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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민의 지중해 오디세이
박용민 지음 / 바람구두 / 2012년 4월
평점 :
이 책의 저자가 예전에 쓴 <별난 외교관의 여행법>이란 책에 대한 감상을 썼던 기억이 난다. 왜 '별난 외교관'이란 제호를 붙였느냐는 불평도...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좀 유치하구나, 하는 쓴 웃음이 난다. 뭐라 부르건 내 상관할 바도 아니건만... http://blog.aladin.co.kr/nama/3093078
그래 그런지 이 책의 저자인 박용민이라는 분의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다. 무관심보다는 그래도 약간의 쓴소리일망정 그것도 독자로서의 애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은, 처음 부분은 좀 당황했다. 이게 뭐지? 여행 일기야? 그것도 90년대 여행 일기? 먼저 책에서도 나는 이런 표현을 썼었다. '아무래도 이 책은 독자보다 저자의 것이다'라고. 독자를 겨냥한 책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책이라는 인상이 강했다는 얘기다. 이 책 역시 그랬다. 그런데 조금씩 읽다보면 은근히 재미 있어진다. 일기 형식이다보니 글이 담백하고 진솔하며 꾸밈이 없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쿡!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특히 영국 운전면허증 얘기가 독특했다.
그러나, 솔직히 이 책을 며칠만에 읽었는지 모른다. 한동안 출퇴근 때마다 백팩에 넣고 다니며 출근해서는 제일 먼저 이 책부터 가방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하루 일과를 시작해곤 했다. 물론 빈 시간에 여러 잡무도 많았지만 이 책을 쉽게 집어들지는 못했다. 이 책이 은근한 재미는 있지만 다른 일을 압도할 만큼 기막히게 흥미를 돋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반을 넘어설 무렵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부분에서는 책 읽기를 계속 미루고 미루었다. 답답한 마음에 괜히 쓸데없는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압축적인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는 얄팍한 내 지식을 탓해야겠다. 저자의 말마따나 중동은 참 복잡하다!
나중에 기억을 돕고자 참고가 될 만한 사항을 옮겨본다. 이름이나 단어에 시선이 꽂히는 성향이 있는지라...
(265쪽) 이슬람 경전에서는 유대교 및 기독교 경전과 상당히 많은 서사적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대부분 이슬람의 예언자이기도 하다. 아랍식 발음과 성서식 표기를 비교해 보면, 지브릴은 가브리엘, 이프라임은 아브라함, 유누스는 요나, 아유브는 욥, 무사는 모세, 하룬은 아론, 다우드는 다윗, 술래이만은 솔로몬 하는 식이다.
은근히 독서에 속도가 붙을 무렵, 쿠르드 얘기가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세상에서 나라를 갖지 못한 최대의 민족'인 쿠르드족에 관한 실감나는 여행기는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쿠르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처절한 독립운동사를 알아야 한다. 무장병력의 경호를 받아가면서 밟은 쿠르드의 이야기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전 어떤 개인 블로그에서 사진을 곁들인 쿠르디스탄 여행기를 보고 금단의 땅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저자가 2004년에 힘들게 다녀온 쿠르디스탄에 이렇게 일반인이 드나들 수 있는 세월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여행기로서의 한계점은 있지만 그래도 충분히 참고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유럽에 대한 관점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정확하게 요점을 집어주는 듯해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310)...유럽이 이룩한 후기산업사회적인 통합은 아마도 미국의 안전보장이 없었다면 이루기 어려웠을 상태라는 점에서, 어딘가 가상적인virtual 측면이 있었다. 유럽의 통합이 더 진전하려면,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시련을 이겨내야만 할지도 모른다......(311)...살림이 넉넉할 때는 완전한 통합을 목전에 둔 것처럼 굴던 유럽에서, 이제 급속도로 배타적인 정서가 번지고 있다...근래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의 정상들도 공공연히 다문화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배타적 정서에 편승하려 드는 실정이었다. ...'다른 것'에 대한 증오는 '다른 것'에 대한 동경보다 뿌리가 더 깊고 강렬하다.
외교관으로서 세계의 여러 곳을 누비며 경험한 이 분의, '그 다음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