수를 해도, 어떤 잘못을 해도, 그냥 말없이 사라져버리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내 뜻은 이거였는데 내 어눌한 말주변이 감히 감당해내지 못했다.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좋은 점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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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 법정 스님의 책을 거론하는 게 어색하다. 늘 함께 했다. 마시는 물처럼 숨쉬는 공기처럼.  

이상하지만 스님의 입적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스님은 완전한 삶을 사셨다. 완성을 보여주셨다. 슬픔 보다는 경외감이 고인다.  

   

<서 있는 사람들>은 30여 년 전, 대학 시절 처음으로 읽은 법정 스님의 책이다. 그 때의 감동과 놀라움, 그리고 알 수 없는 편안함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였다.    

 

  

 

범우사에서 나온 이 <무소유>를 읽고나서였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것도 쓸 데 없는 것들로 꽉 차있다는 것을. 그건 깨우침이자 아픔이었다. 

   

   

 

1989년인가 1990년인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법정 스님의 이 기행문은 내가 최초로 읽은 인도여행기로 나를 인도로 인도했다. 나는 지금도 '인도'하면 법정 스님이 먼저 떠오른다. 나의 스승이시다. 

   

 

 읽고 또 읽었던 스님의 여러 책들. 물이며 공기였던 책들.  스님, 감사합니다. 큰 절 올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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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 수업 - 한 젊은 아트컨설턴트가 체험한 런던 미술현장
최선희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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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장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겸손 떠는 것도 아닌 글에 신뢰감이 생긴다. 이 책이 그렇다. 뒷 표지에 적힌 " 학위도, 경력도, '빽'도 없었다. 하지만 그림이 미치도록 좋았다!"는 과격(?)하고 거친 표현이 유일하게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지은이가 미술을 만나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접어들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잘 읽었다. 화가에 대한, 혹은 미술계 사람들에 대한 적당한 소개와 정보도 유익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 에세이라는 장르에서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의 정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시. 

그래서 알게 된 샤반이라는 화가. 

(105쪽)...샤반은 그간 서양 미술사에서 한 줄이나 다뤄질까 말까 할 정도로 심하게 과소평가되었지만, 사실은 피카소, 마티스, 쇠라, 고갱과 같이 서양 근현대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상징주의와 나비파 화가들이 샤반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샤반의 이름이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은 그가 어떤 특정한 '주의'라는 사조 안에 함께 묶일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지녔기 때문이다...후기인상파 화가들 중 샤반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화가는 조르주 쇠라이다....폴 고갱은 쇠라에 비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더 깊은 영향을 받은 화가이다...이렇게 1880년대에 유럽에서 새롭게 유행한 상징주의 그립들은 샤반의 존재를 무시하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피카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피카소의 청색시대나 장밋빛시대 작품들이 샤반의 화풍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중국의 현대 작가, 쟝 샤오강과 웨 민쥔- 쟝 샤오강이 회화 요소를 강조하고 개인의 내면세계를 세련된 기법으로 그리는 쓰촨 분지 화가들을 대표한다면, 웨 민쥔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담아내는 베이징 화가들을 대표한다. 웨 민쥔의 트레이드마크는 '웃음'이다. (279)

언젠가 전시회에서 보았던 얼굴 큰 남자의 꽉 찬 웃음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아마도 웨 민쥔의 작품이었던 듯싶다. 가물가물한 기억.  

내 세계가 될 수 없었던 그림판의 세상, 은 내게는 늘 짝사랑과도 같다. 한 때 그림에 뜻을 두었다는 게 평생 이렇게 미련으로 남아 있다니, 새삼 내 미련스러움에 원망과 한숨이 서린다. 이제와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래서 즐거움과 동시에 아픔을 동반한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원망이랄까. 미술계를 하나 하나 알아가고 세계를 넓혀가는 지은이가 그래서 몹시 부러웠다. 지식과 안목이 축적되어 삶이 넓게 그리고 깊게 펼쳐지는 인생이란 얼마나 황홀한가. 

데미언 허스트- 영국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신'적인 존재라는 사람. 그가 말하는 현대 예술이란? "이야기를 하는 거다. 모든 예술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것을 들려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379) 

지은이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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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41192

 

김예슬씨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우리들의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25년간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큰 배움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대학을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겐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한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탐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두고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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