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보다 더 소박한 책은,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여행에 관한 한 기라성같은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이 얼마나 소박한 소지품만으로 여행을 했는지를, 아주 소박한 최소한의 단어만 가지고 설득력있게 써나간, 더 이상 소박할 수 없는 소박함 그 자체의 책이다. 내용과 형식이 소박함으로 통일된 독특한 책이다. 틀림없이 이 책의 저자 역시 군더더기 없는 소박한 삶을 영위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존 뮤어에 대한 짧은 설명에 이어 그의 여행가방 속 내용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 고무줄 덧댄 가방에
빗, 브러시, 수건, 비누, 갈아입을 속옷
번스 시집 사본
밀턴의 <실락원>
우드의 <식물학>
작은 신약성서
일기장
지도
*식물압착기
천 마일에 걸친 도보여행의 짐꾸러미가 이러했다고 한다. 이 간단한 여행가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소박한 가방 만큼이나 간결한 설명이지만 호소력은 강하다. 여행도 삶도 이렇게 간결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조용한 암시.
"사람은 홀로 침묵 속에서 짐가방 없이 떠나야 진정으로 황야의 심장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지 않은 여행은 모두 먼지와 호텔과 짐가방과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 는 존 뮤어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레이먼드 카버의 '카버의 법칙'도 있다. 친구인 테스 갤러거가 명명했다는 이 법칙은 "미래를 위해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날마다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다 써버리고는 더 좋은 것이 생기리라 믿는" 카버의 습관을 말한다고 한다.
이 책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들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다. 언젠가는 읽게 되리라는 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