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출간이 예정된 한국여성문학선집의 북펀드 소개 글을 읽으면서 나귀님이 개인적으로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점 가운데 하나는 '여공애사' 류 수기가 여러 편 수록되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노턴 여성문학 선집>이 모범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었다는 것이었다.


미국 노턴 출판사에서는 1962년에 <노턴 영문학 선집>을 간행한 이래 미국 문학, 세계 문학, 유대인 문학, 흑인 문학 등 다양한 종류의 선집과 기타 작품집을 간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노턴 여성문학 선집>의 경우에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공저자들이 편집을 맡았다.


그런데 노턴 선집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우선 작가와 작품 선정의 편향성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판을 거듭할수록 백인 남성 작가들의 작품은 줄어드는 반면 타인종이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늘어난다는 보수파의 불만이 대표적이다.


<노턴 여성문학 선집>의 경우는 제목처럼 여성 작가/작품만을 대상으로 했을 법하니 이런 논란에서 한결 자유로울지도 모르지만, 남녀 작가 모두를 포함시킨 장르별 선집의 경우는 이런 논란을 항상 의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노턴 과학소설집>의 경우가 그랬다.


과학소설 작가 토머스 디쉬의 회고에 따르면, 어슐러 르귄이 공동 편집을 맡은 이 선집은 포괄적으로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수록 작품을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것으로 제한함으로써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활동한 백인 남성 개척자들을 완전히 외면해 버렸다.


나아가 르귄은 남녀동수에 집착한 까닭에 여성 작가의 비율을 과도하다 싶게 늘려 놓았으며, 시기상으로는 후보에 오를 만하지만 이념상으로는 자신과 맞지 않는 작가들을 외면한 까닭에 당연히 들어갈 만한 작품을 수록하지 않는 등, 명백히 균형을 상실한 행보를 보였다.


어슐러 르귄이라면 과학소설계에서는 뭔가 '다른' 목소리를 꾸준히 내서 존경을 받은 작가다. 하지만 이단적 견해를 선호한 나머지 음모론까지도 수용했던 린 마굴리스처럼, '다른' 것에 대한 집착이 사실의 왜곡을 낳았다고 치면 르귄의 행동에도 비판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노턴 여성문학 선집>의 작품 선정 기준이며 편집자의 의도 등에 대해서도 출간 당시부터 여성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비슷한 문제 제기가 있었던 모양이니, 이상형 월드컵이건 야식 월드컵이건 간에 선택에는 항상 반발이 따른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노턴 선집과 관련해서 또 하나 흥미로운 여담은 이 책의 국내 수용 과정이다. <노턴 영문학 선집>에서 해설 부분만 골라 번역한 <노튼 영문학 개관>의 역자후기를 보면 번역자가 대학원생 시절(아마도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 초쯤일 것이다) 이 책을 접한 사연이 나온다.


즉 학교 앞 헌책 노점에 처음 보는 두툼한 영어 원서가 있길래 뭔가 궁금해 뒤적이고 있노라니, 곧이어 같은 과 교수님이 '아니, 이런 책이 있었나?' 하고 놀라면서 노점 주인에게 같은 책을 더 구할 수 있느냐 물어본 다음, 그렇다고 하자 곧장 교재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젊은 지식인들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헌책과 잡지를 가지고 문학을 연구했다는 일화는 유종호나 김열규 같은 원로 학자들의 회고에서 종종 언급되는데, 어쩌면 <노턴 영문학 선집>의 수용 과정에서도 그런 '어려운 시절'의 비화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지금에 와서는 문학 정전(正典) 수립을 통한 서열화와 권력화와 비대화와 기타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거야?'의 견지에서 갖가지 비판을 받는 노턴 선집이지만, 이번 민음사의 새로운 "여류" 문학 선집 간행을 계기로 새삼스레 그 권위의 건재함을 되새겨보게 되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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