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니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자살했는데 그 사연이 참으로 기구했다. 사건이 터지자 전면에 나서서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해결을 모색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람이라는데, 정작 정부의 피해자 구제 대책에서는 몇 가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탈락하고 말았다.


급기야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며 여차 하면 보증금 전액을 날릴 수 있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말 비통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사망한 당일 오후에 가서야 생전에 제기했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구제 대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통보가 도착했다는 점이다.


최대한 속도 내서 처리했는데도 그랬는지, 아니면 고의적이거나 비고의적이거나 간에 각종 실수와 태만과 무심과 악의가 겹치고 겹치면서 시일이 지체되어 그랬는지, 우리로선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남들에게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을 법한 몇 시간 차이로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는 결과만 알 뿐이다.


어쩐지 이 대목에서 발터 벤야민의 불운한 최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까지 점령하자 유대인으로 체포 위협에 직면한 그는 국외 탈출을 도모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은 안내인을 따라 프랑스 국경을 넘고 스페인을 통과해 중립국 포르투갈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미완성 원고를 넣은 무거운 트렁크를 가지고 악전고투 끝에 산길을 지나 스페인의 작은 해안 마을 포르부에 도착한 도망자 일행은 경찰에 체포되어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게 된다. 불법 입국자를 내일 다시 프랑스로 돌려보낼 예정이라는 것이다. 절망한 벤야민은 그날 밤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역시나 비통하고도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사망한 직후에 스페인 당국이 태도를 바꿔 프랑스에서 온 불법 입국자를 자국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그토록 성급한 판단만 없었더라면, 수개월 뒤 역시나 스페인을 지나 탈출에 성공한 한나 아렌트처럼 벤야민에게도 해외 도피의 희망이 생겼을 터이다.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사례 모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토록 잔인한 운명의 장난이 사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점이 딱할 뿐이다. 특히 현재의 사례에서는 나쁜 정책이 사람을 우울하게, 절망하게, 심지어 자살하게 만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현 정부뿐만 아니라 전 정부의 책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다닐 만큼 두꺼운 얼음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침 전 정부의 임대차 3법 시행 4년째를 맞아 전세 보증금이 크게 오를 것 같다는 뉴스가 하루종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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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사후에도 연이어 '신작'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며 한 마디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사실 이런 식으로 저자의 유언을 무시하고 저서를 간행한 사례는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라면 사망 100주기를 앞둔 카프카를 들 수 있는데, 미완성 원고를 파기하라는 유언을 친구 막스 브로트가 무시함으로써 <성>, <소송>, <아메리카> 등이 빛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한 사례로는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출간을 둘러싸고 그 원고를 보관하던 출판사와 미망인이 법정 다툼까지 간 사례가 있다. 랜덤하우스 대표 베네트 서프의 회고에 따르면 저자는 사후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공개하라고 신신당부했다지만, 미망인은 이 유언을 무시하고 저자가 사망하자마자 원고를 빼앗아 가서 다른 출판사에서 유작이라고 간행했다는 것이다.


거꾸로 저자가 간행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원고를 사후에 유족이나 지인이 임의로 파기하여 논란이 된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이런의 회고록이다. 평소에도 문란한 사생활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 과연 어떤 핵폭탄이 들어 있을지 몰라 모두들 긴장했는데, 결국 사후에 유족과 지인이 한 자리에 모여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한 끝에 파기하는 쪽으로 결론내렸다고 전한다.


카프카의 경우, 그 결과만 놓고 보면 브로트가 유언을 무시한 것이 문학적으로는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육필 원고를 비롯한 카프카의 여러 유고가 브로트 사후 그의 여비서의 소유로 넘어가고, 이후 그녀가 원고며 편지 가운데 일부를 비밀리에 경매로 매각하고 수익금을 챙기면서, 그 윤리성에 대한 논란은 한층 뜨거워지고 말았다.


급기야 이스라엘 정부가 나서서 카프카 유고를 국외 반출하려던 여비서를 억류하는가 하면, 그녀의 사후에 해당 문서를 물려받은 딸들을 상대로 소송까지 걸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게 되었다. 결국 정부 승소로 카프카 유고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을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이 가져가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자료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으니, 향후로도 논란은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알라딘에서는 카프카 사망 100주기를 앞두고 직접 그린 그림을 수록한 책들에 대해 북펀드가 진행되고 있는데, 아마 그 그림 역시 앞에서 설명한 카프카 유고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차 하면 경매에서 개인에게 팔려나가 또다시 빛을 못 보게 되었던 자료이니 공개된 것이 다행이다 싶다가도, 카프카의 애초 의도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맞게 되는 셈이니 살짝 찜찜한 느낌도 없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카프카 유고의 기구하고도 기상천외한 여정이야말로 '카프카스러운' 상황의 전형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고구마 잔뜩 먹은 듯한 부조리한 상황 서술이 특징인 저 유명한 소설가의 진정한 '유작' 같다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심지어 이 유작의 서술은 사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또는 전개되고 있으며 이른바 사이다 결말은 요원해 보이니 더욱 놀랍다고 해야 맞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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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소설 분야의 유명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역시 만만찮은 명성의 동료 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이 사망한 후에 '유작'이 줄줄이 간행되는 것을 지켜보며 사실상 '죽어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셈'이라면서 꼬집은 바 있는데, 나귀님이 보기에는 법정 스님 사후에 벌어진 일이야말로 이에 비견할 만하지 않나 싶다.


사후에 저서 절판 유언이 공개되고 잠시 설왕설래가 오가다가 출판사들이 마지못해 거기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중고 책값 폭등 사태가 일어났는데, 비록 본인의 독창적인 사상까지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간디 이야기였다!) 손꼽히는 대표작이 저 유명한 에세이 "무소유"임을 감안해 보면 정말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기념 재단인가에서 저서의 전자책을 공개하고, 대중의 관심도 다시 수그러지며 몇 년이 흐르자, 지금은 아무리 절판본이라 해도 타계 직후처럼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 경우는 드물어진 것 같다. 하긴 원래부터 스테디셀러라 수만, 어쩌면 수십만 부씩 팔린 책이니 그렇게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울 리야 없었으리라.


최근 운동화부터 텀블러며 각종 사은품까지 이른바 한정판을 구매해서 되파는 것이 영리한 재테크 취급을 받는 것처럼, 법정 스님 저서의 일시적인 가격 폭등 현상 역시 고인의 생애를 기리고 정신을 따르는 취지라기보다는 오히려 단기적 이익을 위한 재테크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의심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사실은 나귀님도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기행문과 불경 번역서는 몇 가지 갖고 있었지만, 샘터에서 나온 에세이 전집을 갖고 있지는 않은 상태에서 품절 대란을 겪고 보니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이전까지는 전국 어느 헌책방에서나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책이어서 급히 구입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작이 나오면서 디자인도 바뀌기에, 굳이 구입하려면 나중에 (즉 타계 후에) 나오는 최종판으로 한 질쯤 마련해 놓는 편이 오히려 나으리라 생각해서 미뤄두었는데, 갑자기 절판 유언과 가격 폭등 소식을 들으니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갑작스러운 조치가 나왔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고인이 남긴 말마따나 생전의 말빚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면 차라리 재간행을 애초부터 마다하며 조용히 절판시키는 편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대중의 뒷공론을 우려하여 사리 수습도 하지 말라던 양반이었는데, 정작 저서 절판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 뒤돌아보니, 그토록 매끄럽지 못하고 오히려 퉁명스러웠던 절판 조치야말로 단기적으로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속세의 탐욕과 집착을 만천하에 드러낸 반면교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찌 보면 '무소유 대란'의 결과로 훗날에는 '풀소유'라는 유행어가 나온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법정 스님도 앞서 말한 하인라인이나 아시모프(그의 사후에도 저 동료만큼 많은 '유작'이 나왔다!) 못지않게 사후에도 쉬지 않는 저자의 반열에 들었다고 할 만하다. 비록 대표작은 절판되었지만 미공개 강연이나 편지나 선집은 꾸준히 간행되었고, 이번에도 또 하나 나오기 때문이다.


저서 절판에 대한 고인의 의지를 전국민이 아는 상황에서 굳이 책을 줄줄이 간행하는 출판사에서도 합당한 명분이야 갖고 있겠지만, 나귀님 같은 평범한 독자로선 자칫 이걸 샀다간 저자의 의도에 정면으로 반하는 '풀소유'의 죄를 범하는 셈은 아닐까 싶어 살짝 주저되는 마음도 없지 않기에 찜찜해서 한 마디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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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핑커 씨, 사실인가요?>라는 책 광고가 있기에 스티븐 핑커의 신작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핑커와 한스 로슬링 같은 베스트셀러 저자들이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놓은 각종 "팩트"에 대한 "체크"를 시도한 책이었다. 대학생인 저자가 통계 수업 중에 관련 자료를 분석하다가 책까지 내게 되었다니 기특하다. 하지만 내용을 미리보기로 살펴보니 편집 상의 실수가 몇 가지 눈에 띄어서 아이러니하기에, 저자의 "팩트체크" 정신을 유념해 나귀님이 몇 가지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4쪽 3행, 개방도상국 --> 개발도상국


14쪽 5행,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 --> "상품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


그런데 최근의 사례를 보면 통계란 결국 제시자의 입맛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현 정부가 주택 공급 관련 통계에서 19만 가구를 누락했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밝혀져 논란이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전 정부에서도 물가 관련 통계에서 수치를 조작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 외에도 크고작은 조직에서 나름대로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놓는 통계 수치를 가지고 매번 그 신빙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불가피한 운명인가 싶다.


그나저나, 이른바 '팩트체크에 대한 팩트체크'를 도모한 <핑커 씨>에 추천사를 써준 사람 가운데 여성학자 정희진도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한때 더럽기로 악명 높은 갠지스 강물에 자체 정화 성분이 있다는 믿기 힘든 주장을 버젓이 일간지에 실어 논란을 일으킨 사람이 아닌가. 인도 작가 반다나 시바의 책에서 자국 '부심'이 반영된 듯한 구절을 팩트체크 없이 인용한 까닭이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의 주제를 고려해 보면 출판사에서도 추천사 필자에 대해 나름의 '팩트체크'가 필요하진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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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한나 아렌트의 쪽글을 엮은 책이 새로 번역된 모양이어서, 새삼스레 관련 서적의 몇 가지 오역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저자의 번역서에 오역이 많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고, 심지어 국내에서는 그 사상까지도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라는 책까지 나온 바 있었다.(하지만 문제는 그 책의 저자 박홍규 역시 적극적 오독과 이상한 오류를 심심찮게 범하는 인물이다 보니, 결국 '제 눈에 들보' 격이 되었다는 점이다!)


유독 다른 사상가보다 아렌트에 대해서 이런 오류가 많은 (또는 많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문장 자체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 나도 아렌트의 글을 원문으로 완독한 경우까지는 없으니 단언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평전에 따르면 영어로 쓴 글을 윤문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고 하니, 망명자 출신으로 제2언어로 저술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음을 짐작해 보게 된다.(비슷한 경우인 칼 포퍼의 영어 문장 역시 딱딱한 편이고 그리 매끄럽지는 않았다는 평이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렌트의 사상 자체가 그리 이해하기 쉬운 내용까지는 아닐 가능성도 있다. 또는 실제로는 별 것 아닌 내용이 꿈보다 해몽 식으로 과대포장되어 회자된 경우일 수도 있다.(그를 사상가가 아니라 언론인으로 분류한 월터 카우프만이라면 적극 동의하겠지만, 문제는 그 역시 학자가 아니라 번역가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으며, 심지어 "진짜" 언론인 수전 손탁에게 서평으로 "까인" 적도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카우프만-손탁의 '까임의 삼각형'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문제는 아렌트의 저서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평전이며 해설서, 심지어 만화에도 오역이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지명도에 비례하여 드넓은 지뢰밭이 펼쳐져 있는 셈인데, 자칭 전공자들이며 담당 편집자/출판사도 크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최근에 발견한 지뢰밭은 아마존에서 만든 일종의 전자책 전기 시리즈 가운데 하나를 번역한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인데,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파격적인 오역이 들어 있어서 도리어 신선한 느낌마저 받았다.


예를 들어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프라이부르크로 떠날 때 마르바르에서 배웅하는 조카딸 에드나 브록(Edna Brocke)에게 한 말에 대한 인용문을 보자.(아렌트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자료인 엘리자베스 영브륄의 평전에는 가계도가 부록으로 붙어 있다. 이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조카딸은 바로 아렌트의 이종사촌 남동생인 에른스트 퓌르스트(Ernest Fuerst)의 딸이다. 남편 미하엘 브로케(Michael Brocke)가 독일인이므로 ‘에드나 브로케’로 읽어야 할 것이다) 



>>> 그래서 내[브로케]가 그녀[아렌트]에게 꼭 그래야 되느냐고 물었죠.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요즘도 나는 작은 개구리 울음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세상에는 남자보다 강한 것들이 있지.’ 그게 내가 그녀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이에요. (196-7쪽) <<<



그런데 ‘작은 개구리’ 운운 하는 부분이 이상해서 구글링해 보니, 이건 사실 아렌트가 조카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아마 최근 김혜자가 선전하는 독일산 세제의 이름이기도 한 "프로쉬"(Frosch), 즉 "개구리"에서 유래한 단어일 것이다). 구글북스에 올라온 원문은 다음과 같다. "And she told me -- I still hear it -- 'Fröschlein (little frog), there are things stronger than men.' those were the last words I heard from her." 결국 원문을 가지고 다시 제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뜻이다. 



>>> 그래서 꼭 가셔야 되겠느냐고 제가 고모에게 물었죠. 그러자 고모께서 대답하신 게 있는데, 저는 지금도 그 목소리가 귀에 선해요. ‘꼬마 개구리야, 이 세상에는 인간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단다.’ 제가 고모한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바로 그거였어요.” <<<



결국 정확한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다 보니 앞뒤 문장을 뒤섞어서 황당무계한 오역을 범한 셈이다. 어째서 이런 오역이 일어났을까? 짐작컨대 전자책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맞줄표(--) 같은 특수 기호가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I still hear it -- 'Fröschlein (little frog)"을 "I still hear it Fröschlein (little frog)"로 잘못 읽은 것이 아니었을까.(하지만 이것 자체도 어색한 문장이니 원문을 살펴봐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번역한다면 조만간 키제 대위도 한 명 나올 만하겠다). 


여하간 왜 갑자기 뜬금없는 개구리 타령인지 의문을 품고 원문을 대조하기만 했어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던 오류이니, 결국 번역자나 편집자의 불성실을 탓할 수밖에 없겠다. 과연 자기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걸까? 다만 한 가지 감안할 부분도 있기는 하다. 뭔가 하면, 이 대목에서 아렌트의 발언 가운데 나머지인 "이 세상에는 인간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단다" 역시 "뜰 앞의 잣나무"처럼 뭔가 좀 뜬금없어 보이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혹시 독일어 원문이 있나 구글링해 보니 Es gibt Dinge, die Stärker sind, als der Mensch 라고 나온다. 독일어 Mensch 는 영어의 Man/men 처럼 "남자; 인간; 인류" 모두를 의미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남자"보다는 "인간"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논란의 인물인 하이데거를 굳이 찾아가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조카에게 "사람은 미워해도 사상은 미워할 수 없다"고 반박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해석이다..


하이데거에 대한 아렌트의 애정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살아가면서도 한 번은 필적 감정 점쟁이에게 하이데거의 친필을 가져가서 감정을 받아 보았을 정도였으니, 그를 향한 마음은 일반적인 차원의 존경이나 애정보다는 훨씬 더 정도가 깊었다고 봐야 하지 않았을까. 아렌트의 생애를 무려 만화로 각색한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에도 이 장면이 등장하는데, 문제는 심지어 여기에도 오역이 있다는 점이다!


즉 점쟁이가 하이데거의 필적을 살펴보고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남긴 사본이 모두 동일했다면, 이 남자가 헌신하는 대상은 계속 변해요"(203쪽)라고 말하는 대목인데, 영브륄의 평전에 나온 내용과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맞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와 필적이 같은 이 남자가 헌신하는 대상은 계속 변해요." 심지어 아렌트의 저서를 여럿 옮긴 전문가가 감수를 했다는데도 오역이 나왔으니 한심하다.(오히려 오역투성이 영브륄의 평전에서도 이 대목만큼은 정확히 옮겼다!)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은 편집도 문제다. 구글북스 원문에는 그냥 한 문단으로 묶인 문장을 한 줄씩 일일이 떼어놓는 식으로 쪽수를 늘렸고, 본문의 인용문마다 붙어 있는 후주를 아예 빼 버렸다. 전기라면 인용 출처 표시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이것이야말로 논문 표절 시비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임을 감안하자면, 출판사가 그냥 작정하고 미친 짓을 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인용문에서 원문에는 없지만 저자가 내용 이해를 위해 첨언한 부분까지도 구분 없이 뒤섞어 버렸다. 


예를 들어 “그녀가 처음으로 백척간두에 놓인 이스라엘의 현실을 직접 확인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196쪽)라는 인용문은 원래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백척간두에 놓인 이스라엘의 현실을 ― 저자] 직접 확인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즉 “백척간두에 놓인 이스라엘의 현실을”이라는 부분은 저자가 부연한 부분이므로, (아마도 브로케의 발언인 듯한 ) 그 인용문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면 그 발언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셈일 것이다. 


"시대의 아이콘 평전" 시리즈로 간행된 역사비평사의 아마존 전자책 시리즈로는 폴 콜린스의 에드거 앨런 포 전기며, 제이 파리니의 예수 전기도 있어서 흥미가 동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한나 아렌트 전기와 똑같은 출판사에 똑같은 번역자의 산물임을 감안하면 아예 손도 대지 않는 편이 상책이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식의 불성실하고 무신경한 출판 때문에라도 오역의 지뢰밭으로서 한나 아렌트의 악명은 당분간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 "욥의 잿더미"(Job's Dungheap)를 "직업의 거름"으로 잘못 옮긴 것을 비롯해서 갖가지 오역이 빈발한 홍원표의 영브륄 전기 번역본은 결국 절판되어 수명을 다하나 싶더니만, 엉뚱하게도 출판사를 옮겨서 재간행되었다. 신판의 실물을 본 적이 없으니 과연 어디까지 수정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제대로 옮기지 못한 책이니 고쳐 쓰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법하다. 홍원표는 비전문가의 번역이라서 역시나 오역이 빈발한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가져다가 (비록 원래 번역자의 동의를 거치기는 했다지만) 자기 이름을 올려 번역서로 간행했는데, 초판(문학과지성사)의 오역 가운데 재판(인간사랑)과 3판(한길사)까지 꾸준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이런 불성실하고 무신경한 자칭 "전문가"의 행동 역시 한나 아렌트의 악명을 지속시키는 데에 일조한다고 봐야 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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