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 갔다. 그곳은 밀양 송전탑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을 때는 나 살기가 바빠서 마음 한 켠으로만 품고 있던 곳이고, 교단을 떠나 활동가로 활약하는 이계삼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그 전에 표충사와 얼음골이 볼 만하다하여 언젠가는 가보리라 마음 먹은 지 오래된 곳이기도 하다.

 

 

어느 한 구절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이계삼의 책들. 내 안의 거품을 제거해준 고마운 책들이다.

 

 

 

 

 

 

 

 

 

 

 

 

 

 

 

 

 

 

서쪽 끝 인천에 사는지라 동쪽 끝 강름이 제일 멀겠거니 했는데 밀양은 동쪽 끝보다 더 멀었다. 마음 먹지 않으면 좀체로 가기 힘든 곳이다. 어디 밀양뿐이랴. 밀린 숙제마냥 시간 되는대로 한곳씩 답사하기로 했다. 썩 괜찮은 생각이지 싶다.

 

 

구도심에 있는 영남루를 둘러보고 가까이 있는 전통시장으로 갔다.

 

 

전국3대 전통시장이라는데 인적마저 드문 거리는 깨끗했다.

 

 

 

 

 

 

연이은 참기름집. 쇠락한 기운이 감돌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천 원짜리 보리밥. 산초가 들어간 겉절이가 특히 맛있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그러신다. "서울 사람이나 충청도 사람은 산초 들어간 음식 못 먹어요." 헤헤. 나는 서울 사람도 충청도 사람도 아니라서 잘 먹는구나. 그런데 내 말투는 서울말이다. 맛깔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에 섞이니 듣기에도 말하기에도 아주 밋밋해져버린다. 내 말투가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초 같은 짜릿함을 섞어서 말할 수는 없을까.

 

 

 

승효상의 <묵상>에서 읽었던 명례성지로 향했다.

 

 

 

 

 

 

 

 

 

 

 

 

 

 

 

 

80년 된 옛 한옥 성당. 남녀의 영역을 가르는 기둥이 있는 작고 소박한 곳이다. 견진성사까지 받은 몸이지만 마음이 떠난 지 오래. 절에 가면 오체투지, 교회에 가면 아멘, 성당에선 성수 찍어 성호를 긋는다.

 

 

 

승효상이 설계한 순교자 기념 성당.

 

 

 

 

 

 

 

 

 

 

 

 

 

 

 

 

 

 

 

 

 

 

 

계단의 사각형 구조물을 통해 외부의 빛이 내부로 들어간다.

 

 

 

임옥상의 순교자 조상

 

 

뜻대로만 된다면, 이 명례성지는 우리가 지금 찾는 수도원 순례 여행지처럼 세계의 순례자들이 목적하며 찾는 리스트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좋은 장소가 되어, 결국 그들이 살면서 부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429쪽

 

 

 

 

 

다정한 모녀

 

 

다음 날. 이른 아침의 표충비각.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눈물을 흘린다는데...관심이 없다. 表忠. . .  충의를 드러내기도 싫다.

 

 

 

 

 

 

경내에 있는 '밀양 무안리 향나무'. 약 300년 된 향나무. 이렇게 큰 향나무는 처음 본다.

 

 

 

 

둘러보면 예쁜 담장도 있다.

 

 

 

 

다음은 청도 운문사.

 

 

 

운문사는 승가대학이 있는 비구니절이다. 유홍준이 <산사순례>에서 이 절의 명물은 새벽예불과 저녁예불이라고 했는데 접할 기회는 없었다. 여기보다는 1008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사리암이 더 인상적이었다.

 

 

사리암은 기도발이 좋은 곳이라고...  젖은 마음을 햇볕에 말리는 것 같은 정경.

 

 

 

밀양 시내의 모텔 얘기. 영남루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다보니 (그나마 좋아보이는) 낡은 모텔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담배냄새가 어찌나 심하던지 밤새 냄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구토까지 날 정도였다. 험한 숙소에 익숙한 편인데 이 모텔만큼은 지금까지의 내 여행경력에 최악의 곳으로 남을 것 같다. 위정자들이여 이런 곳에서 하룻밤 묵어보시라. 민초들의 고단함이 말 그대로 폐부에 깊숙하게 박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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