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SF게임>이라는 책이 있기에 뭔가 궁금해 클릭해 보니, 김초엽이라는 소설가가 어려서부터 접한 SF 게임에 대해 회고하는 내용이란다. 그런데 미리보기로 확인해 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에 등장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무려 윈도우 98이다. 문제는 이 내용이 표지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책의 표지에는 육각형 외장에 원형 유리가 달린 기계 장치가 나오는데, 이건 1962년에 MIT의 1세대 해커들이 만든 최초의 컴퓨터 게임 "스페이스워(Spacewar!)"를 구동했던 컴퓨터 PDP-1의 디스플레이 장치이다. 즉 저자가 경험한 윈도우 98보다 한 세대 이상 앞선 물건이라는 뜻이다.


본문에 "스페이스워" 게임이나 PDP-1 컴퓨터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미리보기로 확인한 첫 장에서는 윈도우 98과 그 이후의 게임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 추억담이라며 표지에 데스 스타를 실어놓은 책에 오리지널 3부작 대신 한 세대 뒤의 시퀄 내용뿐인 격이랄까.


물론 나귀님 역시 "스페이스워"나 PDP-1을 직접 보거나 만져본 경험이야 없고, 가장 오래 된 기억이라야 오락실용 "벽돌깨기"나 "인베이더"나 "갤럭시안" 등을 돈 넣고 해본 기억뿐이다. 다만 웬일로 초창기 게임에 대한 에세이가 나왔나 싶어 상당히 반가웠던 만큼 실망감도 크기에 투덜거려 보는 것뿐이다.


혹시 이후의 내용에 "스페이스워"에 대한 언급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제작자가 E. E. 스미스의 SF "렌즈맨" 시리즈에서 우주선끼리의 일대일 대결이라는 내용을 따온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티븐 레비의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그 전후 사정을 참고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스페이스워" 게임의 제작 동기는 새로 나온 컴퓨터인 PDP-1의 디스플레이 해킹이었다. 지금은 해킹이라 하면 부정적인 뜻으로 각인되었지만, 1세대 해커들의 입장에서는 각자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프로그래밍 실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기 위한 잉여력 대폭발 더하기 쓸데없는 고퀄리티 관종 짓이었다.


실질적 제작자인 프로그래머 스티븐 러셀은 PDP-1을 이용해서 우주선 전투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이후 이런저런 자료가 없다는 핑계로 빈둥거리는 것을 지켜보다 짜증이 난 친구가 직접 나서서 필요한 자료를 다 챙겨주는 바람에, 울며겨자먹기로 프로그래밍 끝에 "스페이스워"를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주위 친구들의 도움도 적지 않았는데, 러셀이 어느 정도 완성된 프로그램을 "종이 테이프"에 출력해서 책상에 놓아두면, 그걸 본 친구들이 트집을 잡으며 우주 배경이며 공간 이동 같은 세부 내용을 저마다 만들어 추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공동 작업을 통해 게임이 점점 더 정교해지게 되었다.


급기야 컴퓨터의 육각형 외장에 달린 버튼을 직접 눌러 조작하기가 불편하다고 판단되자 근처에 있던 재료를 대강 조립해 손쉬운 조작이 가능한 조종 장치도 만들어냈으니, 이것이 사상 최초의 조이스틱이다. 사운드조차 지원하지 않는 원시적인 게임 "스페이스워"가 줄곧 전설로 회자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1937년생으로 현재 80대인 스티븐 러셀로선 "스페이스워"로 인해 사실상 시작된 게임업계의 어마무시해진 성장을 지켜보며 마음이 복잡했을 것도 같다. 물론 그 게임 제작 수년 뒤에 자신에게 컴퓨터 강의를 들은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MS를 설립해 거부가 된 것도 이미 봤으니 의외로 덤덤할 수도 있지만...




[*] 이 전설적인 게임의 원작이 된 E. E. 스미스의 소설은 훗날 "그린 랜턴" 만화 시리즈에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데, 정작 만화 쪽에서는 소설의 영향에 대해서는 부정하면서도 유사한 설정을 많이 도입해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번역본은 예전에 아이디어회관 SF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나온 적이 있었고, 애니메이션 각색이 1980년대에 MBC에서 "은하순찰대"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도 있지만, 아직까지 완역본은 없다고 알고 있다. 1980년대에 해냄출판사에서 (맞다. 조정래의 대하 장편 소설로 유명한 바로 "그" 출판사다!) 무려 네 권으로 번역서를 간행한 바 있었지만, 아쉽게도 역시나 아동용 축약/번안 작품에 불과했다. 나귀님도 완질은 없고 그중 마지막인 제4권만 갖고 있는데, 표지만 봐도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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