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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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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지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더 이상 실망할 것도 필요이상 희망을 품을 것도 없다는 것을 의식의 저변에 깔고 있었는데, 이 무력하고 패배의식에 길들여져 온 타성적인 삶에 이 책은 일격을 가한다. 세상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내서 그 속에 교활하고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온갖 자본주의적인 폐해의 실상을 샅샅히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나 내가,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니...몇 가지 통계치를 인용해보는데, 이것은 내가 두고두고 참고하여, 어리숙하고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나 자신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1.오늘날 지구상에는 18억이 넘는 인구가 하루에 1달러도 안 되는 수입에 의존해 극도의 빈곤 숙에서 살고 있다. 반면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인구는 가장 가난한 사람 57퍼센트의 수입을 모두 합한 것과 같은 액수의 돈을 번다. 

2.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1,200만 명에 달하며, 이들은 대부분 남반구에 밀집해서 살고 있다. 

3.오늘날 전 세계에서 남녀 구별 없이 근로자 35명 중 한 명은 남의 나라로 떠난 이민 노동자다. 

4.유엔 회원국191개국 중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15세 미만의 어린이는 무려 1억 1,300만 명에 달한다. 이중에서 62퍼센트는 여자어린이다. 

5.현재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 또는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6.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49개국의 경우, 30퍼센트의 영유아가 철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 아이들은 평생 정신 장애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7.해마다 약60만 명의 여성이 임신 기간 중에 심각한 철분 부족으로 목숨을 잃는다. 출산 중에 죽는 산모들의 20퍼센트는 철분 부족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8."나는 말라위에 가서 HIV 바이러스를 지니고 사는 한 무리의 여성들을 만났다....그들에게도 무엇을 최우선이라고 여기는지 물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분명하게 대답했다. 먹을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보살핌도, 치료를 위한 약품도, 격리 수용이 아닌 다른 방책도 다 필요 없고 오로지 음식이 필요하다고 그네들은 입을 모았다." 

9.500개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축적한 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133개국의 부를 모두 합한 것보다 크다. 

10.매일 10세 미만의 어린이 9천 명이 식수로 적합하지 않은 물을 마신 탓에 목숨을 잃는다.  

   썩을 대로 썩고 곪을 대로 곪은 이 세계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은 무척 가슴 아프고 불편하고 거북하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 '신흥 봉건 제후'들. 떡 주무르듯 세상을 주무르고 있는 그들의 파렴치와 악랄함으로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무력하게 죽어가고 있다. "더 이상 나빠지려고 해야 나빠질 것도 없는' 세계를 향해 장 지글러는 '연대"에서 희망을 찾고 약육강식 체제를 파괴시키는 일이 세계 시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라면서 분연히 일어나 이런 세계를 전복시키라고 한다.   

   "우리는 정부를 구성하고 있을 뿐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통령 한 사람이나 의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중들이 나서야 한다." '흡혈귀 같은 외국 자본에 맞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민중이 중심이 된 민주적인 사회단체들의 단결과 결단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힘주어 말하는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말이다. 

   "여론은 무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무지는 독재를 부추긴다" 

   "브라질 인구의 절반은 배가 고파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머지 절반도 배고픈 절반이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무지는 배가 고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죄악이다. 깨어있기 위해, 이 세계를 똑바로 보기 위해 이 책이 아주 널리널리 읽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은 부질없는 짓이다. 제 아무리 잘 쓴 서평도 이 책 한 쪽을 직접 읽는 것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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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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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별 주저없이 그리고 막힘없이 술술 써내려갔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선 읽기가 시원하다. 이 책의 핵심인 치유로서의 글쓰기를 잘 파악할 수 있음은 물론 여러 가지 글쓰기의 방법도 제시하고 있어 실용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간간이 소개하고 있는 여러 가지들, 예를 들면 융의 '동시성의 원리'-외부 사건과 인간의 내면이 우연히 일치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를테면 오래 만나지 않던 친구가 생각났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 같은 것-부분을 읽고는 이 책의 전체 흐름과는 별도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또 하나.독수리를 길들여 늑대나 여우등의 맹수를 사냥하는  카자흐족의 베르쿠치 이야기-이 베르쿠치가 한 마리의 독수리를 길들이고 훈련시키는 기간은 6개월이며 10여 년을 그 독수리와 살아가다가 시간이 흐르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높은 산에 올라가 자기 손 위에 앉은 독수리에게 몇 번씩 반복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그동안 너로 인해 잘 살아왔으며 이제 우리가 헤어질 때가 왔다" 그러면서 눈물을 닦으며 오랜 친구인 독수리를 떠나보낸다는 내용-부분을 읽다가는 사념이 일어나 잠시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지만 이 책은 여러모로 읽을 만하다.

   허나 이 책을 읽기는 쉬워도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쉽지 않다. 우선 글쓰기에 대한 고정관념 내지는 통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글쓰기라. 오정희의 소설이나 윤후명의 소설을 교재 삼아 보내던 한 시절 이후로, 글 따로 삶 따로인 일상을 빠듯하게 보내면서 글과는 소원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기껏 여행기나 끄적거리거나 아이들 성적통지표에 마지못해 몇 자 끄적이는 가정통신문 정도라니. 아이들과도 따뜻한 편지 한 통 나누지 못하는 사무적인 관계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그래서 이 책의 페이지마다 예시되어 있는 글을 읽다보면 어느 새 나도 그들처럼 내 속에 응어리지고 막혀있는 여러 무의식이나 원망 등의 숨어있는 것들이 꿈틀대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극적이고 나를 돌아보라고 끈질기게 채근한다. 그리고는 그 속을 드러내고 풀어버리고 용서하여 '온전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기분'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다.  

   p.215  ...자신의 가치란, 바로 지금부터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하며, 그 가치를 향한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안도감과 편안함, 그리고 삶의 의욕을 느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방법인 이 치유의 글쓰기는 내게는 따뜻한 글쓰기이며 해방의 글쓰기와 다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자신의 억압된 세계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이 책에 부록으로 실려있는 <치유하는 글쓰기에 도움 되는 책들> 이 모두 한핏줄 도서가 되겠는데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특별한 대상이 필요할까. 누구나 속으로 쌓인 게 있을텐데.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발설의 대상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부모님이다.성장한 자식이 부모에게 자신이 겪은 과거의 경험에 대해 원망하는 말을 할 때는 부모가 너무 아파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부모의 원죄의식은 너무 깊기 때문에 방어의 기세도 드세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구나,라고 인정하는 부모를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부모였다면 자식이 원망하기 전에 이미 사과하고 반성했을 것이다. 울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려 하거나 '그게 아니라...'로 시작하는 변명을 하려고 한다면 그나마 괜찮은 부모님이다. 대부분은 "기껏 힘들게 키웠더니 이제 와서 자식이 나를 괴롭히려 한다"고 소리 지르며 화를 낸다. 결국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야'식의 좌절감을 겪는 선에서 상황은 종결된다. 부모도 미숙한 상태이고, 자식 역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p.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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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살라 인디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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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백 권을 읽는다고 한다. 누군가는 말하기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관한 책을 1,000권정도 읽는다고 한다. 그러나 백 권을 읽지 않아도 전문가가 아니어도 한번쯤 욕심내서 쓰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그건 인도에 관한 책일 것이다. 단 며칠 동안이라도 인도라는 땅을 밟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도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기는 지를. 그래서 인도에 관한 책은 무지 많다. 끝이 없는 이야기처럼 인도에 관한 책은 끊임없이 세상에 쏟아져나오고 있다.

  인도 관련 서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보면, 하나는 새로 배우거나 경험하여 알게 된 것을 방금 쓴 아마추어의 따끈따끈한 책과, 또 하나는 이미 충분히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을 풀어서 차분하게 쓴 전문가의 숙성된 책으로 구분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척 거친 분류법이긴 하지만.

 이 책은 그중에 따끈따끈한 책에 속할 것이다.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저자의 2년 간의 인도 경험에서 나온 책으로  인도의 경제에 관한 것을 위주로 기타 인도의 문화, 종교,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인도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의 활약상이나, 인도에서 사업에 관심을 둔 사람들을 위한 인도에서의 부동산 매입 절차 같은 부분이나, 올림픽 유치에 관한 일화등은 매우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저자의 하는 일과 관련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직함이 문화홍보관이라던가, 그래서인지 홍보용 기사같은 부분이 종종 나오는데 반감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군더더기 같아 재미있는 건 아니다.

  그 외에 인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뭐랄까,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을 누군가에 털어놓고 싶은 충동 같은 게 부분 부분 읽혀진다. 그러나 대체로 이 책은 재미있는 일화 소개와 지루하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은 꼭 짚어주기도해서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인도입문서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특히 기존의 여러 여행기와는 달리 적재적소에 소개된 각종 통계 숫자와 분석은 인도를 이해하는데 적절한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족을 붙이자면, 탈자나 오자가 여러 군데 눈에 거슬린다. 인도의 인구가 11억과 12억 사이를 오가며 바라나시가 바라나 시로 씌여진 부분도 있다. 이런 자그마한 실수가 이 책의 내용을 더 거칠게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인도를 개괄적으로 소개한 점과 인도의 경제 관련 각종 객관적 수치가 참고할 만하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인도는 무엇으로 사는가>(by 이광수),<내가 알고싶은 인도>(by 백좌흠), 이옥순,이거룡,임헌갑,임현담,강석경,류경희,법정스님 등의 인도 관련 도서 (http://blog.aladin.co.kr/nama/1638093)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인도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 인도 관련 직업을 갖고자 하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p.97)한국은 보통 대학에서부터 주관식으로 답안을 작성하지만 인도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영어로 작문 시험을 본다. 대학에서도 한국 학생들이 보통 3장내지 5장 정도로 답안을 작성하는 것에 비해, 인도 학생들은 기본이 수십장이고 이를 대부분 영어로 작성한다.이는 우리나라의 주입식 객관식 위주의 교육과 확연히 대비되는 것이다.(평소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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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한 3개월 해금을 배웠다. 어렸을 때는, 내 세대가 어디 그 흔해빠진 피아노 한 번 배워볼 세대였던가. 내 친구 중에 어려서 피아노 배운 친구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것은 우리 세대의 평균치라는 것, 그래서 창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는 것. 그런데도 그게 은근히 나를 열등감에 젖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게 작용했을 터이다. 내가 해금을 배우게 된 게. 또 하나의 이유는, 이건 분명한 이유인데, 여행 다닐 때 해금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인도의 우다이푸르의 어느 게스트하우스. 밤이면 여행자들이 끼리끼리 모여 옥상에서 작은 연주회를 갖는데 나는 그 "끼리끼리"에 낄 수 없다는 단절감 내지는 절망감에 왜 그렇게 쓸쓸하고 허망한지 나는 그 순간 악기를 꼭 배우리라 마음 먹게 되었는데 그 이후 내가 생각해낸 악기가 해금이었다. 우선 부피가 작으니 배낭 옆에 끼고 다니기에도 좋고 우리 악기니까 다른 나라 여행자의 시선도 끌 수 있을테고 줄도 두 줄이니 내가 열심히만 연습하면 섭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여러모로 좋은 점만 열심히 끌어댔다. 그래서 결국은 배워봤는데....결과는 ...이미 예상하고 시작은 했지만...참혹하다. 음악성 제로, 악착같은 끈질김 제로.

그러다 김훈의 <바다의 기별>을 읽다가 해금 이야기가 나오길래 다시 해금을 켜 볼 생각을 하는 중이다.

p.60. 해금은 놀라운 악기다. 해금의 음색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의 몸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국악기는 양악기에 비해 훨씬 더 진하게 연주자의 몸을 느끼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해금이 풍기는 육체의 질감은 가장 깊고 진하다. 해금의 음색이 매우 비논리적으로 들리는 까닭은 이 육체의 질감 때문일 것이다.

p.111. 내 몽상 속에서, 오치균의 화폭에서는 해금의 음색과 선율이 들려온다....모든 현악기 중에서 해금은 인간의 육체에 가장 가깝고, 육체의 떨림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해금 연주자는 손아귀로 줄을 쥘 때 소리의 진동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몸의 리듬으로 소리를 통제한다. 그래서 해금에서는 몸의 소리, 몸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가 나온다...해금의 소리는 논리적이지 않고 아정하지 않지만,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로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손가락으로 주물러서 칠하는 오치균의 색은 시간과 뒤섞이고 시간 위에 올라타서 화폭 위를 흘러가는 것이다.몸이 그 색들을 이끌고 간다.....

이 부분을 읽어나가다가 나는 엉뚱하게도 음식을 손으로 먹던 인도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밥을 손으로 떠 넘길 때에도 분명 어떤 떨림이 있었으니...

p.133. 더 나이를 먹고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 나는 이 <난중일기>와 이순신이 처한 절망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겠구나,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들을 느꼈죠.

나도,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을 간절히 꿈꾸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몸을 또 한 번 부르르 떨었다. 해금의 떨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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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러독스] 서평을 보내주세요.
타임 패러독스 -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미디어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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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뻔한 거다. 과거에 너무 연연하여 자책이나 열패감에 시달리지 말 일이며,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하다가 현재의 즐거움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그렇다고 현재에 너무 탐닉하다가 아까운 미래를 생각지 못하면 그대의 인생은 허사가 될 터이니 부디 올바른 시간관을 갖고 험한 인생을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라는 것이다. 새로울 것도, 흥미진진한 얘기도 물론 아닌 이런 이야기를 장장 425쪽에 걸쳐 풀어 놓고 있다. 시간에 대한 대단한 수다다.

그런데 이 책이 묘한 게, 그래도 이 책이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이다. 밑줄긋기 겸 간지(포스트잇)을 붙여놓은 곳이 열 곳이 넘는다. 온 몸으로는 느끼고 있으나 적당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것을 콕 콕 짚어서 논리적으로 풀어 주기도 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어느 나라의 지도자를 또 얼마나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지, 위대한 리더들의 카리스마에 숨겨진 흡인력의 핵심,이슬람과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시간관으로 풀이하기도하고, 심지어 인생의 황혼기에 의탁하게 될 양로원을 선택하게 될 때 고려해야할 점 등 나이 지긋한 두 학자가 시간관으로 푸는 인생관, 세계관이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특히 시간관과 성적과의 관계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지도하는 데도 참고가 될 만한데,

(p.169)숙명론적 성향을 가진 학생들이 가장 낮은 성적을 받았고 쾌락적 성향을 가지 학생들이 그 다음으로 낮은 성적을 받았다. 미래지향적인 학생들은 최상위권에 포진해있었다. 일반적으로 현재지향적인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에서 더 나은 성적을 받았다. 미래지향적인 학생의 경우 과목에 대한 호불호는 점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늘도 지극히 현재지향적인 학생들의 생기발랄, 기운남발, 객기충천, 안하무인, 사방도약의 기운과  또 지극히 미래지향적으로 길들여져온 교사들의 섞일 수 없는 이중적인 세계관의 충돌로 학교 사회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아이들에게 시간의 균형감각을 키워주고 자신의 세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가도록 지도한다.....? 그렇게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미래지향적이 된다면...? 건전가요같은 세상이라....(책은 지루하지 않은데 그 책을 읽은 나는 지루해져간다.)

(p.353)...비신사적인 수법을 사용하게 되면 현재지향성이 더욱 강화되어 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미래의 부정적인 결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문화에서는 팀플레이를 하지 않는 사람은 따돌림을 당하거나 밀려난다...(p356) 단기적인 관점을 지니고서는 건강한 기업과 안정적인 국가 경제를 수립해 장기적인 이익을 얻는 일이 불가능하다...탐욕에 사로잡힌 자본주의는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며 다른 모든 사람과 환경을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다룬다...사업과 정치에서 현재지향성과 미래지향성의 불균형은 재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p.133 ) 정부나 제도, 가족의 미래 가능성을 믿지 못할수록 사람들은 미래를 보지 않고 현재에만 집중하게 되며, 세상은 우연이나 가능성이 아닌 흑백논리로 가득 찬 곳이 된다.

한 가지를 파고들다보면 세상이 보이나보다. 그들의 시간관이 우리 사회를 여지없이 설명해주고있다.

이 책을 계속 읽다보면 내가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앞으로 내 인생에서 시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를 또 꼼꼼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여느 자기계발서가 그렇듯이 읽을 때는 맞장구치다가 다 읽고나면 당연한 얘기를 시간들여 힘들게 읽었다는 허무감에 젖어들 듯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나니 살짝 허무해지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내게는 이 책이 시간에 관한 자기계발서로 읽힌다) 아니면 이 책에 자극을 받고 내 사고와 행동수정의 지침으로 삼기에 나는 이미 늙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얼마 전 읽은 법정 스님의 책에 일본 작가의 책을 소개한 부분이 있는데, 다음은 멋지게 늙어가는 방법이란다. 425쪽의 이 <타임 패러독스>를 단 몇 줄로 줄여놓은 듯 간결하다. 참고하시길..

1)늘 인생의 결재를 해 둘 것. 2) 푸념하지 말 것. 3)젊음을 시기하지 말고 진짜 삶을 누릴 것. 4)남이 주는 것, 해 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릴 것.5)쓸데없이 참견하지 말 것.6)지나간 이야기는 정도껏 할 것. 7)홀로 서고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기를 것. 8)몸이 힘들어지면 가족에 기대지 말고 직업적으로 도와줄 사람을 택할 것.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시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아이러니겠지만, 정작 시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봐야할 현재지향적인 사람들이 이 책을 봐야겠지만, 그들은 너무나 현재지향적이라 이런 책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미래지향적이고 준비성 강하고 용의주도한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고 더한층 미래지향적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느긋한 시간 감각은 그 자체가 부의 한 형태다.(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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