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알라딘을 돌아다니며 새로 나온 책을 살펴보니 '케임브리지 세계사'라는 시리즈가 눈에 띈다. 원서는 2015년에 전7권 9책으로 완간된 모양인데, 번역서는 다시 둘씩 쪼개 18책으로 완간할 예정이라 한다. 2021년부터 출간을 시작해서 2024년 말 현재 원서 VI-1권의 번역서인 11-12책까지 나왔으니, 잘만 하면 몇 년 안에 완간도 가능하겠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콘사이스>(소와당, 2018)라는 요약본도 나온 모양인데, 같은 출판사에서 본편 간행을 염두에 두고 일종의 개요 성격으로 미리 내놓은 모양이다. 소와당은 예전에 <임원경제지> 중복 출간을 둘러싼 잡음 때문에 별로 좋지 못한 인상을 받은 출판사인데, 이후 역사 서적을 꾸준히 내놓는 것으로 보아 일회성으로 생겨난 곳은 아닌 듯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케임브리지 세계사'라는 이름의 시리즈는 이전에도 몇 가지가 나와 있었다. 예를 들어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의 '약사'(A Concise History) 시리즈 중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편이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개마고원, 2000-2002)라는 이름으로 나왔고, 최근에는 스페인 편이 <케임브리지 스페인사>(글항아리, 2024)로 나왔다.
이름 그대로 도판을 곁들인 '케임브리지 도판 역사'(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시리즈 중에서는 프랑스, 중국, 독일, 이슬람 편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각국사'(시공사, 2001)라는 시리즈명으로 나왔다. 일반 역사가 아니라 개별 분야의 역사로는 <케임브리지 서양음악이론의 역사>(음악세계, 2022)라는 것이 간행되기도 했다.
단권사나 축약본이 아닌 케임브리지 통사로는 '케임브리지 중국사'(전15권)의 번역본인 '캠브리지 중국사'(새물결, 2007)가 우선 10권과 11권을 4책으로 간행하며 시작되었으나, 이후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추가 간행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결국 중도작파한 듯 보인다. 물론 책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붙이는 출판사이니 완간되어도 문제겠지만.
케임브리지의 이름을 내건 교양서 시리즈도 그동안 꾸준히 나왔다. '입문'(Introduction) 시리즈인 <케임브리지 중국철학 입문>(유유, 2018)과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그린비, 2024), '개론'(Companion) 시리즈인 <본회퍼 신학개론: 캠브리지 지침서>(종문화사, 2017)와 <도스토옙스키: 케임브리지 대학 추천 도서>(우물이있는집, 2018)가 대표적이다.
알라딘에서 '케임브리지'로 검색하다 보니 '케임브리지 7인'과 '케임브리지 5인'에 대한 책도 나오는데, 전자는 19세기 말에 중국 선교사로 투신한 그 학교 졸업생들을 가리키며, 후자는 20세기 초에 소련 스파이로 활동한 (그리하여 훗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소재가 된) 그 학교 졸업생들을 가리킨다. 참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한 동문들이다.
때로는 '케임브리지'를 강조하려다 그만 삐끗한 경우도 있다.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소와당, 2019)는 비록 그 대학 출판부에서 나왔지만 원제는 '케임브리지' 없이 '중국경제사'뿐이다. 저자도 '캘리포니아 학파'를 대표하는 미국 학자라니, 출판사도 뒤늦게야 부적절하다 생각했는지 머지않아 <폰 글란의 중국경제사>로 제목을 바꿔서 재간행했다.
케임브리지 이야기를 한참 했으니 그 라이벌인 옥스퍼드도 빼놓을 수 없다.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단권본 '역사'(History)로는 <옥스퍼드 책의 역사>(교유서가, 2024), <옥스퍼드 영국사>(한울, 2006),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열린책들, 2005)가 나온다. 마지막 책은 이후 <세계 영화 대사전>(미메시스, 2015)으로 제목이 바뀌어서 재간행되기도 했다.
옥스퍼드의 통사로는 '옥스퍼드 미국사'(전12권 예정) 가운데 제2권인 <위대한 대의: 미국 혁명 1763-1789>(사회평론, 2017)가 번역되었다가 절판되고, 이후 <미국인 이야기>(사회평론, 2022)라는 제목으로 분권 신판이 나왔지만, 근간 예정이었던 4-6권은 무려 7년 뒤인 지금까지 간행되지 않았으니, 결국 시리즈 완간은 물 건너가 버렸다고 봐야 맞겠다.
'옥스퍼드 도판 역사'(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중에는 <(일러스트레이션판) 옥스퍼드 유럽 현대사>(한울, 2003), <옥스퍼드 과학사>(반니, 2019), <옥스퍼드 세계사>(교유서가, 2020)가 나왔다. '약사'(The Short History) 중에는 <옥스퍼드 영문학사>(동인, 2003)가 번역되었는데, 고유명사 표기가 지나치게 제멋대로라 문제였다고 기억한다.
짧은 분량으로 미루어 개론 수준에 가까워 보이는 '새로운 옥스퍼드 세계사'(New Oxford World History)라는 시리즈 중에서는 도시, 민주주의, 테크놀로지 편이 '옥스퍼드 세계사'(다른세상, 2016-2017)라는 시리즈명으로 간행되었고, 중국 편만 별도로 <옥스퍼드 중국사 수업>(유유, 2016)이란 제목으로 간행되었는데, 이후로는 소식이 없는 듯하다.
'옥스퍼드 미술사'(Oxford History of Art) 중에서는 중국 미술, 20세기 디자인, 포토그래피가 '옥스퍼드 히스토리 오브 아트'(시공사, 2007)라는 시리즈로 나왔다. 같은 출판사에서 더 먼저 나온 <옥스퍼드 20세기 미술사전>(시공사, 2001)과 <옥스퍼드 미술사전>(시공사, 2002)은 번역서 제목과 달리 원서가 사전이 아니라 '개론'(Companion)으로 분류된다.
'안내(Handbook)' 시리즈 중에는 <인지언어학 옥스퍼드 핸드북>(로고스라임, 2011), <옥스퍼드 음식의 역사>(따비, 2020), <정치네트워크론>(학고방, 2022), <옥스퍼드 세계도시문명사>(책과함께, 2023),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교유서가, 2024)가 번역되었고, '사전'(Dictionary) 시리즈 중에는 <옥스포드 교황 사전>(분도출판사, 2014)이 번역되었다.
옥스퍼드의 개론 시리즈로는 '짧은 개론'(A Short Introduction)과 '아주 짧은 개론'(A Very Short Introduction)이 있다. '짧은 개론' 중에는 생각, 감정, 신화, 선 편이 '옥스퍼드 인트로'(이소출판사, 2002-2004)라는 시리즈명으로 번역되었고, '아주 짧은 개론'은 '첫단추 시리즈'(교유서가)라는 이름으로 2015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50권 넘게 나왔다.
'옥스퍼드'라는 이름을 굳이 내세우지 않고 암약한 책도 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간행한 '일곱 가지 대죄'(The Seven Deadly Sins) 시리즈가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민음인, 2007)이라는 평범한 시리즈명으로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앞서 언급한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처럼 '옥스퍼드'라는 이름 사용이 의아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 오늘의 단어책>(월북, 2023)은 그 대학 출판부의 저 유명한 영어 사전을 담당했던 사람의 저서이기는 하지만, 원제에 '옥스퍼드'가 들어 있지도 않고, 그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같은 논리라면 역시나 그 영어 사전 편집장이었던 사람의 저서 <단어 탐정>(지식너머, 2018)도 <옥스퍼드 단어 탐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쯤 되면 줄곧 경쟁만 일삼는 듯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이지만, 의외로 양쪽의 협업이라 할 만한 책도 있다. 앞서 언급한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의 저자가 옥스퍼드 카프카 연구소의 대표이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 옥스퍼드 카프카연구소 소장이 쓴 카프카 입문 완전판>이라는 사뭇 카프카스러운 제목이 탄생하고 말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외국 대학 이름 팔아먹기의 대표 주자는 하버드라서 각종 '하버드 수업'을 비롯한 책 대부분은 원제와 번역서 제목이 영 딴판이게 마련이다. 심지어 '하버드 중국사'(너머북스, 2014-2020)와 '하버드-C.H.베크 세계사'(민음인, 2018-2023)도 원제는 '중화제국사'(History of Imperial China)와 '세계사'(A History of the World)이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정식으로 그 학교 이름을 걸고 간행한 책뿐만 아니라, 단지 간행만 했을 뿐인 책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대학이나 대학 출판부에 재직했던 사람들까지 너도나도 그 명칭을 가져다 쓰는 이유는 당연히 그 권위 때문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학문적 권위가 각 대학의 이름에도 배어 있다고나 할까.
따라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책도 신뢰할 만한 자료로 손꼽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대학 출판부라면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은 열악한 상황에서 책을 간행하기 때문에 편집이나 디자인 면에서 일반 상업 출판사에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같은 사례는 더욱 돋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모두 지금은 대학 이름으로 더 유명하지만, 원래는 지명이라는 것이다.(참고로 하버드 대학이 있는 미국의 지명도 '케임브리지'이다) 어원을 따지면 '옥스퍼드'는 '소'(ox)의 '여울'(ford)을 뜻하니, 직역하면 '쇠여울' 소재 '쇠여울 대학' 부설 '쇠여울 대학 출판부'에서 '쇠여울 세계사'와 '쇠여울 중국사'를 내놓은 셈이다.
일면 우스워 보이지만, 우리나라 대학 이름으로 대체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대와 고려대 출판부에서 '서울 세계사'와 '고려 중국사'를 내놓으면 살짝 모순 같지 않겠나. 그나마 무난한 이름이라면 '연세 세계사'와 '연세 중국사' 정도인데, 이 대학은 어째서인지 아직까지는 우유와 크림빵 같은 식품 분야에 전념하고 있으니 아쉬울 뿐이다.
여자 대학은 문제가 더 복잡한데, 예를 들어 '이화 여자 세계사'나 '성신 여자 중국사'가 나오면 세계사인지 여성사인지 중국사인지 중국 여성사인지 헛갈릴 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덕 여자 세계사'가 나온다면 '학생들과 상의 없이 남성에 대해 서술했다'는 이유로 락카칠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대학은 이제 출판부도 없어진 듯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