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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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놓고 그만 읽으려고 마음 먹어도 끝까지 읽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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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놀랐다. Sam Smith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는 것. 알았다한들 공연장에는 가지 않았겠지만 내한 사실도 몰랐다는 게 좀....

 

지난 여름 실크로드 갈 때 기내에서 내내 들었던 Sam Smith의 노래들. 그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그의 노래를 잘 안다고도 할 수 없지만,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그의 당당함 때문이다.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그가 한 다음의 말이 참 인상적이다.

 

"이 노래를 통해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요. 나는 '게이'인 것이 자랑스러워요. 사랑은 사랑일 뿐이에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노래. Him 을 음미해본다.

 

[Verse 1]
Holy Father, we need to talk
I have a secret that I can’t keep
I’m not the boy that you thought you wanted
Please don’t get angry, have faith in me

[Chorus]
Say I shouldn’t be here but I can’t give up his touch
It is him I love, it is him
Don’t you try and tell me that God doesn’t care for us
It is him I love, it is him I love

[Verse 2]
I walk the streets of Mississippi
I hold my lover by the hand
I feel you staring when he is with me
How can I make you understand?

[Chorus]
Say I shouldn’t be here but I can’t give up his touch
It is him I love, it is him
Don’t you try and tell me that God doesn’t care for us
It is him I love, it is him I love

[Bridge]
Ohh, ohh  Oh, I love
Ohh, ohh  No, no, I love
Ohh, ohh  I love
Ohh, ohh Ohh, ohh
Him I love Ohh, ohh
Him I love Ohh, ohh
Him I love Ohh, ohh
Him I love 


 [Outro]
Holy Father, judge my sins
I’m not afraid of what they will bring
I’m not the boy that you thought you wanted
I love him

(가사출처: daum)

 

 

그래도 끝내 sins 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애절하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라면서.

 

 

여담: I hold my lover by the hand...성문종합영어식으로 말하면, 신체의 일부분을 만지거나 건드릴 때는 신체부위 앞에 전치사+the...를 쓴다. by the hand...이런 예를 들려주며 아이들에게 슬쩍 이 노래를 가르쳐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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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0-1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누가 막겠어요.
꼭 관련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에 본 설치 미술이 생각나서, 생각난김에 제 서재에 올려봐야겠어요.

nama 2018-10-11 18:51   좋아요 0 | URL
동성을 사랑한다고 해서 남한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지요. 나와 다르다고 해서 욕할 것도 아니고요. 사랑은 사랑일 뿐이지요.
 

 

지난번 안동 봉정사는 예정에 없던 곳이라 책 한줄 읽지 않고 갔었다. 그렇다면 예습을 하고 간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싶어 다시 유홍준 교수의 <산사 순례>를 집어들어 부여 무량사편을 펼쳤다. 그러나 역시 예습보다는 복습을 위주로 살아온 삶이라 떠나기 전날 밤에 읽는 책은 그저 흰바탕에 쓰여져있는 검은색 활자에 불과했다.

 

 

 

 

 

 

 

 

 

 

 

 

 

 

대학 수능 이전에는 학력고사, 학력고사 이전에는 예비고사가 있었다. 예비고사 세대인 나는 그것 말고도 지원한 대학에 가서 본고사를 치러야했다. 과목은 대부분 국, 영, 수 였다. 시험 당일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가면서 본고사용으로 편집된 얇은 수학책을 몇 쪽 읽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보고 있는 게 덜 떨릴 것 같아서였다. 운발이 있었는지 택시에서 대강 본 문제가 두어 개 시험에 나왔다. 국어와 영어시험을 치르면서 바닥으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수학 시험을 치르면서 성공 예감으로 급상승했다. 대학에 합격한 건 순전히 택시에서 살펴 본 그 수학문제 덕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어제, 아침밥도 거른 채 부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전날 읽다만 부여 무량사편을 펼쳐 읽었다. 역시 달리는 차 안에서 읽는 맛은 색다르다.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전날 미리 읽은 남편이 스포일러가 되려는 순간 급히 차단 시키느라 약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만수산 무량사라고 쓰여진 일주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분명 생각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책에 나온 설명이다.

 

무량사는 일주문부터 색다르다. 원목을 생긴 그대로 세운 두 기둥이 아주 듬직해 보이면서 지금 우리가 검박한 절집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묵언으로 말해준다.  (199쪽)

 

 

저런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법. 얼마나 듬직한지 다시 보시라.

 

 

듬직한 남편보다 더 듬직하다. 남편이 저 나무만큼 듬직하다면... 세상을 구한다고 나섰겠지, 아마. 다행이다.

 

다리 건너 저쪽 편에 있는 천왕문에 다다른다. 다시 설명이 이어진다.

 

천왕문 돌계단에 다다르면 열린 공간으로 위풍도 당당하게 잘생긴 극락전 이층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문은 마치 극락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드는 액틀 같다. 적당한 거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극락전의 넉넉한 자태에는 장중한 아름다움이 넘쳐흐르지만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미더움이 있다.

 

 

확인해보시라.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지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좀 더 가까이 올라가본다.

 

 

이런 풍광을 지닌 절집이 있었던가?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석탑, 오층석탑, 극락전이 절경을 이룬다. 이것만 보는 것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한 것 같았다. 대만족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직접 책을 보시기 바란다. 이 극락전 말고도 주변에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있고 각각 스토리가 있어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우화궁 건물 주련에는 진묵대사의 시 한 수가 걸려 있고 '그 시적 이미지가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스케일이' 클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직접 보고도 알아채지 못했다. 예습을 했는데도 놓쳤다. 예쁘다는 우화궁 현판은 그래도 사진으로 담았다.

 

 

 

 

극락전 뒤편 개울가에 있는 청한당이다. 저런 절집에서 하룻밤 보내고 싶다.

 

 

 

"1천 년의 연륜을 갖고 있는 고찰에는 반드시 그 절집의 간판스타가 있게 마련인데 무량사의 주인공은 단연코 매월당 김시습(1435~93)입니다. 저 앞쪽 우화궁 위로 보이는 건물이 김시습 영정을 모신 영산전입니다. 생육신의 한 분인 김시습은 방랑 끝에 말년을 여기서 보내고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습니다....:(204쪽)

 

<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일대기나 인간상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일이 없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맹점이다.'라는 유홍준 교수의 안타까움에 공감하며 책에서 언급한 김시습 관련 책을 찾아본다.

 

 

 

 

 

 

 

 

 

 

 

 

 

 

 

 

 

 

 

 

 

 

 

 

 

 

 

 

 

우리가 모르는 게, 어설프게 배운 게, 어디 김시습 뿐이랴. 이 책 206쪽~208쪽에 쓰인 김시습의 짧은 일대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시대를 보냈는지 먹먹하게 다가온다.

 

김시습의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청한자, '세상에 쓸모없는 늙은이'라는 뜻의 췌세옹(贅世翁) 등이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늙은이'...옛사람들은 참으로 겸손도 하시지. '췌세옹'이란 말 듣기 싫어서 난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블로그질을 한다만.

 

 

 

 

 

드디어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불상(?)을 발견했다. 누가 쌓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절묘하다. 발견의 기쁨이라면 과할까? ㅎㅎㅎ

 

 

 

 

'부여 반교마을 옛담장'이라고 들어는보셨는가? 마치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돌담이 있는 마을인데 바로 유홍준 교수의 세컨드하우스(?)가 있는 마을이다. 무량사에서 가까운 곳이라 들렀다. 허락없이 찾아간 곳이라 되도록 사진은 얌전하게 찍으려 했다.

 

 

 

 

 

 

 

전망이 확 트인 곳을 좋아하는 남편은 위치가 좀 그렇다는데, 내가 보기엔 산 속에 아니 동네 속에 숨은 절집 같아서 좋았다. '휴휴당'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집이다.

 

 

<산사 순례>를 괜히 샀나보다. 또 다녀야되니....

 

 

이런, 정작 중요한 한마디를 빠트렸다. 이 절집은 말 그대로 '절집' 의 모범 같았다. 우선 기념품 따위 파는 가게가 없어 어수선하지 않았다. 산을 둘러싼 분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품도 넉넉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았다. 바로 이 맛이야, 할 때의 바로 이 맛을 내는 절집이다. 남편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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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에 태극기를 꼭 게양해야 하나? 귀찮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부모님 슬하에 있었을 때, 30여 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국경일만 되면 이른 아침부터 우리 자식들을 들볶으셨다.

 

"빨리 태극기 달아라."

 

해가 지면 아버지의 성화가 다시 이어진다.

 

"태극기 걷어들여라."

 

아버지의 성화는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 되었지만 국경일이 되면 우리 자식들은 한번도 스스로 태극기를 게양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늘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버지의 태극기에 대한 지극정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독립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태극기 게양에서 해방되었다. 국경일이 돌아오면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나 놀 궁리만 했지 태극기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늘도 국경일이라고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국기를 게양했다. 국기함에 고이 모셔둔 태극기를 꺼내서 정성껏 게양하는 모습이 흡사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뵙는 것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아버지와 달리 남편은 가족 누구에게도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국기를 달았다.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문자며 다시 기념일이 된 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며.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신 것 같은 기분...아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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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체공개했다가 비공개로 돌렸는데, 다시 전체공개를 한다. 마음 바뀌면 다시 비공개로 돌릴지 모른다. 사적인 얘기여서 조심스러운데 낙태죄에 대해 한마디쯤 하고 싶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내게는 직장, 결혼이야말로 일말의 공짜도 허용되지 않는 견고한 철옹성 같은 벽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나도 소위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 진입해서 늦은 나이에 출산도 했다. 서른 초반의 직장, 서른 중반의 결혼. 요즘은 이런 게 대세라서 별로 얘깃거리가 되지 않지만 내가 20대를 보냈던 80년대엔 흔치 않은 경우였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도 모르게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아이를 낳았으나 나는 아이를 키워보지 못했다.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즈음에야 아이와 함께 시어머니께서 우리집으로 오셔서 함께 살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우리 아이를 키워주시겠다고 하셨다. 기왕 키워주는 것이니 둘째도 낳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이 전혀 고맙게 들리지 않았다. 시댁 식구중에는 이런 말을 서슴지 않는 분도 있었다."애 하나 더 낳아. 두 사람이 맞벌이하니까 한 사람이 버는 건 애 키워주시는 시부모님 생활비로 쓰면 되겠네." 내가 애 낳으려고 결혼했나. 시부모님 부양하려고 결혼했나.

 

42살에 어쩌다 임신이 되었다. 재고의 여지도 없이 애를 지웠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남편에게조차. 나는 결혼 전부터 나름대로 가족계획을 하고 있었다. 자식을 낳는다면 딸 하나만을 낳으리라고. 그리고 그걸 이루었으나, 애를 낳아서 키워보지도 못하고 돈 벌어 시부모 봉양하고...이게 결혼이냐는 회의감만 깊어졌다. 

 

어느 토요일에 낙태 수술을 받았다. 물론 혼자 갔다. 수술대에 누운 나를 보고 어린 간호사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애기가 불쌍해요."를 남발했다. '이런 잡것들' 이라는 욕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한편 내가 죄를 짓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되돌릴 생각같은 걸 할 내가 아니었다. 의사도 그랬다. '자궁외 임신이라 어차피 낳지 못할 아이입니다.'라고.

 

토요일에 수술을 하고 다음날인 일요일엔 교재연구를 위해 시내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구입해왔다. 다음날인 월요일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는데 몸이 너무나 아팠다. 오후 수업을 몰아서 오전에 해치우고 조퇴를 신청했다. 그 당시 근무한 학교는 신설 학교라서 소수의 교사가 많은 업무를 맡고 있는 상황이라서 누구에게 부탁할 처지도 아니었다. 병가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월요일 오후에 몸을 추스르고 어김없이 화요일에 출근했다. 서러웠다.

 

 

낙태는 임신을 한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해도 결정권은 임신한 사람에게 있다.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는 어린 소녀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는 참 잔인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녀는 얼마나 무섭고 서러웠을까? 여자를 이렇게 대접하는 나라에서 저출산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자식을 몇 년간 돌봐주신 시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은 시어머니가 생존하시는 한 평생동안 지속된다. 내가 그렇다. 그나마 아이가 하나였으니 망정이지 둘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있을 수 없는 얘기지만, 만약 내가 다시 아이를 낳는다면 내 손으로 오롯이 아이를 키우고 싶다. 아이가 크는 과정을 오롯이 함께 하고 싶다.

 

 

낙태죄 운운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코웃음만 나온다. 도대체 낙태가 죄가 되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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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1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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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1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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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a 2018-10-07 22:12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낙태와 임신 중단이 어떻게 다른가요?
결국 뱃속의 태아를 없애는 건 똑같은 사실인데 표현을 다르게 한다고 사실이 달라지나요? 임산부를 존중하는 표현이 임신 중단이겠지만 낙태라는 씁쓰름한 죄의식이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없거든요.

2018-10-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2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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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나라 2018-10-0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죄의식을 느끼기엔 여성인 ‘나‘의 현실이 더 씁쓰름하지요. 현재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할 때 낙태 문제는 오롯이 해당 ‘여성‘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nama 2018-10-08 14:1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나의 현실이 씁쓰름하니까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낙태 문제를 여성의 판단에 맡기지 못한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으면서 역시 씁쓰름합니다.

2018-10-08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2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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