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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학교 - 탄자니아의 사람.문화.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구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아프리카에서 살아보는 일, 이 자체로는 특이한 경험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거나 아무나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과감하게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부러움을 사고 남을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 아프리카가 아닌 북극이나 남극 어디의 배경이 깔렸다고해도 마찬가지이리라.
아니 부러움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갰다. 아침 출근 때 아파트 단지내에서 내 옆을 스쳐가는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동네 아줌마들을 볼 때마다 한없이 부러운 마음이 드는 나로서는 아프리카에서의 삶이란 분명 질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여행이란,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모은 돈으로 배낭 여행을 떠나는 대학생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내게는 더더욱 부러운 일이다.
내가 (가능하면)퇴근 때마다 운동삼아 돌아오는 습지생태공원. 몇 십 만 평의 들판에 출렁이는 갈대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벼과 식물들, 갈대와 숨바꼭질하는 여러 종류의 억새, 계절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카멜레온 같은 함초, 갯벌에 숭숭숭 구멍을 내고 들락거리는 부지런한 게들. 맨발로 걸으면 밀가루를 밟는 듯한 소금반 흙반의 마른 갯벌의 오솔길.그런데 이 너른 들판에 지금 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다. 포크레인과 각종 대형 트럭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더니 그 너른 들판에 무성하던 온갖 생명들을 다 쓸어내면서 땅을 개간(?)하는 중이다. 새로운 공원을 만든다고 그런 난리굿이다.풀 숲에서 살고 있던 그 많은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공원 내에서 동식물을 채취하면 벌금 10만원"을 물린다는 플래카드의 경고에 눈치보며 채취했던 쑥과 민들레와 해당화 꽃잎.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들 거였다면 그런 경고는 하지 말았어야지 하는 생각을 오늘도 질겅질겅 씹으며 공원을 돌아나왔다. 누구는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즐기는데 겨우 동네의 생태공원이나 돌면서...
기왕 아프리카에 갔으면 좀 더 치열하게 사는 모습 좀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읽힐 수 있을텐데. 귀중한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단순 여행자의 정보 보다 좀 나은 정보와 사실의 소개 이런 거 말고 말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겠는가. 몇 년 씩 동네 생태공원을 돌면서도 내 생각이란게 만날 거기서 거기고 개발에 몸서리치며 사라져가는 뭇 생명들을 보면서도 딱히 분노 한 번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나는 이 책을 집어들면서 그런 기대를 했었나보다. 이렇게 실망하는 걸 보면.
이 책은 (내가 신청해서) 도서관에서 구입해 놓은 책인데 빌려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여행가의 책은 그 여행가의 다음 여행을 위해서 적극 팔아줘야한다는 내 나름의 구입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