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ABBA의 노래는 어디서나 흘러나왔다. 그때는 동네마다 작은 레코드 가게가 한두 개 쯤은 있던 시절이어서 LP와 카세트테이프 판매는 물론 노래를 선곡해서 부탁하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해주기도 했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주인 마음대로 하루종일 노래를 틀어주어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연스럽게 유행하는 노래를 알 수 있었다.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날 때는 절로 흥이 나곤 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때는 한 달 내내 캐롤을 듣기도 했다. 음울한 백수 시절, 아무도 없는 대낮의 컴컴한 독서실에서 홀로 책과 씨름할 때, 창문 너머로 들리는 레코드 가게의 노래는 핏기 없는 메마른 마음을 달래주곤 했다. 그 알싸한 노래가 있어 외로운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바의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디서나 흔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게 또다른 이유였다. 청춘의 객기 같은 게 묻어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좀 우습지만 하여튼 그게 내 모습이기도 했다. 단순하게 살지 않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아바의 단순한 곡조를 외면한 채 내가 택한 것은 발음도 어려운 Lynyrd Skynyrd(레너드 스키너드)나 뭔가 심오해보이는 Deep Purple 같은 가수들이었다. 10여 분을 훌쩍 넘기는 그들의 Free Bird 나 April같은 곡을 특히 좋아해서 나중에는 테이프가 늘어져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지경까지 되었다. 그런 취향 때문이었는지, 혹은 내 상황 때문에 그런 노래들을 좋아했는지, 나는 20대를 정말 힘들게 보냈다. 다시 젊음이 주어진다해도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그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영화<맘마미아>나 뮤지컬을 들먹일 때도 나는 일말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깟 ABBA가지고.....이런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4월 런던에 가게 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런던에 가게되니 그 유명한 뮤지컬을 한번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턱대고 아무거나 고를 수 없고 고른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건 좀 귀찮고...그래서 선택한 것이 맘마미아였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젊을 때는 쉬운 게 싫었는데 이젠 쉬운 게 좋다니...쉽게 살고 싶다는 반증일까.

 

2008년에 나왔다는 영화<맘마미아1>을 찾아서 보고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 날 저녁 뮤지컬<맘마미아>를 보았다. 옛날 것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인지라 극장은 오래되어 협소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관객들은 활기가 넘쳐 흘렀다. 자세히 살펴보니 관객중엔 내 또래의 여성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래가 나오면 같이 따라 부르기도 하고 거리낌없이 옆사람과 이야기꽃을 나누기도 했다. 엄숙한 쪽은 오히려 우리였다. 노래 가사를 모르니 따라 부를 수도 없고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낯설기도 했다. 그러나 뮤지컬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국내에서 본 몇 안 되는 뮤지컬과는 확연히 달랐다. 포만감으로 벅찬 시간이었다.

 

엇그제 새로 개봉된 <맘마미아2>를 보았다. 여전히 '엄마'의 연애담을 우려먹는 줄거리였으나 이번엔 좀 달랐다. '엄마'가 현존하지 않았다. 엄마가 죽었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 엄마가 유령처럼 잠깐 등장하여 딸 소피아에게 노래를 불러주는데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이렇게해서 또 이어지는구나. 엄마의 사랑으로 세상이 이어지는구나. 어쩌다 밀려서 남자들이 이끄는 세상이 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엄마가 세상을 나아가게 하는구나.

 

이제사 새삼 ABBA의 노래 가사를 찾아본다. 생각보다 야한 노래가 많다. 런던에서 본 뮤지컬이 왜 영화보다 질펀하고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가 했더니, 왜 런던 아줌마들이 깔깔거리며 흥겨워했던가 했더니 ABBA 노래에 원래 그런 부분이 있었던 거구나.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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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2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2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틈에 2018-08-28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음악들으며 웬만해선 가사는 신경쓰지 않는 데(가요도 마찬가지;;;) 아바 가사에 갑자기 흥미가.^^;;; 참고로 저 역시 nama님처럼 비슷한 이유로 쉬운, 뻔한 음악을 피했었네요.ㅎ 물론 30대인 지금은 아이돌 음악 너무 잘 듣습니다.ㅋㅋ

nama 2018-08-28 08:17   좋아요 1 | URL
저도 노래 들을 때 가사는 거의 신경쓰지 않아요.
특히 팝송을 가만 뜯어보면 의외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요.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 같은 노래가사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걔는 내 자식이 아냐..‘등등.
저는 요즘 Sam Smith 가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