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장안의 화제라는 드라마 <옥씨부인전>이 무려 "마르탱 게르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라기에 흥미가 생겼다. 물론 관심이 돋은 까닭에 드라마까지 봤다는 뜻은 아니고, 저 중세 프랑스의 기묘한 일화를 서술한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책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는 뜻일 뿐이다.
드라마 줄거리의 또 다른 축은 이항복의 "유연전"이라는데, 그러고 보니 작년 말엔가 당쟁을 '중의 머리카락과 처녀의 불알'로 풍자했다는 그의 일화가 문득 생각나서 <국역 백사집>을 뒤적인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처녀의 불알'이 아니라 '고자의 불알'이라고 해서 살짝 실망했었지만.
어쩌다 보니 또다시 아랫도리 이야기로 돌아간 나귀님인데, 마침 "마르탱 게르 이야기"에 대한 몽테뉴의 기록을 살피다 보니, 저 에세이스트 역시 남자가 하루에 몇 번을 할 수 있느냐, 여자는 하루에 몇 번을 원하느냐 하는 외설스러운 이야기를 시치미 떼고 은근슬쩍 잘도 늘어놓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라면 몽테뉴보다는 동시대인 브랑톰이 한 수 위일 법하고, 비록 최악의 오역본이기는 하지만 그의 풍속담이 이미 우리나라에도 나와 있으므로 자세히 설명해 볼 만하지만, 여하간 오성부원군을 위시한 다른 이야기는 나중으로 기약하고 일단은 "마르탱 게르"에 집중해 보자.
줄거리는 꽤나 기묘하지만 의외로 단순하다. 마르탱 게르라는 남자가 아내를 두고 가출했다가 몇 년 만에 돌아와 재결합했는데, 이후 그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친척이 나와서 법적 분쟁이 벌어졌고, 뒤늦게 진짜 마르탱 게르가 귀향하면서 가짜 마르탱 게르가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몽테뉴도 <수상록>의 "절름발이에 관하여"라는 장에서 짧게 언급한 바 있었지만, 오늘날 이 내용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나 중세 프랑스 역사 전문가인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가 저술하여 이른바 미시사 분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다.
흥미로운 점은 데이비스가 애초부터 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장클로드 카리에르와 다니엘 비뉴가 공동으로 집필하던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 역사 전문가로서 자문을 맡은 것을 계기 삼아, 본인의 말로는 영화/시나리오의 비역사성을 극복하기 위해 집필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련 사료가 부족하다 보니 데이비스도 저서 대부분을 배경 설명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고, 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짧은 분량과 흥미로운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는 오히려 산만하고 지루한 느낌을 준다.
아울러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사료의 부족을 상상으로 때운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미시사란 무엇인가>에 수록된 로버트 핀레이의 "마르땡 게르 다시 만들기"가 그런 비판인데, 마침 데이비스의 반박문 "절름발이에 대하여"와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증거와 가능성"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핀레이는 데이비스가 사료보다 상상에 의존한 경우가 많으니 그 결과물도 역사보다 소설에 가깝다고 꼬집고, 데이비스는 핀레이가 비판의 근거로 삼는 전통적 해석 역시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반박하며, 긴즈부르그는 역사와 소설의 경계가 항상 모호했었다고 지적하며 데이비스를 두둔한다.
나귀님 같은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데이비스는 굳이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 가려다 '에바' 한 것처럼도 보인다. 아내의 모호한 행동을 "여성의 주체성"으로 해석하고, 가짜의 사기 행각을 스티븐 그린블랫의 "자기 형성" 개념으로 해석한 것처럼 가장 비판을 받는 부분도 그렇다.
그런 식이라면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청조가 여성이자 무일푼인 주제에 남성이자 재벌 후계자를 사칭한 것도 "자기 형성"으로 해석할 수 있고, 어이없게도 그런 얄팍한 술수에 넘어가서 동조했던 남현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여성의 주체성"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
미국 공중보건의 역사를 서술한 낸시 톰스는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의 "순수와 불결" 개념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에이즈 창궐 당시 피임도구 사용을 권장했던 실제 사례에도 무작정 적용하면 오히려 부조리해진다고 지적한 바 있었는데, 혹시 데이비스도 비슷한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닐까.
'가짜 마르탱 게르'와 전청조 모두 뛰어난 말재주와 대담함으로 경제적 이익을 도모했고, '마르탱 게르의 아내'와 남현희 역시 그 행동에 여전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에 "자기 형성"과 "여성의 주체성"을 끼워 맞추기는 어려워 보인다.
데이비스를 겨냥한 핀레이의 비판은 역사가의 서술이 어디까지나 사료가 보여주는 곳까지만 가야 한다는 뜻이므로 지당할 수밖에 없으며, 비록 긴즈부르그의 지적처럼 역사와 소설의 경계가 항상 뚜렷히 정해진 것까지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는 충분히 준수될 필요가 있는 기준처럼 보인다.
물론 데이비스는 "절름발이에 대하여"라는 답변에서 핀레이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의 해석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제목의 유래이자 마르탱 게르에 대한 언급이 수록된 에세이에서 몽테뉴는 오히려 단언을 삼가고 가능성을 열어두라 권고한다는 것이다.
데이비스의 문제는 거꾸로 가능성에서 출발하여 무리한 단언으로 끝났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대신 마지막까지 몽테뉴처럼 '가능성이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단언 못한다'는 회의적 태도를 유지했거나, 차라리 카리에르와 비뉴가 훗날 시나리오를 개작한 것처럼 '소설'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아이러니한 점은 데이비스의 저서가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또 하나의 권위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스페인사 전문가인 존 H. 엘리엇이 마르탱 게르(Martin Guerre)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보다 유명해진 것이야말로 역사학계의 왜곡된 현실이라며 꼬집었을 정도니까.
물론 졸지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행방불명자 겸 오쟁이 진 남편이 된 것이 '진짜' 마르탱 게르의 잘못까지는 아니듯이, 졸지에 저 위대한 종교개혁가의 명성을 뛰어넘는 명성을 획득한 것 역시 마르탱 게르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루터의 명성 역시 게르보다는 더 오래 갈 것이고.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뒤 기록 대부분이 유실된 상태에서 극소수의 사료에만 의거해, 21세기 한국에서 "자기 형성"과 "여성의 주체성"의 대표 사례로서 전청조와 남현희가 거론되면 지금의 우리로서는 살짝 황당할 것도 같다. 물론 그것이 역사의 본질이자 한계라면 할 말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