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펀드에서 <미로, 길을 잃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보고 흥미가 동했다. 저자는 영국 펭귄 출판사의 편집자 출신이라는데, 미로의 개념과 역사부터 시작해서 이 소재에 매료된 작가와 예술가 등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잖아도 미로에 관한 책을 몇 권 사다 놓은 나귀님으로서는 흥미로운 자료가 또 하나 생기는 셈이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텍스트 말고 사진 속의 광고 문구를 살펴보니, "미로에 빠진 예술가, 문학가, 철학자"의 명단에 "카프카, 보르헤스, 피카소, 큐브릭, 델 토로, 캐럴"을 열거하고 나서 "미로의 왕 그렉 브라이트"를 덧붙여 놓았다. 그렉 브라이트? 혹시 예전에 사다 놓은 <미로의 책>의 저자가 아닌가 싶어 이전에 찍어 놓은 "책장 사진"을 뒤져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


책장 사진이 뭔가 하면,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신국판 단행본 두 권 깊이로 책장을 만들다 보니, 앞에 있는 책들은 기억하기 쉬워도 뒤에 있는 책들은 기억하기 힘들어 가끔씩 앞뒤로 위치를 바꿔주어야 하는데, 맨 아랫칸 책들은 책장 앞에 쌓인 또 다른 책더미 때문에 꺼내기가 쉽지 않다 보니, 가끔 뭐 하나 꺼내 보는 김에 아예 사진으로 찍어 두고 참고하는 거다.








내 기억에 <미로의 책>은 제목 그대로 저자가 창작한 미로를 독자가 풀어보는 퍼즐북이었는데, 권말에는 저자가 직접 땅을 파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초대형 미로를 실제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까지 들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게임북인 줄로 알고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진성 미로 덕후인 사람이라니 감탄하다 못해 살짝은 징그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 지금은 뭘 하나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의외로 나오는 자료가 많지 않았다. 알고 보니 1970년대에 혜성같이 나타나서 미로업계(?)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홀연히 사라졌으며, 이후 종적이 밝혀지지 않아 지금은 사실상 전설에 가까운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런 그를 수십 년 만에 찾아내 인터뷰한 사람이 바로 이번 책의 저자라는 거다.


즉 저자가 미로에 대한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그렉 브라이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도통 실마리를 잡을 수 없어 안타까워했는데, 하루는 펭귄 출판사 책에 대해 문의하는 독자 편지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기에 뜯어보니, 세상에, 그걸 보낸 사람이 바로 '그' 그렉 브라이트 본인이었다는 거다. 이후 엘리엇은 브라이트의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수행했다고 한다.


1951년생으로 인터뷰 당시 60대였던 그렉 브라이트는 여전히 미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건재했다던데, 갑자기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한 이유며 근황에 대해서는 엘리엇의 책에서 더 자세히 설명되는 모양이다. 여하간 이쯤 되면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책더미를 헤치고 책장 맨 아래칸 구석에 꽂혀 있던 <미로의 책>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았다!








정확한 제목은 <그렉 브라이트의 미로의 책: 모두가 즐기는 퍼즐>(편집부 옮김, 우신사, 1983)이고, 원서의 제목은 GREG BRIGHT'S MAZE BOOK: PUZZLES FOR EVERYONE(1974)이며, 인명 표기의 오류로 미루어 일어중역본으로 보인다. 제목처럼 저자가 제작한 30여 종의 미로 퍼즐을 풀어볼 수 있는 책이며, 권말의 사진과 해설은 1971년에 제작한 "참호 미로"를 보여준다.


원래는 펜 대신 사용할 "대나무 바늘"이 가름끈에 달려 있었다던데, 나귀님이 중고로 산 책에는 바늘이 떨어져 나가고 가름끈만 남았다. 하지만 함께 첨부된 "투명지"(습자지) 두 장은 아직 들어 있다. 가급적 대나무 막대기로만 미로를 풀어 보게 하고, 굳이 펜을 사용하고 싶으면 미로를 덮은 습자지에다가 대신 그리라는 것이니, 역시나 미로 덕후다운 배려심이라 하겠다.


흥미롭게도 32번째 미로는 "미로 제작용 기본 패턴"이기 때문에, 이 페이지를 복사해 상하좌우로 덧붙이면 더 커다란 미로를 계속 만들 수 있다. 그의 독창적인 발상으로 간주되는 "구멍 뚫린 미로", 즉 곳곳에 난 구멍을 통해 앞뒷면을 오가며 푸는 양면 미로도 하나 수록되었는데, 어째서인지 일련번호는 매겨지지 않았으므로 실제로는 33종의 미로가 들어 있는 셈이다.


북펀드에 올라온 출판사의 소개 글에도 나와 있듯이, 미로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고 널리 퍼진 상징물이다. 오늘날에는 단순한 놀이로 여겨지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의외로 심오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저 보기에 예쁘고 신비로운 장식 미술의 일종인 것 같다가도, 누구나 경험하게 마련인 인생의 여정이나 심지어 영혼의 여정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신의학자 융은 평소에 미로와 유사한 만다라를 그리는 취미가 있었고, 스위스 호반의 자택 볼링엔도 손수 지었다고 전한다. 미로를 종이에만 그리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땅을 파서 구현하기까지 했던 그렉 브라이트의 행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자아를 탐색/실현하는 과정의 일종은 아니었을까. 마치 나귀님이 아직도 종종 레트로 미로 게임 "로드러너"를 즐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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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드에 마오주의를 다룬 책이 있기에 저자가 누군가 궁금해 알아보니, 일찍이 만리장성에 대한 책을 썼던 줄리아 로벨이었다. 몇 년 전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한두 달 사이에 중국 장성에 관한 책을 연이어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저자의 그 저서도 구입하지 않았나 싶다. 


내친 김에 장벽이며 창문이며 철조망이며 고양이사다리(?)며 하는 건축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다룬 책들도 함께 엮어 읽어보려다가 차일피일하던 것이, 지금은 어느 쪽 책더미에 파묻혔는지 알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비트코인을 쓰레기장에 묻었다는 누군가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마오주의라는 명칭을 처음 접하지 않았나 싶은 곳은 의외로 이사벨 아옌데의 초기 소설 가운데 하나에서였다. 주인공인 칠레 소년이 혁명을 해 보겠답시고 가출해서 마오주의자 집단에 가담했다가, 뒤늦게야 아버지가 찾아오자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서 싱겁게 따라갔다는 내용이다.


나귀님은 <에바 루나>의 한 대목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와서 다시 구글링해 보니 <사랑과 그림자>의 한 대목인 모양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서양 사람이 '마오주의자'를 자처하고 나선다는 대목이 가장 신기했는데, 마오쩌둥의 지지자라면 당연히 중국인뿐일 것이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측면까지 감안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마오주의 말고, 일반적인 의미의 마오주의는 전세계 반정부 단체니 게릴라 집단에서 차용하는 실천 방법이라고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로벨의 책에서도 지적했듯, 비록 영향력은 한정되었어도 숫자만큼은 의외로 많은 듯하다.


사실 마오쩌둥 지지자의 활동이라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오주의보다 더 악명 높은 홍위병인데, 그렇잖아도 최근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된 중국 작가의 SF 소설 <삼체>의 배경이 문화혁명 시기라고 해서 새삼스레 화제가 된 (아울러 중국에서는 논란이 된) 모양이다.


문화혁명이니 홍위병에 관한 책은 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번역되어 왔다고 기억하는데, 가장 최근에 읽은 것으로는 <백 사람의 십 년>이 있다. 그 시기를 몸소 겪은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열거하는 구술사인데, 역사가의 서술과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한사오궁의 <혁명후기>는 문화혁명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아마도 마오쩌둥 개인이나 공산당의 정책 같은 한두 가지를 원인으로 바라보는 단순 해석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인간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가 원인이라는 그의 지적도 선뜻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런 맥락이라면 차라리 성악설 쪽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대략 한 세기 전에 대두한 나치즘도 결국 문명인인 독일 국민 가운데 상당수를 일시적이나마 악마에 가까운 존재로 바꾸어 놓았었으니까.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야 그때 이미 폐기된 줄 알았더니, 중국은 한 발짝 늦었던 걸까.


사실 홍위병의 활동은 마오쩌둥에 대한 숭배와도 떼려야 뗄 수가 없다고 알고 있다. 기성 권위와 질서를 타파하겠다며 저지른 갖가지 만행이 최고 지도자를 향한 팬심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이었으니, 마오쩌둥이 유일무이한 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뇌관 노릇만큼은 충분히 했던 셈이다.


이른바 68혁명에서도 학생들의 시위에서는 홍위병 비슷한 요소가 드러났었다고 전하니, 어쩌면 그것 역시 마오주의의 영향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오쩌둥 역시 유교나 도교나 선불교 못지않게 전세계에 심오한 영향을 준 중국의 사상적 수출품이라니 새삼스레 놀랍다.




[*] 애초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마오주의> 북펀드 광고 페이지에 저자 이름이 '줄리아 로벨'과 '줄리아 노벨'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쓰다 보니 그 이야기는 쏙 빼놓게 되어서 사족으로나마 붙여 본다. 지금도 그런가 싶어서 살펴보았더니, 여전히 그대로다. 일해라,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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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다 보니 산 책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플렉스너 보고서>인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헌이기는 해도 당장 내 일이나 전공이나 관심사와는 무관한 것이므로 아주 긴요한 자료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학술진흥재단 고전번역총서 시리즈를 모으다 보니 덩달아 구입했을 뿐이다.(마침 헌책방마다 남아도는 악성 재고라 저렴하기도 했고).


이번 의료 대란을 지켜보면서 의료 사회사에 관한 책을 몇 가지 꺼내 보게 되었는데, 이미 갖고 있던 폴 스타의 <미국 의료의 사회적 변모>라든지, 이반 일리치 전집 가운데 하나인 <전문가들의 사회>가 그러했다, 김현아 교수의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는 유튜브에 올라온 저자의 강연/해설로 접했는데, 근본적 인식 변화를 요구하다는 점에서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폴 스타의 책은 실력자와 돌팔이가 혼재되었던 미국 의료계가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개선되면서 전문가로서의 의사가 육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일리치와 여러 저자가 공동 저술한 책에서는 바로 그런 전문가로서의 권위가 과장되었으며, 의료 역시 서비스라는 점에서 대중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직 의사 김현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원에 덜 가자고 한다.


<플렉스너 보고서> 번역본을 뒤늦게나마 꺼내 읽어본 까닭은 폴 스타의 책에서 그 전후 맥락이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의료 교육도 전문가 양성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저 유명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 선례를 보여주고 나머지 대학들도 뒤따라감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의료 교육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여러 의과대학은 설비와 교육 수준이 천차만별이어서 함량 미달의 의사가 양산되었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도모하던 미국의사협회에서 객관성 보장을 위해 외부 기관인 카네기 재단에 의뢰하여 의과대학의 현황을 조사했다. 조사를 총괄하고 훗날 간행된 보고서에도 이름을 올려놓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가 의사 아닌 교육가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플렉스너는 미국의 의과대학 가운데 상당수가 애초의 공언과는 달리 제대로 된 설비와 교과 과정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으며, 그 결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의과대학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1904년에 160개에서 1920년에 85개를 거쳐 1935년에 66개로 한 세대 만에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덕분에 이후로는 의사의 수준과 의료의 수준 모두 향상되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내용만 놓고 보면 <플렉스너 보고서>의 결론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대 증원 논란과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의료의 수준을 높이려면 의대/의사 숫자를 늘릴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의 목표는 돌팔이를 걸러내고 실력자만 의사로 만들자는 선별의 문제였으므로, 오히려 분포 불균형의 문제인 현재의 논란과는 다르다.


대신 예나 지금이나 공통점은 폴 스타의 지적처럼 의사 집단이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고 나서부터는 공공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플렉스너의 시대에도 의과대학 개편을 통한 전문성 향상이라는 의료 교육의 새로운 목표에 반대하고 현상 유지를 원한 의사가 많았는데, 그들 역시 손쉬운 돈벌이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의료 개혁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소아과 등 일부 과목 기피 현상으로 인한 불균형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역사적 선례 때문이다. 무조건 아파트만 짓는다고 집값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소아과가 생겨날 리 없다. 의사들의 이기주의도 싫지만 현 정부의 헛발질도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플렉스너 보고서> 직후 의료 제도가 어느 정도 개선된 미국에서도 이후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의사 숫자를 놓고 비슷한 논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의대 정원은 정책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었지만, 그 적정수를 산출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논란이 있었다. 다만 분명한 점은 현재의 미국에서도 의료의 비용 상승과 분포 불균형이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해법이 무엇인지는 나귀님도 모르겠다. 다만 의료 수가 조정을 통해 소아과나 응급 의료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동시에 과잉 진료와 부정 행위를 규제하는 등의 조치가 그나마 일리 있지 않나 싶을 뿐이다. 아울러 김현아 교수의 책에 나왔듯이 궁극적으로는 의료와 병원의 한계를 인식하고 질병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태도를 각자 체득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한 가지 의외인 점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대란이 3개월을 넘긴 현재까지도 의료 붕괴라고 부를 만한 대참사까지는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턴 대신 교수를 갈아넣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이 병원을 삼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 그간의 의료 현장에 일부 거품이 있었다는 반증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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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고딕 소설에 수상쩍을 정도로 열심인 '고딕서가'라는 출판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이처럼 덕업일치로 번역자가 발행인을 겸하며 독특한 주제나 장르를 꾸준히 파고드는 소형 출판사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바톤핑크라는 출판사도 그중 하나로 보이는데, 여기는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공포 소설을 번역해서 이름을 알린 정진영이 운영하면서 이미 절판된 본인의 기존 번역물을 재간행하는 한편 새로운 번역물을 펴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귀님이 구입한 책은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 연대기>였는데, 이 범죄자에 관한 논픽션을 모은 1권과 픽션을 모은 2권으로 나뉘어 전자책으로 간행되었다가 나중에 가서 종이책으로도 만들고, 두 권을 엮은 합본판도 만든 듯하다.


우선 1권에는 미국의 작가 에드워드 피어슨의 에세이 "잭 더 리퍼"와 사건 당시의 신문 기사 등을 관련 도판과 함께 수록했고, 2권에는 이 연쇄 살인마의 행적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단편 소설 8편을 번역해서 수록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구입해서 살펴보니, 혼자 만드는 책의 구조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번역과 편집 모두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예를 들어 "31호실 열쇠"라는 책 제목을 목차와 면주에서는 줄곧 "13호실 열쇠"라고 적은 것이 그렇다.


발행인 겸 번역자는 예전에 여러 번 오역 논란을 일으킨 바 있었는데 (책세상에서 나온 <세계 호러 단편 100선>의 알라딘 서평을 보라) 이번에도 역시나 의욕만 앞서고 실력이 받쳐주지 못한 결과물이 된 것은 아닐까 싶어 안타깝다.


나귀님이 잭 더 리퍼 책에서 발견한 오역 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것은 2부 단편집의 맨 뒤에 실린 리처드 코넬의 "가장 위험한 게임"의 마지막 문장이다. "어차피 좋은 침대에서 자본 적은 없다고, 레인스포드는 결연해졌다."(358쪽)


이 단편에서 사냥꾼이자 모험가인 주인공은 난파 사고로 외딴 섬에 표류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역시나 사냥에 미친 나머지 조난객을 사냥감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살고 있었다. 결국 주인공도 사냥감이 되어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결말에 가서는 주인공이 사냥꾼의 침실을 역습해 일대일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때 사냥꾼이 '패자는 사냥개의 먹이가 되고, 승자는 이 좋은 침대에서 자게 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러고서 저 마지막 문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번역자는 문맥을 완전히 오독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주인공(레인스포드)이 최후의 결투를 앞두고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라 되뇌며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는 뜻이 아니라, 결투 이후의 상황 묘사이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인 결투 묘사를 건너뛰고 '좋은 침대에서 자게' 된 주인공의 소감을 통해 결과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살짝 의역하면) "이렇게 좋은 침대는 처음 써 본다고 레인스포드는 생각했다" 정도가 되어야 맞다.


코넬의 단편이 상당히 유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오역이 나왔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번역자도 시인했듯이 잭 더 리퍼와 직접 관련조차 없는 이 작품을 굳이 포함시켜 오역까지 저질렀으니 더욱 씁쓸한 일이다.


물론 잭 더 리퍼라는 소재로 픽션과 논픽션을 엮는다는 발상 자체는 참신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지옥사전> 때에도 말했었지만, 이놈의 나라에서 장르 독자로 살아가기는 여전히 참 힘들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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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일반 라디오 대신 DMB 라디오의 음악 방송을 자주 듣는다. 진행자의 설명도, 청취자의 사연도, 심지어 협찬 광고도 없이 (물론 정시마다 캠페인이 하나씩 방송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지만) 음악만 나오기 때문에 배경 음악 삼아 틀어놓으면 딱이다. 가끔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도 아예 이걸로 배경 음악을 까는 모양이다.


가끔 운이 좋으면 한 가수의 앨범 전곡이 연이어 나오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서 팝이나 재즈나 클래식 등 장르가 바뀌기도 하니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심심하지는 않은데, 한 가지 단점은 가끔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이 나오더라도 정작 진행자나 선곡표가 전무한 까닭에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그 제목이나 가수를 알 길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궁리하다 네이버 앱의 음악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봤는데, 이게 요즘 노래는 비교적 잘 맞히는 반면에 예전 노래는 도통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한 번은 (세상에!) 아나 토렌트의 영화 <벌집의 정령>의 주제가인 듯한 노래가 나왔는데도 인식을 못해서 놓쳤다!(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까마귀 키우기>의 주제가였다!)


다행히 네이버 앱에서 노래를 인식해서 검색 결과를 정확히 내놓은 덕에 처음 알게 된 곡도 있는데, 예를 들어 신승은의 "답답함"이나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이 그러했다. 인디 가수나 언더 가수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흔히 접하지 못하던 음악이다 보니 오히려 더 신선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네이버 앱으로 음악 검색을 하고 나면 맨 아래에 요즘 인기 있는 노래를 세대/성별로 구분해 놓은 목록이 나온다. 한 번은 거기서 뜬금없이 AK-47이라는 단어를 무려 제목으로 사용한 노래를 발견하고 의아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10대에서만 압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모양이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찾아서 가사까지 확인해 들어 보니, 솔직히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내용까지는 없고 일종의 말장난, 또는 부조리를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힙합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단지 그 장르에서 종종 내세운다는 과시나 자랑의 일환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AK-47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신경 쓰였던 까닭은 이것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 가운데 하나인 소련제 소총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발명가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이름을 딴 정식 명칭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vtomat Kalashnikova)의 약자가 AK이고, 47이란 숫자는 그 제작년도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마침 나귀님은 최근에 이 무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구입해 들춰보던 참이었다. 작년에 광활한우주점에서 책을 하나 주문하려다가 배송료 지우려고 다른 책을 찾다 보니 호비스트에서 간행한 칼라시니코프 관련 화보집이 두 종이나 있었다. 마침 AK-47에 관한 단행본도 두 권이 있어서 졸지에 관련서를 네 종이나 구입하게 되었다.


사실 AK-47과 칼라시니코프의 이름을 환기하게 된 계기는 이탈리아 나폴리 범죄 조직 카모라에 대한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논픽션이었다. <고모라>의 한 장에서 카모라 고위 간부들 일부가 이 무시무시한 총기를 개발한 장본인을 워낙 우상시하는 까닭에 정기적으로 값비싼 선물을 보내며 친목을 다진다는 설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AK-47의 장점은 종종 가격이 저렴하고, 조작이 손쉬우며, 고장이 드물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래서인지 범죄 조직은 물론이고 무장 반군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되어서, 한때 국제적인 문제로 주목을 받은 소년병들이 들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집으로 가는 길>의 표지에도 그 소총이 나온다).


약간 과장하자면 흙이나 물이 들어가도 멀쩡하고, 규격 외 탄환을 사용해도 발사된다니, 정말로 '흠좀무' 하다고 해야 맞겠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어깨를 나란히 한 미국의 M-16이 오작동을 줄이기 위해 틈새를 좁혀 촘촘하게 설계된 반면, AK-47은 소련의 낙후된 생산 기술을 감안해 틈새를 넉넉히 준 것이 장점이 되었다던가.


생전의 칼라시니코프는 자기가 개발한 총이 일신의 이익보다 조국의 이익에 이바지했다며 자랑스러워했던 듯하며, 간혹 그 무기의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칼도 쓰기에 따라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거나 한다'는 원론적/중립적 태도를 고수했다고 전한다. 물론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끊이지 않을 법하다.


다만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자부심을 끝까지 고수했던 칼라시니코프도 매우 당황했을 때가 있었다고 전한다. 냉전이 끝나고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서 유진 스토너를 만났을 때의 일인데, AK-47의 맞수인 M-16이 하나 팔릴 때마다 그 발명가가 대략 1달러씩 로열티를 받아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자료마다 설명이 약간씩 다르다. 우선 마쓰모토 진이치의 <역사를 바꾼 총 AK47>에는 칼라시니코프가 스토너의 행운을 부러워하지 않고 끝까지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나오는 반면, 래리 캐해너의 <AK47>에는 그가 상당히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으로 이후 수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테트리스>의 발명자가 소련 출신이라서 저 게임의 세계적인 흥행에도 딱히 이득을 챙기지 못했듯, 칼라시니코프도 자신의 발명품으로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명예를 챙겼지만 실속은 챙기지 못했다고 할 만하다. 사후 10년이 지나 AK-47이란 노래까지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면 또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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