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2월,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섬 남쪽의 작은 어촌 버지오 인근의 좁은 만에 길이 20미터 가량의 참고래(긴수염고래) 한 마리가 갇혀 버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파도가 높을 때에 해안에서 먹잇감인 청어를 쫓다가 어찌어찌 그곳까지 들어왔지만, 도로 나가려고 해도 안쪽은 가뜩이나 물이 얕고 절벽 사이의 입구도 좁아 사실상 꼼짝달싹 못하고 갇힌 것이다.


마침 버지오에 머물던 동물학자 겸 저술가 팔리 모와트(1921-2014)는 뒤늦게야 소식을 접하고, 야생 상태의 고래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흥분하며 달려가지만, 막상 고래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자마자 경악하고 만다. 지역민이 고래를 향해 총을 쏘는가 하면, 관광객이 큰 배를 타고 무기력한 고래를 위협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분노한 모와트는 고래를 괴롭히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관에게도 신고하지만, 시건방진 외지인의 주제 넘은 간섭이라 생각한 까닭인지 모두들 시큰둥하게 외면하기만 한다. 모와트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래를 구할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언론을 통해 바깥 세상에도 알리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래는 죽어 버린다.


모와트가 이때의 체험을 회고한 논픽션이 <고래 죽이기(A Whale for the Killing)>(1972)인데, 1981년에는 동명의 TV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다. 나귀님도 1987년에 KBS <토요명화>에서 <고래를 쫓는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그 영화를 먼저 접했다가, 나중에 <개가 되기 싫었던 개>의 옛 번역본 가운데 하나의 역자후기를 통해 그 원작자도 모와트임을 깨달았다.


애초에 저 작가가 뉴펀들랜드의 작은 어촌에서 살게 된 까닭은, 또 다른 저서 <안 뜨려는 배>에 묘사된 것처럼 가뜩이나 고장이 잦은 돛배를 몰고 여행하다가 그곳에서 한동안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탓이었다. 하지만 고래 사건을 외부에 알리면서부터는 지역민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졌고, 마치 쫓겨나듯이 다시 돛배를 몰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는 것이 모와트의 회고다.


특정 지역의 동물 자원에 대한 외부인의 지나친 간섭에 지역민이 반발한 사례는 '리키의 세 딸들'인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 고릴라 연구자 다이앤 포시, 오랑우탄 연구자 비루테 갈디카스도 모두 겪은 바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보호 주장도 일리는 있었지만, 포시의 경우에는 이를 지나치게 과격하게 밀어붙이다가 큰 반발을 사서 결국 피살당하고 말았다.


물론 지역민의 입장에서도 반발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안 뜨려는 배>에서 모와트도 언급했듯, 그곳에서 고래가 얕은 웅덩이에 갇히거나 바위 틈에 끼이는 일은 그리 드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통행이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죽어서 부패하게 되면 그 악취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지역민에게야 이런 고래는 그저 성가신 골칫거리일 뿐이다.


이처럼 모두에게 각자의 이유가 있고, 사안마다 현실적인 한계가 있으니, 고래가 되었건 고릴라가 되었건 간에 지킬 수 있는 것은 지키되, 지킬 수 없는 것까지도 무리하게 지키라고 요구하진 말 일이다. 팔리 모와트도 불쌍한 고래에게 총을 쏘아 괴롭히는 잔혹 행위에는 항의했지만, 그렇다고 저 '리워야단'을 구출한다는 불가능한 일까지 한사코 요구하진 않았으니.


그나저나 오래 전에 본 영화며 그 원작 논픽션을 새삼스레 떠올린 까닭은 당연히 최근 부산의 해안 공원에 나타난 상어 한 마리 때문이다. 서식지로서는 딱히 좋은 환경도 아니고, 먹이 활동도 전무하다는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냈고, 지역 관청에서도 외부로의 유도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한 상황이니,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뉴스에 따르면 평소 방문객도 많지 않던 공원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인근 편의점과 커피숍의 매출이 급증하며 관광 효과가 드러나자, 상어에게 '부캉이'라는 별명이 생겨나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마스코트 채택과 관련 상품화가 고려되는 등 그 파급 효과가 상당한 모양이다.(하지만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는 동물을 마스코트화하는 것이 과연 좋을까?)


구경꾼 입장에서는 수족관의 인공 상태가 아닌 자연 상태의 상어를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반기는 듯하다. 심지어 상어를 몰아내려는 경찰과 소방의 시도에 반발하며 오히려 '부캉이'를 응원하고 있으니, 어쩌면 지난번 동물원 탈출 소동의 와중에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응원이 대상이 된 '늑구'처럼 감정 이입이 이루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온 자연'의 사례로서가 아니라 기후 변화라는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상어 한 마리의 삶에서의 교란만이 아니라, 바다며 지구 전체의 질서에서의 교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까. 물론 사람들은 늑구 때처럼 이번에도 가뜩이나 답답하던 일상에서의 교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 <고래 죽이기>에서 팔리 모와트는 얕은 물에 갇혀 죽어가는 고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괴로운 마음에 다음과 같이 썼다:


"갇혀 있는 것은 고래만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고래와 함께 갇혀 있었다. 고래의 삶의 자연적인 패턴이 교란되었다고 치면, 우리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경계가 뚜렷한 우리의 삶의 질서 속으로 뭔가 놀라운 신비가 침입한 셈이었다. 지상의 두 발 동물인 우리로선 그 신비를 차마 측량할 수 없기에, 본능적인 두려움과 폭력과 증오를 가지고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심해에서 온 이 수수께끼는 삶에 대한 인간의 치유불가능한 무지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이 장소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의 핵심이 되어 버린 이 불가해한 비밀을 거울 삼아 우리는 스스로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춰보았으니... 그 얼굴은 추악했다."("The Deeps", excerpts from A WHALE FOR THE KILLING, 1972, in THE WORLD OF FARLEY MOWAT: A SELECTION FROM HIS WORKS. Edited and with an introduction by Peter Davidson. Boston: An Atlantic Monthly Press Book, an imprint of Little, Brown and Company, 1980, 2nd printing, p. 2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얼마 전, 알라딘에서 <에티의 여름>이란 신간 번역 소설을 광고하면서 검색창에다가 밑도 끝도 없이 "출판 역사상 가장 비상식적인 계약" 운운해서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막상 책 소개 글을 보니 영국 <텔레그래프> 지의 기사 인용문이라는 해당 구절을 "비상식적일 정도로 과감한 계약 사례"라고 또 다르게 적어 놓았기에, 도대체 원문이 무엇이었나 궁금해졌다.


어설픈 나귀님이라 구글링을 해도 해당 구절의 원문까진 발견하지 못했지만, <텔레그래프>에 게재된 해당 저자 인터뷰 기사를 보니 "책 두 권에 여섯 자리 계약"이라고 나온다. 결국 책 두 권을 간행하는 조건으로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의 선인세 계약을 했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서는 심지어 "일곱 자리 계약"(수백억 원)까지도 가능하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기존 베스트셀러 저자라든지 연예계 스타처럼 이미 그 분야나 다른 분야에서의 활약으로 고정 독자를 확보한 경우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반면, 기존 실적이 전무한 '신인'은 계약금 액수가 특히나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언론 보도를 접한 독자로선 '출판사가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많은 돈을 줬나?' 하는 의문에 해당 도서를 실제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대급 베스트셀러인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 영국 판권은 겨우 '네 자리'인 2500파운드에 팔렸지만 미국 판권이 '여섯 자리'에 팔리면서 큰 화제가 되어 흥행에 시동을 걸게 되었다. 공포 소설의 제왕 스티븐 킹의 출세작 <캐리>도 초판 양장본이 아니라 재판 문고본 판권이 '여섯 자리'에 판매되어 화제가 되면서 인기에 불이 붙은 경우다.


그런데 출판계의 고액 계약금 사례 관련 내용을 구글링하다 보니, '존 디디온 에코백 만드는 회사'(?)인 리터러리허브의 편집자 에밀리 템플이 쓴 "일곱 자리 출판 선인세의 짧은 역사"라는 글이 나온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출판계에서 나온 '여섯 자리'(수십 억대) 계약의 사례를 돌아본 내용인데, 살짝 오래 된 내용이긴 해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해당 기고문에서는 총19종의 사례를 거론하는데, 그중에는 판매와 비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양쪽 모두에서 폭망한 경우가 상당수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도 있고 아닌 책도 있는데, 번역서 중에는 10년도 못 채우고 절판된 것이 적지 않다. 결국 신인 작가의 고액 계약은 득보다 실이 많은 '도박'에 불과하다는 증거인 셈이려나.




2017 - Whitney Scharer, THE AGE OF LIGHT (100만 달러 이상)

-- 신인 작가. 13개사 경쟁. 국내 미간행


2017 - Kate Hope Day, IF, THEN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국내 미간행


2017 - Kristen Roupenian, YOU KNOW YOU WANT THIS (120만 달러) 

-- 신인 작가. 단편집. 국내 미간행


2015 - Nicole Krauss, FOREST DARK (400만 달러) 

-- 기성 작가. 단편집. 

-- <어두운 숲>(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2020)


2015 - Yaa Gyasi, HOMEGOING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출간 후 문학상 다수 수상.

-- <밤불의 딸들>(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열린책들, 2021)


2014 - Emma Cline, THE GIRLS (200만 달러) 

-- 신인 작가. 12개사 경쟁. 베스트셀러 등극.

-- <더 걸스>(에마 클라인 지음, 정주연 옮김, 아르테, 2016, 절판)


2014 - Imbolo Mbue, BEHOLD THE DREAMERS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베스트셀러 등극 및 펜/포크너상 수상

--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임볼로 음붸 지음, 구원 옮김, 코호북스, 2023)


2014 - Stephanie Clifford, EVERYBODY RISE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출간 후 반응 미미.


2014 - Charles Frazier, VARINA (300만 달러)

-- 기성 작가.


2014 - Cynthia D'Aprix Sweeney, THE NEST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베스트셀러 등극.

-- <둥지>(신시아 다프리 스위니 지음, 조동섭 옮김, 열린책들, 2019, 절판)


2013 - Garth Risk Hallberg, CITY ON FIRE (200만 달러)

-- 신인 작가. 12개사 경쟁. 베스트셀러였지만 평가는 엇갈림.


2013 - B.J. Novak, ONE MORE THING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단편집. 9개사 경쟁.


2013 - Abraham Verghese, THE MARAMON CONVENTION (500만 달러)

-- 기성 작가. 두 번째 장편. 10년 뒤인 2023년에야 THE COVENANT OF WATER로 간행. 베스트셀러였지만 평가는 엇갈림


2012 - Jennifer Egan, MANHATTAN BEACH (100만 달러)

-- 기성 작가.

-- <맨해튼 비치>(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문학동네,2019, 절판)


2011 - Karen Thompson Walker, THE AGE OF MIRACLES (100만 달러)

-- 신인 작가. 베스트셀러 등극 및 호평 일색.

-- <기적의 세기>(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2014, 절판)


2010 - Kiran Desai, THE LONLINESS OF SONIA AND SUNNY (250만 달러) 

-- 기성 작가. 15년 뒤인 2025년에야 간행되어 부커상 후보에 오름.


2009 - Yann Martel, BEATRICE AND VIRGIL (320만 달러)

-- 기성 작가. 베스트셀러 등극.

-- <20세기의 셔츠>(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2018)


2008 - Tom Wolfe, BACK TO BLOOD (700만 달러)

-- 기성 작가. 잠깐 베스트셀러였다가 폭망함.


2008 - Carlos Ruiz Zafón, THE ANGEL'S GAME (400만 달러)

-- 기성 작가.

-- <천사의 게임>(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문학동네, 2022)




결국 출판계도 영화계나 연예계나 스포츠계와 마찬가지여서, 사실상 뭐가 되고 안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감'만 가지고 도박을 건다고 봐야 하겠다. 아이돌 업계에서도 수십억에 달하는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 못하는 경우가 많고, 여자친구나 리센느처럼 '중소돌의 기적' 사례가 회자되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분야에서나 '깜깜이 투자'는 위험하다고 봐야 하려나.


이처럼 위험 부담이 크다 보니,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다 들먹여서 선전하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각종 해외 매체의 베스트셀러임을, 다음은 국내외 유명 대학의 필독서 목록에 포함되었음을, 심지어 이름조차 낯선 각종 문학상 수상 실적을 들먹이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정작 소설 자체의 재미나 가치보다는 외적 기준만을 속물적으로 들먹인 셈이었으니 우습다. 


이쯤 되면 머지않아 작가의 외모며, 취미와 특기며, 가족 및 대인 관계며, 이메일과 전화번호 같은 각종 개인 정보마저 판매에 활용되지는 않을까. 1990년대에는 한국 문학 분야에서 젊은 여성 작가의 얼굴을 광고에 큼직하게 내보내며 '외모 마케팅'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났다고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런 작가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 못하니 그 허망함을 알 수 있다.


신인 작가에게 계약금을 많이 줬다는 사실이 마케팅에서 활용되는 현실이 더욱 한심한 까닭은, 어떤 집을 가리켜 '예쁜 집' 대신 '얼마짜리 집'이라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속물적인지를 전세계인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인 책에서 무척이나 강조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부동산에서도 집값 따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으니, 책이라고 다를 것은 없는 걸까...



[*] Emily Temple, "A Brief History of Seven-Figure Book Advances", Literary Hub, May 8, 2018.

--- https://lithub.com/a-brief-history-of-seven-figure-book-advances/


[**] 나귀님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에티의 여름>의 경우, 출간 후에 몇몇 매체에서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고, 몇몇 문학상도 수상하거나 후보로 올랐으며, 출간 직후인 2025년 여름에는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찾아볼 수는 있었지만, 과연 그 정도의 성과를 가지고 "출판 역사상 가장 비상식적인 계약"인지 "비상식적일 정도로 과감한 계약 사례"인지가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살짝 의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자진사퇴 형식으로 낙마했다. 앞서 낙마한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만 보면 장관은커녕 의원 출마 단계에서부터 일찌감치 걸러냈어야 마땅한 인물 같은데,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무사했을 판에 굳이 한 자리 더 해먹겠다고 나섰다가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말았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나저나 해당 인물의 코로나 백신 로비 의혹에 대한 해명 과정에서는 무려 '구멍난 솥의 논리'까지 등장하기에 희한한 일이다 싶었다. 프로이트의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 소개된 농담 중 하나인데, 누군가 이웃에게 솥을 빌려주었다가 나중에 돌려받고 보니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솥을 망가트렸다며 주인이 따지자 이웃은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첫째, 나는 솥을 빌린 적이 없다. 둘째, 내가 돌려줄 때에는 구멍이 없었다. 셋째, 내가 빌렸을 때부터 구멍이 있었다.' 물론 뻔뻔한 이웃이 이 세 가지 주장을 한꺼번에 내놓았을 리는 없다. 십중팔구 처음에는 '내가 언제 솥을 빌렸느냐?'고 발뺌하다가 궁지에 몰리자 '솥을 빌린 것은 맞지만...' 하고 시인한 다음,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다 자승자박을 한 셈이 아니려나.


문제는 이 세 가지 주장을 따로따로 놓고 보았을 때에는 별 문제 없지만, 한 자리에 모아놓으면 상호 모순이므로 궤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번 장관 후보자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충분히 좋은 내용이라 국익에 도움이 된다 생각해서 청탁했다'고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제가 문과라서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까지는 몰랐다'고 상반되는 주장을 내놓아서 빈축을 샀다.


차라리 애초부터 '내용은 잘 몰랐다'고 잘못을 일부 시인한 다음, '보건이며 국익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너무 성급했었다'고 솔직히 사과했더라면 최소한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라도 보였으니 참작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오만하게도 그때그때마다 지적에 대해서만 변명하고 넘어가다 보니 '구멍난 솥'처럼 상호 모순이 드러났던 것이다.


앞서 낙마한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애초에 겸손하지 못하고 거만하게 굴다가 자멸한 셈이 아닐까. 물론 의원에다 장관 후보까지 오른 사람이니 퍽도 잘난 편이었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물론 쓰다 보니 나귀님도 사소한 것부터 상당한 것까지 최근에 저지른 이런저런 잘못들이 떠올라 살짝 뜨끔하기는 하다만...



[*] '구멍난 솥' 농담은 프로이트 관련서에서 오역을 촉발하기 쉬운 내용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원래는 구구절절 긴 변명 속에서 따로따로 등장하는 주장을 위와 같이 상호 모순인 세 문장으로 요약하다 보니 얼핏 보아서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린 마이에르의 만화 <프로이트>에서도 딱 그 부분에서 오역이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 시리즈가 새로운 표지로 재간행되었던데, 나귀님 눈에는 20년 전 구판 표지보다 오히려 더 못나지지 않았나 싶었다. 내친 김에 오래 전 사다만 놓고 들춰본 적 없었던 구판 전9권을 이참에 다 읽고 내버려야겠다 싶어 하나씩 꺼내 읽으며 중간중간 마주친 오역과 수정 사항을 정리하는 중인데, 이게 의외로 꽤 재미있는 소설이다!


여성 작가가 쓰고 소녀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만 놓고 보면, 석판 들고 사람 패는 '빨갱이'가 나오는 또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넘겨짚었는데, 실제 내용은 <로빈슨 크루소>에서 파생된 '로빈슨계 소설'의 숱한 하위 장르들 가운데 하나로 <스위스의 로빈슨 가족>에서 시작된 '가족 로빈슨' 계열의 모험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게 보인다.


19세기 미국 중부에 맨몸으로 넘어온 개척민 일가가 숲과 평원과 마을로 옮겨 다니며 오두막과 판잣집을 짓고, 채집과 사냥과 농사로 식량을 마련하며, 각종 필수품을 직접 만들거나 흥미로운 대체품을 찾아내고, 들불과 홍수와 폭설과 굶주림과 해충과 맹수와 강도 같은 갖가지 위험을 헤쳐 나가는 내용이니, 이것만 놓고 보아도 충분히 훌륭한 모험 소설인 셈이다.


특히 남성 독자라면 특히 제5권인 <소년 농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간행 순서로는 두 번째이지만 여주인공의 서사에 더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지금은 다섯 번째로 밀려났다는 '친숙한' 작품 외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주인공이 속한 중부 개척민 가족과의 생활과는 매우 다른 동부 농민 일가의 생활을 흥미롭고 자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가리키는 아홉 살 '소년 농부'는 일찍부터 부모를 도와 농사를 거들며, 언젠가는 멋진 망아지를 직접 길들여 보겠다는 포부를 품는다. 고사리손에 불과했던 아이가 갖가지 시행착오와 경험을 거듭하며 점차 어엿한 일꾼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서술하는데, 농업과 목축뿐만 아니라 목공과 각종 허드렛일에 대해서도 상당히 자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예를 들어 제24장 "작은 썰매"에서는 주인공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자기 썰매를 만드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썰매란 놀이용이 아니라 무려 통나무 운반용이다. 제27장에 가서 주인공은 이때 만든 썰매에 송아지 두 마리를 묶어서 눈밭을 오가며 통나무를 나르고,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지만 나중에는 능숙해져서 아버지에게 칭찬을 듣게 된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인물은 주인공의 아버지로, 시종일관 엄격하면서도 의외로 현명한 인물이다. 작품에서 드러난 그 경제적 사고방식은 지극히 원칙적이어서 이른바 '청교도 윤리'의 파생물인 듯 보이기도 하는데, 주가가 출렁일 때마다 원금이 녹아내리고 정책을 수정할 때마다 집값이 상승한다는 오늘날의 복잡한 경제 상황에선 의외로 신선하기까지도 했다.


예를 들어 마을 축제에서 5센트짜리 음료수를 선뜻 사는 사촌이 부러웠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그 열 배인 50센트를 건네주며 이렇게 말한다. '50센트면 돼지 새끼 한 마리 가격이다. 돼지를 사서 기르면 훗날 10배인 5달러를 벌 수 있겠지. 음료수를 사 먹든, 돼지를 사 기르든, 네가 알아서 해라.' 아들은 고심 끝에 돼지를 사러 간다.


또 노점에서 야바위꾼의 현란한 손놀림을 보고 감탄한 아들이 그 원리가 무엇인지를 묻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몰라. 하지만 그 사람은 알고 있지. 그건 그 사람의 장기야. 다른 사람은 도저히 이길 수 없어. 그런 데 돈을 걸면 절대로 안 돼."(258쪽) 최근 중고생 사이에서도 인터넷 도박 중독이 늘어난다니,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해야 할 법하다.


축제에서 경마가 벌어지자, 다른 사람들이 돈 거는 것을 지켜보며 아들에게 이렇게도 말한다. "경주에 돈을 걸면, 돈을 낸 만큼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 하지만 나는 만족감보다 좀더 실질적인 것을 얻고 싶구나."(264쪽) 나중에 아들이 남의 지갑을 주워 찾아주고 받은 사례금 200달러를 난생 처음 은행에 넣고, 돈을 찾는 방법을 묻자 아버지는 이렇게도 말한다.


"돈을 달라고 하면 내줄 거야. 하지만 이 점을 명심해라. 그 돈이 은행에 있는 동안은 너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은행에 1달러를 넣어 두면 1년에 4센트를 벌 수 있지.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쉽게 돈을 벌 수 있어. 5센트를 쓰고 싶으면, 돈을 쓰기 전에 우선 이걸 생각해 봐. 1달러를 벌려면 일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알겠니?"(361쪽)


물론 AI가 거리를 배회하고 ETF가 파도에 넘실거리는 지금의 상황과는 안 맞는 케케묵은 원론적 사고방식일 뿐이라고 폄하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갖가지 생존의 기술을 회고하는 이 시리즈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평생 땅을 일군 저 아버지의 조언 역시 우리가 어느새 망각해 버린 지혜를 상기시키지 않나 싶어 해 본 말일 뿐이다.



[*] 제5권의 대표적인 오역으로는 "단풍 시럽을 굳힌 커다란 갈색 덩어리"(large brown cakes of maple sugar)를 "단풍 시럽을 넣은 갈색 케이크"(31쪽)로 오역한 것이 있다. 그 외에 본문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체불명의 "교반기" 삽화(202쪽) 문제도 있는데, 과연 이것이 삽화가 가스 윌리엄스의 잘못인가 아닌가를 놓고 해외의 "초원의 집" 애독자들 사이에서 지금껏 논란이 지속되는 모양이다.(기회가 되면 나중에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든가 말든가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알라딘에서 2026년 노벨문학상 발표 사전 이벤트라며 "노벨문학상을 기다리며: 유력 후보 작가와 역대 수상작 함께 읽기"라는 메뉴를 일찌감치 만들어 놓았기에 클릭했다가, 마거릿 애트우드와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단골 후보들의 명단 중에서 이건 문제다 싶은 이름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예상 투표에서 10위를 차지한 케냐의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이다.


평소 세계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양반이야말로 올레 소잉카와 나딘 고디머 같은 아프리카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된 1980-90년대 이래 나이지리아의 치누아 아체베 등과 함께 유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던 작가임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법도 한데, 진짜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응구기는 2025년에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이라면 생존 작가에게 시상하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확인해 보니 사후에 수상한 사람도 하나 있기는 했다. 1931년 수상자인 스웨덴의 시인 에리크 악셀 카를펠트(1864-1931)가 그러했는데, 사실은 노벨문학상 선정을 담당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종신 사무총장으로 재직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결정의 적절성을 놓고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한림원에서는 카를펠트가 1919년에 이미 수상자로 내정되었지만 스스로가 논란을 우려하여 고사한 바 있었으므로 사후에라도 시상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결국 '자체 표창'에 불과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다. 그나마 카를펠트는 1931년 4월 8일에 사망하고 7개월 뒤인 11월 8일에 수상했으니, 한 해에 사망과 수상이 이루어졌다.


반면 응구기 와 시옹오는 2025년 5월 28일에 사망했으니, 노벨문학상 발표 예정일인 2026년 10월 8일보다 1년 4개월 먼저 타계했다. 굳이 주려면 2025년에나 주었겠지, 설마 이듬해인 2026년에 주겠는가. 그런데도 알라딘에서는 후보로 꼽았으니, 지난번 윤석열을 풀어주었던 이유였던 신박한 날짜 계산법이라도 채택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무계한 실수이다.


더욱 황당무계한 점은 예상 투표에서 무려 4명이 응구기의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기꺼이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최소한 응구기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일 법한데, 정작 그의 타계 소식까지는 듣지 못한 듯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투표 참가자야 알라딘에서 내놓은 명단 중에 아는 작가가 있어 반가웠을 뿐일 테니, 결국 원흉은 알라딘이다!


평소에 '좌파' 코스프레 좋아하던 알라딘이니, 어쩌면 어디선가 들어 본 해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사후 수상 절대 금지 규정도 없고, 노벨문학상과 죽음 겸직 불가도 사실은 관행에 불과하니 십중팔구 생존 작가들 사이에서 '상 나눠먹기'를 의도한 것뿐일 수 있다며, 스웨덴 한림원을 향해 하루속히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라고 오히려 큰소리치진 않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