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조나단과 카리나가 어느 기사식당에 갔더니 벽에 '코 풀지 마세요. 싸움납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얼마 뒤에 <틈만나면>이란 프로에서 유재석 일행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다른 식당 벽에도 비슷한 경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제야 이런 경고가 지금은 의외로 보편적으로 통하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나귀님의 입장에서 이런 경고가 뭔가 의외다 싶었던 까닭은 식사 자리에서 코를 푸는 일이 상당히 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방에 다 들리게 코끼리 소리를 내며 코를 푸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그저 콧물을 닦아내거나 살짝 코를 푸는 정도는 충분히 용인되지 않나 싶으니까. 그래서 생각을 더듬어 보니, 예전과는 달라진 식사 예절이 적지 않은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하다고 느낀 변화는 음식 냄새를 맡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락실>에서 음식을 걸고 게임을 할 때마다 출연자들이 음식에 코를 가까이 대거나, 거꾸로 음식을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거북스런 생각이 들었다. 나귀님 어렸을 때에만 해도 음식 냄새는 손을 저어 가져다 맡아야지, 코를 갖다 대면 천박하다고 배웠으니.


그런데 지금은 대놓고 음식에 코를 갖다 대는 것을 보니, 혹시 나귀님이 모르는 사이에 국립국어원이나 뭐 비슷한 기관에서 일종의 유권 해석이라도 내린 것이 보편화되었나 의심해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우리에게는 낯설었던 서양 예절이 하나둘씩 보편화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도 들고.


예를 들어 식탁에서 코 푸는 행동은 과거에만 해도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서양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거꾸로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던 밥 먹고 트림하기가 서양에서는 무례하게 간주된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고 말이다. 최근 논란이 된 면치기며 쩝쩝 소리 같은 것도 한때는 꽤 자연스런 습관이었다.


따라서 언제부턴가 트림을 금기시하고 코 풀기를 용인하는 것이 뭔가 더 교양 있고 세련된 행동인가 싶어 눈치를 보던 나귀님으로선, 이제 와서 다시 코 풀기를 금기시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고 하니 헛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음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 매운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흐르는 콧물을 어찌하란 말인가. 그냥 음식과 함께 삼킬까.


물론 <놀면 뭐하니>에서 이이경의 면치기 장면이야 외국에 나가서까지 추접스러우니 비판의 여지가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남의 식사 장면을 굳이 방송에 내보내고, 또 그걸 구경한다는 것도 추접스럽기는 마찬가지다.(물론 나귀님은 심은경이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앨범을 최애로 꼽으면서도 그게 스누피 만화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던 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만).


한때는 세계화며 인터넷으로 인해 국가의 경계며 문화적 차이가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오더니만, 지금은 오히려 매체의 발달로 문화적 차이가 더 부각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그런 차이가 더 널리 알려지다 보면, 결국 새로운 규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일부나마 생기면서, 결국에는 차이가 사라지거나 희석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보면 예절이나 관습은 불과 수십 년 사이에도 조변석개할 수 있으니, 어느 한 가지를 놓고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일 수 있겠다. 한때는 축첩이나 외도에 관대하고 이혼과 동거에 엄격했던 사회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평가가 역전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테니. 어쩌면 훗날 코 풀기뿐만 아니라 면치기도 전세계 공통이 되지 말란 법도 없겠고.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새뮤얼 버틀러의 소설 <에레혼>이다. 지금은 미국에 있는 무슨 유기농 마켓 이름으로 더 유명한 모양인데, "어디에도 없는"(nowhere)이라는 단어를 뒤집은 저 가상 국가의 이름 유래는 바로 이 소설이다. 이곳은 이름뿐 아니라 풍속도 우리의 기존 인식과 정반대여서, 예를 들어 질병은 범죄로 간주되는 반면 범죄는 질병으로 간주된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설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축복처럼 여겨졌던 장수가 지금은 각종 질병을 달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형벌처럼 간주되기도 하니, 그저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친 김에 안락사며 존엄사도 합법화되면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 즉 "어디에도 없는 곳"에 더욱 가까워지는 셈일까...



[*] <에레혼>은 김영사에서 나온 번역서가 있는데 (당시 같은 출판사에서 저서를 여러 권 내놓은 과학 칼럼니스트 이인식의 기획으로 간행한 시리즈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에 하나 누락된 내용이 있다. 주인공이 처음 에레혼에 근접했을 때에 들은 기묘한 음악 소리의 악보가 나귀님이 가진 원서에는 들어 있는데 번역서에는 빠져 있는 거다. 그게 뭐였나 궁금해서 다시 구글링해 보니, 무려 헨델의 하프시코드 협주곡의 일부분이라는 누군가의 설명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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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로 민족사 책이 여러 권 올라왔기에 한동안 모으던 경전 시리즈에서 빠진 것이나 채워볼까 싶어 뒤적이다가, <아함경> 번역자인 돈연의 이름을 보고 문득 그 근황이 궁금해 구글링해 보니 의외로 2023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나온다. 심지어 그 배우자로 화제가 되었던 첼리스트 도완녀는 신내림을 받아 현재는 무당이 되었다니 더욱 놀라운 일이고.


이들의 사연은 이미 20여 년 전에 방송과 서적을 통해 널리 알려졌었다. 불교계의 유명한 학승이 서울대 출신 첼리스트와 눈이 맞아 환속했고, 이후 시골에서 함께 자녀를 기르며 된장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나귀님도 역시 방송을 통해 두 사람의 사연을 처음 접했다가, 돈연의 필생 목표가 불경 원전 번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아쉽게도 불경 번역 사업은 돈연의 거처 겸 연구실에 화재가 발생하며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고, 이때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전재성이 잿더미에서 건져낸 일부 원고를 가지고 재작업에 몰두한 끝에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설립함으로써 본격적인 원전 번역서가 간행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후 돈연은 번역과 된장 사업 모두를 접고 나서 오랫동안 와병 생활을 했다나.


돈연의 경우에는 <아함경> 완역을 목표로 두고 매진하며, 후세의 해석보다 원문의 이해에 천착하겠다는 의미로 '아함으로 아함을 쪼갠다'는 발언을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목표는 결국 동료인 전재성이 거질의 '니까야' 시리즈를 줄줄이 간행함으로써 대신 이루었다고 봐야 맞겠다.(다만 원전 번역에 들어간 노력에 비례해 책값이 상당히 비싼 것이 아쉽다).


전재성의 '니까야'(다만 한역 아함경과 완전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전한다) 시리즈는 처음에만 해도 신국판 하드커버로 적게는 다섯 권에서 많게는 십여 권씩 간행되었는데, 지금은 기독교의 성서처럼 얇은 종이에 단권으로 간행되는 모양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외에 초기불전연구원이라는 곳에서도 원전 번역으로 '니까야'를 여러 권 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규모와 의의 모두를 감안하면, 불교계의 오랜 숙원이었다는 불경 원전 번역이 과거 한글대장경 간행 사업처럼 일원화되지 못하고 여럿으로 나뉘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한글대장경 역시 사업 막바지에 접어들어서는 완간 목표 달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실해진 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으니, 어느 쪽이든 간에 아쉬움은 남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 누군가의 회고에서 본래 대처승의 제자인 돈연의 자질이 탁월함을 아까워 한 어느 비구승이 자기 제자로 들어오라고 권유하자, '부처 되는 데에 스승이 누군지가 중요하냐'고 반문하여 오히려 상대방이 탄복했다던 일화를 본 것도 같은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대처승이었다던 은사는 단지 송광사에서 대처승을 감싸며 공존을 도모한 비구승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오히려 한글대장경 번역 사업 초창기에 봉은사에서 수년간 법정을 보좌했던 이력을 들어 법정 문하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는 듯한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역량과 인연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만 셈이니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 물론 본인은 승려 출신답게 그것 역시 시절 인연이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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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최화정의 유튜브에서 바로 위층에 산다는 동료 탤런트 윤유선의 집을 방문하는 내용이 있기에 한 번 눌러 보았다. 윤유선이라면 아역 연기자 출신으로 성인 배역까지 안착한 사례로서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현역이 아닐까 싶은데, 뽀빠이 이상용이 사회를 맡은 <모이자 노래하자> 시절부터 봐 왔으니, 사실상 임성훈 못지않게 오래 본 얼굴이라 해야 맞겠다.


예전에 어느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서 운전 중 교통 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끊게 되어서 투덜투덜 했더니, 판사인 남편이 '하여간 범죄자는 자기 죄를 시인하는 법이 없다'며 나무라기에 머쓱해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던 것도 기억난다. 최근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도 잠깐 맡았었는데, 반갑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진행이 썩 매끄럽지는 못해서 듣기가 좀 불편했다.


그나저나 윤유선의 집 거실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물건이 놓여 있었으니, 바로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화집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화집이 아니라, 한때 '책을 사면 받침대를 끼워준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가로 70센티미터, 세로 110센티미터의 초대형 화집이었는데, 특유의 삼색 삼발이 받침대 위에 얹힌 상태로 윤유선의 집 거실 한쪽에 놓여 있었던 거다.


호크니 그림은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으니, 대신 화집을 놓아두고 하루에 한 작품씩 감상한다는 것이 윤유선의 설명이다. 그림 애호가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겠다 싶은데, 재미있는 사실은 2016년에 간행된 그 초대형 화집조차도 판매 가격이 무려 400만 원이어서 일반인은 감히 쳐다볼 엄두조차 못 났다는 거다.(지금은 알라딘에서 무려 850만 원에 팔고 있다!)


호크니 화집을 간행한 독일 출판사 타셴은 이와 유사한 초대형 한정판을 여럿 간행했다고 알고 있는데,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면 가장 비싼 것은 역시나 호크니의 MY WINDOW라는 한정판 화집(610번)이다. 가격이 무려 2300만 원이어서 3% 마일리지만 해도 69만 원에 달하는데, 해외 가격이 3500달러(현재 4800만 원)였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저렴하다고 해야 할까.


그 다음으로 비싼 책이 MURALS OF TIBET(티벳 불화)인데, 이건 겨우(?) 1800만 원밖에는 안 한다. 호크니 초대형 화집처럼 받침대를 끼워주는 상품 중에는 애니 라이보비츠의 우피 골드버그 사진집이 1100만 원으로 가장 비싸다. 물론 그 가격만 놓고 보면 받침대가 아니라 아예 호크니 저택의 방 한 칸이라도 잠깐 빌려주어야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런데 타셴에서는 화집 말고 받침대만 팔기도 한다. 묵직한 화집까지 충분히 지탱하는 두툼한 투명 플라스틱 재질의 튼튼한 물건인데, 알라딘에서도 다양한 크기와 색깔에 따라 7만 원대에서 20만 원대까지 다양한 종류로 판매하니, 각자의 용도와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구입하면 되겠다. 이거에 비하자면 알라딘 굿즈로 나오는 독서대는 정말 장난감 수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예전에 X자 형태의 투명 아크릴 타셴 받침대가 알라딘 중고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저게 중고면 도대체 어떤 상태일지, 또 어떻게 포장해서 배송할지 의문이라 구입하진 않았는데, 구글링해 보니 납작한 상자에 들어 있는 납작한 판대기를 X자 형태로 교차시켜 완성하는 방식이다. 물론 멀끔한 외관에 비해 활용도는 떨어지는 듯해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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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책을 새로 냈다고 알라딘에서 광고하기에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했는데, 광복절 특사로 윤미향과 함께 사면되었다기에 씁쓸했다. 이른바 '법잘알'이면서도 '법꾸라지' 행보를 보인 점에서는 현재 구치소에서 속옷 시위 중이라는 윤석열과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닌 것은 아닌가 싶고, 그 지지자들 역시 윤석열 지지자들과 별로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만.


그러고 보니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도 사면으로 풀려났었는데,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정치적 탄압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본인이 죄를 안 지었다고 주장하면, 사면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았을까. 조국의 경우는 김훈의 지적처럼 '내새끼 지상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데, 본인은 무고하다고 항변하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조국의 신간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출판사가 바로 김영사라는 사실이었다. 이 출판사는 이미 이재명과 문재인의 책을 간행했으니 조국의 책도 충분히 간행할 만해 보이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안철수와 이명박의 책도 간행했고, 심지어 최근 김건희 특검에서 문제의 핵심으로 대두한 통일교 교주 문선명과 한학자 부부의 책도 간행한 바 있었다.


어찌 보면 한 가지 분야나 노선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종합' 출판사라 할 만하고, 또 어찌 보면 일단 돈만 되면 뭐든지 내고 보는 상업주의로 일관하는 출판사인가 싶기도 하다.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작가만큼 뻔뻔한 사람은 없다. 물론 출판인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이라던 프랑스 출판계의 전설 가스통 갈리마르의 일침이다.


나귀님이야 예전부터 김영사의 성장 과정을 꾸준히 지켜본 독자로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김영사의 사주 김정섭은 불교학자 백성욱의 제자로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한편 재가 불자로서 수련원도 운영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초기에는 <리그베다>, 구르지예프의 <위대한 만남>, 간디의 <비폭력 저항> 같은 영성 분야의 번역서도 여러 권 간행한 바 있다.


초기의 역작으로 아직까지 절판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간행되는 책 가운데 하나가 일본의 불교학자 나카무라 하지메의 <불타의 세계>인데, 이후 선어록 등 불교 서적도 여러 권 간행했다고 기억한다. 물론 80년대에 소설 <비밀일기>로 베스트셀러 출판사가 되고, 90년대에 김우중과 스티븐 코비의 책 같은 밀리언셀러를 연이어 내놓으면서부터 성향이 확 달라졌지만.


김영사의 놀라운 성장세와 연관해서 항상 언급되던 사람이 전성기에 사장으로 재직한 박은주이다. 본래 편집부 직원 출신이어서 <바이오리듬>이라는 초기의 편역서에는 저자로도 이름을 올린 바 있었는데, 이후 자수성가한 여성 대표라는 희귀성 때문인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널리 이름을 알렸다.(물론 그 와중에 김희선 화보 사건으로 명성이 많이 실추되었지만).


그랬던 박은주가 마지막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김영사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며 사주 김정섭을 횡령 혐의로 고발했던 사건에서였다. 심지어 이 출판사가 사실상 사이비 종교 단체에 불과하고, 자신은 월급까지 상납하며 착취당했다는 놀라운 폭로까지 내놓았다. 이에 김정섭도 박은주를 횡령 혐의로 맞고소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후 재판에서는 김정섭이 무혐의 판결을 얻어낸 반면, 박은주는 유죄가 인정되어 구속되었다. 횡령 혐의 중에는 김영사에서 자서전을 간행한 A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것도 있기에 이니셜만 보고 안철수인가 싶었는데, 김규환이라는 또 다른 정치인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박은주는 2018년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전하는데, 이후의 종적은 알 수 없다.


언론 보도를 검색해 보니, 2023년 김영사 사주 김정섭(훗날 '김강유'로 개명)이 사망하며 나온 기사마다 박은주에 대해서도 한 마디씩 언급한 것이 전부이니, 한때의 스타 출판인으로서는 씁쓸한 몰락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김영사는 박은주의 퇴장과 김정섭의 사망과 사이비 종교 단체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스트셀러를 줄줄이 내며 잘 나가고 있는 듯하다.


김영사는 1976년에 설립되어 무려 반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인데, 그간의 행적으로 보면 앞서 언급한 논란을 비롯해 이래저래 실망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베스트셀러도 많이 내놓았지만 출판사를 대표하는 명저가 무엇인지 꼽아 보라면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 같은 해에 설립된 한길사가 베스트셀러와 묵직한 인문서 모두를 내놓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판테온북스의 앙드레 쉬프랭은 모회사 랜덤하우스의 공동 설립자 베네트 서프와 도널드 클로퍼가 좋은 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관한 출판인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두 사람 이후의 랜덤하우스가 상업주의에 빠져 초심을 잃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문득 김영사도 차라리 정신세계사처럼 작고 소듕한 컬트 출판사로 남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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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모기 때문에 깨어 부산떨다 보니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바깥양반도 물파스 바르고 화장실 다녀오고 하다 보니 더는 못잘 것 같다며 낮에 읽다 만 책을 집어들기에, 얼떨결에 새벽에 나란히 앉아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 내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존 업다이크의 초기 단편을 완독하게 되었고.


이 작가의 단편 번역서가 있다는 사실은 한동안 잊고 살았다가, 얼마 전 "토끼" 시리즈의 재출간 소식에 그간 모아 놓은 절판본을 한 번 정리하려 책장을 뒤지면서 비로소 상기했다. 70년대 세계문학전집 유행의 끝자락에 등장해서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진 금성출판사의 120권짜리 시리즈에 <달려라 토끼>와 함께 무려 열두 편이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존 업다이크는 무려 반세기 동안 작가로 활동하며 장편 소설 23종, 단편집 18종, 시집 12종, 아동서 4종, 논픽션 12종을 펴냈다고 전한다. 금성출판사 전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1959년에 간행한 첫 단편집 <같은 문(The Same Door)>에 실린 총16편 (흥미롭게도 하나같이 <뉴요커>에 먼저 게재되었던 작품들이라고 한다) 가운데 4분의 3에 해당하는 다음 12편이다.



1. 필라델피아의 친구들 (Friends from Philadelphia)

2. 에이스 인 더 홀 (Ace in the Hole)

3. 내일이, 또 내일이... (Tomorrow and Tomorrow and So Forth)

4. 치과 의사의 의혹 (Dentistry and Doubt)

5. 소년의 휘파람 (The Kid's Whistling)

6. 불이 켜질 무렵 (Toward Evening)

7. 그리니치 빌리지의 눈 (Snowing in Greenwich Village)

8. 누가 노란 장미를 노랗게 만들었는가? (Who Made Yellow Roses Yellow?)

9. 그의 전성기 (His Finest Hour)

10. 1조 피트의 천연 가스 (A Trillion Feet of Gas)

11. 근친상간 (Incest)

12. 악어 (The Alligators)



오 헨리나 모파상의 한 번 읽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단편들과 비교했을 때, 진지한 주제와 세심한 묘사가 돋보이기는 했지만 뭔가 살짝 애매하거나 미진한 느낌도 솔직히 없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었던 "근친상간"조차도 막상 읽어보니 제목에서 가리키는 상황이 도대체 어디 나오는가 싶어 의아했으니까.


일각에서는 훗날 더 거대하게 자라날 작품 세계의 씨눈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숨어 있다고도 평가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에이스 인 더 홀"은 운동부 스타 출신 주인공이 직장을 때려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마주한다는 내용이라 "토끼" 시리즈의 원형으로 평가되고, "그리니치 빌리지의 눈"은 훗날 별도의 단편집으로 나온 "메이플" 연작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최초로 발표된 단편 "필라델피아의 친구들"이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소년이 저녁에 갑자기 여사친 집에 찾아온다. 여사친은 그가 자기에게 마음이 있어 왔나 싶어 반색하지만, 소년은 의외로 그녀의 아버지에게 용건이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손님이 오셔서 술 심부름을 가야 하니, 읍내까지만 차로 좀 데려다 달라는 것이다.


여사친의 아버지는 의외로 순순히 부탁에 응하고, 아예 값비싼 자기 차를 소년이 직접 운전하게 허락도 하지만, 고학력자인 소년의 부친이 저학력자인 자신보다 돈을 못 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꼬집는 말에서 열등감에 사로잡힌 면모도 보여준다. 읍내에 도착하자 소년은 여사친과 함께 차에서 기다리고, 미성년자인 소년 대신 여사친의 아버지가 술을 사러 간다.


무슨 술을 살까 묻자, 소년은 '값싸고 좋은 술'로 부탁한다며 2달러를 건넨다. 잠시 후 술을 사온 여사친의 아버지가 거스름돈도 주지 않자 소년은 너무 비싼 걸 샀나 싶어 불안해 하고, 뒤늦게야 거스름돈치고는 너무 많은 금액을 건네받자 완전 싸구려로 샀나 싶어 또 불안해 하는데, 부녀와 작별 후 살펴본 술병에는 '샤토 무통 로칠드 1937'이라 적혀 있었다.


업다이크의 단편 중에는 펜실베이니아의 가상 마을 올링어를 무대로 하는 것들이 여럿이어서 훗날 <올링어 이야기(Olinger Stories)>(1964)로 별도 간행되기도 했는데, 거기 수록된 11편은 하나같이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성장 소설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금성출판사 전집 수록 단편 중에서는 "악어"와 "필라델피아의 친구들"이 <올링어 이야기>에도 들어간 작품이다.


그런데 첫 단편집에 있는 작품들을 읽고 나니 내친 김에 업다이크의 다른 단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최근 여러 번 다시 꺼내 보았던 시사영어사의 현대미국문학전집에도 몇 편쯤 있음직하기에 확인해 보니, 1962년에 나온 두 번째 단편집 <비둘기 깃(Pigeon Feathers and Other Stories)>에 수록된 총19편 가운데 5분의 1에 해당하는 4편이 제6권에 수록되어 있었다.



1. 월터 브릭즈 (Walter Briggs)

2. 도피 (Flight)

3. 마술사는 엄마를 때려야만 할까? (Should Wizard Hit Mommy?)

4. 비둘기 깃 (Pigeon Feathers)



이중에서는 "도피"와 "비둘기 깃"이 <올링어 이야기>에도 재수록되었다고 전한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편집의 표제작인 "비둘기 깃"이었는데, 순진했던 소년이 독서를 통해 신앙의 위기를 겪고 허무주의에 사로잡힐 뻔하다가, 헛간을 어지럽히는 야생 비둘기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땅에 묻는 과정에서 에피파니를 통해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내용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비둘기 깃은 소년이 삶의 신비를 새삼스럽게 깨닫는 계기가 된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비둘기의 깃털조차 오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이런 미물조차 세심하게 창조한 하느님이 나를 비롯한 인간에게 잔인할 리 없다는 확신을 품게 된 것이다. 삶의 의미를 알 수 없어 하던 소년은 나름대로의 고민과 깨달음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지게 된다.


물론 나귀님의 취향에는 시사영어사 전집에서 업다이크 다음에 수록된 버나드 맬러머드의 단편이 오히려 딱이기는 하다. 맬러머드의 단편은 쉽게 말해 내가 읽고 남에게 구연했을 때에도 비슷한 감동을 자아낼 만큼의 선명한 줄거리가 특징인 반면, 업다이크의 단편은 자질구레한 묘사가 강점이다 보니 읽으면서는 감탄하더라도 금세 내용을 잊어버리게 되고 만다.


맬러머드의 "요술통"에서는 미혼 랍비가 유대인 전문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지만, 허름하고 미심쩍은 중매장이 할아범이 소개하는 여자마다 성에 차지 않아 퇴짜를 놓는다. 그러다 하루는 중매장이가 건네준 봉투 속 사진 속에서 발견한 여자의 모습에 반해 만남을 신청하는데, 늘 자신만만했던 중매장이도 이때만큼은 당황하면서 사진을 빼앗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여자가 도대체 누구냐는 랍비의 물음에 모르셔도 된다고 둘러대던 중매장이는 상대방의 집요한 요구에 결국 사실대로 말한다. '내 딸년이오, 천벌을 받아도 아쉽지 않을 만큼 타락한 딸년이오!' 놀란 랍비는 마음을 접으려 노력하지만, 일주일이 지나 수척한 모습으로 중매장이를 찾아와 딱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하고, 중매장이도 마지못해 승낙한다.


단편 "감옥"에서는 구멍가게 주인인 중년 남자가 어느 날 단골 가운데 하나인 어린 소녀의 물건 훔치는 모습을 목격하고 고민에 빠진다. 이때부터 소녀를 유심히 관찰한 남자는 점점 대담해지는 도둑질에 착잡함을 느끼고, 젊은 시절 품었던 이상을 되살려 범죄자를 교화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극적인 참회 장면을 상상하며 흐뭇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뒷방에서 역시나 흐뭇한 상상에 빠져 있던 남자는 갑작스러운 고함 소리에 놀라 가게로 나온다. 알고 보니 문제의 소녀가 또 물건을 훔치다가 남자의 아내에게 걸린 것이었다. 도둑년 운운 하는 아내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남자는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지만, 화가 난 아내가 계속해서 소녀를 향해 언성을 높이자 자기도 모르게 아내의 뺨을 갈긴다.


남편의 이유 없는 폭행에 아내는 망연자실하고, 남자도 아차 싶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가게에 모인 구경꾼을 헤치고 소녀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어머니는 주인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싹수가 노란 년이라느니, 오늘 아주 요절을 내겠다느니 폭언을 퍼부으며 딸을 끌고 나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에게 소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메롱 혀를 내민다.


방금 설명한 맬러머드의 단편 2종의 줄거리는 그저 기억에만 의존해서 서술한 것인데, 워낙 선명한 줄거리와 특이한 반전으로 한 번 읽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는 까닭이다. 물론 기껏 업다이크의 단편 이야기를 하다가 맬러머드의 단편을 예찬하니 살짝 민망하기도 하지만, 뭐, 나중에 맬러머드 이야기 하다가 업다이크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


물론 업다이크의 단편 중에도 인상적인 줄거리와 반전을 지닌 것이 없지 않은데,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라는 희한한 제목으로 간행된 (물론 그림 동화의 "노간주나무"에 나오는 노랫말이기는 하지만) 고전 동화 재해석 단편집에 수록된 "아일랜드의 푸른 수염"이 그렇다. 제목 그대로 아일랜드를 여행하던 남자가 아내를 죽이고 싶어 하는 내용이다.


중년을 지나 노년을 앞둔 남자는 세 번째 아내와 함께 아일랜드에서 도보 여행 중인데, 여자가 사사건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바람에 점점 증오가 커져 급기야 살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소변이 급해 비탈에 쪼그려 앉은 아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마지못해 손을 붙잡아 주던 남자는 이러다가 그냥 손을 놓아버리면 간단하게 불평꾼을 제거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내의 오줌 냄새를 맡다 보니 새삼스레 자기네가 처음 어떻게 호감을 갖게 되었는지가 기억났고, 그렇게 생각을 되짚던 남편은 이제껏 불평꾼으로만 알았던 아내의 주장이 하나같이 정당했음을 깨닫는다. 즉 음식이 맛없다는 말은 진짜 음식이 맛없었기 때문이고, 발이 아프다는 말은 진짜 운동화가 발에 안 맞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한때 사랑했던 마음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뒤바뀐 것은 물론이고, 급기야 미움 때문에 명백하고도 정당했던 주장조차도 불평이나 짜증으로 치부하며 외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남편은 자신의 무지와 무심을 자책하게 되고, 다시 한 번 애정 넘치는 부부 관계를 회복하려 다짐하는 한편으로, 이제는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에 회한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단편에 나타난 의사소통의 실패는 업다이크의 초기 작품에서 두드러진 요소라고도 할 수 있을 법한데, 특히 그로 인한 부부의 갈등과 파국이 자주 묘사되었던 듯하다. 대표작 "토끼" 시리즈나 "메이플" 연작 단편의 줄거리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감안해 보면, 20세기 후반 미국의 풍속도를 가감 없이 묘사한 작가라는 평가도 나름 일리 있어 보인다.


"토끼" 3부작과 "메이플" 연작을 읽은 것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순진했던 나귀님이다 보니 거기 묘사된 미국 중산층 부부의 막장 드라마가 전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낯설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주인공의 심정이며 행동에 공감되는 바가 적지 않으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업다이크 소설을 다시 읽을 적기인 것인가 싶기도 하다.






[*] 근데 이건 또 언제 읽고 정리해서 끄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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