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 이야기>의 최초 원문 완역인 이미숙 번역본이 서울대출판부에서 1-2권만 간행되고 절판되어 아쉽더니만, 3-6권이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번역 총서로 속간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절판된 1-2권을 외면하고 3-4권부터 간행하며, 소명출판 번역 총서 디자인을 그대로 따르는 까닭에 판형과 표지도 싹 달라졌다는 점이다.
알라딘 포함 주요 서점에는 판형 정보도 잘못 기재된 것처럼 보인다. <겐지 이야기> 3-4권은 152x223cm라고 나오지만, 기존 총서 디자인을 따랐다면 152x232cm일 것이다. 소명출판 총서로 나온 <역주 악서 6>은 152x232cm, <알무타납비 시 선집>은 152x223cm라고 나오지만, 나귀님이 직접 재 보니 양쪽 모두 152x232cm였기 때문이다.
서울대출판부의 <겐지 이야기> 1-2권이 152x223cm이니, 소명출판의 <겐지 이야기> 3-6권과 나란히 꽂으면 높이 차가 1센티미터나 되고, 디자인도 달라 상당히 볼품없어질 것이다. 예전의 학술진흥재단(한국연구재단의 전신) 번역 총서는 출판사가 달라도 판형과 표지를 통일시켜 그나마 나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출판사마다 제멋대로다.
이런 식의 일관성 없는 총서/전집 간행이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예를 들어 지난번에 나귀님이 언급한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을 보라) 이번 사례는 총서/전집도 아닌 작품 하나를 쪼개면서도 들쑥날쑥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비판받을 만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연구재단 번역 총서에서 이런 사례가 처음까지도 아니란 점이다.
예를 들어 에드먼드 스펜서의 <선녀 여왕> 전6권도 1-2권이 나남, 3-6권이 아카넷에서 나오면서 판형과 표지가 달라졌다. 세창출판사에서 나온 짓펜샤 잇쿠의 <동해도 도보 여행기> 1-2권도 실제로는 원저 3-8권만의 번역이고, 원저 1-2권은 해당 번역자가 소명출판에서 먼저 간행한 <짓펜샤 잇쿠 작품 선집>에 있어서 따로 사야 한다.
물론 번역자의 사정이며 출판사의 사정이며 기타 등등의 사정으로 인한 변경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관계자 누구도 독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았다는 점은 꽤나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운동화 한 켤레를 주문했는데 제작사의 사정으로 사이즈와 디자인이 변경되었다며 짝짝이 물건이 도착하면 기분이 어떻겠나?
어떤 면에서는 한국연구재단 번역 총서가 이름 그대로 상업 출판이 아니라 세금 먹는 묻지마 출판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다. 즉 지원금을 받은 대가로 결과물을 내는 것이 우선이지, 번역이나 편집의 품질이라든지 나귀님 같은 하찮은 독자놈의 기분 따위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봐야 맞을 것도 같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귀님으로선 책을 이따위로 망쳐 놓은 관계자들에게 부디 평생 쇼핑 망하라는 악담이나 남기고 싶다. 예를 들어 운동화 한 켤레건 양말 한 켤레건 간에, 사는 물건마다 항상 짝짝이로만 배달되길 기원하고 싶은 것이다. 기껏 책을 사고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미는 독자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그 정도는 겪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