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얼마 전 웹소설과 웹툰 원작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서처럼 결국 '각색' 문제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는 것이야 자유이겠지만, 그 결과물이 충분히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허구라며 빠져 나갈 여지를 적게 주어서 논란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


흥미로운 점은 <암살자(들)>의 주연 가운데 두 명의 전작에서도 이번처럼 역사 왜곡 혐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박해일은 <나랏말싸미>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한 무명의 승려를 연기했고, 유해진은 <말모이>에서 한글 사전 편찬에 관여한 까막눈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교수와 광인"의 클리셰를 답습하려고 실제 역사에 허구를 끼워넣은 격이었다.


여하간 양쪽 모두 충분히 상상가능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던 까닭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어주지 못한 어설픈 각색 때문이었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와 관련된 야사의 기록을 근거로 들면서 마치 정설처럼 홍보해서 논란이 일었고, <말모이>도 실존했던 '조선어학회'의 역할을 과도하게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했다.


<암살자(들)>의 문제도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음모론 소재에만 몰두한 나머지 여러 가설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없어 보이는 것에 매달렸으니,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었다 하더라도 딱히 공감은 안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야당 의원의 지적처럼 '노무현이 권양숙의 사주로 암살당했다'는 음모론을 다룬 영화가 나온들, 그럴싸하다며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나저나 저 영화의 소재인 육영수 피격 사건에서 한 가지 아이러니는 당시 경호를 담당한 대통령 경호실장 박종규가 실제 '암살' 가능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연구에 전념하여 <암살사 연구>라는 저서까지 내놓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당시로선 독보적인 암살 방지법의 전문가였던 셈인데, 정작 육영수 피격 사건에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비난받고 물러났다.


나귀님은 예전에 어느 헌책방에서 그 책을 구입해서 갖고 있는데, 정확한 제목은 <(대통령 경호를 위한) 암살사 연구>이고, 발행처는 대통령 경호실이며, 발행일은 1971년 6월 20일인 비매품이다. 케이스를 벗기면 겉표지 한쪽에 "대외비"라고 적혀 있고, 속표지 다음의 "주의사항" 한쪽에 [ /500]이라고 인쇄되어 있어서 결국 500부 한정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보통은 [ /500]의 빈칸에 연번을 적어 넣게 마련인데, 나귀님이 산 책에는 아무 표시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은 재고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의사항에는 "(1) 이 著書는 室員에 限하여 閱讀토록 할 것 (2) 이 著書는 複製, 複寫, 拔萃할 수 없으며 秘密文件에 준하여 管理할 것"이라는 지침이 나온다. 인명 등의 주석은 별책으로 첨부했다.


본문은 서론, 연구 목적과 의의, 개념 소개에 이어 서양 고대, 중세, 현대의 사례를 소개하고 러시아, 미국, 일본, 구한말의 사례로 넘어갔다가, 현대 각국의 지도자 경호 제도를 소개하며 마무리된다. 부록으로 "세계암살사건일람" 도표와 "정리의궤 반차도"와 "능행도"의 도판이 수록되었는데, 아마도 조선 시대 국왕 경호의 실제 모습을 예시하는 의도인 듯하다.


1971년의 <암살사 연구> 이후 박종규는 1973년에 <암살사 연구 (속편)>도 간행했는데, 불과 1년 뒤에 육영수 피격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몰락을 예견한 셈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이 책의 간행을 중심으로 '암살을 연구했지만 정작 막진 못한 경호실장' 이야기를 영화화했다면 오히려 더 그럴싸하진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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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작가 앤 카슨이 202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양이다.(사실 '그' 성별에 '그' 지역이면 오히려 오츠나 애트우드가 받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나귀님도 몇 권 읽어본 작가이니 반갑기도 하고, 서양 고전을 바탕에 깔고 현대적 재해석을 도모한 독특한 작품 세계가 꽤 인상적이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히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수긍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저 작가의 저서인 <남편의 아름다움>에 나오는 "한정된 교미"를 황당한 오역의 사례로서 종종 언급했던 나귀님이다. 원래는 유대교에서 토라(모세오경)의 신선함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번 읽어도 항상 새로운 토라'를 '여러 번 박아도 항상 처녀 같은 영양의 음문'에 비유한 구절을 재인용한 것이어서 "좁은 음문"(narrow sex)이라고 번역했어야 한다.


이걸 발견했을 즈음, 김훈이 신작 소설에서 갓난 딸의 기저귀를 갈다 목격한 '음문'을 묘사했다가 소아성애 운운 하는 비난까지 받고 있었다. 그래서 가뜩이나 페미니즘이 득세하는 판에 모두들 기피하는 '음문'을 언급하고, 심지어 '좋은 조임'까지도 강조한 앤 카슨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한남' 작가라 불러야 하지 않나 싶어서 뭔가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김훈은 이 분야에서 전적(?)이 화려한데, <칼의 노래>에선 며칠 씻지 않은 여성의 음문에서 나는 냄새를 '젓국'에 비유하기도 했었다. 흥미롭게도 앤 카슨 역시 <남편의 아름다움>에서 조강지처를 버리고 '잘 안 씻는 여자'에게 가버린 남자를 언급했으니, 이것 역시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야말로 본색은 '마초한남충개저씨'가 아닐까 의문을 품게 하는 단서이다.


체취에 대한 집착은 중세 시대에나 유행한 줄 알았더니, 향수 전문가 루카 투린의 전기에서 어느 조향사는 '며칠 씻지 않은 여자의 냄새'가 나는 향수를 최상급이라며 소개하기도 했고, 수년 전부터 SNS를 통해 미국 십대 소녀 사이에서 유행한 이성 유혹법 중에 음문 분비물을 향수 대신 몸에 묻히는 '바빙'(vabbing)도 있었다니, 결국 유행도 돌고 도는 듯하다.


일본 만화 중에 <땀과 비누>라는 것도 있어서, 체질상 땀이 많은 여자와 그 냄새에 반해 노상 '킁카킁카' 하는 남자의 어딘가 살짝 민망한 로맨스였는데, 어째서인지 뒤로 갈수록 체취에 관한 이야기는 적어지고 일반적인 직장인 연애담에 불과해져서 실망스러웠다.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이건 짐승이건 각종 '꼬순내'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상 본능이 아닐까.


여하간 이래저래 민망한 이야기이지만, 또 일상의 일부분이기도 하니, 굳이 그걸 글로 써서 널리 알린 행동도 주책맞을 수는 있어도 비난 받을 만한 일까진 아니다. 추위에 새파래진 갓난아기의 음문이건, 좁디좁은 영양의 음문이건, 며칠 동안 씻지 않은 냄새(카슨의 표현으로는 "당신 가랑이 사이의 맛")건 간에, 작중 인물의 발언일 뿐 작가의 취향은 아닐 테니까.


아직 앤 카슨의 책을 다 읽어 보지는 않은 나귀님이니 기껏 그중 몇 권에 나온 음문과 체취 같은 지엽적인 묘사만 가지고 그의 성향이나 지향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문제의 언급을 비롯해서 각종 서양 고전에서 나온 인용문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는 점은 저 고전학자 출신 작가의 독창성인 동시에 한계선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서 찾아 본 신간 중에는 난다에서 나온 시집이 여럿 있었는데, 거기서도 각종 인명과 서명과 주석이 잔뜩 널린 것을 보면서, 나귀님처럼 고전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몰라도 일반적인 독자라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한정된 교미"처럼 번역자 단계에서부터 잘 소화를 못해 발생한 오류도 적지 않을 테니.


물론 판매야 별 문제 없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의 후광에다가, '산 놀란이 죽은 호메로스를 깨운' 사례처럼 유행에 열광하는 순진한 독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놀란의 영화 이전에는 '시는 어렵다! 서사시는 더 어렵다!'고 반발하다가, 이제는 '호메로스를 보자! 놀란은 더 보자!'고 외치는 상황이니, 조만간 '레이철 카슨은 틀렸다! 앤 카슨이 옳다!'고 하진 않을까.


한편으로는 고전 인용문을 벗겨내어 '발가벗은'(?) 앤 카슨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반드시 구름에 올라타야만 하늘을 노닐 수 있던 열자를 향해 '자네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다'며 꼬집은 장자의 말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카슨도 가끔 인용에 창작을 슬쩍 뒤섞긴 하지만, 아예 인용서와 인용문마저 허구로 지어냈던 보르헤스 정도까진 아닌 듯하니까.


게리온 단편을 번역하다 빡쳐서(?) 아예 개작까지 만들었다는 <빨강의 자서전>만 보더라도, 처음부터 게리온 단편의 개요, 번역(그런데 창작을 곁들인), 연구 과제를 줄줄이 늘어놓은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여전히 고전학자이지 작가까지는 아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제발트의 작품처럼 카슨의 작품도 결국 에세이의 연장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심지어 <녹스>와 <플로트>라는 작품은 그 외양부터 오늘날 일반적인 형태의 책과는 상당히 다르니, 어쩌면 앤 카슨이야말로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형식 면에서는 가장 파격적인 축에 속한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파격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격언도 있는 만큼, 최종적인 평가까지는 아직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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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2월,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섬 남쪽의 작은 어촌 버지오 인근의 좁은 만에 길이 20미터 가량의 참고래(긴수염고래) 한 마리가 갇혀 버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파도가 높을 때에 해안에서 먹잇감인 청어를 쫓다가 어찌어찌 그곳까지 들어왔지만, 도로 나가려고 해도 안쪽은 가뜩이나 물이 얕고 절벽 사이의 입구도 좁아 사실상 꼼짝달싹 못하고 갇힌 것이다.


마침 버지오에 머물던 동물학자 겸 저술가 팔리 모와트(1921-2014)는 뒤늦게야 소식을 접하고, 야생 상태의 고래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흥분하며 달려가지만, 막상 고래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자마자 경악하고 만다. 지역민이 고래를 향해 총을 쏘는가 하면, 관광객이 큰 배를 타고 무기력한 고래를 위협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분노한 모와트는 고래를 괴롭히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관에게도 신고하지만, 시건방진 외지인의 주제 넘은 간섭이라 생각한 까닭인지 모두들 시큰둥하게 외면하기만 한다. 모와트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래를 구할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언론을 통해 바깥 세상에도 알리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래는 죽어 버린다.


모와트가 이때의 체험을 회고한 논픽션이 <고래 죽이기(A Whale for the Killing)>(1972)인데, 1981년에는 동명의 TV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다. 나귀님도 1987년에 KBS <토요명화>에서 <고래를 쫓는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그 영화를 먼저 접했다가, 나중에 <개가 되기 싫었던 개>의 옛 번역본 가운데 하나의 역자후기를 통해 그 원작자도 모와트임을 깨달았다.


애초에 저 작가가 뉴펀들랜드의 작은 어촌에서 살게 된 까닭은, 또 다른 저서 <안 뜨려는 배>에 묘사된 것처럼 가뜩이나 고장이 잦은 돛배를 몰고 여행하다가 그곳에서 한동안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탓이었다. 하지만 고래 사건을 외부에 알리면서부터는 지역민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졌고, 마치 쫓겨나듯이 다시 돛배를 몰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는 것이 모와트의 회고다.


특정 지역의 동물 자원에 대한 외부인의 지나친 간섭에 지역민이 반발한 사례는 '리키의 세 딸들'인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 고릴라 연구자 다이앤 포시, 오랑우탄 연구자 비루테 갈디카스도 모두 겪은 바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보호 주장도 일리는 있었지만, 포시의 경우에는 이를 지나치게 과격하게 밀어붙이다가 큰 반발을 사서 결국 피살당하고 말았다.


물론 지역민의 입장에서도 반발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안 뜨려는 배>에서 모와트도 언급했듯, 그곳에서 고래가 얕은 웅덩이에 갇히거나 바위 틈에 끼이는 일은 그리 드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통행이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죽어서 부패하게 되면 그 악취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지역민에게야 이런 고래는 그저 성가신 골칫거리일 뿐이다.


이처럼 모두에게 각자의 이유가 있고, 사안마다 현실적인 한계가 있으니, 고래가 되었건 고릴라가 되었건 간에 지킬 수 있는 것은 지키되, 지킬 수 없는 것까지도 무리하게 지키라고 요구하진 말 일이다. 팔리 모와트도 불쌍한 고래에게 총을 쏘아 괴롭히는 잔혹 행위에는 항의했지만, 그렇다고 저 '리워야단'을 구출한다는 불가능한 일까지 한사코 요구하진 않았으니.


그나저나 오래 전에 본 영화며 그 원작 논픽션을 새삼스레 떠올린 까닭은 당연히 최근 부산의 해안 공원에 나타난 상어 한 마리 때문이다. 서식지로서는 딱히 좋은 환경도 아니고, 먹이 활동도 전무하다는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냈고, 지역 관청에서도 외부로의 유도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한 상황이니,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뉴스에 따르면 평소 방문객도 많지 않던 공원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인근 편의점과 커피숍의 매출이 급증하며 관광 효과가 드러나자, 상어에게 '부캉이'라는 별명이 생겨나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마스코트 채택과 관련 상품화가 고려되는 등 그 파급 효과가 상당한 모양이다.(하지만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는 동물을 마스코트화하는 것이 과연 좋을까?)


구경꾼 입장에서는 수족관의 인공 상태가 아닌 자연 상태의 상어를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반기는 듯하다. 심지어 상어를 몰아내려는 경찰과 소방의 시도에 반발하며 오히려 '부캉이'를 응원하고 있으니, 어쩌면 지난번 동물원 탈출 소동의 와중에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응원이 대상이 된 '늑구'처럼 감정 이입이 이루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온 자연'의 사례로서가 아니라 기후 변화라는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상어 한 마리의 삶에서의 교란만이 아니라, 바다며 지구 전체의 질서에서의 교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까. 물론 사람들은 늑구 때처럼 이번에도 가뜩이나 답답하던 일상에서의 교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 <고래 죽이기>에서 팔리 모와트는 얕은 물에 갇혀 죽어가는 고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괴로운 마음에 다음과 같이 썼다:


"갇혀 있는 것은 고래만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고래와 함께 갇혀 있었다. 고래의 삶의 자연적인 패턴이 교란되었다고 치면, 우리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경계가 뚜렷한 우리의 삶의 질서 속으로 뭔가 놀라운 신비가 침입한 셈이었다. 지상의 두 발 동물인 우리로선 그 신비를 차마 측량할 수 없기에, 본능적인 두려움과 폭력과 증오를 가지고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심해에서 온 이 수수께끼는 삶에 대한 인간의 치유불가능한 무지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이 장소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의 핵심이 되어 버린 이 불가해한 비밀을 거울 삼아 우리는 스스로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춰보았으니... 그 얼굴은 추악했다."("The Deeps", excerpts from A WHALE FOR THE KILLING, 1972, in THE WORLD OF FARLEY MOWAT: A SELECTION FROM HIS WORKS. Edited and with an introduction by Peter Davidson. Boston: An Atlantic Monthly Press Book, an imprint of Little, Brown and Company, 1980, 2nd printing, p.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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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알라딘에서 <에티의 여름>이란 신간 번역 소설을 광고하면서 검색창에다가 밑도 끝도 없이 "출판 역사상 가장 비상식적인 계약" 운운해서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막상 책 소개 글을 보니 영국 <텔레그래프> 지의 기사 인용문이라는 해당 구절을 "비상식적일 정도로 과감한 계약 사례"라고 또 다르게 적어 놓았기에, 도대체 원문이 무엇이었나 궁금해졌다.


어설픈 나귀님이라 구글링을 해도 해당 구절의 원문까진 발견하지 못했지만, <텔레그래프>에 게재된 해당 저자 인터뷰 기사를 보니 "책 두 권에 여섯 자리 계약"이라고 나온다. 결국 책 두 권을 간행하는 조건으로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의 선인세 계약을 했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서는 심지어 "일곱 자리 계약"(수백억 원)까지도 가능하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기존 베스트셀러 저자라든지 연예계 스타처럼 이미 그 분야나 다른 분야에서의 활약으로 고정 독자를 확보한 경우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반면, 기존 실적이 전무한 '신인'은 계약금 액수가 특히나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언론 보도를 접한 독자로선 '출판사가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많은 돈을 줬나?' 하는 의문에 해당 도서를 실제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대급 베스트셀러인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 영국 판권은 겨우 '네 자리'인 2500파운드에 팔렸지만 미국 판권이 '여섯 자리'에 팔리면서 큰 화제가 되어 흥행에 시동을 걸게 되었다. 공포 소설의 제왕 스티븐 킹의 출세작 <캐리>도 초판 양장본이 아니라 재판 문고본 판권이 '여섯 자리'에 판매되어 화제가 되면서 인기에 불이 붙은 경우다.


그런데 출판계의 고액 계약금 사례 관련 내용을 구글링하다 보니, '존 디디온 에코백 만드는 회사'(?)인 리터러리허브의 편집자 에밀리 템플이 쓴 "일곱 자리 출판 선인세의 짧은 역사"라는 글이 나온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출판계에서 나온 '여섯 자리'(수십 억대) 계약의 사례를 돌아본 내용인데, 살짝 오래 된 내용이긴 해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해당 기고문에서는 총19종의 사례를 거론하는데, 그중에는 판매와 비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양쪽 모두에서 폭망한 경우가 상당수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도 있고 아닌 책도 있는데, 번역서 중에는 10년도 못 채우고 절판된 것이 적지 않다. 결국 신인 작가의 고액 계약은 득보다 실이 많은 '도박'에 불과하다는 증거인 셈이려나.




2017 - Whitney Scharer, THE AGE OF LIGHT (100만 달러 이상)

-- 신인 작가. 13개사 경쟁. 국내 미간행


2017 - Kate Hope Day, IF, THEN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국내 미간행


2017 - Kristen Roupenian, YOU KNOW YOU WANT THIS (120만 달러) 

-- 신인 작가. 단편집. 국내 미간행


2015 - Nicole Krauss, FOREST DARK (400만 달러) 

-- 기성 작가. 단편집. 

-- <어두운 숲>(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2020)


2015 - Yaa Gyasi, HOMEGOING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출간 후 문학상 다수 수상.

-- <밤불의 딸들>(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열린책들, 2021)


2014 - Emma Cline, THE GIRLS (200만 달러) 

-- 신인 작가. 12개사 경쟁. 베스트셀러 등극.

-- <더 걸스>(에마 클라인 지음, 정주연 옮김, 아르테, 2016, 절판)


2014 - Imbolo Mbue, BEHOLD THE DREAMERS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베스트셀러 등극 및 펜/포크너상 수상

--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임볼로 음붸 지음, 구원 옮김, 코호북스, 2023)


2014 - Stephanie Clifford, EVERYBODY RISE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출간 후 반응 미미.


2014 - Charles Frazier, VARINA (300만 달러)

-- 기성 작가.


2014 - Cynthia D'Aprix Sweeney, THE NEST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베스트셀러 등극.

-- <둥지>(신시아 다프리 스위니 지음, 조동섭 옮김, 열린책들, 2019, 절판)


2013 - Garth Risk Hallberg, CITY ON FIRE (200만 달러)

-- 신인 작가. 12개사 경쟁. 베스트셀러였지만 평가는 엇갈림.


2013 - B.J. Novak, ONE MORE THING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단편집. 9개사 경쟁.


2013 - Abraham Verghese, THE MARAMON CONVENTION (500만 달러)

-- 기성 작가. 두 번째 장편. 10년 뒤인 2023년에야 THE COVENANT OF WATER로 간행. 베스트셀러였지만 평가는 엇갈림


2012 - Jennifer Egan, MANHATTAN BEACH (100만 달러)

-- 기성 작가.

-- <맨해튼 비치>(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문학동네,2019, 절판)


2011 - Karen Thompson Walker, THE AGE OF MIRACLES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베스트셀러 등극 및 호평 일색.

-- <기적의 세기>(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2014, 절판)


2010 - Kiran Desai, THE LONLINESS OF SONIA AND SUNNY (250만 달러) 

-- 기성 작가. 15년 뒤인 2025년에야 간행되어 부커상 후보에 오름.


2009 - Yann Martel, BEATRICE AND VIRGIL (320만 달러)

-- 기성 작가. 베스트셀러 등극.

-- <20세기의 셔츠>(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2018)


2008 - Tom Wolfe, BACK TO BLOOD (700만 달러)

-- 기성 작가. 잠깐 베스트셀러였다가 폭망함.


2008 - Carlos Ruiz Zafón, THE ANGEL'S GAME (400만 달러)

-- 기성 작가.

-- <천사의 게임>(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문학동네, 2022)




결국 출판계도 영화계나 연예계나 스포츠계와 마찬가지여서, 사실상 뭐가 되고 안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감'만 가지고 도박을 건다고 봐야 하겠다. 아이돌 업계에서도 수십억에 달하는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 못하는 경우가 많고, 여자친구나 리센느처럼 '중소돌의 기적' 사례가 회자되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분야에서나 '깜깜이 투자'는 위험하다고 봐야 하려나.


이처럼 위험 부담이 크다 보니,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다 들먹여서 선전하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각종 해외 매체의 베스트셀러임을, 다음은 국내외 유명 대학의 필독서 목록에 포함되었음을, 심지어 이름조차 낯선 각종 문학상 수상 실적을 들먹이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정작 소설 자체의 재미나 가치보다는 외적 기준만을 속물적으로 들먹인 셈이었으니 우습다. 


이쯤 되면 머지않아 작가의 외모며, 취미와 특기며, 가족 및 대인 관계며, 이메일과 전화번호 같은 각종 개인 정보마저 판매에 활용되지는 않을까. 1990년대에는 한국 문학 분야에서 젊은 여성 작가의 얼굴을 광고에 큼직하게 내보내며 '외모 마케팅'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났다고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런 작가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 못하니 그 허망함을 알 수 있다.


신인 작가에게 계약금을 많이 줬다는 사실이 마케팅에서 활용되는 현실이 더욱 한심한 까닭은, 어떤 집을 가리켜 '예쁜 집' 대신 '얼마짜리 집'이라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속물적인지를 전세계인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인 책에서 무척이나 강조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부동산에서도 집값 따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으니, 책이라고 다를 것은 없는 걸까...



[*] Emily Temple, "A Brief History of Seven-Figure Book Advances", Literary Hub, May 8, 2018.

--- https://lithub.com/a-brief-history-of-seven-figure-book-advances/


[**] 나귀님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에티의 여름>의 경우, 출간 후에 몇몇 매체에서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고, 몇몇 문학상도 수상하거나 후보로 올랐으며, 출간 직후인 2025년 여름에는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찾아볼 수는 있었지만, 과연 그 정도의 성과를 가지고 "출판 역사상 가장 비상식적인 계약"인지 "비상식적일 정도로 과감한 계약 사례"인지가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살짝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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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자진사퇴 형식으로 낙마했다. 앞서 낙마한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만 보면 장관은커녕 의원 출마 단계에서부터 일찌감치 걸러냈어야 마땅한 인물 같은데,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무사했을 판에 굳이 한 자리 더 해먹겠다고 나섰다가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말았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나저나 해당 인물의 코로나 백신 로비 의혹에 대한 해명 과정에서는 무려 '구멍난 솥의 논리'까지 등장하기에 희한한 일이다 싶었다. 프로이트의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 소개된 농담 중 하나인데, 누군가 이웃에게 솥을 빌려주었다가 나중에 돌려받고 보니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솥을 망가트렸다며 주인이 따지자 이웃은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첫째, 나는 솥을 빌린 적이 없다. 둘째, 내가 돌려줄 때에는 구멍이 없었다. 셋째, 내가 빌렸을 때부터 구멍이 있었다.' 물론 뻔뻔한 이웃이 이 세 가지 주장을 한꺼번에 내놓았을 리는 없다. 십중팔구 처음에는 '내가 언제 솥을 빌렸느냐?'고 발뺌하다가 궁지에 몰리자 '솥을 빌린 것은 맞지만...' 하고 시인한 다음,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다 자승자박을 한 셈이 아니려나.


문제는 이 세 가지 주장을 따로따로 놓고 보았을 때에는 별 문제 없지만,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상호 모순이므로 궤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번 장관 후보자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충분히 좋은 내용이라 국익에 도움이 된다 생각해서 청탁했다'고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제가 문과라서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까지는 몰랐다'고 상반되는 주장을 내놓아서 빈축을 샀다.


차라리 애초부터 '내용은 잘 몰랐다'고 잘못을 일부 시인한 다음, '보건이며 국익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너무 성급했었다'고 솔직히 사과했더라면 최소한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라도 보였으니 참작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오만하게도 그때그때마다 지적에 대해서만 변명하고 넘어가다 보니 '구멍난 솥'처럼 상호 모순이 드러났던 것이다.


앞서 낙마한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애초에 겸손하지 못하고 거만하게 굴다가 자멸한 셈이 아닐까. 물론 의원에다 장관 후보까지 오른 사람이니 퍽도 잘난 편이었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물론 쓰다 보니 나귀님도 사소한 것부터 상당한 것까지 최근에 저지른 이런저런 잘못들이 떠올라 살짝 뜨끔하기는 하다만...



[*] '구멍난 솥' 농담은 프로이트 관련서에서 오역을 촉발하기 쉬운 내용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원래는 구구절절 긴 변명 속에서 따로따로 등장하는 주장을 위와 같이 상호 모순인 세 문장으로 요약하다 보니 얼핏 보아서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린 마이에르의 만화 <프로이트>에서도 딱 그 부분에서 오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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