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카프카 100주기라고 해서 번역이며 평론이며 심지어 만화까지 이것저것 많이 나오며 떠들썩했는데, 그 사이에 체홉 번역서도 몇 가지 더 나온 것을 보고 희한하다 싶어 무슨 영문인가 알아보니 마침 7월 15일이 체홉 120주기였다고 한다.


카프카에 이 정도로 떠들썩했다면 체홉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는 떠들썩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는데, 막상 당일이 지나도록 체홉 평론이나 만화는 나오지 않은 듯하고, 심지어 알라딘의 알량한 창립 25주년 이벤트한테도 밀리고 만 듯하다.


나귀님이야 러시아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그저 책 몇 권 읽은 것뿐이니 딱히 말할 자격이야 없겠으나, 나름대로 최근 수년 사이에 많이 관심이 갔던 저자가 바로 체홉이었던 관계로 아쉬운 마음에 그간 뒤적인 내용을 토대로 몇 가지 적어볼까 한다.


체홉의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볼 결심을 한 것은 2020년의 코로나 대유행 시작 즈음이었다. 부득이하게 며칠 집에 박혀 있으면서 이번 기회에 못 읽은 책이나 읽어치우자 싶어 꺼낸 것이 오래 전에 사다 놓은 범우사의 다섯 권짜리 체홉 선집이었다.


체홉이라면 보통 단편부터 접하기 쉬울 터인데, 나귀님 역시 풍자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그의 초기 단편을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다. 생계를 위해 저술했기에 오늘날에는 문학적 가치가 덜하다는 박한 평을 받는 작품들이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하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대략 "꽁트"에 해당하는 짧은 이야기들인데, 그중에는 인생과 인심의 여러 단면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것들이 있어서 각별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귀님이 특히 재미있게 읽은 것은 "뚱뚱이와 홀쭉이"와 "카멜레온"이란 작품이다.


"뚱뚱이와 홀쭉이"는 8급 공무원 홀쭉이가 옛 친구인 뚱뚱이를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친근하게 너나들이를 하지만, 뚱뚱이가 무려 3급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홀쭉이가 갑자기 태세전환하며 비굴한 언행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카멜레온"은 경찰서장이 거리에서 사람을 문 개를 발견하며 시작된다. 당장 개를 혼내라고 언성을 높이다가,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저건 모 장군님 댁 강아지 같다'고 말하자마자 역시나 태세전환하며 오히려 물린 사람을 나무란다는 내용이다.


범우사의 체홉 선집은 1-2권에 단편, 3-4권에 중편, 5권에 희곡을 모아 놓았는데, 해학적인 작품을 좋아하는 나귀님이다 보니 구입 이후에도 1-2권만 완독하고 나머지 작품은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가, 코로나 덕분에 나머지 책들도 읽게 되었다.


다만 범우사의 체홉 선집은 편집이 영 좋지 않다. 오타는 기본이고 오역도 있는데, 예를 들어 희곡에서 한 명이 하는 대사를 오독해 두 명이 하는 대사로 (즉 "이씨: 어이, 김씨, 이봐"를 "이씨: 어이"와 "김씨: 이봐"로) 나누어 버린 경우가 그렇다.


여하간 체홉은 가볍고 해학적인 경향의 꽁트를 쓰며 문단에 나왔으나 '아까운 재능을 썩히지 말고 좀 더 진지한 작품을 쓰라'는 선배 작가의 충고에 심기일전해서 본격적인 소설을 발표하는데, 그중 하나가 선집 3권에 수록된 중편 "초원"이다.


나귀님으로서도 처음 읽는 셈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중 몇 가지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정확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취학 연령이 된 소년이 삼촌을 따라 초원을 가로질러 대도시까지 먼 길을 떠나면서 겪는 사건이다.


삼촌은 중도에 어딘가 다녀와야 한다며 소년을 초원에서 마주친 상인들의 무리에게 맡기고, 이후 상인들을 따라 여행하던 소년은 갑작스러운 폭우를 겪고, 일행 가운데 고참과 신참 상인의 주먹다짐을 목격하는 등 새로운 세상을 연이어 경험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괴롭힘을 참다 못한 신참이 고참에게 대들었을 때, 심지어 소년까지 분개해 주먹을 움켜쥐고 덤비자, 방금 전까지 악역이었던 자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어디 때려 봐라' 하면서 여유를 부리는 대목이다.


적어도 아이에게까지 야박하지는 않은 것을 보면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봐야 하는 걸까? 여하간 소년은 다시 삼촌과 만나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초원에서 겪은 갖가지 경험의 후유증 때문인지 이후 며칠 동안 끙끙 앓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초원"을 읽고 나서 새삼스레 체홉의 진지한 면모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겼고, 특히 그의 생애에서 또 한 번의 큰 전환점이었다던 사할린 여행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는데, 정작 그 기행문은 뒤늦게야 구입한 관계로 아직 읽지 못했다.


이러구러 단편과 중편을 섭렵하는 과정에서도 제5권에 수록된 대표 희곡만큼은 유난히 손이 가지 않았는데, 체홉이 소설가 못지않게 극작가로도 유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귀님의 편향된 독서 습관은 상당히 부당한 처우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 마침내 체홉의 희곡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단첸코의 회고록이었다. 그는 스타니슬랍스키("노력! 분발!")와 함께 모스크바 예술극단을 이끌며 <갈매기> 재공연에 성공하여 극작가로서 체홉의 명성을 굳혀준 은인이기도 하다.


단첸코의 회고록은 <모스크바 예술극단의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일어 중역본이다 보니 고유명사 표기부터 (예를 들어 "빌헬름"을 "비르헤르므"라고 쓰는 등) 완전 엉터리인데,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니 새 번역이 나오면 좋겠다.


이 회고록의 전반부는 체홉의 말년을 서술하는데, 기존의 유행과 다른 사실주의 희곡인 <갈매기> 초연이 관객의 몰이해로 대실패하며 크게 좌절했다가, 수년 뒤의 재공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비로소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는 것으로 나온다.


일각의 증언에 따르면 <갈매기>에 나오는 저 유명한 '동물 이름 대기' 부분에서 관객이 웃음을 터트린 것이 초연 실패의 원인이라는데, 시공사에서 나온 <체호프 희곡 전집>에는 어째서인지 거기 나오는 동물 이름 가운데 하나가 빠져 있었다.


여하간 <갈매기> 재공연이 큰 호응을 얻으며 체홉은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 동산> 같은 대표 희곡을 계속해서 저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같이 몰락이라는 소재를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작품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법하다.


단첸코의 회고가 워낙 흥미진진한 까닭에 읽어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나귀님의 구미에 딱 맞는 희곡들은 아니었다. 츠게 요시하루의 "리얼리즘 여관"에 나오는 대사처럼 '이 정도로까지 리얼리즘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는 느낌도 들었으니까.


체홉의 희곡이 높은 평가를 받는 까닭은 오늘날에는 흔해진 이런 일상적인 내용을 최초로 시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첸코에 따르면 체홉은 연습 중인 배우들에게 사실적인 연기를 주문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체홉 본인도 몰랐다 한다.


단첸코의 회고록에는 고리키와의 만남과 인연도 서술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요양 중이던 체홉을 만나러 갔다가 저만치서 오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어보았더니, 마침 그 사람이 방금 체홉을 만나고 나오던 고리키였다는 신기한 일화도 있다.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에서>를 덩달아 읽은 것도 단첸코의 회고록 덕분인데, 이것저것 사다 놓고서 아직 읽지 않았던 각종 장편과 단편과 회고록과 전기까지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훑어보려 작정하다가 코로나 대유행도 그만 끝나고 말았다.


원래의 계획 중에는 범우사의 체홉 선집과 다른 여러 출판사의 단편선에 나온 소설들만 모조리 읽고 나서 일종의 번역 작품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도 있었는데, 코로나 대유행 초기의 혼란이 지나며 시간이 없어지는 바람에 중도작파하게 되었다.


이 계획은 수년 전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영역본 체홉 단편 선집(THE TALES OF ANTON CHEKHOV, 13 vols., trans. by Constance Garnett. New York: Ecco, an imprint of HarperCollins Publishers, 2006) 박스세트를 구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제13권 권두의 해설에 따르면 체홉의 생전에 전집에 수록된 단편은 240편이며, 사후에 추가로 수집된 단편은 196편이었다. 가넷의 이 번역본은 앞의 240편 가운데 198편을 수록하고, 뒤의 196편 가운데 13편을 수록해서 모두 209편을 수록했다.


누락된 작품은 짧은 스케치, 또는 돈벌이용 글이어서 가치가 덜하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니, 비록 편수로는 절반 미만이지만 대표적인 작품은 대부분 들어갔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법해서, 영역본 제목 기준으로 번역본 서지를 작성하려던 것이었다.


번역 작품 목록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단편집에 중복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겹치는 작품들을 살펴보고 나면 가장 적은 권수로 가장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도출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다만 가넷 번역에 대해서는 나보코프가 톨스토이에 관한 글에서 혹평한 바 있어서 살짝 긴가민가 싶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저 러시아 출신 망명 작가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아무러면 어떠겠나 싶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나보코프는 <러시아 문학 강의>에서 체홉을 모파상에 비교하는 것을 거부하며 저 프랑스 작가를 폄하하지만, 단첸코의 증언에 따르면 체홉은 평소에 모파상을 무척 좋아하고 높이 평가했다니, 여기에서만큼은 나보코프가 틀린 셈이다.


우습게도 나보코프의 소설 <세바스찬 기사의 참인생>에는 이와 유사하게 제목에 나오는 망명 작가의 행적이며 성향에 대해서 함부로 넘겨짚는 돌팔이 비평가들에 대한 야유가 잔뜩 등장하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제 얼굴에 침 뱉기가 아닐까. 


심지어 나보코프는 체홉을 추켜세우기 위해 고리키를 깎아내리는데, 아무리 그래봤자 체홉이 생전에 교우했던 사람은 나보코프가 아니라 고리키였으니 이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여하간 나보코프의 말은 제법 할인해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귀님도 고리키라면 볼셰비키 정권에 동조했으니 기회주의자이자 관변 작가가 아닌가 하는 인상도 없지 않았는데, 일각에서는 휴머니스트인 관계로 여차 하면 소련의 양심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만 좌절하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는 모양이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를 보면 스탈린의 백해 운하 건설 당시 강제 노동하던 죄수들이 고리키의 방문 소식에 '그라면 이곳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줄 것이다'라고 기대하고서, 그의 시선을 끌려고 일부러 신문을 거꾸로 들고 읽었다고 나온다.


역시나 그 모습을 본 고리키가 선뜻 다가와서 '이보시오, 왜 당신은 신문을 거꾸로 들고 읽는 거요?'라고 물었지만, 감독관인지 당국자인지가 동행한 까닭에 노동자는 가혹한 현실을 차마 제보하지 못했고, 의아해 하던 고리키도 떠났다 한다.


물론 이제 와서 스탈린의 폭정과 소련의 실패 모두를 고리키의 (또는 동시대의 사회주의 동조자들의) 탓으로 돌릴 수야 없겠지만, 독재 치하의 휴머니스트였던 그가 과연 어디까지 인식했고 어디부터 침묵했는지는 솔직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오랜 우상인 톨스토이를 직접 만나 감탄하면서도 어쩐지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고 느꼈다고 말한 것이라든지, 톨스토이보다는 오히려 악녀 취급 받는 부인에게 오히려 공감했던 것을 보면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니 말이다.


다시 체홉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의 생애나 작품을 자세히 소개하는 우리말 연구서가 없다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체호프의 시대>라는 책이 있지만, 전공자만 독자로 상정했는지 "스쩬까"와 "스까즈"라는 용어가 설명 없이 등장해 황당했다.


구글링해 보니 "스쩬까"는 결국 스케치(sketch), 즉 단편보다도 짧은 글을 가리키고 "스카즈"는 구술 형식(oral form of narrative)으로서 레스코프의 작품에서처럼 등장인물의 구어체를 최대한 그럴싸하게 재현하는 것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내친 김에 <러시아 현대비평이론>에 수록된 보리스 에이헨바움의 "스까즈의 환상"이라는 짧은 글까지 찾아 읽고 나니, 이 용어를 우리말로 옮기기가 어렵다는 점까지는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짜고짜 음역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나 싶다.


여하간 의욕만 있었고 성과는 없었던 나귀님의 체홉 읽기였지만, 120주기를 무심히 보내기 아쉬워 몇 가지만 대강 적어 본다. 부디 130주기에는 좀 더 관심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결국 카프카 110주기에 또 밀릴 건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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