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 읽는다면 생소한 곳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있다. 부제가 <고대 힌두교 조각과 건축이야기>로 남인도 일대에 널리 분포한 고대 힌두교, 자이나교 유적지를 답사한 기록이다. 가장 유명한 엘로라 석굴과 아잔타 석굴을 제외한 것도 마음에 든다. 이 두 석굴에 대한 자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나 책이 좀 딱딱하고 설명이 요령부득이다. 말랑말랑한 여행기라기보다는 건조한 답사기라고 해야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온 부분이 있다. 폰디체리의 오로빌공동체에 관한 내용이다. 정보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들 공동체가 운영하는 해변의 게스트하우스는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여행객 사이에 인기가 좋다. 한국돈 만 원 정도면 숙소가 제공되는데 규율이 엄격해 술이나 담배가 금지되고 수련에 방해되는 잡담도 금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제공되는 자연 식단과 깨끗한 정원은 훌륭한 호텔로도 손색이 없다. 아침마다 야자 숲 사이로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고 밤에는 밀려드는 파도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 곳이다. 이곳 투숙객들은 매우 친절하여 낯선 여행객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고 종일 명상과 요가 수련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63쪽)

 

 

 

별 특징이나 개성이 없는 사람을 설명할 때의 '대략난감'한 느낌처럼 책중에도 그런 책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바다미'라는 곳을 알게 되어 고맙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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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중심 내용.

 

'인도인은 아름답게 꾸미는 행동을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 해탈의 한 과정으로 여겼다. 즉 몸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영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숭배하는 신과 여신의 그림과 신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여러 가지 장신구를 달아 장식하는 전통이 이어졌다....태초부터 인도인은 이렇게 꾸미는 걸 좋아했다.'

 

인도인들이 몸에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그들이 숭배하는 신상을 꾸미는 일련의 행동들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설명이 가득하다. 그들이 선호하는 긴 검은 머리, 금은 장신구, 문학 속의 여성, 온갖 신상...허나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내 관심은 오늘날에도 여성의 삶을 옥죄고 있는 여성관인데 이게 전통이라는 미명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지금도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 지이다.

 

이 책에 소개된 힌디 여성의 이상형 3인방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화가 난다. 왜 화가 나는지 보시라.

 

'힌두 여성의 이상형인 시타, 사티, 사비트리는 정절을 지키고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공통점을 가졌다. 여필종부의 시타, 남편을 따라 죽은 사티, 남편을 죽음에서 구한 사비트리 삼총사가 보여준 정절, 자기희생, 헌신은 인도 여성이 닮고 지켜야 할 덕목으로 칭송되었다. 아름다운 여신의 대명사이자 부의 여신 략슈미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여인은 개나 물어가라고 악담을 했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오늘날의 인도 영화에도 정숙하고 순종적인 여성이 이상형이다.'

 

1. 시타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는 동남아 일대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곳엔 어김없이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라마야나>의 줄거리는, '시타는 남편 라마가 숲으로 귀양을 가자 호화로운 궁정행활을 마다하고 남편을 따라가 14년을 보냈다. 어느 날 악마의 화신 라바나는 시타의 외적 아름다움에 한눈에 반해 그를 멀리 자기가 사는 곳 스리랑카로 납치한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인 라마에게 돌아오는데, '라마는 라바나의 왕국에서 무사히 돌아온 시타에게 라바나에게 몸을 더럽히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백설 같은 과거를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시타는 남편의 명예를 지키고 자신의 성적 순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불의 심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결국 남편을 떠나 홀로 죽는다.'

 

 

2. 사티

'신화에 따르면, 사티는 브라마 신의 아들인 다크샤의 딸이었다. 사티는 친정아버지가 남편인 시바를 희생 제사에 부르지 않고 다른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었다고 분개한다. 사티는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 제사의 불에 뛰어들어 자신의 몸을 태워버린다. 나쁜 딸이지만 남편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는 좋은 아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사티처럼 죽은 남편의 화장더미에 몸을 던져 함께 타 죽은 힌두 여인과 그 관습을 사티라고 부르게 되었다.'

 

 

3. 사비트리

'좋은 조건과 능력을 갖춘 여러 남자들의 청혼을 물리친 어여쁜 사비트리 공주는 숲에서 부모를 모시고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왕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러나 왕자는 1년 안에 죽을 처지였다. 그런데도 숲에서 귀양중인 남자와 결혼을 강행한다. 사비트리는 궁정의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눈 먼 시아버지를 봉양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이상적인 며느리와 아내의 전형을 보여준다. 1년이 가고 남편이 죽을 때가 되자 사비트리는 남편의 머리를 자기 무릎에 눕히고 남편을 따라 죽기로 결심한다. 공주는 염라대왕에게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저승으로 끌려가는 남편을 따라간다. 염라대왕은 사비트리에게 "남편을 정성껏 모셨으니 이승에서 더 살다오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따르는 것이 아내의 도리라면서 "남편이 없으면 나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고 대답한다. 사비트리는 헌신과 지혜, 아름다운 말씨로 염라대왕을 감화시켜 남편을 죽음에서 구하고 아이까지 점지를 받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이 글의 따옴표는 이 책에서 발췌했다는 표시임.)

 

 

'여성을 독립운동과  사회에 참여하도록 고무한 간디도 여성에게 시타와 사비트리를 따르라'고 권고했다나.....'오늘도 대다수 인도인은 시타나 사비트리처럼 상냥하고 순종적이며 자기희생적인 여성을 이상으로 여긴'다나..... 대한민국도 살아내기 퍽퍽한 곳이지만 그래도 인도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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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6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6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

 

 

몇년 째 이 문장 하나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다. 구겨지고, 비뚤어지고, 막 나가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는 문장이다. 그간 직업적인 양심을 생각하고 노력했다면 전적으로 이 문장 덕이다.

 

이 문장이 쓰인 원문을 드디어 찾았다. 늘 궁금했었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시집 속의 시들은 소박하게 읽혔다. 무엇보다도 시인의 풋풋함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수수한 생머리의 화장기 없는 얼굴 같은 모습이다. 전문을 옮긴다.

 

 

     한 그릇의 밥

 

                                    나 희 덕

 

집에 돌아와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지금쯤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지쳐

진밥처럼 풀이 죽은 아이들,

희고 고운 얼굴들이 형광등에 빛 바래고

조용히 밥 그릇에 담겨

귀가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

빈 자리 몇 개, 누가 도망갔느냐고

욱박지르며 묻고 돌아서면

-몇 시간 일찍 간 게 왜 도망입니까

-무단외출 했다고 무기정학입니까

말없이 대답하는 눈동자들.

오늘은 가출한 두 아이를 찾아나섰다

어두운 레스또랑 구석, 오락실, 만화가게,

미성년자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여관 골목들을 찾아다녔지만

거리 거리 찬바람만 불어오는 저녁

두 아이를 담고 있는 그릇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

더러는 발밑에 떨어진 것도 주워담아

제 입에 넣고 맛있게 씹을 일이다

내일이라도 두 아이가 돌아온다면

밥보다 반가운 아이들,

덥석 껴안고 감사의 눈물이라도 흘릴 것이다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을 받은 것처럼 

 

 

       소 원                

                               나 희 덕 

 

네가 아들 몫을 하려면 법대에 가라,

힘없는 아버지의 힘준 목소리가

전봇대 위의 붙박이별처럼 빛나던 시절

저는 글을 쓰겠어요,

그때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너도 이제 졸업반인데 살 궁리를 해야지,

남들은 외국어학원이다 자격증이다 난리인데

밤늦게 쏘다닌다고 꾸중만 듣던 제가

아버지에 대한 시를 써서 문학상을 받던 날

그 시를 읽으시고 한참 생각에 잠기시던 아버지.

 

포탄이 남기고 간 기억 속에 평생 잠기어 사신 아버지,

총살당한 할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오던 날

멀찌감치 미루나무에 기대어 울기만 하셨다지요.

낯선 따에 내려와서도 몇번의 실패를 겪고

자식만은 결코, 마지막 밧줄처럼 잡고 계셨지만

새가 날아가듯 그 기대와 욕심도 기울어갔지요.

 

욕심이 날아간 후에는

그 자리에 소원이 둥지를 트는가 봅니다.

이제 교사가 되고 시인이 된 저에게

희끗한 머리카락 위로 손을 흔드시며 하시는 말씀

내 소원이 무언지 아느냐,

네가 진실한 입 하나 가지고 사는 거다.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교사가 되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감싸주는 시를 쓰거나,

아버지의 이마 위로 피어오르는 이 소원이

얼마나 멀고도 아픈 길 끝에 나온 것인지

진정으로 살아남는 길이 무엇인지 저를 가르칩니다.

 

아버지의 폐허 위에도 풀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아버지의 돌부리 사이로 갈대 줄기가 자라납니다.

점점 높이 자라고 대가 굵어지고

그럴수록 아버지의 폐허에 더 깊이 뿌리내리면서

아버지, 이제 저는 떠나갑니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는 아버지의 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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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10-13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1년에 나온 시집이니 시인이 아직 서른도 되기전 20대에 쓴 시인데 (저랑 동갑이라서 금방 계산이 나와요 ^^), 벌써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 같아요. 그래서 시인일까요.
좋은 시, 좋은 구절 또 얻어갑니다, 덕분에요.

nama 2016-10-13 19:40   좋아요 0 | URL
`더러는 발밑에 떨어진 것도 주워담아
제 입에 넣고 맛있게 씹을 일이다`

이제는 이 싯구가 마음을 먹먹하게 하네요. 발밑에 떨어진 것들을 무시하고, 버리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시인은 역시 다르지요?
 

 

잘못했을 때, 그 잘못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르고 올바른 방법은 우선 그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잘못을 가리기 위해 혹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궁색한 변명을 할수록 더 초라해질 뿐이다. 더 구차해질 뿐이다. 개인도 그럴진대 한 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면 이건 해악이다. 이런 온갖 해악질에 사는 게 고달프고 새삼 국가의 의미를 묻게 되는데... 요즈음 해악질 리스트라도 작성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중 몇개, 훗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강신명, 농민 백남기 씨의 사망 총책임자인 전 경찰청장.

 

"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백선하, 농민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하신 서울의대교수.

 

" 유족의 반대로 연명치료를 받지 못해 백 씨가 사망에 이른 만큼 사인을'병사'로 표기한 것은 문제가 없다."

 

 

어눌한 코미디언 같은 정치가 이정현의 단식.

 

"G20 국가 중에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안 지키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일 거다. 선거제도가 정착된 그러한 나라들 중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나라도 바로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바로 우리 국회의원의 특권이 시작되고 있다”

 

 

호주에는 '국가 사과의 날'이 있다고 한다. 그 과정을 읽어보면 호주나 우리나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잘못을 인정했다는 의미에서 호주가 선진국임은 확실하다. 우리도 국가 사과의 날을 제정한다면....2월? 4월? 10월?.... 너무 많다.

 

 

다음은 최유필의 <가만한 당신>에서 발췌한 글이다.

 

매년 5월 26일은 호주의 '국가 사과의 날 National Society Day'이라고 한다. '호주 정부가 과거 원주민에게 범한 야만적인 일들을 사과하고 잊지 않겠다는 취지로, 비슷한 잘못을 다 함께 경계하자는 취지로 1998년에 지정했다.'

 

1905년부터 1970년까지, '호주의 백인 정부는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부모와 혈족의 품에서 강탈해 집단시설에 수용한 뒤 결혼과 교육과 노동으로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탈색하고 백인화했다'고 한다. 이 국가유괴로 최소 10만 명의 아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갔단다. 이들을 '도둑맞은 세대 Stolen Generation'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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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배달되는 조간신문은 주로 주말에 몰아서 읽는다. 밥 해먹고, 치우고, 출근하고....신문 읽기는 사치다. 그런데 오늘은, 밤새 시름겨워 날밤을 새우다시피 하다가 어쩌다 시간이 남아 신문을 펼쳤다. 우선 김종철 칼럼 '불의한 나라의 전문가들'이 눈에 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4495.html

 

정신이 번쩍드는 문장에 아침잠을 깬다. 이런 '시름' 앞에서 간밤의 내 시름은 사치스럽기만 하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한 일본인 지진 전문가는 지난 9월의 경주 지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지진이 경주 인근에서 3~4개월 후 발생할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예측을 했다. 이 불길한 예측이 현실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규모 6.5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한국의 원전들이 조만간 붕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서 떠오른 이반 일리치의 문장.

 

오늘날 위기란 말은 의사, 외교관, 은행가, 온갖 사회 공학자가 모든 상황을 접수하고 사람들의 자유를 유보하는 상황을 의미하게 되었다. 국가도 사람처럼 중환자 리스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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