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이 조르주 깡길렘의 신간 사다 놓은 것 있느냐고 묻기에 "깡길렘, 혹은 깡기엠..." 하고 대답했더니 알아듣고 킥킥거린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전에 곽광수가 김현의 바슐라르 연구를 비평하면서 특유의 현학 취미의 사례로 꼬집은 것이 바로 저 프랑스인의 두 가지 인명 표기였기 때문이다.


베르그송/베르크손이나 뒤르켕/뒤르켐의 경우처럼 둘 중 어느 쪽으로 쓰더라도 독자가 이해하는 데에는 굳이 어려움이 없을 터인데 굳이 "깡길렘, 혹은 깡기엠"이라고 쓴 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시적인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 곽광수의 지적의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현의 절친 김병익은 이 일을 가지고 훗날 한 인터뷰에서 곽광수에게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김현이 오류를 범한 것도 사실이며 곽광수도 학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본인의 결벽 성향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꼭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비판 역시 일리가 있어 보인다.


곽광수의 결벽 성향은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 번역서에서도 여러 페이지에 걸친 상당히 긴 역주를 통해 오래 전에 박이문이 내놓았던 비판/오해에 대한 반박/해명을 내놓았던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남들 눈에는 지나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후련하게 생각한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나.


이런 곽광수조차 꼼짝 못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조동일인데, 자서전을 보면 대학원 시절인지 신구문화사에서 세계문학전집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곽광수의 번역 원고에 가차 없이 빨간 펜으로 수정 지시를 해서 애를 먹였다는 일화가 나온다. 나중에 곽광수도 이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하던가.


그나저나 "깡길렘, 혹은 깡기엠"의 신간이 뭔지 궁금해 알라딘을 검색해 보니, 엉뚱하게도 저자명이 "깡귀엠"으로 통일되어 나온다. 하지만 한길사의 <정상과 병리>의 표지에는 "캉길렘"이라고 나왔고, 인간사랑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표지에는 "깡길렘"이라고 나왔으니 사실과 다르다.


심지어 그린비에서 새로 나온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과 <이데올로기와 합리성>과 <생명에 대한 인식>과 <캉길렘의 의학론>의 표지에도 "캉길렘"으로 나오고, "깡귀엠"이란 표기는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의 구판인 아카넷의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온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표지에만 나온다.


결국 이미 절판된 구간 가운데 딱 한 권의 표기에 불과했던 "깡귀엠"이 현재 알라딘에서는 마치 정확한 표기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는 셈이니 우스울 수밖에 없다. 예전에야 그러려니 했더라도, "캉길렘"으로 무려 네 권이 더 나왔다면 적절한 수정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았을까.(일해라 알라딘!)


나귀님이야 "깡길렘, 혹은 깡기엠, 혹은 깡귀엠" 가운데 정확히 뭐가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식이라면 십수 년 뒤에 알라딘에서 이 저자명을 "깡다위"(姜大衛)로 바꾸어 놓지 말란 보장도 없어 보인다. 물론 바깥양반 쪽에선 이름 표기야 어떻든 신간을 사다 놓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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