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다 보니 산 책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플렉스너 보고서>인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헌이기는 해도 당장 내 일이나 전공이나 관심사와는 무관한 것이므로 아주 긴요한 자료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학술진흥재단 고전번역총서 시리즈를 모으다 보니 덩달아 구입했을 뿐이다.(마침 헌책방마다 남아도는 악성 재고라 저렴하기도 했고).


이번 의료 대란을 지켜보면서 의료 사회사에 관한 책을 몇 가지 꺼내 보게 되었는데, 이미 갖고 있던 폴 스타의 <미국 의료의 사회적 변모>라든지, 이반 일리치 전집 가운데 하나인 <전문가들의 사회>가 그러했다, 김현아 교수의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는 유튜브에 올라온 저자의 강연/해설로 접했는데, 근본적 인식 변화를 요구하다는 점에서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폴 스타의 책은 실력자와 돌팔이가 혼재되었던 미국 의료계가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개선되면서 전문가로서의 의사가 육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일리치와 여러 저자가 공동 저술한 책에서는 바로 그런 전문가로서의 권위가 과장되었으며, 의료 역시 서비스라는 점에서 대중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직 의사 김현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원에 덜 가자고 한다.


<플렉스너 보고서> 번역본을 뒤늦게나마 꺼내 읽어본 까닭은 폴 스타의 책에서 그 전후 맥락이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의료 교육도 전문가 양성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저 유명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 선례를 보여주고 나머지 대학들도 뒤따라감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의료 교육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여러 의과대학은 설비와 교육 수준이 천차만별이어서 함량 미달의 의사가 양산되었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도모하던 미국의사협회에서 객관성 보장을 위해 외부 기관인 카네기 재단에 의뢰하여 의과대학의 현황을 조사했다. 조사를 총괄하고 훗날 간행된 보고서에도 이름을 올려놓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가 의사 아닌 교육가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플렉스너는 미국의 의과대학 가운데 상당수가 애초의 공언과는 달리 제대로 된 설비와 교과 과정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으며, 그 결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의과대학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1904년에 160개에서 1920년에 85개를 거쳐 1935년에 66개로 한 세대 만에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덕분에 이후로는 의사의 수준과 의료의 수준 모두 향상되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내용만 놓고 보면 <플렉스너 보고서>의 결론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대 증원 논란과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의료의 수준을 높이려면 의대/의사 숫자를 늘릴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의 목표는 돌팔이를 걸러내고 실력자만 의사로 만들자는 선별의 문제였으므로, 오히려 분포 불균형의 문제인 현재의 논란과는 다르다.


대신 예나 지금이나 공통점은 폴 스타의 지적처럼 의사 집단이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고 나서부터는 공공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플렉스너의 시대에도 의과대학 개편을 통한 전문성 향상이라는 의료 교육의 새로운 목표에 반대하고 현상 유지를 원한 의사가 많았는데, 그들 역시 손쉬운 돈벌이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의료 개혁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소아과 등 일부 과목 기피 현상으로 인한 불균형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역사적 선례 때문이다. 무조건 아파트만 짓는다고 집값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소아과가 생겨날 리 없다. 의사들의 이기주의도 싫지만 현 정부의 헛발질도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플렉스너 보고서> 직후 의료 제도가 어느 정도 개선된 미국에서도 이후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의사 숫자를 놓고 비슷한 논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의대 정원은 정책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었지만, 그 적정수를 산출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논란이 있었다. 다만 분명한 점은 현재의 미국에서도 의료의 비용 상승과 분포 불균형이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해법이 무엇인지는 나귀님도 모르겠다. 다만 의료 수가 조정을 통해 소아과나 응급 의료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동시에 과잉 진료와 부정 행위를 규제하는 등의 조치가 그나마 일리 있지 않나 싶을 뿐이다. 아울러 김현아 교수의 책에 나왔듯이 궁극적으로는 의료와 병원의 한계를 인식하고 질병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태도를 각자 체득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한 가지 의외인 점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대란이 3개월을 넘긴 현재까지도 의료 붕괴라고 부를 만한 대참사까지는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턴 대신 교수를 갈아넣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이 병원을 삼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 그간의 의료 현장에 일부 거품이 있었다는 반증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없지는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앞서 고딕 소설에 수상쩍을 정도로 열심인 '고딕서가'라는 출판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이처럼 덕업일치로 번역자가 발행인을 겸하며 독특한 주제나 장르를 꾸준히 파고드는 소형 출판사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바톤핑크라는 출판사도 그중 하나로 보이는데, 여기는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공포 소설을 번역해서 이름을 알린 정진영이 운영하면서 이미 절판된 본인의 기존 번역물을 재간행하는 한편 새로운 번역물을 펴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귀님이 구입한 책은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 연대기>였는데, 이 범죄자에 관한 논픽션을 모은 1권과 픽션을 모은 2권으로 나뉘어 전자책으로 간행되었다가 나중에 가서 종이책으로도 만들고, 두 권을 엮은 합본판도 만든 듯하다.


우선 1권에는 미국의 작가 에드워드 피어슨의 에세이 "잭 더 리퍼"와 사건 당시의 신문 기사 등을 관련 도판과 함께 수록했고, 2권에는 이 연쇄 살인마의 행적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단편 소설 8편을 번역해서 수록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구입해서 살펴보니, 혼자 만드는 책의 구조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번역과 편집 모두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예를 들어 "31호실 열쇠"라는 책 제목을 목차와 면주에서는 줄곧 "13호실 열쇠"라고 적은 것이 그렇다.


발행인 겸 번역자는 예전에 여러 번 오역 논란을 일으킨 바 있었는데 (책세상에서 나온 <세계 호러 단편 100선>의 알라딘 서평을 보라) 이번에도 역시나 의욕만 앞서고 실력이 받쳐주지 못한 결과물이 된 것은 아닐까 싶어 안타깝다.


나귀님이 잭 더 리퍼 책에서 발견한 오역 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것은 2부 단편집의 맨 뒤에 실린 리처드 코넬의 "가장 위험한 게임"의 마지막 문장이다. "어차피 좋은 침대에서 자본 적은 없다고, 레인스포드는 결연해졌다."(358쪽)


이 단편에서 사냥꾼이자 모험가인 주인공은 난파 사고로 외딴 섬에 표류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역시나 사냥에 미친 나머지 조난객을 사냥감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살고 있었다. 결국 주인공도 사냥감이 되어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결말에 가서는 주인공이 사냥꾼의 침실을 역습해 일대일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때 사냥꾼이 '패자는 사냥개의 먹이가 되고, 승자는 이 좋은 침대에서 자게 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러고서 저 마지막 문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번역자는 문맥을 완전히 오독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주인공(레인스포드)이 최후의 결투를 앞두고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라 되뇌며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는 뜻이 아니라, 결투 이후의 상황 묘사이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인 결투 묘사를 건너뛰고 '좋은 침대에서 자게' 된 주인공의 소감을 통해 결과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살짝 의역하면) "이렇게 좋은 침대는 처음 써 본다고 레인스포드는 생각했다" 정도가 되어야 맞다.


코넬의 단편이 상당히 유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오역이 나왔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번역자도 시인했듯이 잭 더 리퍼와 직접 관련조차 없는 이 작품을 굳이 포함시켜 오역까지 저질렀으니 더욱 씁쓸한 일이다.


물론 잭 더 리퍼라는 소재로 픽션과 논픽션을 엮는다는 발상 자체는 참신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지옥사전> 때에도 말했었지만, 이놈의 나라에서 장르 독자로 살아가기는 여전히 참 힘들구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은 일반 라디오 대신 DMB 라디오의 음악 방송을 자주 듣는다. 진행자의 설명도, 청취자의 사연도, 심지어 협찬 광고도 없이 (물론 정시마다 캠페인이 하나씩 방송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지만) 음악만 나오기 때문에 배경 음악 삼아 틀어놓으면 딱이다. 가끔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도 아예 이걸로 배경 음악을 까는 모양이다.


가끔 운이 좋으면 한 가수의 앨범 전곡이 연이어 나오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서 팝이나 재즈나 클래식 등 장르가 바뀌기도 하니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심심하지는 않은데, 한 가지 단점은 가끔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이 나오더라도 정작 진행자나 선곡표가 전무한 까닭에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그 제목이나 가수를 알 길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궁리하다 네이버 앱의 음악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봤는데, 이게 요즘 노래는 비교적 잘 맞히는 반면에 예전 노래는 도통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한 번은 (세상에!) 아나 토렌트의 영화 <벌집의 정령>의 주제가인 듯한 노래가 나왔는데도 인식을 못해서 놓쳤다!(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까마귀 키우기>의 주제가였다!)


다행히 네이버 앱에서 노래를 인식해서 검색 결과를 정확히 내놓은 덕에 처음 알게 된 곡도 있는데, 예를 들어 신승은의 "답답함"이나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이 그러했다. 인디 가수나 언더 가수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흔히 접하지 못하던 음악이다 보니 오히려 더 신선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네이버 앱으로 음악 검색을 하고 나면 맨 아래에 요즘 인기 있는 노래를 세대/성별로 구분해 놓은 목록이 나온다. 한 번은 거기서 뜬금없이 AK-47이라는 단어를 무려 제목으로 사용한 노래를 발견하고 의아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10대에서만 압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모양이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찾아서 가사까지 확인해 들어 보니, 솔직히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내용까지는 없고 일종의 말장난, 또는 부조리를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힙합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단지 그 장르에서 종종 내세운다는 과시나 자랑의 일환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AK-47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신경 쓰였던 까닭은 이것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 가운데 하나인 소련제 소총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발명가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이름을 딴 정식 명칭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vtomat Kalashnikova)의 약자가 AK이고, 47이란 숫자는 그 제작년도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마침 나귀님은 최근에 이 무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구입해 들춰보던 참이었다. 작년에 광활한우주점에서 책을 하나 주문하려다가 배송료 지우려고 다른 책을 찾다 보니 호비스트에서 간행한 칼라시니코프 관련 화보집이 두 종이나 있었다. 마침 AK-47에 관한 단행본도 두 권이 있어서 졸지에 관련서를 네 종이나 구입하게 되었다.


사실 AK-47과 칼라시니코프의 이름을 환기하게 된 계기는 이탈리아 나폴리 범죄 조직 카모라에 대한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논픽션이었다. <고모라>의 한 장에서 카모라 고위 간부들 일부가 이 무시무시한 총기를 개발한 장본인을 워낙 우상시하는 까닭에 정기적으로 값비싼 선물을 보내며 친목을 다진다는 설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AK-47의 장점은 종종 가격이 저렴하고, 조작이 손쉬우며, 고장이 드물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래서인지 범죄 조직은 물론이고 무장 반군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되어서, 한때 국제적인 문제로 주목을 받은 소년병들이 들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집으로 가는 길>의 표지에도 그 소총이 나온다).


약간 과장하자면 흙이나 물이 들어가도 멀쩡하고, 규격 외 탄환을 사용해도 발사된다니, 정말로 '흠좀무' 하다고 해야 맞겠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어깨를 나란히 한 미국의 M-16이 오작동을 줄이기 위해 틈새를 좁혀 촘촘하게 설계된 반면, AK-47은 소련의 낙후된 생산 기술을 감안해 틈새를 넉넉히 준 것이 장점이 되었다던가.


생전의 칼라시니코프는 자기가 개발한 총이 일신의 이익보다 조국의 이익에 이바지했다며 자랑스러워했던 듯하며, 간혹 그 무기의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칼도 쓰기에 따라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거나 한다'는 원론적/중립적 태도를 고수했다고 전한다. 물론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끊이지 않을 법하다.


다만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자부심을 끝까지 고수했던 칼라시니코프도 매우 당황했을 때가 있었다고 전한다. 냉전이 끝나고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서 유진 스토너를 만났을 때의 일인데, AK-47의 맞수인 M-16이 하나 팔릴 때마다 그 발명가가 대략 1달러씩 로열티를 받아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자료마다 설명이 약간씩 다르다. 우선 마쓰모토 진이치의 <역사를 바꾼 총 AK47>에는 칼라시니코프가 스토너의 행운을 부러워하지 않고 끝까지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나오는 반면, 래리 캐해너의 <AK47>에는 그가 상당히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으로 이후 수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테트리스>의 발명자가 소련 출신이라서 저 게임의 세계적인 흥행에도 딱히 이득을 챙기지 못했듯, 칼라시니코프도 자신의 발명품으로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명예를 챙겼지만 실속은 챙기지 못했다고 할 만하다. 사후 10년이 지나 AK-47이란 노래까지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면 또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있으면 점심에 주로 면류로 한 끼를 때우는데 최근에는 스파게티를 해 먹는다. 분류하자면 알리오올리오이지만 면과 기름과 마늘 외에 부재료는 거의 없다시피하니 딱히 어디 가서 내세울 만한 요리까지는 아니다. 조리법도 유튜브 몇 개 보고 흉내를 내는 것뿐이니 굳이 손님 불러 해 먹일 만한 별미까지도 아니다.


사실은 이마저도 작년에야 찬장을 뒤지다가 오래 된 올리브유가 나오기에 어쩔 수 없이 재료를 처분하느라 시작한 것이었다. 올 초까지 꾸역꾸역 만들어 먹어서 유통기한이 21년 5월까지인 올리브유 한 통을 간신히 처분했는데, 유통기한이 24년 4월까지인 2리터짜리 "단역 처녀"도 한 통 남아 있으니 이건 또 언제 먹나.


그나저나 올리브유라면 비교적 금방 산패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집에 남아도는 것들은 비교적 멀쩡한 듯해서 계속 먹으면서도 살짝 의아하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올리브유가 상한다는 이야기는 특이하게도 어려서 읽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왔던 어느 꼬마의 영리한 재판 이야기에서 처음 접했었다.


정확한 출처가 어딘지 궁금해 검색해 보니, 열린책들에서 나온 갈랑 판 <천일야화>에서는 5권 말미에 수록된 "바그다드 상인 알리 코지아 이야기"였다. 버턴 판에서는 "바그다드 상인 알리 크와자 이야기"(640번째 밤)로 나오는 모양인데, 이건 책 꺼내기 귀찮아서 아직 번역본까지 찾아서 대조해 보지는 않은 상황이다.


제목 그대로 바그다드에 사는 상인 알리 코지아가 성지 순례를 떠나면서 전 재산을 금화로 바꾸어 항아리에 집어넣고 그 위에 다른 물건을 얹어서 위장한 다음 이웃집에 맡긴다. 그런데 7년 뒤에 돌아와서 이웃집에 맡긴 항아리를 도로 받아 열어보았더니, 금화는 온데간데 없고 위장용 물건만 하나가득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위장용 물건을 나는 '올리브유'였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올리브 열매'로 나와 있었다. 즉 금화를 감추기 위해 올리브 열매를 위에 깔아 놓았는데, 이웃집 사람이 올리브 열매를 몇 개 꺼내 먹으려다가 시간이 너무 흘러 상했음을 깨닫고 항아리를 엎었다가 금화를 발견하게 되었던 거다.


이웃집 사람은 금화를 챙겨서 숨긴 다음, 올리브 열매를 새로 사다가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얼마 뒤에 돌아온 상인에게 시치미를 떼고 내어준다. 뒤늦게 상인이 금화의 행방을 묻자, 애초에 올리브만 들어 있는 항아리라고 말하지 않았었느냐고 항변하고, 급기야 소송을 당했는데도 나는 모른다고 끝까지 잡아뗀다.


양측의 증언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난감해진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는 평소처럼 신분을 숨기고 거리를 순찰하다 우연히 아이들이 이 유명한 사건을 가지고 모의 재판을 하며 노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재판관 역할을 맡은 아이가 내놓은 영리한 판결에 무릎을 탁 치고 아예 다음날 아이를 궁궐로 불러 재판을 맡긴다.


아이가 내놓은 판결은 간단했다. '어떻게 7년이나 지난 올리브가 이렇게 아직 신선할 수 있는가?' 즉 항아리 속의 올리브는 그 상태로 미루어 최근 수확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인이 맡긴 몇 년 전의 올리브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결정적 단서에 이웃집 사람도 죄를 자백하고, 상인은 잃어버린 금화를 되찾는다.


결국 상한 것은 '올리브'이지 '올리브유'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귀님은 어째서 그 열매를 그 기름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어려서 읽은 책을 지금 다시 찾아낼 수는 없으니 정확한 이유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함께 읽었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기름 항아리 이야기와 혼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올리브유의 정확한 유통기한은 얼마일까? 보통 6개월에서 1년 안에 최대한 빨리 소비하는 게 낫다던데, 그렇다고 해서 그 기간이 지나면 갑자기 상해버리는 것까지는 아닌 듯하니 다행이다. 마침 흉작 여파로 올리브유 가격이 전세계적으로 급등했다는 뉴스까지 접하고 나니, 미리 사놓기를 잘한 건가도 싶고...




[*] 그렇다고 해서 맛집만 골라 다니는 나귀님까지는 아니어서 딱히 가본 스파게티집이 많지는 않다. 그중 하나인 광화문 뽀모도로인가 하는 곳은 아무리 맛집이라 해도 식탁을 너무 다닥다닥 붙여 놓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예전에 몇 번 약속 때문에 부득이하게 찾아간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다. 길에서 우연히 보고 한 번 들어가 볼까 생각만 했다가 결국 못 가본 '초록색 문'에 해당하는 가게들도 몇 가지 생각나는데, 예를 들어 예전 을지로 쁘렝땅 백화점(!) 길가에 있었던, 상호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곳이 그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교보문고 옆 지금은 없어진 피맛골에 있었던 길거리(?) 스파게티집이다. 장의사 건물 뒤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가판대처럼 폭이 좁은 스파게티집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주인이 음식을 내주면 손님은 등 뒤로 행인들이 오가며 쳐다보는 와중에 사실상 길가에 앉은 채로 먹어야 하는 구조라서 살짝 꺼려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다시 검색해 보았더니 특이하게도 2002년 1월 30일에 나란히 올라온 관련 기사가 두 개나 나온다. 가게 이름은 '종로한평'이고 홍익대 미대를 나온 도예가 최병진이 만들었다고 한다. 하루 30그릇씩 판매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문이 열려 있었던 때보다는 닫혀 있었던 때가 더 많았던 듯하다. 그냥 장난이나 변덕으로 영업한 것은 아닌 듯하고, 기사에 따르면 더 큰 가게를 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던 모양인데,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튜브에서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나수지의 보도 동영상 가운데 "뉴욕엔 왜 유독 비계가 많을까?"가 있어서 눌러보았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렇잖아도 지난번 <이서진의 뉴욕뉴욕>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내내 비계 밑으로 지나다니는 장면이 하도 많아서 '도대체 저기는 왜 이렇게 공사가 많지? 구역 전체를 재개발이라도 하나?' 하고 의아해 하던 참이었다.


알고 보니 뉴욕의 비계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민간의 얄팍한 꼼수가 어우러지며 생겨난 대환장 파티라고 할 만했다. 과거 건물 외벽이 파손되며 행인이 다치는 등의 사고가 생기면서 정기적인 외벽 검사가 의무화되었고, 그 결과 비계를 임시로 설치하는 곳이 늘어났는데, 한 번 설치하고 나자 또 이런저런 이유로 철거가 미루어져서 수년씩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뉴욕에는 무려 8300개의 비계가 있었다고 하니, 이것 자체로 이미 공해라 할 만하겠다. 미관상 좋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어디까지나 임시 구조물인 비계 자체의 안전과 위생 문제도 제기되는 모양이다. 안전을 도모하는 것도 좋지만, 유연성 없는 행정 조치는 결국 지금처럼 부조리의 차원에 도달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비계 이야기가 나왔으니 동음이의어인 돼지 비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이 식당에서 삼겹살을 주문했는데 비계가 대부분인 것이 나왔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식당 주인이 뒤늦게 사과하며 마무리되나 싶더니만, 제주 지사가 뜬금없이 지역 특유의 식문화를 감안해야 한다며 실언하는 바람에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동음이의어는 서울의 지명이다. 흑석동에서 국립묘지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의 버스 정류장 이름이 '비계'인데, 처음 들었을 때에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궁금해서 노선표를 확인하기도 했었다. 정식 행정 구역명까지는 아니고 지역민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이름이라니 삼양동과도 비슷한 셈인가 싶었는데... 지금은 삼양동도 장식 행정 구역명으로 부활한 모양이다!


이 지명을 새삼 떠올리게 된 까닭은 최근 재개발에 들어간 흑석동 일부 지구에서 뜬금없이 '서반포'라며 존재하지도 않은 지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행정 구역상 반포와는 분명히 별개인 동네인데도 저 유명한 지역의 이름을 악용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인터넷 댓글 중에서 '어떻게 거기가 서반포냐, 차라리 동노량진이라 해라'는 지적이 가장 사이다로 보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자칭 서반포 재개발 지구 바로 옆에 조선일보 회장 자택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가장 넓은 주택이라고 해서 유명한 곳인데, 한때 매일 두 번씩 지나다니던 곳이지만 커다란 대문과 언덕 위로 이어진 진입로만 봐서는 거기 누가 사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지금은 대문 옆에 조선일보 박물관이 있던데, 주택 보유세 회피용이라는 비판도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그 동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조선일보 회장 자택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작은 녹지였다. 지금은 명수대 현대아파트와 한강 현대아파트 사이의 스포츠센터 부지인데, 원래는 너비 50미터쯤 되는 작은 언덕 위로 나무며 풀이 우거지고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마 인근 땅 전체를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려다가 협상이 결렬되어 그 녹지 부분만 남겨놓은 듯했다.


그런데 하루 두 번씩 그 앞을 지나가다 보니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사막에서 초록초록한 모습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는 녹지의 모습이 점점 마음에 드는 거다. 마치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이 실사판 같았다고나 할까. 인도 옆 대문을 열고 돌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집의 모습은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나아가는 누군가의 고집처럼도 보였다.


그래서 부디 그 푸릇푸릇한 곳이 누군지 모를 그 주인과 함께 오래 남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이후 그쪽으로 한동안 발을 끊었다가 다시 가보니 언덕이며 녹지며 집은 결국 사라지고 지금과 같은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기에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남들은 그냥 흘려 듣고 말았을 법한 '비계'라는 희한한 지명이 아직까지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