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엔가 갑자기 옛날 공포 영화 <후라이트 나이트>가 생각나서 구글링을 하다 보니, 거기서 주인공인 흡혈귀로 나온 배우의 이름이 크리스 서랜던이다. 수전 서랜던과 같은 집안인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무려 전남편(!)이었다. 즉 본명이 수전 토말린인 여배우가 결혼 후에 남편의 성을 따라 수전 서랜던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던 거다.
나귀님도 마찬가지였지만, 크리스 서랜던이라면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도 같은데, 막상 검색해 보니 의외로 유명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맡았던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주인공인 해골머리 잭이고 <사탄의 인형>, <공주를 찾아서>, <뜨거운 오후> 등에도 출연했었다 한다.
제목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영화이기는 한데, 기껏 주연을 맡았을 때에는 해골 애니메이션이나 흡혈귀 분장이고, 그나마 멀쩡한 역할로 나왔을 때에는 칼 들고 덤비는 인형이라든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황당무계한 전개라든지, 심지어 알 파치노가 워낙 인상적이다 보니 비교적 관객의 기억에 덜 남았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자가 결혼하며 남편의 성을 따르는 제도는 서양 대부분의 나라와 일본 등에서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유명인 중에서도 수전 서랜던처럼 전남편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지난번에 언급한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도 두 번째 남편의 성을 따른 경우였고, 첫 결혼 직후엔 린 세이건이었다.
어쩌면 남성우월 여성폄하의 대표적인 사회 부조리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성(물려받은 이름)과 명(부여받은 이름)을 굳이 사용하게 되었던 이유를 고려해 보면, 부부의 성 통일도 억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편의를 위해서라고 추론이 가능하며, 지금 와서는 의무까지는 아니게 되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처럼 이민자가 많았던 나라에서는 결혼이나 이주를 통해 외국인의 느낌이 강한 원래 성 대신에 비교적 평범한 성을 얻음으로써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호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억압적인 부모의 성 대신 남편의 성을 따름으로써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 사람도 없지 않았던 듯하다.
영화에서는 별거 중이거나 이혼 상태인 아내가 남편의 성 대신 원래 성을 다시 쓰는 것이 심경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로도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다이 하드>에서 한동안 멀어진 아내를 회사로 찾아간 브루스 윌리스가 경비실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남편 성 대신 원래 성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심란해 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경우에는 비록 성이 같아도 혈연까지는 아닌 사례가 없지 않은데, 최근 나귀님이 궁금해서 알아본 사례로는 영국의 작가 엘리제베스 폰 아르님(1866-1841)과 독일의 작가 베티나 폰 아르님(1785-1859)이 그러했다. 양쪽 모두 결혼으로 아르님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고, 워낙 대가문이다 보니 딱히 접점은 없는 듯하다.
베티나 폰 아르님은 어린 나이에 노년의 괴테와 교우하기도 했던 천재 소녀로 유명한데, 나중에 가서는 괴테 부인과 대판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결국 저 유명한 작가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원래 성은 브렌타노인데 동생 클레멘스의 친구이자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공저자인 루드비히와 결혼해서 아르님 가문의 일원이 된 경우이다.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은 본명이 메리 보챔프이고 원래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인데, 첫 번째 남편이 독일의 귀족인 헤닝 아우구스트 폰 아르님슐라겐틴이었다. 사별 후에 만난 두 번째 남편이 버트런드 러셀의 형인 프랭크 러셀 백작이어서 자연히 엘리자베스 러셀로 통했지만, 필명으로는 여전히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을 이용한 모양이다.
흥미로운 점은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의 사촌이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것이다. 이쪽도 본명은 캐서린 맨스필드 보챔프이고 저 유명한 필명은 본명 가운데 일부를 조합한 것이었다. 베티나 폰 아르님의 할머니도 당대의 저명한 소설가였다고 하니, 결국 문학적 재능이란 것도 물려 받는 것인가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언젠가 언급했듯이 일본 중세 여성 문학의 대표 작가인 '미치쓰나의 어머니'의 후손 중에도 여성 문인이 여러 명 배출되었고, 우리나라 조선 시대 궁중 문학의 대표 작품인 <한중록>과 <계축일기> 역시 풍산 홍씨 가문의 여성들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여성 문학에서의 혈통과 계보를 따져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다.
아울러 여성의 이름과 정체성의 문제도 생각할 만해 보인다. '미치쓰나의 어머니'나 '혜경궁 홍씨'는 자기 이름 없이 항상 가족이나 직책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니 말이다. 물론 '허난설헌'처럼 뒤늦게 문학사에서 지워지는 듯한 사람도 있음을 감안해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작품 같기도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