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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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슴 속에 품은 말을 다 할 수 있을까? 가족과 여행 중 남편과 심하게 다투었던 일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을 통해서 알게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시원하게 기행문에 풀어 놓을 수 있을까? 콘돔이 뭐냐고 묻는 어린 딸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용법을 말해줄 수 있을까? 때로는 첫사랑이 그립기도 하다고 배우자에게 털어놓으며 지나간 세월을 함께 아파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만 해도, 아이들이 내 키를 물어오면 대강 얼버무리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내뱉어버린다."응, 150이 좀 안돼. 내가 이래봬도 미래형 인간이라는 거 알지?...." 이렇게 말하기까지는 반세기가 걸렸다. 그게 뭐라고... 

힘든 한 주일을 보냈다. 한 아이가 갔다. 얼굴도 모르고 가르친 적도 없는 아이였지만 속절없이 가버려서 가슴이 너무 너무 아팠다. 작년 담임선생님과 엄마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문자를 남기고는 홀연 사라져버린 아이 소식에 내내 답답하고 슬펐다. 사고를 접한 날, 새로 부임한 교장은 교내의 네트워크 메신저로 자작시 한 편을 전체에게 날렸다. 감동은 커녕 사뭇 저의가 의심스러운, 생각없는 행동으로 치부해버리고 비웃어버렸다. 

그 우울한 와중에 이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꾸역꾸역 읽고 있었다. '흠, 알뜰한 살림꾼이군. 너무나 도덕적이군. 바람직하게 사는 사람이군. 생각이 무척 바르군.' 내내 시쿤둥하게 읽어나갔다. 자동차가 없다고? 흠, 나는 자동차 면허도 거부한다구! 자전거 타고 다닌다구? 흠, 나는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닌다구! 에너지를 아낀다구? 흠, 나는 내 몸 자체가 에너지 절약형 인간이라구! 

그러다가 10대의 딸아이에게 이른바 성교육을 시키는 얘기에 나는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다. 혼자 실컷 웃었다.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만15세가 된 딸아이에게 콘돔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가히 이 책의 백미였으니.. 

(114쪽)...또 어디 가서 이놈의 모델을 구해 오나 고민하던 나는 냉장고를 뒤져 당근 봉지를 꺼냈다. 그중에 약간 작은 듯한 놈으로 골랐다. 너무 크면 딸아이가 보고 쇼크를 먹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나중에 남자를 만났을 때 고지식하게 당근보다 작네 어쩌네 하며 남의 집 귀한 아들을 기죽이면 큰일이겠다 싶기도 했다. 

계속 이어지는 남편과의 이런 대화는 또 어떤가. 

"그, 그걸 말이라고 해? 공부도 안 끝난 애가 임신하면 어떡해? 그 애 인생은 어떻게 되고?" 

"인생이 어떻게 되긴? 우리 아직 건강하겠다, 부모가 힘껏 도와줄 텐데 아기 키우면서 공부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그런 걸로 사람 인생 안 망쳐. 그런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우울증이나 마약 같은 마음의 병이야. 그건 부모가 암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잖아." 

<한두 번 실수로 망가지는 인생은 없어>라는 꼭지에 실린 이런 내용을 읽고는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밝아졌다. 학교에서 돌아온 중2짜리 딸아이에게 이 부분을 읽으라고 던져주었다. 저녁밥을 지으며 내심 반응을 살펴 보았다. 헤헤 웃더니 뭔가를 계속 조잘거린다. 그 책도 재밌고 그런 책을 읽으라는 엄마도 재밌다는 투였다. 됐어! 

다음 날. 그리고 또 그 다음 날. <한두 번 실수로 ..>이 부분을 복사해서 B4 한 장과 A4 한 장에 오려붙인 후 다시 복사를 해서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들에게 두 명에 한 장 꼴로 돌렸다. 중3인 아이들의 반응은? 재밌다는 투인데 드러내놓고 깔깔대거나 호탕하게 웃는 아이가 없다. 비실비실 웃음만 머금는다. 어라....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내용 어땠어? 재밌지?"..."근데 이 얘기 정말이에요?", "그 가족 좀 이상해요..." 

너희가 어떤 실수를 해도, 어떤 잘못을 해도, 그냥 말없이 사라져버리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내 뜻은 이거였는데 내 어눌한 말주변이 감히 감당해내지 못했다.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좋은 점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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