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인형옷 만들기나 뜨개질을 곧잘 하는 나를 보고 어른들은 그랬다. '너는 커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양장점에 취직해라.'

 

문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학업을 끝내기에는 내가 공부를 잘했다는 것이다. 대학진학을 위해 부모의 전략적인 뒷바라지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다만 '대학에 붙으면 보내주마.'라는 막연한 약속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고 딱 거기까지였다.

 

이따금 생각한다. 내가 만약 머리와 입이 아닌 손으로 하는 생업을 꾸려나갔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손으로 하는 일, 즉 요리라거나 옷을 만드는 일 같은 것.

 

한복저고리 만들기 무료 연수가 있었다. 일 주일에 한 번, 세 시간씩 총 8주에 걸쳐서 한복저고리 한 벌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해서 9시 30분에 끝나는 야간과정이다.

 

밤 9시 30분이면 내가 잠자리에 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일은 매우 힘들고 고달프다. 평소의 잠자는 시간을 넘기면 쉽게 잠도 오지 않아 결국은 소주병을 입에대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잠을 몇 시간 자고 난 다음날은 평소의 리듬이 깨져 몸이 몹시 무겁다. 주말이 되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된다.

 

그렇게 8주 동안 만든 한복저고리. 한번 구경하시라.

 

 

생애 처음 만든 저고리이다. 나는 안다. 내 자식의 단점을 알고 있듯 어디가 매끄럽지 못한 지를.

 

저고리를 만들면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내가 만약 손으로 하는 일로 먹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어땠을까? 매일 은퇴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을까? 바느질로 입에 풀칠이나 했었을까?

 

 

가지 않은 길로 잠시 가봤다는 거. 그것이면 족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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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9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a 2016-07-03 20:20   좋아요 1 | URL
손으로 만들었다면 차라리 쉬웠을 거란 생각이 드는게, 처음으로 해보는 발재봉틀이 낯설어서 헤매기 일쑤였거든요.

hnine 2016-06-30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훌륭해요! 저 같으면 혼자 흥분하다 못해 여기 저기 자랑하고 다녔을거예요 ^^
저 중학교 3학년 가사 시간에 한복 실습했었는데 진짜 천으로 안하고 창호지로, 1/2 축소해서 만들어보게 하셨어요. 만들어놓고 나니 1/2 축소한 종이 한복 저고리가 어찌나 귀엽던지, 한동안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었었지요.
한복 형태는 한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 같지만 은근히 유행을 많이 타더군요. 특히 깃과 배래 넓이 등이 유행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손으로 하는 일은, 꼭 직업이 아닐지라도 저는 긍정적으로 보거든요. 손을 움직일때 마음도 많이 가라앉고 고민에서 벗어나 집중할 수 있게 해주어서요.

nama 2016-07-01 08:05   좋아요 0 | URL
저도 학창시절에 창호지로 만든 적이 있어요. 신기함과 뿌듯함이 지금도 남아 있지요.
사실은 저 저고리의 반 이상을 강사님이 해주신 거라고 봐야해요. 설명을 들어도, 강사님의 시범을 눈여겨보아도 도저히 안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차라리 영어공부가 쉽지` 하는 생각을 다했어요.^^

2016-06-30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30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해피 2016-07-05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정말 기회가 되면 한복만들기 해보고 싶은데.. 한복 너무 이뻐서요.
아름다운 우리 옷~
너무 이쁩니다^^

nama 2016-07-06 07:34   좋아요 0 | URL
한복 만들기, 한번 해볼 만한 일입니다. 시간이 많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