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이 조르주 깡길렘의 신간 사다 놓은 것 있느냐고 묻기에 "깡길렘, 혹은 깡기엠..." 하고 대답했더니 알아듣고 킥킥거린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전에 곽광수가 김현의 바슐라르 연구를 비평하면서 특유의 현학 취미의 사례로 꼬집은 것이 바로 저 프랑스인의 두 가지 인명 표기였기 때문이다.


베르그송/베르크손이나 뒤르켕/뒤르켐의 경우처럼 둘 중 어느 쪽으로 쓰더라도 독자가 이해하는 데에는 굳이 어려움이 없을 터인데 굳이 "깡길렘, 혹은 깡기엠"이라고 쓴 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시적인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 곽광수의 지적의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현의 절친 김병익은 이 일을 가지고 훗날 한 인터뷰에서 곽광수에게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김현이 오류를 범한 것도 사실이며 곽광수도 학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본인의 결벽 성향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꼭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비판 역시 일리가 있어 보인다.


곽광수의 결벽 성향은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 번역서에서도 여러 페이지에 걸친 상당히 긴 역주를 통해 오래 전에 박이문이 내놓았던 비판/오해에 대한 반박/해명을 내놓았던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남들 눈에는 지나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후련하게 생각한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나.


이런 곽광수조차 꼼짝 못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조동일인데, 자서전을 보면 대학원 시절인지 신구문화사에서 세계문학전집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곽광수의 번역 원고에 가차 없이 빨간 펜으로 수정 지시를 해서 애를 먹였다는 일화가 나온다. 나중에 곽광수도 이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하던가.


그나저나 "깡길렘, 혹은 깡기엠"의 신간이 뭔지 궁금해 알라딘을 검색해 보니, 엉뚱하게도 저자명이 "깡귀엠"으로 통일되어 나온다. 하지만 한길사의 <정상과 병리>의 표지에는 "캉길렘"이라고 나왔고, 인간사랑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표지에는 "깡길렘"이라고 나왔으니 사실과 다르다.


심지어 그린비에서 새로 나온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과 <이데올로기와 합리성>과 <생명에 대한 인식>과 <캉길렘의 의학론>의 표지에도 "캉길렘"으로 나오고, "깡귀엠"이란 표기는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의 구판인 아카넷의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온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표지에만 나온다.


결국 이미 절판된 구간 가운데 딱 한 권의 표기에 불과했던 "깡귀엠"이 현재 알라딘에서는 마치 정확한 표기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는 셈이니 우스울 수밖에 없다. 예전에야 그러려니 했더라도, "캉길렘"으로 무려 네 권이 더 나왔다면 적절한 수정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았을까.(일해라 알라딘!)


나귀님이야 "깡길렘, 혹은 깡기엠, 혹은 깡귀엠" 가운데 정확히 뭐가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식이라면 십수 년 뒤에 알라딘에서 이 저자명을 "깡다위"(姜大衛)로 바꾸어 놓지 말란 보장도 없어 보인다. 물론 바깥양반 쪽에선 이름 표기야 어떻든 신간을 사다 놓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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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랑 판 <천일야화> 3권을 보니 "칼레단의자식들의섬의 왕자 카마르알자만과 중국 공주 바두르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오래 전에 아동용 각색으로 처음 읽고서 그 줄거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성인용(?)으로 다시 읽으니 복잡한 후일담이 덧붙어 있기에 살짝 놀랐다.


제목에서 말하는 섬나라 왕자와 중국 공주는 각각 '여혐'과 '남혐' 성향이어서 부왕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결혼을 거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령들의 장난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헤어진 뒤에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상사병이 나서 그만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즉 왕자와 공주를 각각 보고 온 정령 둘이 우연히 만나 '내가 본 사람이 더 아름답다!' 자랑하며 피차 외모 품평인지, 이상형 월드컵인지를 벌이다가, 급기야 '그러면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자!'면서 천리만리 떨어진 곳에 사는 두 사람을 잠든 채로 데려다가 함께 눕혀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의견이 막상막하라서 승부가 나지 않자, 처음에는 공주를 재우고 왕자를 깨우며, 곧이어 왕자를 재우고 공주를 깨우는 방식으로 각자의 반응을 평가해서 승부를 겨룬다.(참고로 공주가 더 안달하는 바람에 왕자가 이겼다!). 다음날 아침, 왕자와 공주는 각자의 침대에서 눈을 뜬다.


하룻밤 사이에 서로의 얼굴만 보고 반했지만 이름조차 모른 채 헤어진 왕자와 공주는 '어젯밤 그 사람'을 간절히 찾다가 절망해 상사병으로 드러눕게 되고, 이에 공주의 젖남매인 청년(유모의 아들)이 사연을 듣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한 끝에 결국 왕자를 찾아내 두 사람을 결혼시킨다. 


하지만 이렇게 순순히 행복하게 끝나면 <천일야화>가 아니지! 부왕 몰래 공주의 나라로 간 왕자는 결혼식을 마치고 함께 본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공주의 물건을 찾으려다 그만 길을 잃고 낙오되고, 혼자 남은 공주는 남장을 했다가 인근 국가의 공주와 억지로 결혼(!)하게 된다!


여하간 또다시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부수 줄거리가 이어지다 우여곡절 끝에 왕자는 공주와 재회하고, 그 사이에 공주와 결혼(?)한 상태인 또 다른 공주도 아내로 맞아들여서 세 사람이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는가 싶다가... 마지막에 가서 정말 의외의 막장스러운 후일담이 등장한다.


왕자와 결혼한 두 공주, 즉 두 왕비는 같은 날 같은 시에 아들을 하나씩 낳았는데, 세월이 흐르며 각자 상대방의 아들을 연모하게 된다. 하지만 올바른 품성을 지닌 청년들이 구애를 거절하자, 왕비들이 부왕에게 모함하여 아들들을 죽이게 한다.(요셉과 히폴리토스와 투 마더스의 대환장 조합).


이복형제는 다행히 목숨을 건져 이웃 나라로 도망치지만, 한 명은 그곳에서 무슬림 동포를 만나 부와 명예를 얻은 반면, 다른 한 명은 배화교 악당을 만나 매일같이 고문당하며 장차 인신공양의 제물이 될 처지에 놓인다.(우여곡절 끝에 겨우 탈출했다가 또다시 붙잡히는 고구마 전개도 덤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천일야화>답게 두 청년은 누명을 벗고 위기를 벗어나 재회하고, 결말에 가서는 이들의 부왕뿐만 아니라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중간에 왕자 가운데 한 명과 눈이 맞은 타국 여왕까지 각자 대군을 거느리고 달려와서 얼떨결에 일가 전체의 상견례가 이루어진다.


이 편에서는 <천일야화>의 다른 이야기에 나온 소재들이 재활용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여혐' 왕자가 본국 귀환 중에 낙오되었다가 일확천금하자, 전 재산인 금덩어리를 항아리에 넣고 맨 위에 올리브 열매를 깔아서 위장하는 대목은 "바그다드 상인 알리 코지아 이야기"와 똑같다.


아울러 도입부에서 정령들이 '내가 본 인간이 더 예뻐'로 입씨름을 벌이다가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남녀를 하룻밤 인연으로 엮어준다는 (아울러 두 사람이 천신만고를 겪고 난 후에야 재회한다는) 내용은 <천일야화> 제2권에 나온 "누레딘 알리와 베드레딘 하산 이야기"에서도 나왔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도입부에서 왕자와 공주가 저마다의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이성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지만, 막상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마자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생까며 좋아서 죽더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랑은 '제 눈에 안경'이기 때문은 아닐까.


'여혐'이니 '남혐'이니 기타 이성을 폄하하는 용어는 언제부턴가 상당히 일반화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 부분 과장되고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녀의 화학 반응은 본능일지니, 이걸 거부하는 '찐' 혐오자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도태되어 없어지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세계 3대 거짓말 중에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이 들어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물론 최근의 외식 물가 상승이며 노인 간병 문제 등을 보자면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나 '노인이 얼른 죽고 싶다는 말' 역시 그에 못지않은 거짓말이 분명해 보이기는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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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였나, 오랜만에 시내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서 버스 타고 한강 건너 용산 지나다 보니 예전 터미널 부지에 지은 하이브 사옥 앞에 사람이 잔뜩 모여 있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떠들었듯이 방탄소년단 멤버 가운데 한 명이 그날 제대한 모양이어서, 얼굴이라도 구경하려는 심산에 수많은 팬들이 사옥 앞에 운집한 모양이었다.


군대 가기 싫다며 대놓고 정부를 압박한 것이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새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는 모양이니 참 세월 빠르다 싶으면서, 이후의 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전쟁이며 최근 북한의 도발 같은 사례를 떠올려 보면, 이왕 가는 김에 전원 동시 입대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군대 마케팅을 했더라면 오히려 더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하간 의무를 다했다니 기특한 한편으로, 최근 군대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사고가 큰 논란으로 번진 사례들을 떠올려 보니, 군인이라고 다 같은 군인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 씁쓸해진다. 물론 무사히 제대한 연예인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그보다 운이 좋지 못했던 어느 해병대원과 훈련병의 짧았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두 젊은이는 사망 직후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상태에서 갖가지 은폐 공작을 당했던 반면, 방탄소년단 멤버는 전역 당일 아침부터 방송사에서 부대 정문에 찾아가 실시간 중계를 했다. 그러니 평범한 병사 대신 유명한 병사라면 과연 그런 일을 당했을까, 설령 당했더라도 그렇게 은폐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도한 기합으로 사망한 훈련병의 경우는 최근 그 동기생들이 모두 훈련을 마치고 퇴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퇴소식이 열린 행사장에는 추모 장소도 마련되었고, 마치 내 아들의 일 같아 속상했다며 분통을 터트린 부모들도 있기는 했지만, 정작 그날의 비극에 대해 형사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발뺌하는 상태다.


그런가 하면 실종자 수색에 투입되었다가 사망한 해병대원에 관한 진상 조사는 해를 넘겨서 1주기를 앞둔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하고, 군대의 은폐와 정부의 외압을 거치며 단순 사망 사고에서 국정 문란 사건으로 점차 확대되면서 총선 참패에 뒤이어 현 정권의 다음 대선 참패를 사실상 확고히 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세상 모든 일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에는 드러나게 마련임을 공자와 예수 모두 강조한 바 있는데, 길어야 5년에 불과한 짧은 치세 동안 마치 세상에 겁날 것 없다는 듯 권력을 휘두르다가 결국에는 줄줄이 포승줄과 구치소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니, 그토록 허무한 권력에 왜들 그렇게 욕심을 내는지, 나귀님으로선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와중에 해병대원 사망 사건의 최우선 원인 제공자인 현직 장군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서까지도 증인 선서를 거부하며 대놓고 위증을 시도했다니 더욱 한심한 일이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군인인 한에는, 심지어 장성인 한에는 최소한의 긍지나 양심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마저 뒤집었으니 참으로 소인배가 아닌가!


현직 장군이며 전직 장관의 찌질한 모습을 줄줄이 보고 나니 영화 <어퓨굿맨>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오만방자한 해병대 대령이라든지, 영화 <사관과 신사>에서 (얼마 전 타계한) 루이스 고셋 2세가 연기한 해군사관학교 악질 교관 따위는 오히려 대인배에 인격자처럼 보일 정도다. 결국 간부들도 군인이라고 다 같은 군인은 아니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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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신간 북펀드 광고 중에 "모차르트는 여자였다"라는 것이 있기에, 이건 또 무슨 신선한 음모론인가 싶어서 클릭해 보니 '난네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즉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누이' 비유처럼 모차르트의 누나를 비롯한 수많은 재녀들이 부당하게도 음악사에서 외면당했다는 내용인 듯하다.


이런 식의 억울한 피해자, 또는 세상이 외면한 천재를 다룬 책은 이미 숱하게 나왔지만, 종종 음모론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에디슨과 제너럴일렉트릭의 탐욕과 오만 때문에 테슬라가, 또는 각종 무한 에너지와 영구 기관 발명가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결과론적 주장은 '30년 전에 강남 아파트를 하나 사 두었더라면'이나 '10년 전에 비트코인을 조금 사 놓았더라면' 하는 후회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는 수십 년 뒤에 아파트와 비트코인이 떡상할 것을 미리 예측하지 못해 구매하지 않았던 것이 팩트이기 때문이다.


앞서 제논의 역설을 해결한 베르그송의 지적은 여기서도 딱 어울린다. 우리는 과거의 행적을 평면 위의 직선(I)이 수많은 선택지를 만나 갈림길(Y)을 만들어낸 모습으로 상상하기 쉽지만, 이것 역시 토끼와 거북이의 운동을 시각화한 제논의 눈속임처럼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즉 우리의 인생이 수많은 '가지 않은 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우리가 이미 지나 온 길들만 있을 뿐이며, 사실은 그나마도 직선(I)이라기보다는 점 하나(.)로 비유해야 어울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 궤적은 그저 아쉬움이 빚어낸 허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바라보자면 강남 아파트나 비트코인에 대한 아쉬움은 한낱 무의미한 푸념일 뿐이다. 과거에 부동산과 가상 화폐를 매입하지 않았던 것도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니, 설령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미래를 알 수 없는 당사자로선 똑같은 결정을 최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시대를 잘못 만났거나 여건이 좋지 않은 탓에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천재에 관한 통념은 비록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허구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제아무리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는 것이며, 워낙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차르트의 누나나 셰익스피어의 누이에 대한 비유가 과거 여성이 겪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발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이들이 가능성을 보인 음악이나 문학 분야에서는 재능 못지않게 노력과 행운도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성공을 쉽게 장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명한 화가나 음악가, 또는 최근 각광을 받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살펴보면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뒤늦게야 재능이 만발한 사람도 없지 않다. 어려서부터 주목을 받은 신동 가운데 말년까지 재능을 유지한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는 것도 각별히 주목해야 할 점이다.


엉뚱하게도 '친구 따라갔다가 오디션에 합격했다'거나 '언니가 먼저 시작해서 응원하러 갔다가 나도 따라하게 되었다'는 식의 증언이 적지 않음을 기억해 보면 행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충분한 재능이 있어도 각자의 결정이나 한계나 다른 이유로 중도 포기하는 사람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재능뿐만이 아니라 노력과 행운도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록 난네를이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동생만큼 작곡가로 대성할 수 있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거꾸로 동생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누나에게까지도 똑같은 기대를 한다는 것이 부당한 일 아닐까?


예를 들어 '유전자 몰빵'의 사례로 유명한 배우 송중기의 누이만 하더라도 비록 외모에서 오빠만큼의 축복을 받지는 못한 듯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대성했다고 하니, 아무리 남매라도 두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고 (예를 들어 '동생은 왜 인기 여배우와 결혼 못했냐'며)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법하다.


아울러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실제로 있어서 정말로 혁혁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치더라도, 오늘날 그 오빠가 받는 평가를 감안해 보면 의외로 푸대접을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왜냐하면 저 극작가는 세계 최고의 문인으로 추앙받는 한편,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즉 셰익스피어의 전기 자료가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서 실제로는 무명 극작가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제 이름으로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느니, 심지어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크리스토퍼 말로 같은 당대의 유명 문인의 필명에 불과하다는 주장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어느 학자의 지적처럼 이 모든 가설은 학력도 일천한 일개 극작가가 그토록 뛰어나고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었을 리 없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니,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실제로 있었더라도 십중팔구 '오빠가 대신 써준 것'이라는 의심부터 시작해서 온갖 구구한 추측과 비난을 피할 수는 없지 않을까...




[*] <모차르트는 여성이었다>가 결국 출간되었기에 (Yes24에서 고화질로) 미리보기를 확인해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과격하고 편향적인 어조여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띄어쓰기 오류 같은 초보적인 실수가 눈에 띄는 것으로 미루어 편집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영국 여성 시인 러네이 비비언의 별명인 "1900년의 사포"에 대해서 "당시 <1900년대>라는 문학잡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작가 앙드레 빌리(Andre Billy)비비언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라고 설명한 23쪽 역주를 보자. 첫째, "앙드레 빌리"와 "비비언에게" 사이에 조사가 빠지고 띄어쓰기가 틀렸다. 둘째,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구글링해 보니 <1900년대>는 문학 잡지가 아니라 앙드레 빌리가 1951년에 간행한 단행본이었다. 즉 "앙드레 빌리가 저서 <1900년대>에서 비비언에게 붙인 별명"이라고 설명했어야 정확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나귀님 입장에서야 굳이 직접 읽어볼 만한 가치까지는 없는 책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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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엔가 갑자기 옛날 공포 영화 <후라이트 나이트>가 생각나서 구글링을 하다 보니, 거기서 주인공인 흡혈귀로 나온 배우의 이름이 크리스 서랜던이다. 수전 서랜던과 같은 집안인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무려 전남편(!)이었다. 즉 본명이 수전 토말린인 여배우가 결혼 후에 남편의 성을 따라 수전 서랜던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던 거다.


나귀님도 마찬가지였지만, 크리스 서랜던이라면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도 같은데, 막상 검색해 보니 의외로 유명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맡았던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주인공인 해골머리 잭이고 <사탄의 인형>, <공주를 찾아서>, <뜨거운 오후> 등에도 출연했었다 한다.


제목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영화이기는 한데, 기껏 주연을 맡았을 때에는 해골 애니메이션이나 흡혈귀 분장이고, 그나마 멀쩡한 역할로 나왔을 때에는 칼 들고 덤비는 인형이라든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황당무계한 전개라든지, 심지어 알 파치노가 워낙 인상적이다 보니 비교적 관객의 기억에 덜 남았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자가 결혼하며 남편의 성을 따르는 제도는 서양 대부분의 나라와 일본 등에서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유명인 중에서도 수전 서랜던처럼 전남편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지난번에 언급한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도 두 번째 남편의 성을 따른 경우였고, 첫 결혼 직후엔 린 세이건이었다.


어쩌면 남성우월 여성폄하의 대표적인 사회 부조리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성(물려받은 이름)과 명(부여받은 이름)을 굳이 사용하게 되었던 이유를 고려해 보면, 부부의 성 통일도 억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편의를 위해서라고 추론이 가능하며, 지금 와서는 의무까지는 아니게 되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처럼 이민자가 많았던 나라에서는 결혼이나 이주를 통해 외국인의 느낌이 강한 원래 성 대신에 비교적 평범한 성을 얻음으로써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호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억압적인 부모의 성 대신 남편의 성을 따름으로써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 사람도 없지 않았던 듯하다.


영화에서는 별거 중이거나 이혼 상태인 아내가 남편의 성 대신 원래 성을 다시 쓰는 것이 심경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로도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다이 하드>에서 한동안 멀어진 아내를 회사로 찾아간 브루스 윌리스가 경비실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남편 성 대신 원래 성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심란해 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경우에는 비록 성이 같아도 혈연까지는 아닌 사례가 없지 않은데, 최근 나귀님이 궁금해서 알아본 사례로는 영국의 작가 엘리제베스 폰 아르님(1866-1841)과 독일의 작가 베티나 폰 아르님(1785-1859)이 그러했다. 양쪽 모두 결혼으로 아르님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고, 워낙 대가문이다 보니 딱히 접점은 없는 듯하다.


베티나 폰 아르님은 어린 나이에 노년의 괴테와 교우하기도 했던 천재 소녀로 유명한데, 나중에 가서는 괴테 부인과 대판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결국 저 유명한 작가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원래 성은 브렌타노인데 동생 클레멘스의 친구이자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공저자인 루드비히와 결혼해서 아르님 가문의 일원이 된 경우이다.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은 본명이 메리 보챔프이고 원래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인데, 첫 번째 남편이 독일의 귀족인 헤닝 아우구스트 폰 아르님슐라겐틴이었다. 사별 후에 만난 두 번째 남편이 버트런드 러셀의 형인 프랭크 러셀 백작이어서 자연히 엘리자베스 러셀로 통했지만, 필명으로는 여전히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을 이용한 모양이다.


흥미로운 점은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의 사촌이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것이다. 이쪽도 본명은 캐서린 맨스필드 보챔프이고 저 유명한 필명은 본명 가운데 일부를 조합한 것이었다. 베티나 폰 아르님의 할머니도 당대의 저명한 소설가였다고 하니, 결국 문학적 재능이란 것도 물려 받는 것인가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언젠가 언급했듯이 일본 중세 여성 문학의 대표 작가인 '미치쓰나의 어머니'의 후손 중에도 여성 문인이 여러 명 배출되었고, 우리나라 조선 시대 궁중 문학의 대표 작품인 <한중록>과 <계축일기> 역시 풍산 홍씨 가문의 여성들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여성 문학에서의 혈통과 계보를 따져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다.


아울러 여성의 이름과 정체성의 문제도 생각할 만해 보인다. '미치쓰나의 어머니'나 '혜경궁 홍씨'는 자기 이름 없이 항상 가족이나 직책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니 말이다. 물론 '허난설헌'처럼 뒤늦게 문학사에서 지워지는 듯한 사람도 있음을 감안해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작품 같기도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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