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여행 중에서 가장 여행다운 여행은 1994년 1월의 인도여행이었다. (언젠가 자세히 쓰고 싶기는 하다.) 거의 한 달간의 여행을 끝내고 얼마 후에 뒤풀이로 몇몇 여행동지와 함께 우리를 이끌었던 가이드를 만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 모임을 주선한 동지는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린 대학생이었고, 가이드는 외대를 거쳐 인도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들러리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았던 가이드와 여행 중에 마찰이 많았는데 뭐가 아쉽다고 한국에 돌아와서 또 만나고 싶었겠는가.

 

가이드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유창한 힌디어는 인상적이었다. 영어에 빌빌거리던 나는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힌디어를 공부했느냐고. '먼저 우리말을 생각한 후 힌디어로 옮기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했다. 나도 이 방법으로 여러번 시도는 해봤으나 좌절감만 맛볼 뿐, 영어는 영원한 외계어였다는.

 

그건 그렇고, 그래도 힘든 여행을 함께 한 후라서 묘한 동지의식이 있어서 반갑기는 했다. 점심을 함께 먹었던가? 기억에 없다. 헤어질 무렵 마침 가이드의 손에 책이 한 권 들려있어서 무슨 책이냐고 물었는데 책표지를 열더니 위와 같이 몇 글자 적더니만 내게 책을 주었다. 웬 횡재? 하는 심정으로 기꺼이 받으며 무슨 말을 썼느냐고 물었더니 말해주지 않겠단다.

 

도대체 무슨 말을 썼을까? 내내 궁금해한 지 벌써 27년 째. 저 두 문장을 읽겠다고 힌디어를 공부할 수도 없고,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을 찾아서 물어볼 수도 없고.

 

다행스럽게도 sns 덕분에 지금까지도 연락 가능한 인도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2001년 인도에 갔을 때 현지 에스코트였던 인도친구와는 그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sns 로 이따금씩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의 사진을 보냈더니 금방 답변이 날아왔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가.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해.

 

 

옴매....이런 뜻이었어? 무슨 볼리우드영화 대사같네. 아마도 '영원히'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한테 한 장난치고는 좀 사랑스럽긴 하네. 그나저나 잘 지내시우, 가이드님?

 

1994년과 2001년을 가르는 건 인터넷이다. 1994년에 만난 사람과는 인연이 끊겼지만 2001년에 만난 사람과는 마음만 있으면 서로 연락이 가능하다. 안부 인사 정도만 이어지는 사이지만 그래도 먼 이국땅에 아는 사람 하나 두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근데 이 책 읽었냐고요? 읽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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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1-07-0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모르고 달려든 인도 여행, 단체 배낭 여행으로 함께한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동선이 너무 길어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던 그 시절 1999년 겨울 인도에서 한 달을 떠돌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은 인도여서 더 반가운 글입니다.

nama 2021-07-04 12:57   좋아요 0 | URL
인도가 묘한 매력이 있지요. 저는 그후로도 자유여행으로도 가고 단체로도 가고 여러번 갔지만 최초의 인도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