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인가, 알라딘에서 '멤버십 등급 유효기간이 7일 남았다'면서, 플래티넘 자격을 유지하고 싶으면 물건을 얼마어치 더 사라는 통보 문자가 날아왔다. 필요한 책이야 늘 장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으니 언제든 주문하면 그만이지만, 이상하게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차일피일하다 보니 결국 다음 주부터는 알라딘 회원 등급이 플래티넘에서 일반으로 떨어졌다.
구매 이력을 살펴보니 알라딘에 가입해서 첫 주문은 2001년이었고, 이후 매년 서너 차례 정도만 주문하다가, 2008년에 중고샵이 생기면서부터 말 그대로 하루 걸러 한 박스씩 주문하면서 등급이 오른 듯하다. 중고샵 개장 이후로는 한 번도 플래티넘 등급에서 내려온 적 없는 나귀님이니, 자그마치 17년 만에 (햇수로는 18년인가) 일반 등급으로 내려오는 셈이다.
등급 하향의 이유는 알라딘 통보 문자에서 지적한 것처럼 구매액이 크게 줄어서, 3개월 합산 30만 원이라는 플래티넘 자격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간에 비싼 책들을 몇 권 샀기 때문에 20만 원 기준 골드 등급이나 10만 원 기준 실버 등급은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적립금으로 결제한 것은 구매액으로 치지 않는 모양이어서 급전직하를 겪게 된 듯하다.
구매가 줄어든 까닭은, 뭐, 작년 이맘때 쓴 글에서 구구절절 적어놓은 바와 다르지 않다. 우선 최근 들어 알라딘 중고 물품이 '가격은 업, 품질은 다운' 추세이다 보니 딱히 장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설상가상 중고 상품 품질 문제 때문에 고객센터에 항의하는 등의 우여곡절까지 겪다 보니, 이제는 아예 안 사고 마음 편한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기 때문이다.
고객센터에 마지막으로 항의한 내용도 진짜 웃긴다. 우주점에서 '상급'인 책을 하나 구입했는데 하드커버의 겉표지가 없었다. 품질 판정 기준에 따르자면 겉표지가 없으니 '중급'인데, 애초부터 그렇다고 표기했으면 나귀님으로서도 굳이 살 이유까진 없는 책이었다. 결국 알라딘 측의 과실이므로 무료 반품을 신청했더니, '그건 표지가 아니라 띠지'라면서 거부한다!
띠지란 수상 실적이나 영화 개봉 같은 홍보 사유가 있을 때 추가하는 부속품인데, 문제는 해당 도서의 겉표지가 띠지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표지 역할을 하는 '띠지형 표지'라는 점이다. 당장 그 종이를 벗기면 바코드도 없어져 구매조차 불가능한데, 그게 '띠지형 표지'이지 어떻게 '표지형 띠지'냐는 것이 나귀님의 주장이었지만, 고객센터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갑론을박을 하다 보니,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싶어 문득 '현타'가 왔다. 알라딘에서 툭하면 들먹이는 핑계마냥 중고 책의 품질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면 품질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생길 때에도 이를 감안해서 유연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터인데, 지금의 알라딘은 오로지 정해진 시스템 내에서만 해결하려 하니 융통성이라곤 없다.
1만 원짜리 배달 음식을 팔아도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군소리 없이 환불하는 것이 대세라는데, 알라딘은 무려 2만 4천 원짜리 물건을 잘못 팔아 놓고 2천 5백 원 반품 비용을 부담하기 싫어 자기네는 잘못이 없다며 발뺌한 셈이다. 나귀님이야 반품 요청도 기껏해야 연간 서너 번 수준이고, 그나마도 이번처럼 뭔가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니 악질 고객도 아닐 텐데.
역시나 배달 음식에 비유하자면, 식당 잘못으로 환불하는 상황에서 배달비 2천 5백 원을 물어주기 싫어서 발뺌하다 고객이 영영 발을 끊게 했다면 과연 현명한 걸까? 문제의 고객으로 말하자면 2만 4천 원짜리 메뉴를 매일 한 번씩 무려 17년간 꾸준히 시킨 호구인데도 말이다! 설령 억울한 면이 있어도 그냥 물어주고 손님을 붙잡는 게 식당에도 낫지 않았을까.
결국 나귀님은 문제의 책 반품 비용 2천 5백 원을 직접 부담하고 차액만 환불받았으며, 그때 이후로는 알라딘 중고 물품 구매 시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자칭 '상급'이어도 품질을 장담할 수 없고 환불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중급'은 사실상 '품질무보증'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보니, 가뜩이나 중고 판매가도 오르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구매도 줄어들었다.
물론 구매를 줄였어도 꼭 필요한 책은 구입하다 보니 플래티넘 회원 자격도 '알라딘과 헤어질 결심' 이후 무려 1년 넘게 지속되었지만, 예전처럼 당장 긴요하지 않아도 싼 맛에 한두 권씩 더 고르는 중고샵 특유의 소비 패턴에서는 확실히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사고 싶은 책이 있어도 가격이나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망설이다가 결국 놓치는 경우가 흔해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알라딘의 회원 등급이 오른다고 해서, 그 명칭의 유래인 귀금속마냥 휘황찬란한 혜택이 따라오는 것까지는 아니다. 예전에는 더 많았던 혜택이 점차 줄어든 것인지 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신간 도서, 극장, 커피 할인 쿠폰뿐이라서 나귀님처럼 새책 안 사고 영화 안 보는 사람에게는 그나마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알라딘 회원 등급제도 사실상 유명무실하지 않나 싶다. 마치 '최상급'과 '상급'과 '중급'의 가격 차이가 기껏해야 2백 원 남짓이라 역시나 유명무실해진 알라딘 중고 품질 등급처럼 말이다. 알량한 쿠폰 할인 대신 무료 반품이나 받아주었더라면, 하다못해 충분히 일리 있는 이의 제기를 귀담아 들어주었더라면, 나귀님도 지금처럼 불매까진 안 갔을 텐데!
물론 알라딘 입장에서야 나귀님 같은 잔챙이 손님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26주년 구매 기록으로 다시 살펴보니, 그간 나귀님의 구매액은 (앞서 말했듯이) 하루 평균 2만 4천 원쯤에 불과했으니까. 월간 1백만 원도 못되고, 연간 1천만 원도 못되며, 구매 회수 역시 "백만 번 산 고양이"에 비하면 딱히 많이 산 것까지는 아닌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