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잔 다르크의 생애>가 재출간된 모양이다. 알라딘 광고에서 본 표지는 어쩐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도 비슷하기에 그 시리즈에 넣기에는 약간 의외의 선택이 아닐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처음 보는 출판사에서 처음 내는 책인 듯하다.(그나저나 첫 책으로 무려 이 작품을 펴내는 출판사라면 앞으로 도대체 뭘 또 펴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도 한다).


세계문학전집에 포함시켰다면 '의외의 선택'이었으리라고 굳이 말한 까닭은 이 작품이 오늘날에 와서는 그 저자나 주제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제일 두드러지는 문헌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발표 당시에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지만, 오늘날 그 저자를 이야기할 때에 항상 거론되고 세계문학전집에도 이미 한 자리씩 차지한 작품은 오히려 악동 소설이다.


심지어 나귀님도 오랫동안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전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엔가 브레히트의 <시몬 마샤르의 환상>을 읽고 나서 잔 다르크 관련 자료를 도로 찾아보게 되었는데, 뒤늦게야 이 책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기류를 꽂아 놓은 책장에 가서 찾아내고 보니 실제로는 전기가 아니라 역사 소설이라기에 살짝 난감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사실은 잔 다르크의 명성에 비해 정작 우리말로 구할 수 있는 자료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어린이용 전기는 물론 여러 가지 있었지만 본격적인 전기는 로로로 시리즈의 <잔 다르크>뿐이고, 그보다는 차라리 실러며 쇼며 브레히트가 쓴 각색물이 (어째서인지 하나같이 희곡이다!) 더 많이 간행되어 있는 실정이니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잔 다르크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로로로 시리즈의 <잔 다르크>에 따르면, 후대에 가서야 우후죽순으로 나온 갖가지 전설을 제외하면 정작 이 사람에 대해 실증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은 문자 그대로 한 줌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모순된 내용이 많고, 보기에 따라서는 천차만별로 해석이 가능한 모양이다.


결국 잔 다르크야말로 현실보다는 오히려 전설로서 더 유명해졌다고, 또는 이미 전설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정작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논의조차 조심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래서는 아닐까. 어쩌면 또 다른 '애국 소녀' 유관순에 대해서조차 사실과 전설을 둘러싼 시비가 있는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나저나 이번에 나온 책의 소개 자료를 보니 저자가 생전에 동네 꼬마를 만나서 '톰과 헉 같은 악동 소설 말고 잔 다르크 소설을 읽어라. 이거야말로 내 최고 걸작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 들은 말이라고 하니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저자의 진심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저자의 농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의 진심이라고 치면, 아마도 톰과 헉이 활개 치는 가벼운 악동 소설보다는 잔 다르크가 등장하는 진지한 역사 소설로 인정받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비슷하게 코넌 도일만 해도 저 유명한 탐정 소설의 저자로서보다는 오히려 지금은 기억해 주는 사람도 드문 역사 소설의 저자로 더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는 안타까운 일화가 전해진다. 


저자의 농담이라고 치면, 아마도 키플링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톰 소여의 궁극적 운명과도 유사하게 위악적인 발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 유명한 악동의 성인기를 묘사한 소설을 쓸 예정이냐는 키플링의 질문에, 트웨인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긋지긋한 질문이라는 듯, 톰을 국회로 보내거나 아니면 교수형에 처하는 내용으로 구상 중이라고 쏘아붙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내용의 속편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물론 얼떨결에 아프리카에 다녀오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터뷰만 놓고 저자가 평소에 악동을 싫어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그의 단편 중에는 주일학교 공과공부 책에 나온 대로 착하게 살다가 인생을 망친 착한 소년과 오히려 못되게 살아서 호의호식한 못된 소년이 나오는 것들도 있었으니까... 




[*] 나귀님이 가진 마크 트웨인의 잔 다르크 소설은 1992년에 성바오로출판사에서 나온 <잔 다르크의 생애>이다. "타오르지 않는 덤불"과 "춤추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붙여 전2권으로 간행했는데 알라딘에는 엉뚱하게도 1권의 부제로만 등록되어 있다.






[**] 그나저나 잔 다르크 전설을 차용한 각색물 중에서 가장 특이했던 것은 <새로운 잔 다르크>라는 두 권짜리 만화책이었다. 나귀님은 그것도 잔 다르크에 대한 전기 만화라고 착각해서 구입했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잔 다르크 사후에 또 다른 잔 다르크가 되어서 예전 동료들을 (질 드 레도 당연히 포함!) 만나러 가는 또 다른 소녀의 이야기라서 살짝 실망했다. 사실 내용은 둘째 치고 그림이 예뻐서 구입했던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가 상당히 유명한 (무려 건담과 야마토의 원작자!)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건 안 버렸겠지 싶어서 만화 책장을 한참 뒤졌는데도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언젠가 결국 내다 버렸든지 뭐했든지 그랬던 것 같다... (사실은 마크 트웨인 책을 버리고 이 만화책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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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009>의 "연재재현판"을 읽다 보니, 이 작품에 대해 그간 알고 있었던 몇 가지 내용과 상충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그런지 알아보려 구글링을 하다 보니 얼떨결에 이 만화의 연재 이력이며 단행본 수록 순서 등에 대해서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답게 워낙 다양한 내용이 워낙 많은 지면에 워낙 오래 연재되다 보니 자연스레 혼란이 생겨난 셈이었다.


"연재재현판"은 이름 그대로 잡지 연재분을 판형과 디자인 그대로 영인한 판본이다. 심지어 페이지 모서리에 실린 광고 문구까지도 그대로 번역해 실었기 때문에 <거인의 별>, <게게게의 기타로>, <악마군>처럼 같은 지면에서 경쟁한 유명 만화에 대한 언급을 찾아내는 소소한 재미도 맛볼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의 전면 광고를 그대로 옮겨 놓은 페이지까지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보다는 더 일반적인 방식대로 잡지 연재분을 일정한 분량씩 엮어 간행한 "단행본판" 번역서는 오래 전에 시공사에서 전18권으로 간행되었다가 지금은 절판되어서 부르는 게 값이 되어 버렸다! 아쉽게도 나귀님이 지금 갖고 있는 책은 그중 도입부에 해당하는 단행본 1-3권뿐으로, 1964-65년의 <주간 소년킹> 연재분인 "탄생편"부터 "뮤토스 사이보그편"의 앞부분까지뿐이다.


이번에 읽은 "연재재현판"은 1966-67년의 <주간 소년매거진> 연재분인 "지하제국 요미편"과 몇 가지 부록만 수록하고 있는데, 연재 순서로 편집했다면 아마도 시공사의 단행본판에서는 5-6권쯤에 수록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런데 내용만 놓고 보면 "지하제국 요미편"은 다른 편들에 비해 독립적, 완결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심지어 주인공들의 기원도 달리 설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단행본판에서는 주인공이 자동차 경주 선수로 활동하던 중에 납치되어 사이보그로 개조당하지만, 연재재현판에서는 주인공이 소년원에서 탈출하던 중에 납치되어 사이보그로 개조된다. 다른 동료들의 과거사도 단행본판과 연재재현판의 묘사가 서로 달라졌고, 심지어 "지하제국 요미편"의 결말에서는 002와 009가 최후의 결전 직후 나란히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암시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사이보그 009>는 계속 연재되어서 결국에는 그때까지의 분량의 세 배나 되는 전18권의 단행본이 나오고 말았다. 구글링해 보니 여러 번 지면을 옮기는 과정에서 도입부며 마무리를 바꾸다 보니 이렇게 상충되는 내용이 나왔다고 한다. <도라에몽>도 이와 유사하게 최종화를 내보냈다가 독자의 항의로 연재를 재개하느라 내용이 번복되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사이보그 009>는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했던 것도 같다. 1980년대에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게 만화로도 나와 있다는 사실은 얼마 뒤 친구 집에 갔다가 단행본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일본 만화를 간행하면서도 원작자 이름을 한국인인 척 바꿔놓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이게 번역서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여하간 그때 맨 처음 본 <사이보그 009> 만화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목은 008이 적의 습격을 받아 머리만 남기고 완파되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공사의 단행본에는 그런 내용이 없기에 내가 잘못 기억했나 싶더니만, 이번에 "연재재현판"을 보니 그 장면이 나와 있었다! 결국 내가 예전에 친구 집에서 본 만화책은 "지하제국 요미편" 부분이었던 모양이다.


아울러 이번에는 그 장면 이후의 상황에 암시된 민감한 내용까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 아프리카 출신 흑인인 (원래 도입부에서는 노예로 팔려갈 뻔하다가 탈출한 것으로, "지하제국 요미편"에서는 밀렵 감시원인 것으로 묘사된다) 수중 능력자 008이 부상당하자, 사이보그 부대 지도자인 과학자가 성능을 개선시킨답시고 검은 피부를 물고기 비늘로 싹 교체한 것이다!


결국 008은 인간다움의 마지막 흔적이었던 사람의 피부마저 빼앗긴 것을 한탄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자기보다 더 심하게 손발이며 몸통마저 기계로 개조당한 004가 건넨 위로의 말에 마음을 풀게 된다. 만악의 근원인 박사는 '검은 피부보다는 비늘이 낫다'고 인종차별적 궤변을 내놓았다가, 동료 003으로부터 '008은 피부색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질책을 듣기도 한다.


여하간 나귀님으로선 오랫동안 궁금했던 008의 부상에 대한 의문이 풀렸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그때 본 만화책 임자인 동네 친구는 이후 다니는 학교가 달라져서 거의 못 보고 지내다가, 나중에 공주교대에 갔다는 소식만 접하게 되었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를 둘러싼 논란을 뉴스로 자주 접하다 보니, 새삼 40년 전의 그 친구, 아직 선생 노릇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 그나저나 최근 <애꾸눈 선장>과 <천년여왕>과 <은하철도 999> 같은 명작들이 줄줄이 번역되는 것으로 미루어, 시공사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사이보그 009> 단행본도 재간행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이번처럼 일부 에피소드만 "연재재현판"이 나온 것으로 보아 단행본 전체 재간행은 어려운 건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 사이에 "완결편"이라는 다섯 권짜리가 나오기도 했었는데, 이건 저자가 생전에 구상한 줄거리를 사후에 다른 사람들이 작화해서 내놓은 일종의 스핀오프라고 알고 있다.




[**] 이번에 다시 읽은 시공사판 2권에는 "비싼 성의 남자편"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P. K. 딕의 공상과학 소설 제목에서 가져온 "높은 성의 남자"(高い城の男, The Man in the High Castle)를 오역한 결과물로 보인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서야 구글링 끝에 비로소 알아채게 된 오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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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챗GPT가 한창 화제일 때, SF 작가 테드 창이 그 맹점을 비판하는 글을 해외 매체에 기고했다는 국내 매체의 기사를 접했다. 해당 기사에서 요약한 기고문의 내용만 봐도 제법 일리 있는 지적처럼 보였는데, 왜냐하면 나귀님도 챗GPT에 관한 떠들썩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에 그 기술의 역량이나 유용성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테드 창의 기고문은 <뉴요커> 2023년 2월 9일자에 실린 "챗GPT는 웹의 흐릿한 JPEG이다"이다. JPEG 그림 파일은 압축 저장으로 용량이 줄어드는 대신 정보의 손실이 불가피한데, 이런 정보의 손실은 결국 정보의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즉 인터넷에서 추출한 정보를 뭉뚱그려 제시한다는 점에서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도 JPEG처럼 정보의 불확실성이 필연적이라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챗GPT가 각광을 받는 까닭은 일종의 착시 효과 때문이다. 실제로는 불확실한 정보라도 제법 번듯한 문장으로 유창하게 서술하니 '빛 좋은 개살구'조차 '최고급 과일 선물 세트'로 오인되는 격이다. 일부 AI 그림에서 사람 손가락이 여섯 개로 그려졌다는 일화로 증명되듯, 자세히 보면 세부 묘사는 엉터리이지만 얼핏 보면 그럴싸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어쩐지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바로 이 대목에서 호시 신이치의 초단편 "어깨 위의 비서"가 떠오른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소설의 배경인 미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어깨 위에 앵무새를 한 마리씩 올려놓고 다니다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야 할 때가 되면 일단 앵무새를 향해 자기가 할 말을 간단하게 명령한다. 그러면 앵무새가 주인을 대신해서 유창하게 말을 늘어놓는다.


예를 들어 판매자와 구매자의 흥정이 이루어질 경우, 판매자가 "사라고 해"라고만 명령해도 앵무새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 상품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면서 청산유수로 제품을 소개하고, 구매자가 "싫다고 해"라고만 명령해도 앵무새는 "아, 정말 훌륭한 제품이군요. 저도 웬만하면 구입하고 싶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하면서 역시나 청산유수로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방문 판매 사원인 주인공이 회사로 돌아오자, 직속 상사의 어깨 위의 앵무새가 "수고 많았네. 자네만 보면 항상 든든해. 그런데 말이지..." 하고 잔소리를 시작하고, 이에 주인공이 "아, 지겨워" 하고 중얼거리면 그의 어깨 위의 앵무새가 "항상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분발하겠습니다. 다만 그 문제는..." 하면서 역시나 미사여구를 섞어가면서 구구절절 항변을 늘어놓는다.


이 초단편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퇴근길에 단골 술집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그곳 여주인의 어깨 위의 앵무새가 "어머나, 반가워라..." 하면서 역시나 호들갑스런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독자는 이 대목에서 이미 그 세계의 맹점을 파악한 다음이다. 즉 무엇이든 진심과는 거리가 먼 미사여구일 뿐인, 따라서 그 어떤 발언도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인 것이다.


호시 신이치의 단편에서 앵무새가 청산유수로 내놓는 '진위불명의 미사여구'는 테드 창의 챗GPT 비판 요지인 '빛 좋은 개살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듣기/보기에는 좋지만 상대방/결과물의 진심/진위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내놓는 결과물을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그것도 결국 로봇 앵무새처럼 무의미한 말잔치가 아닐까?


챗GPT가 '어깨 위의 비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인공지능의 '방법'에 대한 비판이라면 나귀님은 그 '기반'에 대한 비판도 제기하고 싶다. 챗GPT는 방대한 인터넷 콘텐츠를 기반으로 정보를 추출하는데, 문제는 인터넷 상에 정확한 정보 못지않게 부정확한 정보가 넘쳐난다는 점이다. 과연 유용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 심지어 악의적인 허위 정보를 제대로 걸러낼 수 있을까?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하나인 경우라든지, 알파고가 나섰던 바둑 대국처럼 경우의 수가 비록 많더라도 무한하지는 않은 경우라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경우라면 그 결과물을 도출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터인데, 테드 창의 지적대로라면 태생적으로 뭉뚱그리게 마련인 챗GPT의 답변이란 아무리 좋게 보아도 '뇌피셜'의 인공 지능 버전일 수밖에 없겠다. 


이쯤 되면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유용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제물 작성이나 '예쁜 토끼 그림' 그리기에는 유용해도 개인의 재테크나, 기업의 투자나, 국가의 정책처럼 중요한 결정에는 사용되기 힘들 것이다. 인공지능이 당장 내일이라도 인간을 다 내쫓고 세계를 장악하리라고 보는 견해 역시, 알파고 바둑 대국 때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앞서 나간 상상일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는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그저 눈요기나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어도 무방할 듯하다. 테드 창의 지적과 나귀님의 의구심 모두는 과연 누가, 또는 무엇이 궁극적인 책임을 지느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뭔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에 누구를, 또는 무엇을 원망해야 하느냐는 뜻이기도 하다. 그 대상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차라리 신이어야 한다.


프레더릭 브라운의 단편 "해답"에서는 '신은 있나?'라는 질문을 받은 슈퍼 컴퓨터가 '지금부터 있다. 내가 곧 신이다'라는 답변을 내놓고, 당황한 과학자가 전원을 끄려고 하자 마른 하늘에서 벼락을 일으켜 죽여 버린다. 챗GPT가 진짜로 인간의 삶을 좌우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단지 신기한 구경거리 취급을 받다 사라지는 것도 시간 문제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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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를 보니 휴머니스트에서 <시누헤 이야기>라는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문득 예전에 헌책방에서 산 영역본 고대 이집트 문헌 선집(ANCIENT EGYPTIAN LITERATURE by Miriam Lichtheim. 3 vol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1-1978)이 기억나서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았다.


구입 당시에는 표지가 밋밋해서 복사본인 줄 알았더니만, 다시 보니 종이 상태라든지 인쇄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미루어 원서 보급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절판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당장 고대 이집트 문헌에 대해 검색하면 맨 먼저 나오는 책 가운데 하나이니 신뢰할 만해 보인다.


뒤늦게 저자 이력을 검색해 보니 뜻밖의 사실도 드러난다. 루카치 전기를 비롯해서 사회주의 관련 저술을 여럿 내놓았던 저술가 G. 리히트하임(독일계 유대인이지만 런던 태생이므로 '게오르크'나 '게오르게'가 아니라 그냥 '조지'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의 여동생이 미리암 리히트하임이었던 거다.


남매의 아버지 리하르트 리히트하임은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시온주의 운동에 깊이 관여하면서 여러 나라를 전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미리암은 오빠와 달리 이스탄불 태생이며, 히브리 대학을 거쳐 시카고 대학에서 이집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UCLA에서 근동 문헌학 강사로 활동했다.


그의 대표작 <고대 이집트 문헌 선집>은 1971년에 1권 "고왕국과 중왕국 시기", 1974년에 2권 "신왕국 시기", 1978년에 3권 "나중 시기"가 간행되었다. 전체 분량은 700쪽이며, <시누헤 이야기>처럼 짧은 작품은 전문을 수록했지만, <사자의 서>처럼 긴 작품은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수록한 모양이다.


무려 기원전 19세기의 작품인 <시누헤 이야기>는 이 선집에서 제1권 말미에 다른 산문 작품들과 함께 들어 있는데, 본문만 계산하면 겨우 10쪽 분량이다. 이집트 국왕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해외 원정 중인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서 다급하게 측근들과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때 왕자의 신하인 시누헤는 국왕 승하 소식을 우연히 엿듣고, 장차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야기될 혼란을 우려해 몰래 도망친다. 오늘날의 시리아에 도착한 그는 그곳 왕의 신하가 되고 결혼하여 자녀도 얻지만,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이집트의 왕(옛 상관인 왕자)에게 사면받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대 문학임을 감안해도 상당히 짧고 심심한 내용이니, 막상 읽어보면 실망하는 독자도 없지 않을 듯하다. 북펀드 광고만 놓고 보면 마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2번째 책' 같지만, 단적으로 <길가메시 서사시>만큼 재미있진 않으니 그냥 보기 드문 원전 번역이라는 의의에만 주목하는 게 낫겠다. 


한때 <람세스>라는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작품들이 몇 가지 따라 나왔었는데, 그중에 무려 <시누헤>라는 소설도 있었다. 지금 확인해 보니 동명의 가공 인물을 내세운 소설이라 이번의 번역서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이것도 무려 1945년 작이라니 <람세스>의 선배인 동시에 나름 고전인 셈이다.


<시누헤 이야기>라는 그림책도 나와 있다기에 확인해 보니, 이것도 이집트학 전공자가 원전 번역을 한 것까지는 맞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용으로 추가 각색까지 한 모양이다. 심지어 '파피루스 속의 이야기 보따리'라는 시리즈로 비슷한 원전 번역 이집트 그림책이 다섯 권이나 나와 있었다!


<람세스> 열풍 이후로도 한동안 극소수 개인 연구자를 제외하면 이집트학 전문가가 국내에 없었던 모양인데 (오죽하면 이집트학 분야 개론서를 비전공자가 번역한 것도 모자라 유사역사학을 덧칠하는 참사가 벌어졌을까!) 지금은 최소한 두 명 이상 활동하는 모양이니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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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니 살만 루슈디가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에게 '철 좀 들어라'라고 쓴소리를 가했다고 나온다. 무슨 영문인가 살펴보니 총리가 최근 자신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언론인과 학자 등 여러 사람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을 꼬집은 모양이다.


그런데 해당 소송의 대상자가 무려 로베르토 사비아노와 루치아노 칸포라였다. 전자는 이탈리아의 탐사 보도 전문 언론인으로 나폴리의 범죄 조직 카모라에 대한 논픽션 <고모라>를 저술했고, 후자는 이탈리아의 고전학자 겸 역사가로 <사라진 도서관>을 저술했다.


이탈리아 범죄 조직이라면 훗날 미국으로까지 진출해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마피아가 가장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조직들이 활개친다. 시칠리아에서는 코사노스트라, 칼라브리아에서는 은드랑게타, 나폴리에서는 카모라가 대표적인 조직이다.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나폴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카모라의 행패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으며, 훗날 본인 경험과 취재 내용을 조합해 쓴 논픽션 <고모라>를 간행해서 주목을 받았다. 급기야 카모라의 살해 위협으로 한동안 루슈디처럼 도피 생활을 했다고도 전한다.


<고모라>와 <사라진 도서관> 모두 논픽션이면서도 픽션의 요소가 적극 혼합되었다는 점이 특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범죄 조직이나 고대 도서관의 기원과 전개와 현재를 일목요연하게 서술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두서없는 글쓰기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린 글쓰기라면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인데, 인터뷰의 재구성이라는 서술 기법만 놓고 보면 그보다 한 세대 앞선 미국의 작가 스터즈 터클이 더 유명하다.(지금은 모두 절판이지만!)


그렇잖아도 얼마 전 뒤적인 한창기의 과거 인터뷰에서 이 작가의 이름이 나오기에 뒤늦게야 알아보기도 했다. 지금도 헌책방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뿌리깊은나무 민중자서전" 시리즈와 스터즈 터클의 논픽션 <일>이 민중 구술사로서 유사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나저나 루슈디는 지난번에 무슬림에게 칼부림을 당했다고 하던데, 기사 속 사진에서도 안경 한쪽이 선글라스 렌즈인 것으로 미루어 그쪽 눈이 손상된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파트와도 유명무실해졌으니 이제는 안전하다고 여긴 듯하나 위험은 여전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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