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름이 아닌 동네 이름, 남해엘 갔었다. 남해, 하면 우선 떠오르는 곳이 금산 보리암, 독일 마을, 미국 마을, 섬이 정원, 가천다랑이마을 등이 있다. 보리암은 기도 도량이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러 간 게 아니라면 그리 빼어난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 아닌만큼 약간은 실망할 수도 있다. 독일 마을은 방송을 너무 자주 탄 게 원인일까. 관광객이 너무나 많았다. 구경꾼이 그렇게나 많이 몰려드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애써 그곳에 갔지만 구경하는 걸 접었다. 내가 그곳에 살고 있다면 대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창문에 새까만색 암막 커튼을 달고 하루종일 외출을 삼가거나 아예 그곳을 떠났을 것 같다. 구경거리가 된 동네에서 산다는 건 우울하고 몹시 피곤한 일일 것 같다. 내가 그 동네 이장이라면 마을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동네 출입을 허가할 것이다. 섬이 정원은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을 입장료 몇 푼을 내고 슬쩍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천다랑이 마을의 다랑이 논을 보니 발리의 다랑이 마을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도 발리 못지 않은 다랑이 마을이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닫고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해, 크지 않은 섬에 볼 것이 이렇게 많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과 나, 우리는 남해에서 하루 묵어보기로 했다. 가성비가 몹시 떨어지는 펜션은 가급적 삼가고 군청(시청)이나 터미널이 있는 동네의 평범한 모텔에서 묵는 게 우리의 여행 방식이라서 남해 군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모텔을 숙소로 정했다. 모텔에 들어서니 주인장이 안 보인다. 일이 분 망설이다가 주차장으로 나오니 곧이어 주인 아주머니가 따라나와선, 주방에서 부침개 만드느라 손님 온 것을 몰랐다며 그냥 가시겠냐고 묻는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그렇지, 하면서 주인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가 방값을 치렀는데, 아주머니 왈, 부침개 한 쪽 잡숴보겠냐고 묻는다. 살짝 비가 오는 날씨에 부침개라니. 이미 모텔은 부침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낯선 이에게 베푸는 환대까지 더해 부침개 맛은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었다.

 

더 먹겠다고 하면 더 얻어 먹을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도 염치는 있는 법.  가까운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허를한 식당에서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콩죽을 먹었다. 가격도 저렴한데다 생각보다 맛이 소박하고 정겨웠다. 다만 반찬으로 나온 김치가 부족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밖에 계신 바람에 더 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라고 할까. 흐뭇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서서 숙소로 향했는데... 남편 등에 있던 백팩이 생각났다. 식당에 두고 온 걸 깨닫고 급히 식당으로 갔는데 이미 가게 문이 닫힌 상태였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어쩌나, 잠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식당 맞은 편 가게의 주인분이 그러신다. 문 안 잠겼으니 어서 들어가 가지고 나오라고. 이 집은 문 안 잠근다고.

 

문 안 잠그는 식당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극성스러운 모기의 습격을 당하고 이내 동네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부침개까지 얻어 먹었는데 야박하게 모기향 달라고 요구하기가 그러니 아예 집으로 가져갈 의도로 모기향을 사기로 했다. 액체 모기향 세트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 여기 살러 온 분들이세요?"

" 네?.....아니요."

" 모기향을 사시기에요."

" 저기 모텔에 묵는데 모기가 많아서요."

이 분은 동네 사람들을 다 알고 계신 지 낯선 이방인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우리가 낯선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받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 낯선 사람을 알아봐주는 인정 같은 게 느껴졌다. 알아봐주니 낯섫은 낯섦이 아니었다. 친절이었다. "포인트, 몇 번이지죠?" 우리 동네건 낯선 동네건 으례 물건을 사면 듣게 되는 적립 시스템용 멘트. 그런데 여긴 달랐다. 살갑고 정겨운 기분에 젖어 숙소로 돌아오면서 남편과 나는 막연하지만 이런 다짐을 했다.

" 퇴직하면 남해에서 한달살이합시다."

 

2019년 6월 남해.

 

 

 

 

꼭 시계를 닮았다. 이름하여 시계꽃. 가천다랑이마을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나 2019-07-1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해 참 좋아하는데. 보통 시골마을이 논과 아파트 정리 안된시골과 도시의 중간의 어수선함을 보여주는데 남해는 단아하다고 할까 참 이쁜 곳입니다

nama 2019-07-14 18: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마을이면 마을, 참 단아하고 정감이 가는 곳입니다. 제 생각엔 발리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물론 사람들도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