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신간 북펀드 광고 중에 "모차르트는 여자였다"라는 것이 있기에, 이건 또 무슨 신선한 음모론인가 싶어서 클릭해 보니 '난네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즉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누이' 비유처럼 모차르트의 누나를 비롯한 수많은 재녀들이 부당하게도 음악사에서 외면당했다는 내용인 듯하다.


이런 식의 억울한 피해자, 또는 세상이 외면한 천재를 다룬 책은 이미 숱하게 나왔지만, 종종 음모론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에디슨과 제너럴일렉트릭의 탐욕과 오만 때문에 테슬라가, 또는 각종 무한 에너지와 영구 기관 발명가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결과론적 주장은 '30년 전에 강남 아파트를 하나 사 두었더라면'이나 '10년 전에 비트코인을 조금 사 놓았더라면' 하는 후회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는 수십 년 뒤에 아파트와 비트코인이 떡상할 것을 미리 예측하지 못해 구매하지 않았던 것이 팩트이기 때문이다.


앞서 제논의 역설을 해결한 베르그송의 지적은 여기서도 딱 어울린다. 우리는 과거의 행적을 평면 위의 직선(I)이 수많은 선택지를 만나 갈림길(Y)을 만들어낸 모습으로 상상하기 쉽지만, 이것 역시 토끼와 거북이의 운동을 시각화한 제논의 눈속임처럼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즉 우리의 인생이 수많은 '가지 않은 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우리가 이미 지나 온 길들만 있을 뿐이며, 사실은 그나마도 직선(I)이라기보다는 점 하나(.)로 비유해야 어울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 궤적은 그저 아쉬움이 빚어낸 허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바라보자면 강남 아파트나 비트코인에 대한 아쉬움은 한낱 무의미한 푸념일 뿐이다. 과거에 부동산과 가상 화폐를 매입하지 않았던 것도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니, 설령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미래를 알 수 없는 당사자로선 똑같은 결정을 최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시대를 잘못 만났거나 여건이 좋지 않은 탓에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천재에 관한 통념은 비록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허구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제아무리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는 것이며, 워낙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차르트의 누나나 셰익스피어의 누이에 대한 비유가 과거 여성이 겪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발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이들이 가능성을 보인 음악이나 문학 분야에서는 재능 못지않게 노력과 행운도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성공을 쉽게 장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명한 화가나 음악가, 또는 최근 각광을 받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살펴보면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뒤늦게야 재능이 만발한 사람도 없지 않다. 어려서부터 주목을 받은 신동 가운데 말년까지 재능을 유지한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는 것도 각별히 주목해야 할 점이다.


엉뚱하게도 '친구 따라갔다가 오디션에 합격했다'거나 '언니가 먼저 시작해서 응원하러 갔다가 나도 따라하게 되었다'는 식의 증언이 적지 않음을 기억해 보면 행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충분한 재능이 있어도 각자의 결정이나 한계나 다른 이유로 중도 포기하는 사람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재능뿐만이 아니라 노력과 행운도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록 난네를이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동생만큼 작곡가로 대성할 수 있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거꾸로 동생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누나에게까지도 똑같은 기대를 한다는 것이 부당한 일 아닐까?


예를 들어 '유전자 몰빵'의 사례로 유명한 배우 송중기의 누이만 하더라도 비록 외모에서 오빠만큼의 축복을 받지는 못한 듯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대성했다고 하니, 아무리 남매라도 두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고 (예를 들어 '동생은 왜 인기 여배우와 결혼 못했냐'며)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법하다.


아울러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실제로 있어서 정말로 혁혁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치더라도, 오늘날 그 오빠가 받는 평가를 감안해 보면 의외로 푸대접을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왜냐하면 저 극작가는 세계 최고의 문인으로 추앙받는 한편,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즉 셰익스피어의 전기 자료가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서 실제로는 무명 극작가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제 이름으로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느니, 심지어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크리스토퍼 말로 같은 당대의 유명 문인의 필명에 불과하다는 주장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어느 학자의 지적처럼 이 모든 가설은 학력도 일천한 일개 극작가가 그토록 뛰어나고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었을 리 없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니,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실제로 있었더라도 십중팔구 '오빠가 대신 써준 것'이라는 의심부터 시작해서 온갖 구구한 추측과 비난을 피할 수는 없지 않을까...




[*] <모차르트는 여성이었다>가 결국 출간되었기에 (Yes24에서 고화질로) 미리보기를 확인해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과격하고 편향적인 어조여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띄어쓰기 오류 같은 초보적인 실수가 눈에 띄는 것으로 미루어 편집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영국 여성 시인 러네이 비비언의 별명인 "1900년의 사포"에 대해서 "당시 <1900년대>라는 문학잡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작가 앙드레 빌리(Andre Billy)비비언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라고 설명한 23쪽 역주를 보자. 첫째, "앙드레 빌리"와 "비비언에게" 사이에 조사가 빠지고 띄어쓰기가 틀렸다. 둘째,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구글링해 보니 <1900년대>는 문학 잡지가 아니라 앙드레 빌리가 1951년에 간행한 단행본이었다. 즉 "앙드레 빌리가 저서 <1900년대>에서 비비언에게 붙인 별명"이라고 설명했어야 정확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나귀님 입장에서야 굳이 직접 읽어볼 만한 가치까지는 없는 책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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