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찡그리거나 궁금해하거나 단정짓는다.

내 염색하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을 두고.

 

팔순이신 우리 이모 같은 분들은 찡그리며 나무란다.

젊은 것이 멋도 낼지 모른다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흰머리는 염색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빨강색으로 물들여보면 어떻겠느냐고.

 

산책 중에 만나는 이름 모를 이웃들은

아무도 나를 선생으로 생각지 않는다, 고맙게도.

학교에 근무하다고 하면 으레 급식실이나 청소아줌마로 단정짓는다.

매일 점심을 맛있게 만들어주시는 급식실 아주머니와

늘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시는 청소아주머니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다.

 

한 신입생이 나를 사이에 두고

제 친구에게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샘이 머리염색하지 않는 이유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래."

 

염색의 폐해를 논하며 잠시 환경을 보호하는 척했는데

아이들은 이런 말을 참 잘도 기억한다.

 

이제는 싫건 좋건 환경보호론자로 남는 수밖에.

 

염색을 할까, 말까, 하는 쓰잘데 없는 고민보다

아이들에게 궁금증을 품게 하는 게 낫겠다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서관 서가에 꽂힌 여러 권의 시집 중 백무산의 <그 모든 가장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백무산의 시는, 솔직히 불편하다. 속물근성 내지는 적당주의, 타협, 소시민성 같은 것들을 마구 지적해내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한권의 시집을 읽는다고 달라질 리도 없으니 더욱 한심하긴한데, 그래도 시 한편 읽는 동안만큼은 깨어있고 싶다.

 

 

 

 

 

 

  < 감  수  성 >     

                                 백 무 산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전재산

십억이 넘는 돈을 모교인 국립서울대학교에 기부하고 갔습니다

살아 계실 때 온화한 모습 그대로

 

얼마 뒤 부산 사는 진순자(73) 할머니는 군밤장사 야채장사

파출부 일을 하며 평생 모은 일억 팔백만원을 아프리카 최빈국

우간다  굶주려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에게 보냈습니다

"우리도 옛날에 원조 받아 공부도 하고 학용품도 사고 그랬단다

우간다 아이들아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당부도 담아서

 

농사짓고 공장 일 하는 사람들의 공부 모임에서

시를 공부하다 나온 얘기였는데

누가 내게 물었습니다

둘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나는 계급성이라고 말하려다

감수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계급성 감수성이라고 말하려다

생명의 감수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수성은 윤리적인 거라고 말하려다

제길, 감수성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염치라고 말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과 음풍농월하는 두 분의 글에 흠뻑 젖은 시간, 신선놀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몇번 벼르다가 드디어 명재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 다녀와서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서야 명재고택이 매우 유명하고 유서 깊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찍어 온 사진보다도 훨씬 잘 찍은 사진들이 많다는 것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 조금만 수고를 하면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이라 내 어눌한 설명이 오히려 어줍잖다. 사진만 몇장 올린다.

 

 

 

장독대 뒤로 보이는 집이 명재고택이다. 사실 나는 집보다 항아리 속이 궁금했으나 열어보진 않았다.

 

 

 

 사랑스러운 사랑채.

 

 

 

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풍경이 액자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일본 교토에서도 이러한 액자 속 풍경을 감상하는 절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일본은 잘 꾸며놓은 인공적인 정원을 감상하기에 정원가꾸기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데 반해, 이곳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감상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폐쇄적이라면 우리는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달리 생각해보면 이렇게 높은 곳에서 온동네를 내려다본다는 건 일종의 감시 기능도 담당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아래 사진은 교토에서 버스로 1시간 떨어진 오하라의 <호센인>에서 찍었다. 액자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랑채 누마루 앞에 있는 금강산 모형의 석림. 일본의 가레산스이식 정원이 떠오른다. 가레산스이는  모래와 바위 등으로 바다와 섬 같은 현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는 정원양식이다. 소꿉장난 같은 이런 모형 감상은 한국과 일본 누가 원조일까?

 

(아래 사진은 일본 교토의 료안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전형적인 가레산스이식 정원이다.)

 

 

 

(아래 사진은 료안지 근처의 여느 가정집)

 

 

 

 

 사랑채 누마루 내부. 정면에 보이는 하얀문 뒤에 방이 붙어 있는데 그 내부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곳에서 "너는 평생 책만 읽어라."라는 팔자 좋은 형벌(?)이 내게 떨어진다면 평생 달게 받으련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작은 사랑채방. 8만원의 하루 숙박비가 아깝지 않은 곳.

 

 

 

우리가  묵었던 사랑방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달밤에 저 앞쪽으로 보이는 400년 넘은 고목 사이로 떠오르는 달을 감상하면 절경이라는데 초저녁부터 이 지역의 특산막걸리인 <뻑뻑주>를 마시고 자느냐고 달구경을 못했다. 고상하고 우아해지려면 아직 멀었다. 뻑뻑주맛? 이름만큼 뻑뻑하진 않고 탄산음료처럼 가볍고 상큼하다.

 

 

 

 

안채의 뒤란 풍경. 저만한 장독대를 옆에 끼고 살아보는 게 내 꿈이라면 꿈.

 

 

 

딸아이가 묻는다, 고르바초프가 누구냐고. "응? 있어. 아주 유~~명한 사람."  사랑채엔 주인되시는 종손분과 고현정이 함께 찍은 사진도 액자에 걸려있다.

 

 

사진은 그렇고.....점심을 먹기 위해 논산 화지중앙시장이란 곳을 찾아갔다. 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으나 밥 먹을 곳은 마땅치 않았다. 식당을 겨우 찾으면 문이 닫혀있기 일쑤였는데, 하여튼 구석에 보리밥집이 하나 있어서 쭈뼛거리며 들어갔다. 출입문을 열자 할아버지 서너분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셨고 우리는 미처 치우지 못한 식탁에 플라스틱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3,000원을 넘지 않는 메뉴 중에서 2,500원짜리 백반을 주문해서 먹었다. 찰기 없는 밥 한공기와 삭기 시작한 배추김치, 알타리무김치, 고춧잎장아찌, 콩나물, 토종된장국이 나왔다. 배도 고팠지만 밥을 절대로 남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박하고 절절한 기운이 들어간 밥상이어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이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왠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젊은 것들이 앉아서 밥을 받아 먹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할머니 세 분이 2~3분의 시차를 두고 들어오셨다.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두 분, 장보러 나오신 할머니 한 분. 늦게 오신 분은 다른 분들의 식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드시면 되었다.

 

계산을 치르고 있는데 할머니들 얘기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할머니, 김밥 같은 거 잡수시지 마시고 이런 밥을 드세요. 김밥은 금방 꺼져요."

 

식당을 나서니 금방 배고파지기 시작했다. 과일, 시루떡, 약식, 빵과 쿠키 등을 한아름 사들고 명재고택으로 향했다. 2,500원이 아까워 1,000원짜리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시는 할머니에 대한 안쓰러움과 더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하지 말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나친 자아도취, 독설, 모순,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통쾌하고 힘있는 도올의 글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특히 한국기독교문화 비판, 음식에 대한 단호한 글을 마음에 새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